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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상수훈—‘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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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상수훈—‘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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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79 02월호 44-45면

산상수훈—‘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위선적인 숭배 행위를 피하도록 충고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물질주의의 올무에 관하여 논하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서두를 꺼내셨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마태 6:19.

예수께서는 쌓아둔 물질을 의뢰하려는 인간의 경향을 잘 알고 계셨다. 그분은 자기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훈계하셨다. 왜냐하면 지적 보물은 지속적인 가치가 없기 때문이디. 값진 옷이나 돈이나 다른 물질적인 값진 것들은 썩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좀”은 값진 옷을 해할 수 있다. 귀금속은 “녹”슬 수 있다. (야고보 5:1-3과 비교) 부패 외에도 도둑맞을 위험성도 있다. 고대 ‘팔레스타인’에서는 도둑들이 집의 진흙이나 석회를 바른 벽을 “뚫고 도적질”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니라.” (마태 6:20) 사람이 “하늘에” (즉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행실의 기록을 남김으로써 썩지 않는 보물을 쌓을 수 있다. 이 점에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훈계하였다.—디모데 전 6:17-19; 디도 3:8.

예수께서는 물질주의를 피해야 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 6:21) 사람의 “보물”이란 그가 진실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동기, 욕망 및 애정의 바탕인 자기의 “마음”을 그것에 둔다. 사람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보물이 단순히 이 세상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마음을 다”한 봉사를 요구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손상시킬 것이다.—역대 상 28:9; 마태 22:37.

자기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물질주의의 올무를 피하도록 돕기 위해 예수께서는 두 가지 비유를 드셨다. 첫 번째 비유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몸이 밝을 것이[니라].”—마태 6:22.

눈을 “몸의 등불”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다. 빛은 눈을 통해 뇌에서 시각을 맡아 보는 부분에 이르기 때문이다. ‘성한 눈’은 시야에 들어 오는 모든 물체를 보기 위해 계속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단지 한 가지 물건에 집중한다. 상징적 의미로, 깊이 몰두하고 생각하게 하는 물체로서 ‘그의 눈을 끄’는 것은 그의 개성 전체에 영향을 준다. 어떤 사람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라면 그 사람의 “온 몸이 밝을 것”이다. 모든 생활 부면에서 그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동료 인간들에게 유익을 주는 빛을 발할 것이다.—잠언 4:18, 25-27; 마태 5:14-16 비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씀하셨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라].” (마태 6:23ㄱ) ‘나쁜 눈’ 즉 ‘악한 눈’은 탐욕적인 욕망을 가지고 좋지 않은 것을 열심히 바라보게 된다. (마태 5:28; 베드로 후 2:14) 이 세상의 재물을 자기의 주요한 목표로 삼는 사람은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런 물질주의적 목표는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영적 어두움을 나타내는 나쁜 행실로 인도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 전 6:9, 10.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그 심각성을 이렇게 지적하셨다.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마태 6:23ㄴ)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 속에 태어날 때부터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다. (로마 5:12) 그러나 사람이 계몽(비유적 눈)과 관련된 자기의 능력을 잘못 사용하면 그의 상태가 악화된다. 부를 탐욕적으로 갈구하면 그 사람의 전 생활이 얼룩지게 된다. (잠언 28:20) 예수께서는 물질주의적 보물을 사랑함으로써 영적인 것을 밀쳐 버리는 사람의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다.—마태 13:22.

예수께서는 그 다음에 두번째 비유를 베푸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마태 6:24ㄱ.

산상수훈을 듣는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들어 있는 종 마련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 (출애굽 21:2; 레위 25:39-46) 종의 소유자는 그의 종이 자신을 온전히 바칠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누가 17:7-10 비교) 흥미롭게도 「미쉬나」는 때로는 한 종이 “공동 주인에게 속한 종”의 권리에 대해서 논하면서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신약 신학 사전」은 예수의 말씀에 관련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마태 6:24과 누가 16:13은 한 종이 자기에 대하여 동일한 권리를 가진 그러므로 자기의 봉사를 동일하게 요구할 수 있는 두 주인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하였다. 어떤 주인으로부터는 자유롭게 되었으나 다른 주인으로부터는 그렇게 되지 않아 반쯤 자유롭고 반쯤 종인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다. 물론 [이중적인 종]의 관계에서는 한 종이 특히 두 주인의 원하는 것과 관심사가 아주 다양할 때에는 그 두 사람에게 동일한 충성을 나타내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였다. 예수께서는 종이 한 주인을 [사랑]하고 다른 주인을 [미워한다고] 즉 그에게 덜 애착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자기 당대의 사람들과 그의 백성의 문체로 그 점을 표현하셨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는 말로 비유의 요점을 지적하셨다. (마태 6:24ㄴ) 이 말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을 정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재물을 “섬기”면서 동시에 하나님에 대하여 그분이 요구하시는 전적 헌신을 드릴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승인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지상의 보물을 생활의 주요 목표로 삼는 것으로 인한 예속 상태를 진정으로 “경히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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