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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마음(심장)은 거짓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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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마음(심장)은 거짓되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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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파71 6/15 275-281면

사람의 마음(심장)은 거짓되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심장]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예레미야 17:9, 10.

1. 성서는 사람의 마음의 경향이 어떠하다는 것을 솔직히 우리에게 알려 줍니까?

우리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사람이 선한 마음[심장]과 의에 대한 정신적 경향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음을 항시 상기시켜 줍니다. 신생아의 순진성에도 불구하고 죄와 불완전성은 그의 임신 때부터 이미 그의 속에서 작용합니다. 시편 필자 ‘다윗’은 그 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5) 자녀를 “여호와의 징계와 정신적 단속으로” 양육하려고 노력하는 양심적 부모라 할지라도 흔히 “아이의 마음[심장]에는 미련한 것이 얽”혀 있음을 통감하게 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징계하는 채찍”을 사용해야만 그것을 “멀리 쫓아”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에베소 6:4, 신세; 잠언 22:15)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게도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전달된 이 불행한 유전을 주목하게 되셨읍니다. 그리하여 세계적 홍수 후에 ‘노아’와 그의 가족이 제사드린 희생을 받아들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심장]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세 8:21.

마음[심장]은 기만적일 수 있다

2. (ㄱ) 어떻게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읍니까? (ㄴ) 사도 ‘바울’은 자기가 정신을 새롭게 한 후에도 어떠한 사실이 있음을 인정하였읍니까?

2 마음을 상대로 하는 일은 미묘합니다. 만일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속게 됩니다. 성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심장]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예레미야 17:9) 거짓된 사람은 신임이나 믿음을 배반하기 쉬운 성품으로써 알 수 있으며 그는 불충실하고 신용할 수 없고 사실상 반역적인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의 불완전한 상태 때문에 우리 가슴 속에 잠재적 반역자가 들어 있읍니다! 우리는 때로는 마음에 뿌리박기 시작하는 일로 경악하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음이 터무니 없는 일을 원하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의 발단이 될 수 있읍니다. 우리는 즉시 그러한 새로운 애착을 사라지게 하고 갑자기 일어난 욕망을 지워버리도록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새롭게 된 정신이 불완전한 육체로 말미암아 지게 된 무거운 짐과 더불어 마음에서 일어난 악한 욕망을 대항하여 싸움을 한다는 것을 고백하였읍니다. “나는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참으로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서 다른 법이 내 정신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 속박하는 것을 봅니다.” (로마 7:22, 23, 신세) 그는 여호와께서만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비참한 상태에서 우리를 구하실 수 있음을 인정하였읍니다. 우리 계략에만 맡겨진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잘못된 길로 가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심장]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언 19:21.

3. 정신이 추리해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마음에 영향을 미칠 위치에 있지만, 만일 마음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읍니까?

3 이미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마음 곧 심장은 언제나 정신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정신의 논리력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정신을 압도 할 때가 있읍니다. 우리는 마음(심장) 역시 추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마음에서 우리의 동기와 애정 및 욕망이 틀잡히고 선악간 어떤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일이 일어나는 것만큼 논리적인 문제가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 ··· 마음[심장]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였읍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께서는 “마음[심장]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시 19:14; 마태 15:19) 정신은 마음에게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읍니다. 즉 그것은 마음에게 논리적 추천을 하고 호소합니다. 아마 과거 경험을 근거로 해서든지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위험성이 관련된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행로를 취하도록 강력히 촉구합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일에 대한 욕망과 애정이 마음에 강하게 세워져 있다면 마음은 이길 수 있읍니다.

4. 새 양복이나 의상을 사는 문제와 관련해서 정신과 마음의 작용을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4 예를 들어, 당신이 새로 양복이나 의상을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합시다. 먼저 정신이 어떤 사실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마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이 쓸모가 없게 되었거나 새 것으로 바꿔야 할 만한 좋은 이유가 있을지 모릅니다. 여기에 마음도 상당한 관련을 갖게 됩니다. 모양을 내고 싶은 욕망이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정신이 새 의상이나 새 양복을 사기로 합의를 보게 됩니다. 이제 정신은 값이라든가 천, ‘스타일’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이 옷을 사러나가면 어떤 양복 혹은 의상을 살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당신이 상점에 도착해 보니 감상적인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매우 매력적인 것이 진열되어 있읍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그리 실용성이 있지도 않고, 값도 더 비싸고, ‘스타일’도 좀 지나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것이 꼭 마음에 든다!”

5. 우리의 마음이 여호와의 뜻을 행하도록 계속 연합해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합니까?

5 이제 어떻게 할 것입니까? 어떻게 결정할 것입니까? 이미 생각했던 것이 실용적일 것입니까? 혹은 이 마음의 새로운 욕망에 따르는 것이 실용적일 것입니까? 만일 당신이 매우 조심하지 않는다면 마음이 정신을 압도할 것입니다. 당신은 더 나은 판단과 반대되는 길을 따르려고 할 것입니다. 한편 때때로 일어나는 경우지만 이 경우에도 마음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얼른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일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선한 욕망과 애착이 더 강해서 이기게 되어 당신에게 필요한 옷을 사는데 가장 실용적인 것을 사도록 올바른 결정을 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가를 확인하기 위하여는 미리 당신의 마음을 여호와의 충고에 따라 강화하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 사람이 그의 생활에서 여호와의 권익과 원칙을 첫째로 두기 위하여 마음에 배양한 더 강한 욕망은 마음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매력적인 관심사와 욕망을 통제할 수 있읍니다.—잠언 28:26.

6. 만일 나쁜 욕망이 마음에 뿌리박기 시작하면 왜 즉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6 이제 이러한 추리를 좀 더 깊이, 우리 생활의 더 심각한 국면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우리가 부도덕한 행위를 하도록 즉 도적질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도록 유혹을 받게 될 때에 마음은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좀더 심각하게, 어떤 사람이 마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계략을 하기 시작한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당신의 마음은 당신으로 나쁜 길을 떠나게 할 만큼 강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육체의 욕망으로 빠져 들어갈 위험성을 몰래 받아들이는데 굴복할 것입니까?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을 지체하는 것은 재난이 될 수 있읍니다. 마음이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고, 감정이 자극을 받고, 육체가 나쁜 일을 위하여 준비하면 강한 힘이 발동하게 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마음 곧 심장에서 시작하는 것]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 1:14, 15.

7. 마음이 어떻게 정신의 논증과 반대되는 길을 가도록 결정하는 데 성공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7 예를 들어 자기 배우자가 아닌 어떤 여자와 간음을 하도록 유혹받는 한 결혼한 남자의 경우를 고려해 보십시다. 그의 정신은 아마 그가 배운 것이나 듣고 본 것에서 그러한 행동을 강력히 반대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행한 다른 사람의 결과를 추리하고 그러한 짓이 마침내 가져오게 될 난관과 나쁜 후유증을 고려함으로써 그의 정신은 그러한 유혹으로부터 떠나는 방향으로 강력한 논증을 제시하고 그러한 위험한 곳에서 급히 떠나도록 재촉하는 지식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이 그 유혹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그의 마음은 그의 정신이 제공하고 추천하는 것과 반대되는 결정을 하게 할 것입니다. 사실상 마음은 정신에게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행할 길이다” 하고 말하는 셈입니다. 그의 마음의 감상적인 힘이 그의 정신의 충고와 이성에 반대해서 그로 위험한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합니다.

8. 성서는 사람이 행동하게 될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의 기능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8 임의로 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고 그것에 욕망을 고정시킬 수 있는 이 마음[심장]의 기능이 성서가 사람의 마음을 ‘계획을 하는 것’ 또는 ‘자기의 길을 계획하는 것’ 즉 그의 정신이 먼저 생각하고 그의 마음에 호소력이 있는 계획을 하는 것으로 말한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잠언 19:21; 16:9) 도덕적, 영적 문제의 경우에 있어서는 특히 그러합니다.

9. 만일 마음이 악을 행하려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정신에게 그 영향을 미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읍니까?

9 그러나 이뿐 아니라 마음은 이제 거짓 추리를 해서 나쁜 길로 가는데 대한 구실 혹은 핑계를 찾아내도록 정신을 움직일 것입니다. 그 사람은 죄를 범하는 행동으로 옮길지 모르며 그가 바로 죄를 범하면서 그의 마음은 정신에게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길을 발명해 내도록 재촉할 것입니다. 그는 아마 ‘하나님은 매우 자비로우시니까 나의 육체의 약함을 인하여 그는 나를 용서하실 것이다’ 하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총애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는 나쁜 행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고 말하는 악한 자와 같이 됩니다. (시 10:11; 로마 1:21, 24을 비교) 그러므로 성경이 우리에게 죄인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예레미야 17:9.

10, 11. (ㄱ) 예수께서는 사람이 그의 마음에 간음을 범하는 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자기 아내가 아닌 여자를 만지지도 않았어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의 마음에 간음을 할 수 있읍니까?

10 이 사실은 또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지지도 않았어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를 간음한 사람으로 보실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해 줍니다.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가 아닌 아름다운 여자를 힐끗 보고서 그의 마음으로 “그 여자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하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는 그것을 전혀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그렇게 했을지 모릅니다. 이 지나가는 추론이 꼭 나쁘다거나 불순하다고 할 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여자를 “계속 주시”한다면 욕망은 발전하게 되어 그의 마음에서 그 여자에 대한 정욕을 품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충고하셨읍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계속 주시하고, 신세] 음욕을 품는 [결혼한]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리라.”—마태 5:28.

11 그러한 사람은 육체적으로 실제 행동하지는 않았읍니다. 아마 환경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든지 여러 가지 불리한 문제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을지 모릅니다. 그의 정신이 아마 그에게 이러한 점들을 경고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환경이 변해지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고, 심각한 사후 문제를 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의 마음은 이미 행동으로 옮기기를 원할 것이며, 그렇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온전한 동기는 있읍니다. 다만 기회가 없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러한 자는 이미 범죄한 자입니다. (야고보 1:13-15을 비교)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람은 도적질이나 심지어 살인죄를 범할 수 있읍니다. (요한 1서 3:15) 그러면, 이제 우리는 정신과 마음 사이에 대한 성서의 명백한 구분을 인식하고 정신이 아니라 마음이 동기의 바탕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읍니까?

12. ‘다윗’은 어떻게 그의 마음이 자기를 잘못 인도하게 하였으며 이와 반대로 ‘요셉’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12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날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멀리서 목욕을 하고 있는 ‘밧세바’를 보았읍니다. 아마 이것은 우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마음에서 욕정이 활동하기 전에 생각을 돌리지 않고 그를 주시하며 그 여자에 대하여 정욕을 품었읍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그로 하여금 수치스러운 간음을 범하게 하였고, 그 여자를 아내로 취하기 위하여 그의 남편을 죽일 음모를 꾀하게 하였읍니다. 이와는 반대로 ‘요셉’은 자기 상전의 성에 미친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때 도망하였읍니다. 그가 억울하게도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얼마 동안 자유를 잃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선한 양심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하지 않았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마음과 그것에게 필요한 것을 아신다

13. 성경은 여호와께서 마음을 정확하게 아시는 점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3 누가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있읍니까? 우리는 우리의 불완전한 상태로서는 우리가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아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감사해야 할 것입니까!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 각각 그 행위와 그 형태대로 보응하느니[라].”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나이다].” (사무엘 상 16:7; 예레미야 17:10; 시 17:3) 예수께서도 사람의 마음의 작용을 정확하게 아십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태 15:18) 그러면 그러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14. (ㄱ) 예수께서는 어떻게 마음의 능력을 뚫는 분석을 하셨읍니까? (ㄴ) 우리가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입니까?

14 인간의 마음이 가장 고결하고 고상한 동기를 가질 능력이 있지만 또한 예수께서 나열하신 바와 같이 불결하고 가증한 것들이 마음에서 나올 수 있읍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마태’의 기록에는 “거짓 증거”가 더 들어 있다)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가 7:20-23) 마음에서 이러한 무서운 악한 것들이 쏟아져 나올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길로 가는 사람들은 소수이지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은 수백만의 사람들로 꽉차 있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열어 주시면서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시지 않았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 13:24.

15. 우리가 올바른 동기를 가지기 위하여 우리의 욕망과 애정을 다시 다듬어 틀을 잡게 하려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상기해야 합니까?

15 우리가 어떻게 지식을 취하고 징계에 순응하느냐에 따라 어떠한 애정이나 욕망이 선악간에 우리 마음에서 발전하며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어느 정도로 솟아나는지가 크게 결정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불결한 것으로 마음과 정신을 먹이면서 선한 욕망과 동기를 가질 것을 기대할 수 없읍니다. 더우기 정신에게는 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혹은 해서는 안되는지를 마음에게 추천해야 할 좋은 이유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마음을 교육하고 징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잠언 23:12) 그러면 마침내 마음은 올바른 일을 함으로 얻게 되는 좋은 결과를 맛보게 됨에 따라 만일 마지 못해 하는 경향이 있다면 이끌리게 됩니다. 그것은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내가 좀더 친절해져야 되겠다”라고 한다든가 혹은 이와 비슷한 말을 함으로써 마치 그러한 심리가 대답을 마련하는 것처럼 말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적용하는 좋은 성품을 배양하여 좋은 습관과 특징이 형성될 수 있게 해야 하며 그 다음에 마음에 깊이 박혀 있는 나쁜 성품과 경향의 근원을 알고자 정직하게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것들을 배제하거나 조절하는데 성서 원칙을 적용시킬 수 있읍니다.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잠언 2:10-12.

16, 17. (ㄱ) 생애의 상당한 부분을 부도덕한 분위기 가운데서 살아온 사람의 마음 상태를 설명하십시오. (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배움에 따라서 어떠한 갈등이 생기게 됩니까?

16 마음의 이 새로운 방침을 정하는 힘을 예를 들어 고려하기 위하여 생활의 상당한 부분을 부도덕한 사람들과 교제하여 왔고 관능적인 쾌락을 위한 사업장에 자주 드나들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들었을 때에 그의 마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를 고려해 보십시다. 그 사람은 선한 동기의 힘이 결핍하다는 것을 나타냈읍니다.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잠언 6:32; 9:1-5, 13-18) 값싼 소설을 읽고 외설 잡지를 보고 음탕한 농담을 듣거나 말하는 것이 성적 흥분을 위한 이 열망을 고조시켰을지 모릅니다. 이제 그는 늙고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상태하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바라 볼 수 있음을 배웁니다. 이것이 그의 마음을 끕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여호와의 요구 조건을 따르는 사람들만이 거기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할 것입니까?

17 여러 햇 동안 쌓여진 마음과 육체의 부도덕한 강한 열망이 하루밤 사이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이 점을 얼마나 의식하겠읍니까? 정신과 마음의 무서운 투쟁이 시작됩니다. (시 38:7-10) 정신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논리적임을 이해합니다. 즉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읍니다. 병과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될 수 있읍니다. 선한 행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기 몸에 가장 유익합니다. 그리고 그의 범죄를 격려하고 공헌한 옛 친구들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건전하고 세워 주는 교제를 즐길 수 있읍니다. 그러나 이제 마음이 원하는 것이 있읍니다. 과거에 숨은 즐거움을 주었던 모든 것을 원합니다. 아직 약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숭배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는 올바른 일을 하려는 욕망이 있읍니다. 그러나 아직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정신은 마음에게 성병에 걸릴 가능성이라든가 사생아를 낳게 된다든가 낙태 수술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든가 하는 불행한 결과 즉 마음이 반박할 수 없는 점들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들은 아직도 거기에 있읍니다.

18. 마음이 어떻게 마침내 이끌리게 되어,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데서 가장 고상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됩니까?

18 이것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여기까지 온 많은 사람들은 더 발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제도에서 산다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낡은 제도의 매력이 마음에 너무나 강합니다. 그러나 계속 발전하도록 마음에서 격려 고무하고 올바른 일을 하도록 자신을 강화하고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넣으려고 한 사람들은 올바른 일을 하기가 쉽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보다도 더욱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실제 경험함으로써 맛을 보게 되고 마음이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것은 당신도 그렇게 하는데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것은 정신과 함께 유익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전의 욕망들은 마음에서 올바른 것들로 대치되기 시작합니다. 두가지가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 함께 머무를 수 없읍니다. 사실상 ‘마음의 할례’가 행하여집니다. (로마 2:29; 골로새 2:11) 이제 그는 이전 친구들과 나쁜 영향으로부터 떠나 있으려고 합니다. 그는 애써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원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제하는 데서 가장 고상하고 깨끗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전 것들이 그에게 반역하게 됩니다. 그는 그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법을 위하여 사랑과 깊은 애정을 쌓았읍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7:31.

마음의 다른 동기들

19. 마음이 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칩니까?

19 아마 도덕적으로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조절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의 동기가 다르다면 어떠합니까? 예를 들어 우리는 혀를 어떻게 사용합니까? 예수께서는 원칙을 세워 놓으셨읍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 12:34, 35; 잠언 15:28) 선한 마음은 선한 것을 말하도록 움직입니다. 하지만 만일 누가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입니다. 말질은 마음에게 나쁜 약입니다. 만일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에 관하여 흥미거리를 풍기고 그것을 퍼치는 즐거움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소문과 참이 아닌 것을 퍼뜨리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야고보 1:26.

20. (ㄱ) 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는 것이 필요합니까? (ㄴ) 왜 용서하는 것이 다만 정신에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의미깊습니까?

20 좀더 심각하게,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읍니다. (야고보 3:14-16)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라].” 오히려 우리는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는 교훈을 받고 있읍니다. (레위 19:17; 베드로 전 1:22) 만일 당신의 형제가 당신에게 죄를 범하였다면 당신이 그에 대하여 미워하는 태도를 쌓기 전에 ‘당신과 그 사람과만’ 만나서 해결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자들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 18:15, 35) 잠언 6:16-19에 열기되어 있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들 일곱가지 중 한 가지는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입니다.—시 140:2.

21. 만일 극히 조심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일반적 경향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읍니까?

21 여호와와 그의 조직과의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위선이나 탐욕, 교만, 완고가 있을 수 없읍니다. (디모데 전 1:5; 시 101:5; 131:1) “두 마음”과 ‘온 마음이 아닌 것’, 이 두가지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정죄됩니다. (시 12:2; 119:113) 마음은 구실을 찾아 내고 정당화하고 거짓을 말하려는 경향이 있읍니다. 만일 이 계략이 성공하지 못하면 아첨하고자 하거나 사나운 말 혹은 욕설로 위협할 가능성이 있읍니다. (로마 16:18) 마음은 진실성과 순종에 있어서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그렇게 하므로써 우리는 여호와께 대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 형제들에게 대해서도 정직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고 우리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하면 우리는 즉시 기도로써 여호와께 가서 그에게 우리의 마음을 밝히고 용서와 깨끗한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사무엘 하 24:10; 야고보 4:8-10) 만일 심각한 죄를 범한다면 우리는 회중의 책임 있는 자들에게 그것을 밝히고 그들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마음이 책망을 멸시하거나 “둔하여 기름에 잠김 같”아서는 안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십니다. (시 119:70, 난외주; 147:3; 잠언 5:12-14) 우리가 만일 여호와의 자비와 대속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를 덮어 주시는 이 마련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더는 마음에 가책을 받는 일 없이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께 가까이 갈 수 있읍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여호와 앞에서 신중히 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히브리 10:22; 요한 1서 3:18-24.

22. 항상 마음을 부지런히 인도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22 우리가 여호와께 ‘우리의 마음을 정로로 인도’하도록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을 바라봄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부지런히 인도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읍니다. 마음은 거짓되고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전의 나쁜 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의 훈계를 머리에 간직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확약을 받습니다.—잠언 23:19; 3:5; 빌립보 4:6, 7.

23. 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도 마음 곧 심장을 보호해야 합니까?

23 당신은 이제 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우리가 마음 곧 심장을 보호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읍니까? “생명의 근원”이 그것에서 나오며, 이것은 마음 곧 심장이 다만 근육 ‘펌프’로서 세포들이 계속 살아 있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전신에게 생명을 주는 피를 통하게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 곧 심장이, 우리가 만일 그것을 올바로 발전시킨다면, 여호와의 도움과 과분하신 친절로 그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완전한 건강을 가진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확약할 동기와 욕망 그리고 애정을 솟아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하신 심장 의사인 여호와께서는 모든 인류의 심장 곧 마음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셨으며, 그분만이 우리의 불완전한 심장에 대한 바른 처방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심장]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잠언 3: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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