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으로부터 유익을 얻음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7:31.
1, 2. 우리가 우리의 양심으로부터 나오는 지침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잠언 12:15; 14:12)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광범위한 법전을 주시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얼마의 법 또는 직접적인 규칙들, 그리고 우리의 믿음과 양심에 따라 적용해야 할 많은 원칙들을 마련해 주셨읍니다. 하지만,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것으로부터 온전한 유익을 얻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괜찮은 일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생각입니까?
2 성서는 우리의 죄있는 육신 때문에 우리의 양심은 우리를 그릇 인도할 수 있으며, 양심은 약해지고 오도되거나 혹은 더럽혀질 수 있다고 알려 줍니다. 우리는 제1세기의 ‘그레데’ 거민들에 관해 고려해 봄으로써 “당신의 양심을 지침으로 삼으라”는 견해의 위험성을 보다 잘 인식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들로서 알려져 있었읍니다.—디도 1:10-12.
3. ‘그레데’인들에게 양심은 어떠한 영향을 미쳤읍니까?
3 모든 족속들과 마찬가지로, ‘그레데’인들에게도 타고난 양심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양심으로부터 유익을 받지 못하였읍니다. ‘그레데’에 있는 ‘디도’에게 편지하는 가운데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디도 1:15; 로마 2:14, 15) 대부분의 ‘그레데’인들은 그들이 도덕적인 일이나 깨끗한 일을 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무딘 양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디모데 전 4:2) 다수의 ‘그레데’인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었읍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그들은 더러워진 양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개의 상황을 악을 행할 기회로 보았읍니다. 그들은 ‘그것은 나의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어야 옳았읍니다! 그러나 ‘그레데’에 거하는 일부 ‘유대’인들이나 혹은 ‘유대’교 개종자들은 기원 33년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있었읍니다. 그들의 영적 지식은 그들이 거짓말장이나 짐승 같이 해를 끼치는 자 혹은 탐욕적인 자가 되지 않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으로부터 더욱 많은 도움을 받아 선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양심을 갖게 되었읍니다.—사도 2:5, 11; 디도 1:5; 2:2-5; 3:3-7.
4, 5. 우리는 ‘바울’의 경우로부터 양심에 관해 무엇을 배워 알 수 있읍니까?
4 그러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있어 옳은 일을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까지도 그릇 인도할 수 있읍니다. ‘사울’ 즉 ‘바울’은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율법에 따라 열렬히 숭배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의 점진적인 성취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였읍니다. ‘메시야’가 도착하여 전파하다 죽음으로써 예언을 성취시킨 후에도 ‘바울’은 계속 ‘바리새’파의 ‘유대’교를 믿었읍니다. 그의 양심은 그로 하여금 “교회를 핍박하고” “주의 제자들을 향하여 ··· 위협과 살기가 등등”해지지 않게 막지 못하였읍니다.—빌립보 3:4-6; 사도 9:1, 2.
5 이러한 예들은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그릇 인도할 수 있음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특정한 성서의 법으로 다룰 수 없는 양심 문제인 많은 결정들에 직면하게 되므로 우리는 양심을 훈련시켜 그것으로부터 최대의 유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읍니다. 이제 우리는 세 가지 부면을 고려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알려 주는가?
6, 7. 양심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6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에는 하나님의 생각 혹은 원칙들에 관해 우리를 일깨워주어 우리의 양심을 교육시켜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읍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요셉’은 간음을 단죄하는 하나님의 기록된 법을 가지고 있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요셉’의 양심은 올바로 교육되어 있었읍니다. 그는 의문의 여지 없이, 하나님의 목적은 남편과 아내(“그 둘이”)가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간음을 통한 제삼자의 침입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리하였읍니다. 그리고 분명히, ‘요셉’은 간음에 관한 하나님의 입장을 밝혀준, 하나님의 벗인 ‘아브라함’과 관련된 경험을 알고 있었읍니다.—마태 19:5; 창세 2:24; 20:1-18.
7 우리도 그와 비슷한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상이한 국적, 인종 또는 배경을 가진 사람과 식사를 하자거나 사업 거래를 하자는 초대를 받아들이는 일에 관한 결정에 직면하게 될 수 있읍니다. 그것은 개인이 결정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서로부터 편벽이 없고 공평하신 하나님의 태도를 받아들였다면, 우리의 교육받은 양심은,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우리를 에워쌌을지도 모를 어떠한 편견도 상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10:34, 35; 야고보 2:1-4) 이처럼 성서 원칙들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8. 양심의 결정에 직면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8 우리가 어떤 문제를 결정해야 할 때 ‘선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와 관련하여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양심과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미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전 3:16) 명백한 법을 찾아봄과 아울러 우리는 그와 관련된 어떤 성서적 원칙들이 있는지의 여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의 말씀과 행동 가운데는 그러한 결정에 관한 그분의 생각을 알려 주는 예가 있읍니까? 우리는 그러한 문제를 논하는 성서 연구 보조서들을 조사해 볼 수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가 관련된 성서 원칙들을 찾아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상의할 수 있읍니다. 물론 그 단계를 밟을 때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책임을 져 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당신이 이 문제에 부닥친다면 어떻게 하겠읍니까?’라는 식으로 묻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갈라디아 6:5.
9. 양심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9 개인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깨끗하고 평온한 양심을 유지시켜 줄 행로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라.]”라고 말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고린도 후 1:12) 그리스도인이 여호와와 그분의 원칙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는 그가 양심 문제에 관해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가에 나타날 수 있읍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가?
10, 11. 고대 ‘고린도’에서 있었던 음식에 관한 문제는 양심이 관련된 문제에 관하여 어떠한 두번째 부면을 설명해 줍니까?
10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양심이 그들로 하나님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양심이 관련된 결정을 할 때 주된 영향을 주는 한 가지 요소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 찬 관심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음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관해 편지하였을 때 이 부면이 잘 설명되었읍니다.
11 ‘고린도’ 회중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에 관하여 문제가 생기게 되었읍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우상 숭배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 제단의 고기를 먹는 것은 우상 숭배 행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신전과 관계가 있는 음식점 같은 장사나 대중 고기 시장 등에서 판매하는 남은 고기를 먹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설명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8:10; 10:25; 사도 15:29) 그렇지만, 이전에 우상 숭배를 행한 일이 있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고기가 종교와 무관하게 시판되고 있는 경우에도, 그러한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하여 민감하였읍니다. 즉 약한 양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약한 양심을 관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울’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형제들을 고려할 것을 강권하였읍니다. 이들로 실족하게 하거나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고 다시 우상 숭배에 참여하게 할 만한 일을 하는 것은 사랑의 행동이 아닐 것이었읍니다.
12, 13.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 양심이 왜 고려되어야 합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12 ‘바울’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여 주었읍니다. “식물[혹은 그 외의 어느 것]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리라.]” 우리의 양심이 결정할 문제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행할 자유를 가지고 있는 일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양심을 무시하여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우리의 형제’를 실족케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좋은 신분을 상실할 수 있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질문하였읍니다.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고린도 전 8:3, 11-13; 10:29) 설사 어떤 사람이 ‘개인의 양심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다면 그로 말미암아 그는 여호와의 불리한 심판을 받게 될 수 있읍니다. 이것은 ‘내 양심이 결정한 일이라면 괜찮다’라는 생각이 얼마나 기만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13 성서 연구를 하고 있었고 집회에 참석하여 침례의 단계에 가까와가던 어느 부부의 경험을 고려해 보십시오. 회중의 한 장로가 그 남편에게 자기는 특정한 영화를 즐긴다고 말하였읍니다. 그 사람은 ‘아니, 당신도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십니까?’ 하고 반문하였읍니다. 그 장로는, 이들 영화(세상에서도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가운데 얼마는 그 부정적인 면을 무시한다면 가치가 있다는 말로 자기 행동을 변명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 후 그 사람은 그의 아내보다 발전 속도가 더뎠읍니다. 그 장로가 골로새 3:2-8, 에베소 5:3-5 및 마태 복음 7:12과 같은 성귀들을 숙고했더라면 그것들은 그의 양심과 행실에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9:22, 25-27.
14, 15. 장로의 회의 양심은 일부 개인적인 문제들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 수 있읍니까?
14 또한, 다른 사람들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그들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승인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회중 장로들은 왕국회관에서 결혼식을 갖도록 허락하고, 그것을 어떻게 거행할 것인지, 회관을 어떻게 단장할 것인지 등에 대해 책임이 있읍니다.a 한 회중의 장로들은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한 결혼식에서는 신부 들러리들 모두가 부채질을 하면서 통로를 따라 행진했읍니다. 다음번 결혼식은 처음 것을 능가해야 했기 때문에 양산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통로를 따라 행진했읍니다. 그 다음 것은 그보다 더 거창하고 더 멋있어야 하였읍니다. 결국 20명의 신부 들러리 및 20명의 안내원을 동원하기 원하였읍니다. 회관은 ‘서어커스’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15 이것은 개인이 결정해야 할 ‘양심 문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약혼한 남녀의 양심은 과도하거나 터무니 없는 일을 용납 할지라도 장로들의 집단적인 양심이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장로들은 그들의 개인적 기호를 강요하려 하지 않는 한편 전체 회중의 평화, 조화 및 영성을 염두에 두고 있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리의 기둥과 터인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도록 사람들을 양심으로 인해 도와주어야 합니다.—디모데 전 3:15; 고린도 전 10:31.
16. 우리는 우리의 양심에 따라야 할 일을 결정해야 할 경우, 무엇을 고려해야 합니까?
16 그러므로, ‘양심 문제’에 관한 결정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는 (1) 그것에 관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그리고 (2) 우리의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그들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심사 숙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세번째 부면이 있읍니다.
우리 자신은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인가?
17. 양심은 ‘뉴우요오크’ 시에 사는 한 형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17 「박물학」(Natural History)지, 1981년 8월호는 ‘뉴우요오크’ 시 주변의 회사들로 보내는 긴급한 소포나 편지를 배달해 주는 그 도시의 자전차 배달부들에 관한 기사를 실었읍니다. 이러한 형태의 일에 종사해 온 사람들의 예 가운데서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읽게 됩니다. “‘도날드’라는 41세된 한 배달부는 그의 수입으로 아내와 15세된 아들을 부양할 수 있다. ‘도날드’는 ‘필름’ 현상가였으나, ‘여호와의 증인’인 그는 외설물을 제작하는 데 자기가 담당하던 역할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직업을 포기하였다. 배달부로서 그는 자기 양심이 깨끗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자기 재량껏 일을 쉬고 전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바칠 수도 있게 되었다.”
18. (ㄱ) 이 형제는 어떻게 자신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 것입니까? (ㄴ)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읍니까?
18 직업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관련됩니다. (21면 네모안 참조) ‘도날드’의 경우와 유사하게, 어떤 그리스도인이 ‘스냅’ 사진, 집에서 보는 영화, 광고 ‘필름’ 및 상업 영화 등을 취급하는 ‘필름’ 현상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제 점차적으로 어떤 외설물을 맡게 될지 모릅니다. 어느 정도 그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외설물 또는 기타 불법적인 활동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들고 있음을 깨닫게 될지 모릅니다. 외설물을 취급하는 회사에 속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혹은 그가 하도록 요구받는 일 때문에, 그는 직장을 그만 두어야 “비난받을 일이 없”게 될 수 있음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그것은 회중 내에서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나 특권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는 다른 직장을 찾아 구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의 축복을 간구할 수 있읍니다. (디모데 전 3:2, 8-10, 새번역 참조; 로마 13:5) 의문의 여지없이, 불결함이 자신을 해치게 하지 않고 그런 직업을 내버린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있읍니다. (마태 5:28 비교) 그러므로, 양심의 결정에 직면할 때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행하거나 혹은 거절하면 그것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우리는 결코, 우리의 양심을 무시하여 그것이 무디게 되고, 그리하여 장차 악을 행하기가 더 쉬워지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디모데 전 4:2; 유다 10; 에베소 4:18, 19.
19, 20. (ㄱ) 양심과 믿음은 우리의 봉사의 직무에 대해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읍니까? (ㄴ) 빈부에 관계없이 우리의 욕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합니까?
19 우리는 ‘도날드’가 내린 양심적인 결정에 대해 숙고하면서, 그는 여호와의 승인받는 관계를 추구하는 것에 더하여 그의 믿음을 더 많이 선포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양심과 믿음을 다음과 같이 결부시킨 사실과 일치합니다.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니라.]”—디모데 전 1:5
20 선한 양심을 구하는 믿음과 욕망이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주의를 바칠 수 있게 조정을 하도록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사도 20:26, 27) 그러나, 우리는 환경으로 볼 때 전파하는 일을 좀더 많이 할 수 있는 것 같은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그들은 그들의 직업이나 사업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이 많고 현 제도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기에 족할 만큼의 재력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파이오니아’로서 전 시간 제자를 삼는 일을 하는 기쁨을 누리지 않고, 그들은 계속 그들의 사업과 집과 문명의 이기들을 늘리는 데 진력합니다.b (마가 10:17-22; 누가 12:16-21 비교) 우리는 그러한 범주에 속한 사람들을 판단할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위선적으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마음을 움직임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섬김으로 깨끗한 양심을 즐길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로마 14:1-4, 10-12.
선한 양심의 인도를 받음
21. 우리의 양심은 우리에게 어떤 적극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읍니까?
21 적절히 교육받은 민감한 그리스도인 양심은 우리로 선한 일을 하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에 그러하였읍니다. 그는 ‘그의 형제들’ 곧 동료 ‘유대’인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라.]” (로마 9:1-3) 그렇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교의 좋은 소식을 그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하였읍니다.
22. 양심이 규칙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우리를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2 우리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심의 가치를 인식한다면 규칙에만 얽매여 생각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규칙들은 최소한의 요구 사항이나 목표를 제시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과 믿음에 의해 자극받은 양심은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요구하여 더 큰 희생을 하고 더 비이기적이 되도록 우리를 움직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확실히 우리의 양심으로부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승인을 받지 못할 일을 행하지 않고 그분이 명백히 승인하시는 일을 행하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양심이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일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우리를 인도함에 따라 더 그러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것보다 더 큰 유익이 어찌 또 있을 수 있겠읍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디모데 전 4:16.
[각주]
b 지방 회중은 보다 많은 ‘파이오니아’들로부터 유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얻을 가망성이 없기 때문에 이사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지역들에서 영적으로 굶주리는 관심자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도움을 구하는 이러한 요청에 응한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 될 것인가!—사도 16:9, 10.
기억할 수 있는가?
◻ ‘어떤 일이 나의 양심에 가책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괜찮은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왜 위험한가?
◻ 우리의 양심이 결정해야 할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요소들은 어떠한 것들인가?
◻ 양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일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21면 네모]
직업을 구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
그리스도인이 어떤 직업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는 우선 자기가 실제로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 특정한 일은 성서에서 정죄하는 일인가?
성서는 도둑질, 우상 숭배 및 피의 오용과 같은 일들을 정죄하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것들을 직접 고무하는 일에 종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일을 하는 것은 정죄된 행위를 하는 사람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의 뚜렷한 공범자가 되게 할 것인가?
혈액 은행이나 무기만 만드는 공장에서의 일자리는 관리인이나 접수 계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는 일과 직결되어 있다.—레위 17:13, 14; 이사야 2:2-4.
실제로 무슨 일을 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점 외에도, 일부 부가적인 요소들이 전체적인 양상에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 일은 성서적으로 범죄가 아닌 인간적인 봉사인가?
우체부는 우편물을 가정과 회사로 배달해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우편물을 배달해 주는 곳들 가운데 도적의 집이나 우상을 판매하는 회사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는 정죄받게 될 것인가?—마태 5:45.
수행되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상점 주인이라면 우상이나 피 섞인 ‘소세지’를 비축하거나 판매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입장은, 수많은 다른 품목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담배나 피 섞인 순대를 판매하는 ‘수퍼마켙’의 고용인과는 다르다.
어느 정도까지 관련되는가?
출납 계원으로 일하도록 고용되어 이따금씩만 담배를 취급하는 사람은 담배를 거의 온종일 창고에 적재하는 일을 하는 다른 고용인과는 입장이 다르다고 결론을 내릴지 모른다.
급료의 출처 혹은 그것이 지불되는 장소는 어떠한가?
정부가 교회로 하여금 모든 사회적인 계획들을 관할하게 하는 나라에서는 봉급을 종교 단체로부터 지급받아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이 공립 공원을 관리하는 일이라면 사실상 그것은 교회 재산과는 무관하다. 그 일은 종교적인 성격을 띤 것이 아니며, 또한 거짓 숭배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없다.
그 일을 함으로써 오게 되는 전체적인 영향은 어떠한가?
그 일을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실족시켜 ‘비난’을 초래하는가? (디모데 전 3:2, 10) 그것은 일하는 사람의 양심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18면 삽화]
동료 그리스도인은 당신이 양심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알려 주는 바를 찾아 볼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다
[20면 삽화]
당신의 결정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