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을 유지한 즐거운 결과
1. ‘다윗’이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어떠한 성경적 기록이 있읍니까?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사무엘 상 17:50) ‘다윗’이 성실 때문에, 여호와께 온 영혼을 다해 헌신했기 때문에,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이기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에 ‘다윗’에게 실로 크나큰 즐거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대결이 있은 얼마 후에 여호와께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하고 기도하였읍니다. (시 25:21) 영감받은 필자인 ‘아삽’은 ‘다윗’에 대하여, 그리고 “그 마음의 성실함”에 대하여 말하였읍니다. (시 78:72) 열왕기 상 9:4에서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에게 그의 아버지의 행로를 따르라고 이렇게 격려하셨읍니다. “네 아버지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성실히, 신세]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라].” 그러므로 ‘다윗’은 불완전하였고 실수도 저질렀지만 일생 동안 여러 차례 자기가 성실을 지킨 자임을 입증하였읍니다.
2. (ㄱ) 왜 예수께서는 그와 같은 죽음을 기꺼이 당하셨읍니까? (ㄴ) 빌립보 2:5-11에 의하면, 예수의 충실한 행로는 어떠한 보상을 받았읍니까?
2 때가 되자 더 큰 ‘다윗’인 사람이신 예수가 지상에 나타나셨읍니다. 예수는 완전하셨으며 인간 생애 전체에 걸쳐 여호와께 충실히 성실을 유지하셨고 우리가 따를 훌륭한 본을 세우셨읍니다. (베드로 전 2:21-23) 여호와께 대한 그의 성실성은 그에게 즐거움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그 대답을 알아봅시다. “저[예수]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형주]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 12:2) 예수께서는 성실을 지키셨기 때문에 그리고 장차 받을 보상을 바라보셨기 때문에 그 치욕적인 죽음을 기꺼이 당하셨읍니다. 빌립보 2:5-11에서는 이 점에 대하여 좀 더 알려 주고 있읍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정신적 태도, 신세]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형주]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3. 현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무엇을 한 사람이 많습니까?
3 현 20세기에도 전세계 어디를 가나 성실을 지킨 사람들 곧, 적은 일에도 여호와 앞에 정직하고 곧게 행동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리고 물론 큰 문제를 당하여 성실을 입증한 사람도 많습니다.
4. (ㄱ) 16세된 어느 소년은 성실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였읍니까? (ㄴ) 그의 선생은 결국 어떻게 해주었읍니까?
4 교회와 국가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어느 나라에서 16세 정도 된 어느 그리스도인 소년은 십자가 상을 긋지 않고 교회 ‘미사’에 참예하지 않는다면 퇴학시키겠다는 경고를 받았읍니다. 그는 졸업기가 가까왔으며 그 말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졸업 자격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입장이었읍니다. 선생님은 그에게 믿지는 않더라도 행동만 하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소년은 자기의 입장을 고수하였읍니다. 선생은 그 소년의 믿음에 크게 감탄하여, 기도 시간에는 교실 뒷쪽에 서 있게 하여 그 소년이 십자가 상을 긋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배려해 주었읍니다. (선생은 그 소년에게 공적으로 종교 의식에 빠지도록 허락한다면 자기 입장이 곤란하게 되고 파면을 당할까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선생은 또한 교회 ‘미사’ 시간에는 그 소년에게 다른 일을 임명하여, 그 학생이 바쁜 일로 다른 곳에 갔다는 핑계를 만들어 주었읍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그 소년의 성실한 행동이 보상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5. 왜 어느 어린이는 학교에서 고통을 당하였읍니까?
5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충고를 따르다가 신체적으로 고통을 당한 사람들도 있읍니다. 태평양상의 어느 섬에서 두명의 어린이가 우상 숭배 행위가 포함된 애국적 의식을 거절하였읍니다. 선생은 그 나라에서 허용되어 있는 숭배의 자유를 잘 모르고 그중 한 어린이의 팔을 부러뜨리는 정도까지 심한 행동을 하였읍니다. 그 선생을 찾아가 그 문제가 직접 논의되었고 교장에게까지 알려져 그 선생은 심한 책망을 받았읍니다. 그 이후로는 그 선생은 대단히 협조적이었읍니다. 한 어린이가 상당히 고통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충실하게 행동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여호와께 진정으로 충성스러웠음을 증명하였읍니다.
6. (ㄱ) 13세된 소녀에게 왜 수혈 문제가 제기되었읍니까? (ㄴ) 그 소녀와 그의 어머니는 어떻게 여호와의 법에 성실하였읍니까?
6 성실을 지킨 또 다른 예를, 수년 전에 ‘베를린’에 사는 13세 소녀가 백혈병(白血病)에 걸렸던 경우에서 볼 수 있읍니다. 의사는 그 소녀가 수혈을 받으면 덜 고통스러울 것이고 병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하였읍니다.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피를 먹지 말라는 성서의 말씀을 알고 있었읍니다. (창세 9:4; 사도 15:28, 29) 그러므로 그 어머니는 수혈을 허락지 않았읍니다. 그 소녀 역시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좀 더 오래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느니보다는 여호와께 충성을 지키고 죽겠어요.” (마태 10:39) 그 소녀는 죽었읍니다. 그런데 자기 어머니에게 읽으라고 편지를 남겨 두었읍니다. 그 편지는 그 소녀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것으로서 자기 어머니가 수혈을 허락지 않았다고 하여 어머니를 비난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하였읍니다. “내 자신의 확고한 뜻도 꼭 그러하였으며, 범법자가 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택하였읍니다. ··· 만일 위대한 생명의 수여자이신 여호와께서 나를 합당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낙원에서 인간으로 참다운 살과 피를 주어 부활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죽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그 점을 이해하시겠읍니까?”
7. (ㄱ) 무엇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죽음에 직면할 수 있도록 해 줍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믿음을 기를 수 있읍니까?
7 그러나 왜 그 소녀는 죽는 것이 어렵지 않았읍니까? 왜냐 하면, 그 소녀는 고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능히 [그의 아들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것과 같이 동일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1:19) 그렇습니다. 그 소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사물의 제도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으로 대속된 자들의 부활에 대하여, 확고한 믿음을 가졌었읍니다. (요한 5:28) 그런데 그렇게 어린 사람이 죽음에 직면해서도 성실을 지킬 만한 그러한 믿음을 어디서 길렀읍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공부함으로써입니다. 지금은 여호와의 증인의 전 시간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다른 어느 소녀는 자녀를 교육시키는 부모에 대하여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가족 연구를 사회해 주신 것은 항상 기쁜 일이었어요. 자기 부모를 무시하고 부모의 충고를 무시하는 아이들을 저는 정말 떨어버리고 싶었어요.”
8. (ㄱ) 왜 성실을 지키는 데 중립 문제가 내포됩니까? (ㄴ) 어느 어머니와 아들은 중립 문제에 대하여 어떤 시험을 받았으며,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8 요한 18:36에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있읍니다. 우리가 성실을 지키는 점에는 그 나라 곧 왕국에 충성하고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문제에 대하여 엄정 중립을 지키는 것도 포함됩니다. 어느 섬 나라에서 어느 증인은 자기의 아들이 양심에 입각하여 군사 훈련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퇴학시키겠다는 위협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그 증인은 학교 직원들에게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호소하였읍니다. 한 직원은 그 아들이 신체적으로 불능하기 때문에 훈련을 받을 수 없다고 보고하라고 제안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거짓말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하였읍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계시 21:8) 그러자 직원들은 그러면 그 학생은 훈련복만 입고 점호를 부르고 목총을 나누어 주기만 하라고 제안하였읍니다. 그 어머니는 그렇게 하면 자기 아들이 훈련받는 학생들 가운데 끼어 있는 것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읍니다. 직원들은 화를 내고 그 어머니에게 나가라고 말하면서 그의 종교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말하였읍니다. 그 어머니는 묵묵히 걸어나왔읍니다. 그런데 조금 나오자 직원들이 그를 급히 불렀읍니다. 그들은 조금 전에 그들이 한 말에 대하여 사과한 다음 사실인즉 그들은 그의 확고한 신념에 탄복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들이 훈련 시간에는 그 아들에게 교장실에서 일을 하도록 해 주겠다고 말하였을 때에 그 어머니는 여호와께 얼마나 감사하였겠읍니까! 확실히 그 어머니와 아들은 그리스도인 중립 문제에 대하여 성실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보상을 받았읍니다.
9. 어느 여배우와 그의 남편은 왜 생활에 변화를 하였읍니까? 이로부터 무슨 결과가 있었읍니까?
9 참 종교와 여호와의 깨끗한 숭배에 새로 연합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성실성 곧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나타낼 기회가 있읍니다. 각계 각층에 속한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됩니다. 중동 지방에 사는 어느 결혼한 여배우가 성서 연구를 시작하여 진리를 받아들였읍니다. 얼마 안가서 그 여자는 그리스도인 원칙에 위반되는 ‘텔레비 프로’나 무대 연기를 거절할 필요성을 느꼈읍니다. (베드로 전 4:3, 4) 역시 배우인 그의 남편은 생활을 변경시키기가 더욱 어려웠읍니다. 세상 친구들이 그의 발전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격려와 자기 스스로의 반성에 의하여 그는 얼마 안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입장을 취하였읍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의 벗들과 이웃 사람들에게 성서를 연구하자고 권고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사람들이 그를 그처럼 변화시킨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그는 “진리를 알찌리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대답하였읍니다. (요한 8:32) 이 부부가 충실하게 여호와의 말씀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원칙에 생활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한 결과 그들은 자신들이 변화를 받고, 새로 얻은 종교를 효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는 즐거운 결과를 얻었읍니다.
10. 새로 관심을 가진 어떤 사람은 어떠한 가족의 반대를 받았으며, 그 여자는 어떻게 보상을 받았읍니까?
10 성실을 유지하는 것이 참 종교를 인식하지 못하는 친척들로부터 반대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예언하지 않으셨읍니까? (마태 10:36) ‘아프리카’의 남부 지방에 사는 어느 여인은 성서 연구를 시작하자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거짓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교회 참석을 중지하였읍니다. 그의 남편과 어머니는 완강히 반대하였읍니다. 그러나 자기와 함께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은 마태 10:37에 있는 예수의 말씀 곧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는 말을 지적해 주었읍니다. 그 여자는 격려를 받아 연구를 계속 하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 때문에 미움을 받는 자는 참으로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위안을 받았읍니다. (마태 5:10, 11) 그 여자는 성서 연구에서 배운 것을 실행하기로 더욱 결심을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의 확고부동함은 결과를 얻게 되었읍니다. 얼마 후 자기 어머니가 벗들에게 좋은 소식을 증거하고, 과거에는 자기의 시간을 허송했었다고까지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에 그는 깜짝 놀랐읍니다. 그 후 어머니는 딸에게 성서 연구를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였읍니다. 이 젊은 여자와 과거에 반대하던 어머니가 함께 여호와를 섬기고 있으니 확실히 그 여자의 성실한 행동은 풍부한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11. 어느 형제는 도적질을 말라는 성경의 명령을 범하도록 하는 어떠한 유혹을 받았이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11 성실을 지킨다는 것은 에베소 4:28에 있는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라는 사상과 일치한 생활을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는 세속 직장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혹과 위협을 받습니다. 성서 원칙을 연구하면 자기의 균형과 정직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시아’의 어느 빈곤한 나라에서 은행출납 계원으로 일하는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과 연구를 시작하였읍니다. 직원들이 자기들이 돈을 찾기 위해 수표를 위조하도록 그에게 뇌물을 주거나 압력을 가하는 일이 간혹 있었읍니다. 이러한 부패한 사람들은 심지어 한벌의 가구를 제공하기도 하며, 그의 저항을 꺾어 자기들과 동조하도록 하게 하려고 새 ‘오토바이’를 주려고 하기도 하였읍니다. 그는 일단 성서 진리로 강화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모든 선물을 거절하고 성실을 유지하였읍니다. 그가 침례를 받은지 얼마 안되어 그 은행의 이사가 적절한 서류도 구비하지 않고 그를 통하여 거액의 돈을 대출받으려고 하였읍니다. 그것은 은행 규정에 어긋나고 성경에 배치되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는 이것도 거절하였읍니다. 중앙 기관에서 은행에 대한 감사가 있었읍니다. 그 은행 이사는 파면을 당하였으나 그 형제는 계속하여 자리를 유지하였읍니다. 그들은 이 형제의 정직성을 존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형제가 그 이사와 함께 일할 것을 생각하고 그 사람과 협조하지 않는다면 고통을 당할 것을 두려워서 그의 요구에 응할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께 충성스런 행로를 택하였으며, 결국 크게 보상을 받았읍니다.
12. 어느 성서 연구생은 야외 봉사 자격을 구비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읍니까?
12 성서는 큰 ‘바벨론’ 곧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렇게 명령합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시 18:4) 성실을 지키는 것은 그 충고를 따르는 것도 포함됩니다. 서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는데, 몇 개월 안되어 야외 봉사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읍니다. 그때 그는 큰 ‘바벨론’의 일파에 너무 밀접히 연합하여 있으므로 그의 세속 직업을 먼저 조절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읍니다. 그는 신체적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다른 직장을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올바른 일을 하는 자들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새로운 직장을 얻기 위해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였읍니다. 자기가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그가 얼마나 기뻤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즉시 야외 봉사에 참여하였고, 신권 전도 학교에 등록하였고, 여호와께 드리는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읍니다.
13. (ㄱ) 전도 활동에 대한 어떠한 태도가 보상을 가져옵니까? (ㄴ) 어느 젊은 여자는 자기 가족이 진리를 배우도록 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을 하였으며, 그렇게 노력을 기울인 보람이 있었읍니까?
13 여호와께 대한 우리의 충성,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성실을 유지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로부터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점에 있어서도 나타납니다. 진리를 안다면 ‘예레미야’와 같은 느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예레미야 20:9) 여호와의 목적을 선포하는 데 대한 이러한 올바른 태도 역시 즐거운 보상을 가져다 줍니다. 어느 젊은 여자가 다른 나라에 있는 친척을 방문하였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를 연구하고 있었읍니다. 그 여자는 성서 연구 시간에 함께 앉아서 듣고 급격히 발전하였읍니다. 몇 개월 후에 그는 헌신한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읍니다. 그 여자는 자기가 성서를 통하여 배운 진리에 대하여 가족에게 편지하였으나 가족은 그의 편지에 호의를 나타내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집에 가서 직접 이야기해 주고 진리가 자기의 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가를 실제 보여 주기로 하였읍니다. 그러나 일이 자기 생각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읍니다. 자기 가족은 심지어 그가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조차 반대하였읍니다. 회중 내의 몇몇 사람이 그의 가족을 인사차 방문하여 그들에게 왕국회관에서 어떠한 일을 하는가 한번만 와서 보라고 설득하였읍니다. 집회에 나와 보고는 그들은 형제들이 나타내는 사랑, 친절 및 즐거움을 보고 대단히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 여자가 집회에 참석하고 야외 봉사에 참여하는 것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읍니다. 얼마 후에 그 여자의 동생이 진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지금은 여호와의 헌신한 종이 되었읍니다. 계속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그의 어머니와 결혼한 언니도 진리를 배우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해 주게 되었읍니다. 이제 그들은 여호와의 봉사에 행복스럽게 연합되어 있읍니다. 이 모든 것은 진리를 배운 사람이 충성스러웠고 그것을 자기 가족에게 열렬히 전해 준 결과입니다.
현재와 장래에 맛보게 되는 즐거움
14. (ㄱ) 성실을 지키면 어떻게 지금 즐거움을 얻습니까? (ㄴ) 우리가 즐거워하는 점과 관련하여 잠언 27:11을 설명하십시오.
14 이상의 사실로 보아 지금 성실을 지키는 것은 현재 즐거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즐거움은 우리가 참 종교를 가졌음을 다른 사람으로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 때에 느낄 수 있고, 또는 칭찬을 받을 때에나 우리의 훌륭한 행실 때문에 이 세상 직장에서 승진될 때에 느낄 수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즐거워할 보다 더 큰 이유가 잠언 27:11에 설명되어 있읍니다. 그 귀절을 함께 읽고 분석해 봅시다.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지혜롭게 될 수 있읍니까? 어떻게 지혜를 나타낼 수 있읍니까? 성서 지식을 취하고 그 다음에 우리 생활에서 그 지식을 적용함으로써 할 수 있읍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서 원칙에 성실함으로써 할 수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지혜롭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 곧 ‘사단’ 마귀에게 대답하는 데 공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이탈시킬 수 있다는 ‘사단’의 도전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성실을 지킨 사람들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여호와께서 ‘욥’의 경우에 그렇게 하신 바와 같습니다. (욥 1:8) 잠간 멈추어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올바른 일을 행하면, 특히 시험 또는 시련하에서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행동으로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는 것을 알 때 그것은 우리가 즐거워할 특출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것을 알면 올바른 행로를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느헤미야 8:10.
15. 성실성이 가져오는 행복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하지만, 여호와께 충성을 드림으로써 오는 행복감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행복감은 이 악한 사물의 제도가 멸망되어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 멸망은 임박하였읍니다. 이사야 65:18에는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찌니라” 하신 여호와의 권고가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창조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17절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이 만드실 의로운 새 제도는 우리가 끝없이 즐거움을 표현할 만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행한다면 우리는 그의 마련 안에서 살 희망을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실성은 악이 멸망될 때에 우리를 보호하는 피난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언 14:32.
16. “적은 무리”의 남은 자들 앞에 어떠한 즐거움이 놓여 있읍니까?
16 아직 지상에 남아 있는 예수의 “적은 무리”는 죽기까지 성실을 지킨다면 하늘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천년 동안 왕과 제사장으로 봉사하게 되는 크나큰 보상을 받게 됩니다. (누가 12:32; 계시 20:6) ‘바울’은 빌립보 3:13절과 14절에서 이 보상의 길을 계속 가기 위하여 자신이 어떻게 하였는가를 설명하였읍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아직도 육체를 가지고 살아 있는, 이들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비슷한 행로를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현재 여러 가지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에 비할 수 없는 보상 곧 하나님의 하늘 왕국 정부의 일원으로서 예수와 함께 불멸성을 받게 될 것입니다.—고린도 전 15:53, 54.
17. 어떠한 즐거움이 “큰 무리”를 기다리고 있읍니까?
17 계시록 7장에서는 천적 생명이라는 보상을 받을 제한된 수에 대하여 말한 다음에 9절에서는 역시 생명을 받을 자들 곧 전세계에서 나오는 “큰 무리”에 대하여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이들이 얻을 생명은 낙원에서 인간으로서 누릴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께 성실을 나타냄으로써 여호와 앞에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구원이 예수를 통하여 여호와로부터 온다는 것을 용감하게 인정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이 실현될 때에 영원한 생명이라는 즐거운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 21:4) 그러한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말한 바와 같이 ‘황당무계’한 것이 아닙니다. 성서 다음 귀절에서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증하십니다.
18. 만일 우리가 성실을 유지한다면, 우리는 ‘다윗’과 같은 어떠한 태도를 가질 수 있읍니까?
18 그 점에 대하여는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성실을 유지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에 즐거움을 가져옵니다. 만일 우리가 이 행로를 따른다면 우리도 ‘다윗’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나의 완전한[성실한, 신세] 중에 붙드시고 영영히 주의 앞에 세우시나이다.”—시 4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