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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상수훈—“너희가 기도할 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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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상수훈—“너희가 기도할 때에 ···”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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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파78 12월호 34-35면

산상수훈—“너희가 기도할 때에 ···”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선적으로 자비의 선물을 하지 말라고 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마태 6:5 ㄱ.

“너희가 기도할 때”라는 표현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기도가 참 숭배의 정기적인 부분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외식하는 자” 즉 자기 의로움에 빠진 ‘바리새’인들을 닮아서는 안되었다. 그들이 종교적인 열성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것은 단순한 겉치레였다.—마태 23:13-32.

그러한 위선자들과 관련하여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마태 6:5 ㄴ.

제 일세기까지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전에서 아침과 저녁 번제를 드리는 중 즉 오전 9시경과 오후 3시경에 회중으로서 기도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그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성전 구내에서 동료 숭배자들과 함께 그렇게 하였다. ‘예루살렘’ 밖에서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종종 “회당”에서 하루에 두번씩 기도하였다. 기도할 때는 보통 “서”는 자세를 취하였다.—누가 18:11, 13도 비교.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침과 저녁 기도 시간에 성전 가까이나 회당 가까이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흔히 자기가 있는 곳에서 기도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큰 거리 어귀”에 있을 때 기도 시간이 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들은 사방으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였다. 거짓된 거룩함을 나타내면서 그들은 구경하는 사람들의 감탄을 일으키기 위하여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였다.a—누가 20:47.

그러한 위선자들과 관련하여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 6:5 ㄷ) 그들은 그들이 열심히 추구하는 것—동료 인간들의 승인과 찬양—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받을 상 전부였다. 그들의 위선적인 기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할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씀하셨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 6:6.

예수의 이 말씀은 회중과 함께 기도하는 것을 금한 것이 아니다. ‘문을 닫은 후 개인 방’에서 기도하라고 권고하신 것은 자신에게 주의를 돌리고 찬양자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 공개적인 기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에 관해서도 비슷한 충고를 하셨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마태 6:3)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고 기도하는 완전한 본을 세우셨다. 예를 들어 자기 열 두 사도를 선택하기 전에 밤새 기도하는 동안 그분은 구경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간구하시지 않고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셨다.—누가 6:12.

예수께서는 위선자들이 기도하는 특권을 남용하는 또 다른 방법에 다음과 같이 주의를 이끄셨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태 6:7.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이 기도에서 간절한 간청과 감사의 표현을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밤늦게 까지 기도에서 “동일한 말씀”을 반복하셨다고 지적한다.—마태 26:36-45.

그러나 “이방인”들의 반복적인 기도를 흉내내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피상적인 말을 포함하여 암기한 문귀를 “중언부언”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성서는 고대 ‘바알’ 숭배자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라고 말한 예를 지적하고 있다. (열왕 상 18:26)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반대한 ‘에베소’의 이방인들과 관련하여 이러한 기록을 볼 수 있다.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시간 동안이나 하더라.” (사도 19:34) ‘로마’ 시인 ‘테렌스’(기원전 2세기)의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불평이 나온다. “아내여 제발 간청이오. 그대의 아기가 안전하니 감사의 기도로 신들을 귀찮게 하지 마오, 그들이 백번 듣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말이오.”

오늘날까지 많은 “이방인”은 그들의 신들에게 반복적인 기도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부 불교도들은 ‘나무아미타불’(“영혼을 평안히 쉬게 하소서”)을 반복하는데 108개의 알로 된 염주를 사용 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그처럼 계속 반복하면 “들으실” 줄로 생각하여 기도에서 같은 문귀를 기계적으로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나 이처럼 “말을 많이 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태 6:8.

분명히 많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의 기도에서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함으로써 이방인을 ‘본받’았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라는 책의 이러한 내용은 그 경향을 잘 지적해 준다. ““어떤 [독경사는] ‘랍비’ ‘하니나’ 앞으로 와서 위대하시고, 강하시고, 두렵고, 장엄하시고, 능력이 있으시고, 황공하고, 힘이 있으시고, 용감하시고, 신뢰성 있으시고, 존경을 받으실 하나님이여” 하고 말하였다.” 그 ‘랍비’는 불필요하게 말을 나열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 감사 그리고 간구를 포함하는, 정기적으로 드리는 진정한 기도는 참 숭배의 중요한 부분이다. (빌립보 4:6)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치 모르고 계시고, 주의를 기울이시지 않으며, 정신이 없는 분인 것처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끊임 없이 그처럼 반복적으로 그분께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동일한 것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말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과 통신한다는 것을 온전히 인식하고 기도를 드려야 한다.

[각주]

a 거리와 공공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에 관하여 ‘유대’인 ‘랍비’ 기록은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하고 있다. “‘랍비’ ‘요가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랍비’ ‘야나이’가 ‘세포리스’ 시장에 서서 기도한 다음 네 ‘규빗’을 걸어 가서 ‘마사프’ [부가적인] 기도를 하곤 하는 것을 보았다.’” (팔레스티니안 탈무드) “거리나 공공 장소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기도를 중단하지 않고 [다가오는] 나귀, 나귀를 끄는 사람 혹은 옹기장이[를 위해서] 비켜 선다. ‘랍비’ ‘카니나 벤도사’[기원 70년경]에 관하여 그는 서서 기도하였다고 전해진다. 한 독사가 그를 물었는데도 그는 그의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다.” 「토셉타」 (「미쉬나」의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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