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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떠 있는 별깨어라!—1972 |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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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 있는 것 같으므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라디오’가 잘 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1970년 3월에 ‘필리핀’에서 보고한 바 있는데, 그 태양 폭풍이 어찌나 강했던지 전문가들은 그것이 태양 적도 근처 지역의 60 내지 70‘퍼센트’를 덮었다고 말했다. 이 흑점으로 말미암아 비교적 낮은 주파수에 한시간 이상 ‘라디오’ 수신 두절 현상이 일어났다. 태양 폭풍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있는 다른 전기 기구들도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나침반의 바늘은 북쪽을 가리키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돌아간다.
식물은 태양 광선을 흡인한다
그러면 우주 공간을 선회하며 수억만리 떨어져 있는 이 큰 별이 어떠한 면으로 우리 개개인에게 영향을 주는가?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마련해 준다. 어떻게 그러한가?
광합성(光合性) 작용에 의하여 그렇게 한다. 영어로 “광합성”(“photo-synthesis”)은 “빛”을 의미하는 “photos”와 “모아 붙임”이라는 “synthesis”에서 나온 말이다. 광합성 작용은 녹색식물이 태양 광선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 탄소와 물로부터 식품을 모을 때 일어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식품이 탄수화물이다. 동시에 물에 있던 산소는 산소 ‘개스’로 내보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는 식품 뿐 아니라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 중의 산소는 광합성 작용 때문에 있는 것이다.
생명에 꼭 필요한 또 다른 요소는 온기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태양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태양이 생명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봄에 제일 잘 알 수 있다. 봄이 되면 태양 광선의 열이 얼어 붙었던 땅에 스며들어 작은 실생(實生)을 깨워 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게 하기 때문이다. 지면에 닿는 열량이 그곳에 무엇이 자랄 수 있는가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준다. 연중 가장 따뜻한 달에도 평균 기온이 섭씨 6도 이하로 내려 가는 북극 지방 같은 곳에서는 중요한 식물이 하나도 자랄 수 없다.
태양은 우리가 살아나갈 수 있도록 식품과 공기를 공급해 줄 뿐 아니라 맑은 물도 공급해 준다. 태양 열은 땅과 호수와 강에서 수증기를 끌어 올린다. 이 수증기가 상층의 대기권에서 액화하여 구름을 형성한다. 마침내 이 구름 속에 있는 수분이 비가 되어 땅으로 다시 떨어지는데 이 비 때문에 강물이 흐르고 식물이 자라며 우리에게 필요한 맑은 물이 있게 된다. 「욥기」에 기록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엘리후’의 말이 그것을 묘사한다.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욥 36:27, 28) 강우량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이러한 계속적인 순환은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영향과 유익
태양은 또한 우리에게 색깔을 준다. 왜냐 하면, 색깔이란 태양 ‘스펙트럼’에 있는 여러 가지 색깔이 물체에 반사되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태양이 주는 심리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냉정하거나 피곤하거나 외로운 사람도 따뜻한 햇빛이 쏟아지는 화창한 날 기분이 누그러진다. 그렇지 않은가?
태양은 달과 함께 거대한 시계 역할을 한다. (창세 1:14, 15) 하루를 24시간으로 정하는 태양일은 지구가 자전하는 것을 근거로 정하여졌다. 1년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리고 태양이 하늘에 떠 있는 높이의 변화와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의 길이의 변화는 기후와 자연계의 계절적 변화의 주원인이다.
그렇다, 태양은 우리의 생활에 지대한 ‘에너지’원을 마련하셔서 우리에게 빛과 온기와 호흡하는 공기가 되도록 하셨다. 태양은 여름에 소나기를 내려주고 봄에 꽃을 피게 해 준다. 그리고 우리는 태양에 준하여 시간을 지키고 생활을 조정한다.
태양은 지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태양이 없다면 지구는 우주 공간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태양이 없다면 달은 태양 광선을 반사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어두움에 싸여버릴 것이다. 지구는 아주 냉혹하게 되고 지상에는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므로 찬란한 일몰 광경이 없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태양의 창조주께서는 낮에 떠 있는 별이 영원무궁토록 빛을 발할 것이며 그리하여 찬란한 열과 빛으로 지구를 감싸 주는 일이 끝없이 계속될 것을 확약하신다.—시 89:36; 104:5; 창세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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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같이 보이는 수자적 불일치가 해결될 수 있는가?깨어라!—1972 |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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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모순같이 보이는 수자적 불일치가 해결될 수 있는가?
성서를 읽다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수자의 불일치를 발견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한 경우에 우리는 그것이 복사자의 실수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히브리어 성경」의 사본을 만드는 사람들은 극도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서인들은 복사한 단어 뿐만 아니라 글자 수까지도 세었다. 그들이 미소한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그들은 오류가 생긴 두루마리 전체를 잘라내고 새로운 오기(誤記)가 없는 두루마리로 대치하였다. 사서인들은 각 단어를 큰 소리로 읽고 나서 썼다. 한 단어라도 기억에 의하여 기록하는 것은 큰 죄로 생각하였다. 수자를 복사하는 데도 이러한 정성이 들었으며 수자는 완전히 표기하였다.
그러므로 모순같이 보이는 수자의 불일치가 있다고 하여 사서인의 오류라고 속단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먼저 수자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해결이 나올 것 같지 않더라도 꼭 귀절이 부정확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언급되지 않은 내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수자의 차이가 특정한 사건의 각각 다른 면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느부사라단’이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에 간 사건이 그러한 예인 것같다. 열왕기 하 25:8은 이러하다.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라].” 그러나 예레미야 52:12은 ‘느부사라단’이 5월 10일에 ‘예루살렘’에 “들어 갔다”(신세)고 말한다.
이러한 3일간의 차이에 대하여 한 저서(The Soncino Books of the Bible, 「예레미야」편 353면)는 이렇게 말한다. “3일 간격은 ‘느부사라단’이 현장에 도착한 날과 행동을 시작한 날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느부사라단’이 7일에 도착하여 성벽 밖에서 그의 진영을 돌아본 것 같다. 마침내 10일에 그는 실제로 그 도시로 들어갔다.
‘레위’인들이 성소에서 봉사를 시작한 연령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민수기 4:3, 30에 의하면 ‘레위’인들은 30세에 봉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민수기 8:24에는 ‘레위’인들이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 연령 제한이 25세로 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가 있는 이유는 두 종류의 봉사를 논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므로 일부 ‘유대’인 율법 학자들은 25세에 ‘레위’인이 성막 봉사를 시작하였지만 단지 쉬운 일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30세가 되면 성막을 분해하고 옮기고 세우는 일 등 좀 더 힘든 일을 하였다. 이러한 결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봉사와 메는 일에 입참하여 일할 말한 모든 자”라는 말이 30세에 시작하는 ‘레위’인의 일과 관련해서만 언급된 사실이 있다.—민수 4:3,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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