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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로부터 보호해 줄 현명한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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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로부터 보호해 줄 현명한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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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0
깨80 2월호 27-30면

범죄로부터 보호해 줄 현명한 충고

범죄를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관해 책이나 기사를 쓴 사람들이 많다. 많은 실용적인 제안들이 참으로 가치있지만, 현재로서는 완전한 안전이나 보호를 보장하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며, 오늘날의 점증하는 범죄와 폭력의 추세를 볼 때,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

매우 실용적인 제안 얼마를 얻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받은 사람, 그렇다, 그 당시의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와서 “잠언 삼천을 말”할 수 있었던 한 사람에게 관심을 돌려 보자. (열왕 상 4:29, 31, 32) 당신은 아마 그 사람이 왕 ‘솔로몬’임을 알아 차릴 것이다.

‘스페인’의 유명한 작가 ‘세르반테스’는 한 때 잠언을 “오랜 경험에서 얻어낸 짧은 문장들”이라고 적절히 정의한 적이 있다. 인간의 창조주보다 인간과 인간의 문제에 관해 더 오랜 경험을 가져온 사람이란 아무도 없다. 그분께서는 ‘솔로몬’에게 “짧은 문장들”을 짓는 데 필요한 지혜를 주셨다. 그러한 문장들이 성서 잠언과 전도서에 들어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솔로몬’의 충고는 가장 유용한 충고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재난을 예견하라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잠언 22:3.

여기에 담긴 기본 원칙은 가능성있는 위험을 예견하고 재앙이 닥치기 전에 숨어 피하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예방책을 취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최상의 보호책이다. 예를 들면? 여러 가지가 있다.

집을 떠날 때는 문과 창문을 잠그라. 어떤 지역에서는 늘 잠가두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당신이 만일 차고가 붙어 있는 집에 살고 있다면 집과 차고 사이의 문을 방심하지 않도록 하라. 차고 문을 열어 놓은 채 남편이 직장으로 늦게 떠난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상한 사람들이 쉽게 차고를 통해 집으로 들어 올 수 있게 된다.

집에 적용되는 것이 똑같이 차에도 적용된다. 항상 잠가두라. 어떤 나라에서는 사람이 없는 차를 잠그지 않은 채 남겨두는 것이 불법이며, 그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차를 몰 때에도 문을 잠그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호 대기중 원하지 않는 사람이 차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밤에 길거리에다 차를 세워 두어야만 한다면, 가능한 대로 밝은 곳에 주차시키도록 하라.

도둑은 도둑질할 때 방해받지 않기를 원하며 보이지 않는 곳을 원한다. 따라서 그들은 보통 당신이 집에 없을 때 찾아든다. (집이나 차에) 큰 소리를 내는 도난 경보 장치나 짓는 개를 두는 것도 도둑질하기에 좋지 않다는 것을 도둑에게 알게 하기에 충분할지 모른다. 만일 집을 장기간 비워야 한다면, 신문이나 편지가 앞뜰이나 편지함에 쌓이게 내버려 두어 당신의 부재를 광고하지 않도록 하라. 돌아 올 때까지 배달하지 않고 보관하도록 부탁하거나 아니면 친구가 정기적으로 집어가도록 마련하라.

불을 켜두고 집을 떠나면 누가 집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러 날을 밤낮으로 불을 켜 둔다면, 도둑일지도 모르는 관찰자에게는 불이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속 부재해야 할 경우라면 불, 심지어는 ‘텔리비젼’이나 ‘라디오’를 미리 정해 놓은 시간에 켰다 껏다 하는 자동 장치를 구입하는 것이 현명한 투자일지 모른다.

값진 것은 도둑이 생각하지 못하는 안전한 곳에 보관하라. 더 좋은 방법은,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는 것이며 그리하면 얼마를 도둑맞는다 하더라도 전부를 상실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재난을 예견하는 것은 보상이 된다.

지나치게 믿지 않도록 하라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잠언 14:15.

만일 우리가 대하는 모든 사람을 다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며, 이 지구상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대도시를 포함하여 기타 지역에서는 악이 범람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실제적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곳에서는 아마 의심스러운 사람과 환경을 주의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상한 사람을 집안으로 초대하는 것은 심지어 방문할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왔다 해도 그가 자기의 합당한 신분을 밝힐 수 없는 한 아마 지혜롭지 못한 처사일 것이다. 사실, 어떤 지역에서는 문을 여는 것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으며 만일 그러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문에다 내다보는 구멍이나 쇠줄을 장치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모른다.

결코 열쇠를 문밑이나 흔히들 잘 숨겨두는 곳에 숨겨 놓지 않도록 하라. 그 열쇠를 찾아 사용하도록 염두에 둔 사람은 당신이 믿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찾아 발견해낼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는가? 열쇠에 이름과 주소를 달아서, 분실할 경우, 그것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사람의 정직성에 떠맡기는 것 역시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거리에서, 특히 밤중에, 당신을 접근하는 사람을 조심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그의 의도가 순수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떤 해를 입히기 위해 접근하는 하나의 계략일 수 있다. 등 뒤에서 달려 들어 목을 조르는 노상 강도의 희생물이 되는 것보다 주의하는 것이 더 낫다. 가능한 대로 혼자 외출하지 않는 것 역시 보호가 될 수 있다. 두 사람이라면 혼자의 경우처럼 공격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전도서 4:12에서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라고 말한다.

공개 장소에 갈 때는 당신의 외모에 주의하라. 옷을 입는 방법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당신이 바라지 않는 행동을 하게 자극할 수 있다.

또한, 공개적인 회합에 참석할 때는 조심성을 나타내라. 휴게실로 가거나 다과를 위해 자리를 뜰 때 귀중품을 자리에 남겨두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순수한 무리에 끼어 있는 불순한 사람 단 한명이 충분히 당신의 부주의를 후회하게 만들 수 있다.

“부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말라. 지폐를 한웅큼씩 자랑해 보이는 남자나 보석을 잔뜩 부착하고 있는 여자는 재난을 초래한다. 최근호 「타임」지는 “이태리의 부호들을 겨냥한 어린이의 유괴와 기타 폭력이 광범위하게 유행하기 때문에 화려함을 자랑하는, 돈에 치중된 생활 방식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하고 말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의 말이 인용 보도되었는데, “이태리에서는 지금 사람들이 부유하게 느끼면서도 가난하게 보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주의해서 동료를 택하라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불선한 길로 인도하느니라.”—잠언 16:29.

폭력은 전염병과도 같아 감염된다. 직장 동료, 친구 및 친척들과의 단순한 논쟁도 주의하지 않는다면 신속히 폭력으로 줄달음질 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살인의 4분의 1 이상이 가정에서 발생한 사건들로서 때로는 집안 싸움이 실마리가 되어 일어나기도 한다. 폭음을 일삼는 ‘파아티’에 참석하거나 감정이 격한 항의 운동이나 행진에 참여한다면 폭력의 위험은 훨씬 더 커진다. 그렇다면,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과 폭력을 조성하기 쉬운 환경을 피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자신의 행동에 관심을 가져야 하되 타인의 비행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말라. 어떤 사람이 공개 장소에서 무례하거나 부당하게 행동한다면, 자제를 행사하고 생명이 위태롭지 않는 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잠언 26:17은 이렇게 설명한다.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부적당한 말이나 심지어 “불쾌한” 표정만으로도 다른 사람이 쉽게 폭력을 자행하도록 자극시킬 수 있다.

무심결에 싸움에 말려 들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할 수만 있다면 떠나라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잠언 17:14.

논쟁으로 불에 기름을 더하지 말라. 잠언 26:20은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진다고 말한다. 논쟁은 단지 당신이 싸움터에 머물러 있는 동안만 계속될 수 있다. 자리를 떠나 폭력을 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며, 오히려, 지혜로운 처사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본이 이것을 증명한다.—누가 4:28-30; 사도 9:23-25; 14:5, 6, 참조.

만일 상대가 당신이 떠나는 것을 힘으로 막는다면 어떠한가? 그렇다면 그에게 조용히 말하라.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잠언 15:1) 이렇게 하려면 자제가 필요하며, 장기적인 보상이 뒤따른다. 여자들은 강간을 목적으로 덤벼드는 공격자에게 조용히 도덕에 관한 성서적인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 좋다고 배워 왔다.

물론, 도피가 불가능하거나 조용한 말이 먹혀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재산이나 돈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가져 가게 하라. 물질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건강이나 생명은 그렇지 않다. 결코 순전히 물질 때문에 건강이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지 말라. 생명에 비해 물질이 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돕는 지혜와 올바른 분별력을 얻는 것이, 잠언 3:14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만일 공격자의 목표가 정조나 생명이라면, 입장이 다르며, 자신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방어할 수 있다는 성경적인 지지가 있다. 최근 북독일 신문의 한 기사는 그러한 경우에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이 기사는 성범죄자들을 맞부닥친 부인들이나 젊은 여자들에게 “진정하고” 가능하다면 “저항하고”, “동시에 도와 달라고 소리를 지르라”고 충고했다. (신명 22:23, 24과 비교)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은 악행자를 혼란시키거나 아니면 “큰 소리로 기도함으로 그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도록” 힘쓰라고 말했다. 이것은 지혜로운 충고이다. 왜냐 하면 성서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지혜로운 통치자의 또 다른 제안으로 인도한다.

여호와를 신뢰하라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언 20:22.

이 말을 정당 방위를 배제하는 뜻으로 이해하지 말 것이다. 오히려 정당 방위를 행사함에 있어서 분별력과 균형이 필요함을 알려 준다.

근본적으로 범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도둑질이나 강탈과 같은 재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있고, 폭행, 강간, 살인과 같은 인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있다. 생명이 재물과 비교할 수 없이 값지므로 재물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보다 인신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를 피하는 데 더 여러 가지로 주력하는 것이 온당하다.

“[‘프랑스’에서] 경찰 보호보다 자기 스스로 방어하는 쪽에 의존하는 경향이 자라고 있다.”하고 한 독일 신문이 최근 보도했다. 그 기사는 정당 방위 집단에 관해 말했는데,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무장하고 먼저 쏘라”는 충고를 받아 왔었다. 이와 비슷한 경향을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한 신문은 보도하기를 “서독에는 2,500,000자루의 권총, 엽총 및 소총이 신고되어 있으며, 신고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소지한 수는 그것의 거의 10배가 된다.”고 했다. 그 기사는 계속해서 아무 때나 무기를 구하기가 점점 더 쉬워지며 “범인들은 물론, 행실이 단정한 시민들에 의해서도 무기는 더욱 쉽게 그리고 잔인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만약의 경우를 위해’ 총을 집에 두는 것이, 물론 결코 그것이 사용되기를 바라지는 않으면서도, 해롭지 않을 것이라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상 참으로 무기를 결코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보다도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것이다. 무서움이나 긴장이 가중될 때 얼마나 자주 무기를 사용했으며, 그리고는 후회들을 하였는가! 한밤중에 의심스러운 소리를 들은 ‘파리’ 남부의 한 주유소 주인을 생각해 보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갑자기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도둑이라는 생각이 들어 총을 쏘았다. 하지만 자기의 여덟살 난 아들,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난 자기 아들을 쏘았다는 것을 알 때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인간의 피를 흘리는 것은, 무심코 저질렀다 하더라도, 심각한 일이다. 물론, ‘가스’ 권총과 같은 공격자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형태의 무기들이 있다. 상처를 입히거나 죽일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그러한 “무해한” 무기들은 종종 상대방이 더 큰 폭력을 저지르게 만들 수 있으므로, 그러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가는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소위 호신술 즉 유도나 당수와 같은 것이 자기 방어의 인기있는 수단으로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호신술은 손과 몸을 사용하여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죽이는 훈련이므로 사실상은 이것들도 무기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이교적인 배경과 군사적인 사용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타당성에 의문을 일으킨다. 사도 ‘요한’이 당수로 자기를 방어하거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쿵후’술로 적과 싸워 물리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이 제목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을 「깨어라!」 1976년 3월 8일호 22, 23면에서 살펴보라.)

당신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방어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와 마찬가지로, 잘 훈련받은 양심을 기초로 하여 결정해야 할 개인 문제이다. 하지만, 결정하기 전에 몇가지를 자문해 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가, 혹은 단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가? 나의 동기는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인가, 아니면 더 나아가 악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인가? 나의 행동이 그 악한 사람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는가? 나는 상대방에게 중상을 입히거나, 심지어 그를 죽이고자 하는가? 나는 그가 환경의 희생물일 수도 있으며, 저주에 앞서 동정을 받을 입장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적당한 훈련, 배려 및 사랑으로 그가 기꺼이 자기의 숨은 선한 기질을 발전시켜 자기의 나쁜 점을 회개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에게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를 그렇게 하도록 기꺼이 돕고자 자원할 것인가?

요약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무조건 정당 방위를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정당 방위를 필요로 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환경을 피하기 위해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건전한 정신의 영을 행사하고, 재난을 내다보고 미리 조심하고, 교제에 주의하고, 언행을 살피고 사람을 지나치게 믿지 않고 한편 여호와를 온전히 신뢰함으로, 지혜로운 행로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이 무기 사용이나 호신술에 기초한 어떤 것보다 더 나은 자기를 방어하는 형태이다.

전도서 9:18은 이렇게 결론 짓는다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우주에서 가장 높은 분이신, 심지어 가장 작은 범죄까지도 샅샅이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보응하기 위한 기초로서 완전하고도 정확한 범죄 도표를 만들 수 있으시다. 그러나 그분께서 실제로 그렇게 하실 것인가? 오늘날의 점증하는 범죄와 폭력의 추세가 끝없이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필요한 구원을 베푸실 것인가? 해답을 얻기 위해 본 호 45면의 “범죄와 폭력이 제거될 때가 있을 것인가?”라는 기사를 읽어 보라.

[29면 삽화]

당수를 배우거나 총을 소지하는 것이 당신을 보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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