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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라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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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미워하시는 참 하나님께서 거짓을 가르치는 조직에 고착하는 자들에게 은총을 주시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시 31:5; 잠언 6:16-19; 계시 21:8) 그리고, 당신은 과연 당신을 속여 온 종교와 연합하기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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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영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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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영
성실한 탐구자에게는 성서에서 말하는 “영혼”이 사람의 불멸하는 일부분이 아니며, 사람이 죽은 후에 의식을 가지고 계속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의 참된 본질에 관해 압도적인 증거를 보여 주면, 어떤 사람들은 사람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사후에도 계속 존재한다는 자기들의 신념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다른 주장을 제시한다.
그런 목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하나의 성서 귀절은 전도서 12:7인데, 내용은 이러하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 spirit]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느니라].” ‘웨슬리’파 감리교 신학자 ‘아담 클라아크’는 그의 저서[주석]에서 이 귀절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여기서 그 현명한 사람은 육신과 영혼을 매우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 두 가지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다 물질이 아니다. 물질인 육신은 그의 근원인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비물질인 영은 하나님께 돌아간다.” 이와 유사하게 「성경에 대한 가톨릭 주석」이라는 책에서는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 두가지 주해서는 영혼(soul)과 영(spirit)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다른 학자들은 전혀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가톨릭’계 번역판 「신 미어 성서」(1970년, P. J. Kenedy & Sons, New York 판)에 기준한 「성서 신학 용어 사전」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영’이 ‘육체’와 대조적으로 사용되었을 때에 ··· 그 목적은 사람의 물질적인 부분과 비물질적인 부분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 ‘영’은 영혼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번역판은 전도서 12:7에 “영”이라는 단어 대신 “생명 호흡”(life breath)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프로테스탄트’계 「성서 주해」에서는 「전도서」의 필자에 관해 “‘코헬렛’의 말은 사람의 개성이 계속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상반되는 결론들을 볼 때, 우리는 영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가?
전도서 12:1-7에는 노령의 영향과 사망이 시적 언어로 묘사되어 있다. 죽은 후에 몸은 결국 분해되어 다시 땅의 흙이 된다. 반면에,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사람의 죽음은 영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 사실은 사람의 생명이 어떤 면으로 그 영에 의존해 있음을 시사한다.
전도서 12:7의 원문을 보면, “영” 혹은 “생명 호흡”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루아흐’이다. 그에 해당하는 희랍어 단어는 ‘프뉴마’이다. 우리의 생명이 호흡 과정에 의존해 있기는 하지만 “호흡”(많은 번역들은 ‘루아흐’와 ‘프뉴마’라는 단어들을 그렇게 번역하고 있음)이라는 단어가 언제나 “영”을 대신할 수 있는 적절한 대용어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히브리’어와 희랍어 단어 곧 ‘네사마’(‘히브리’어)와 ‘프노에’(희랍어)도 역시 “호흡”이라고 번역된다. (창세 2:7과 사도 17:25 참조.) 그렇지만, “영”이라는 단어 대신에 “호흡”을 사용함으로써 번역자들이 원어의 단어는 생명의 지속에는 필요하지만 개성은 가지지 않은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이 무엇인가를 알아 냄
사람의 생명이 영(‘루아흐’ 혹은 ‘프뉴마’)에 의존해 있다는 사실은 성서에 분명히 기술되어 있다. “주[여호와]께서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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