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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습을 따라야 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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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9
파79 08월호 8-11면

관습을 따라야 하는가?

‘로디지아’의 한 부부가 ‘오스트리아’에 사는 친구를 방문하는 중이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다른 사람의 가정에서 열리는 간단한 모임에 초대 받았다. 집에 들어서자, 그들은 신을 벗으라는 요청을 받았고 각각 실내화 한 켤레 씩을 받았다. 처음에, 이 부부는 당황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 특히 다른 사람의 집에서, 신을 벗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침착성을 되찾고 즉시 그 요구에 응했다. 그 이유는 그것은 분명히 그 집주인의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비교적 결정하기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관습이 관련된 문제들 전부가 그렇게 쉽게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특히 그리스도인 양심과 관계가 있을 때 그렇다. 해롭지 않고, 사실, 생활에 풍미와 윤택을 더해 주는 전통적 습관들도 대단히 많다. 어떤 것은 대단히 해로와서 창조주와의 개인 관계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 있는 반면, 생명의 길을 걸어 나아가려면 성실히 따라야 하는 습관들도 있다.

관습이란 무엇인가?

관습은 “불문법처럼 간주되는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된 습관”이라고 정의되어 왔다. 관습은 “많은 사람에게 일반화된 관례 혹은 습관 ··· 또는 일개인의 버릇”이기도 하다. 법률 용어로는, 관습은 “획일적인 습관에 의해 ··· 확립된 불문법”이라는 의미로 적용된다.

이 점을 예증하기 위해, 성서 창세기 29장으로 가 보자. 거기에는 ‘야곱’이 삼촌 ‘라반’의 작은 딸인 ‘라헬’과의 결혼 서약을 위해 그와 협상하는 기록이 나온다. ‘야곱’은 그가 매우 사랑한 ‘라헬’에 대한 답례로 ‘라반’을 위해 7년간 봉사하기로 합의하였다. 7년이 찼을 때, ‘야곱’은 ‘라반’에게 “내 기한이 찾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라고 하였다. 하지만, ‘라반’은 ‘야곱’을 속여 ‘라헬’ 대신에 큰 딸인 ‘레아’를 그에게 주었다. 분명히, ‘야곱’은 이러한 속임에 대하여 대단히 화가 났으며 삼촌에게 항의하였다. ‘라반’의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관습이 아니라, 신세]”고 대답했다. 그러한 속임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그 불문법을 논박하지 않고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전에 한 주일을 더 기다리는 데 동의함으로써 이에 대한 인식을 나타냈다.—창세 29:15-28.

“관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근대의 예를 또 들어 볼 수 있다. ‘로디지아’에서는, 결혼을 공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정부 기관에 법적 등록을 마쳐야 한다. 한 때는 그렇지가 않았다. 결혼이 그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불문법인, ‘아프리카’의 관습에 따라 결혼 축하식이 거행되어야만했다. 여기에는, 부모 또는 후견인이 결혼을 승인한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한 중매인의 입회뿐만 아니라, 신부값, 혹은 ‘라볼라’를 지불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현재도, 결혼 증서를 갖고 있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습관을 따르지 않았다면 자신을 참으로 결혼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아프리카’ 여자들이 많다.

물론, 이러한 것은 오용되지만 않는다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일반적 관습들의 예이다. 사실, 매우 유쾌하고 생활에 기쁨을 크게 더해 주는 관습들이 많다. 예를 들어, 서양 사람들로서 젓가락으로 동양 음식을 먹거나, 시도하는 것을 즐기지 않을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집으로 들어설 때 신을 벗는 관습은 긴장을 풀어 줄 뿐만 아니라, 집을 깨끗이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안주인에게 배려를 나타내는 실용적인 습관이기도 하다. 또한, 인류의 시초부터, 추수하는 관습에는 기쁨을 주는 놀이와 잔치가 포함되어 왔다. (시 126:5, 6) 그렇다. 이러한 관습들은 생활에 많은 기쁨을 더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통적인 습관들 모두를 저주하시지 않았다. 사실, 한 경우에 그분은 손대접과 관련된 습관을 따르지 않은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을 꾸짖으신 일이 있다. (누가 7:44-46) 다른 경우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임을 훌륭하게 증거하기 위해 회당에서 성경 낭독하는 관습을 이용하셨다. (누가 4:16-21; 사도 15:21 비교) 사도 ‘바울’ 역시 회당에서 성경 낭독하는 관습을 잘 이용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는 것이 그의 개인적 습관이 되었다.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은 “자기 관례대로”, 유대인 회당을 이용하여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변론했”다. 그 결과는? “그들 중에 몇 사람이 마음으로 복종하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사도 17:2-4, 새번역) 그러므로, 예수와 ‘바울’은 증거하기 위해 좋은 관습들을 이용하였다.

피해야 할 관습들

하지만, 해를 끼치는 관습도 있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실 때까지 ‘유대’인들은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전통 체계를 세워왔다. 사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보다 전통을 더 가치있게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예수 자신은 전통을 강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만드는 자들을 위선자라고 통렬하게 비난하셨다. 죄지은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비난으로부터 유익을 얻었는가? 그렇지 않다. 제자들은 예수에게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 자신들이 소경이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전통을 짊어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태 15:1-14) 그러한 관습이나 전통으로 길러진 무지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생명의 수석 대행자”이자 오랫 동안 약속되어 온 메시야로 증명되신 바로 그분을 죽음에 처하게 만들었다.—사도 3:14-17.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에 강하게 의지하지 않는 한 영적 파선으로 이끌 수 있는 관습들이 있다. 예를 들면, ‘로디지아’에서는 갓 결혼한 남자가 자기 마을에 부인을 두고 일하러 도시로 떠나는 일이 관습화되었다. 불문법에 따라, 그는 그렇게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서 비난을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관습을 따를 때 보통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가? 일단 도시로 가면, 그는 숙소를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그는 아마 혼자 쓰든지 아니면 여럿이 함께 쓸 방을 얻는다. 머지 않아서, 그는 요리하고 빨래할 사람의 필요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소위 ‘마포토’ 아내를 구하게 된다. ‘마포토’는 단지 영어의 “항아리”(pot)에서 유래된 말이며 ‘소나’어로 음역되었다. 이 여자는 그 남자의 가사를 돌봐 줄 뿐만 아니라 그의 성적 필요도 충족시켜 준다. 따라서 간음하는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을에 남겨 둔 부인은 어떠한가? 그는 밭, 가축 및 자녀를 돌보며, 남편을 단지 일년에 한 두번 볼 뿐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남편없이 보내므로 그 역시 부도덕에 빠질 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 습관이 하나님의 깨끗한 진리의 말씀을 직접 범하게 만드는 경우이다. 성서는 남녀가 일단 결혼하면 한 몸이고 따라서 함께 머물러야 한다고 말한다. (마태 19:5, 6) 물론, 남편이나 아내가 예기치 않은 환경 때문에 잠시 동안 서로 별거할 필요가 생길지 모른다. 또는 어떤 잠정적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상호 합의하여 별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거 생활이 습관화될 때, 위에 인용한 예에서와 같이 그것은 결국 커다란 해가 될 수 있다.

기쁘게도, 이러한 습관이 성행하는 곳에 살고있는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관습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오는 비난을 담대하게 견디어 왔다. 그들은 여호와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잃게 할 수 있는 행동에 빠지기 보다 그러한 관습을 따르지 않고 견딘다. 어떤 증인은 일하러 부인을 떠나 도시로 가기보다는, 기업적으로 ‘코오피’나 ‘바나나’와 같은 농작물을 재배해 왔다. 여호와께서는 가족과 그분의 말씀을 통해 주신 지침에 밀접히 고착하고자 하는 그들의 성실한 욕망을 축복해 오셨다. 이것이 사회로부터 어떤 형태의 비난을 초래할지라도, 그들은 여호와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않는다.—골로새 3:23.

어떤 관습에는 여호와께 가증한, 따라서, 그의 백성에게도 가증한 엄청난 습관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한 습관들 중에는 남색, 수간, 동성애, 근친 상간, 그리고 다른 형태의 성적 부도덕이 있다. 약속의 땅에 거주하던 ‘가나안’인들이 이러한 부도덕에 빠져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더럽고 가증한 관습들을 열거하고 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는 내 명령을 지키고 너희 있기 전에 행하던 가증한 풍속을 하나라도 좇음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이 일의 심각성을 강조하여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셨다.—레위 18:1-30.

따라서 우리는 그런 악한 습관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를 알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떠한가? 당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도 이러한 습관들이 보편적인가? 당신의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어떤 나라에서는 더는 동성애를 법에 의해 처벌하지 않고 동성애자들을 사회에서 존경할 만한 것처럼 보도록 법을 바꾸기까지 하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고대 ‘이스라엘’과 초기 그리스도인 당시와 같이, 그러한 습관은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하는 모두에게 불쾌한 것이다.—베드로 전 1:15; 로마 1:24-27.

따라야 할 바람직한 관습

지금까지 우리는 생활에 즐거움을 더해 주는 관습,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과 관련이 있는 관습, 그리고 여호와의 목전에 깨끗함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할 관습을 검토했다. 자 이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전통적 습관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관습”이라는 말의 정의에는 “많은 사람에게 일반화된,” 또는 “일개인의 버릇”이라는 사상이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인들이 발전시켜야 할 관습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당신은 사도행전 17장에서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뢰아’로 간 기록을 상기하는가? ‘베뢰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11절에서는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공부하는 것이 당신의 습관인가? 당신은 배운 것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가? 생활에서 정기적으로 이러한 습관을 갖는 사람은 행복하다.—시 1:1, 2.

숭배에 있어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것은 어떠한가? 당신은 이러한 습관을 발전시켜야 할 바람직한 습관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사실 그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숭배를 위해 함께 모이는 일에 태만했던 어떤 이들이 시킨 것이 분명한 습관에 관해 언급했다. 그 사도는 이 습관을 승인하지 않고 동료 신자들에게 그와 반대되는 관습을 따르라고 격려했다. 그는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함께 모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는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히브리 10:24, 25.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보자.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을 염려하는가? 나는 동료 신자들이나 다른 사람의 가정에서 진리를 함께 나누는 일을 나의 습관으로 삼는가?’ 이 습관에 대해 예수의 사도들이 가졌던 태도를 검토해 보라. 한번은,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더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유대’인 ‘산헤드린’ 앞에서 그 사도들은 공손히 그러나 담대하게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 다음, 그들이 풀려난 뒤, 이 하나님의 종들은 동료 신자들과 만나, 함께 “주여 ···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라고 기도하였다. (사도 4:18-30) 얼마나 훌륭한 태도인가?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후, 사도들은 그들의 담대한 활동 때문에 투옥되었다. 하지만, 밤중에 천사가 그들을 놓아 주었다.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계속 “좋은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성전으로 갔다. 얼마 안가서 그들은 ‘유대’인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담대하게 진술한 뒤, 채찍으로 맞고 풀려났다. 그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 5:17-42)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추종자들이 발전시킨 이 얼마나 훌륭한 습관인가! 당신도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인 관습에 대한 동일한 태도를 갖고 있는가?

자, 이제, ‘관습을 따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현명한 결정은 당신의 생활을 더욱 다양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줌과 동시에 동료 신자들과의 따뜻한 교제를 갖게 해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우리의 기쁨을 위해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여호와와 가깝고, 따뜻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갖게 될 것이다. 부가적으로 당신과 아마도 당신이 선포하는 “좋은 소식”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 영예를 돌리는 관습들로 가득찰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에서 살 특권이 보증될 것이다.—고린도 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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