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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의 참 제자임을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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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의 참 제자임을 증명하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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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파77 10/1 449-453면

그리스도의 참 제자임을 증명하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한 15:8.

1. 제자란 어떠한 사람이며, 따라서 어떻게 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까?

제자란 “가르침을 받는 자”, “배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란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고 그분이 지상에 있는 동안 세워 놓으신 본과 일치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임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참 제자가 되려면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를 알기 위해 지상에서 행하신 그분의 활동을 고려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2. 성경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된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2 예수의 전체 생활 행로는 봉사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읍니다. 그분은 자기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한 4:34)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 20:28) 그분의 이러한 말은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3.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는 그분의 “양식”이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음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3 예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성읍 근처에 있는 ‘야곱’의 우물 곁에 앉아 계셨을 때 그분은 피곤하고 배고프고 목마른 상태였읍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기르려고 가까이 왔을 때 그분은 그 기회를 선을 행하는 데 사용하셨읍니다. 그분은 자기의 피곤함과 배고픔도 잊어 버리시고 이 여인에게 하나님이 승인하시는 숭배에 관해서 가르치심으로써 자기 아버지의 일을 하는 데서 즐거움과 힘을 얻으셨읍니다. (요한 4:6-34) 그렇습니다. 예수에게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마치 음식과 같았읍니다. 그것은 그분에게 힘을 공급해 주었읍니다. 생활에서 그분의 주요 목적은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도와 주는 것이었읍니다. 자신의 물질적인 필요는 이차적인 것이었읍니다. 예수의 생활은 자신이 이렇게 교훈하신 바와 온전히 일치된 생활이었읍니다.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31-33.

4.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한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합니까?

4 예수께서 수종들거나 봉사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해서 그분이 개인적으로 섬김을 받는 것을 모두 뿌리치셨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성경은 ‘예수를 섬’긴 여자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읍니다. (마태 27:55) 이러한 여자들의 봉사에는 식사를 마련하거나 옷을 만들고 수선하고 세탁하는 일이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봉사는 전적으로 자진적인 것이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섬김을 받으려” 지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분이 섬김을 받거나 다른 사람의 시중받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분 스스로가 참으로 많은 봉사를 하셨읍니다. 그분은 병든 자와 불구자와 기형적인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눈먼 자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시고, 말 못하는 자의 입과 듣지 못하는 자의 귀를 열어 주셨으며 많은 사람들을 악귀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셨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반응을 나타내는 자에게 위안을 주시고, 그들을 영적으로 치료하셨으며, 영적 포로 상태로부터 그들이 해방을 얻게 하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 61:1에 지적된 자신의 기름부음받은 목적을 충실하게 성취시키셨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주 여호와의 신[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하려 하심이라.]”

5. 군중이 자기의 조용한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하였을 때 예수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5 이처럼 예수께서는 자기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부드러운 동정심을 나타내셨읍니다. 심지어 군중들이 자기의 조용한 개인적인 시간을 방해하였을 때에도 그분은 퉁명스럽거나 짜증이 난 혹은 어떤 다른 불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의 반응과 관련하여 이러한 기록을 볼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 ···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마가 6:34)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누가 9:11.

6. 예수께서는 어떻게 이사야 42:3의 말씀을 성취시키셨읍니까?

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가난한 자와 고통받는 자들을 멸시하지 않으셨읍니다. 학대 받는 자들을 다루신 방법을 통해 그분은 다음과 같은 이사야 42:3의 말씀을 성취시키셨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혹은 심지를] 끄지 아니하[도다.]” (마태 12:20) 괴로움을 당하는 자들은 상한 갈대와 같았으며 등의 기름이 부족하여 불이 곧 꺼지려는 등불 혹은 심지와 같았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딱한 상태를 아시고 그들을 거칠게 대하심으로써 그 상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으셨읍니다. 오히려 사려 깊음을 나타내어 그들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을 불러 일으켜 주셨읍니다.

7. 예수께서 진정으로 “마음이 겸손”하였음을 어떤 사실이 증명합니까?

7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섬기는 사람들을 대할 때 우월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자기의 완전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비천하거나 열등함을 느껴 그분이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게 되는 일이 없도록 행동하셨읍니다.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제한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대할 때 종종 쉽게 마음이 상하거나 참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그분은 온전히 달랐읍니다. 자기 제자들이 때때로 부주의하고 잊어 버리기를 잘하였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그들을 과도할 정도로 가혹하게 대하신 일이 없었읍니다. 그분은 “마음이 겸손하”였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어 무식하다고 멸시받던 사람들을 가르치셨읍니다.—마태 11:28-30; 요한 7:47-49.

8. 동족들이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반대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 대해 계속 어떻게 느끼셨읍니까?

8 많은 동족들이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반대하였지만 그들에 대한 예수의 관심은 약화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그들 모두를 도와 주려고 하셨읍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태 23:3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성읍에 임할 무서운 멸망을 생각하시고 우셨읍니다. 사람들이 ‘로마’ 군인들로부터 당할 모든 고통은 그들이 회개하고 자기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기름부음받은 종 즉 ‘메시야’로 받아 들인다면 피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은 괴로와하셨읍니다.—누가 19:41-44.

9. 예수께서는 어떻게 가장 큰 사랑을 나타내셨읍니까?

9 참으로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 주는 완전한 본을 세우셨읍니다. 그분은 참으로 깊은 온정과 친절과 사랑을 나타내셨읍니다. 결국에는 최고의 사랑의 표시로서 그분은 죄많은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 자기의 영혼 즉 생명을 바치셨읍니다. 그러므로 이 전에도 그분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수 있었읍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한 15:13, 14.

불완전한 인간도 그렇게 할 수 있다

10. 예수의 완전한 본을 따르는 것이 가능함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읍니까?

10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본을 따를 수 있읍니까? 그것은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하였으며 다른 많은 예수의 충성스러운 제자들도 그러하였읍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다음과 같이 격려하였읍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린도 전 11:1.

11.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동족들에 대하여 어떻게 느꼈읍니까?

11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는 특히 자기 동족이 믿음을 나타내지 않는 것 때문에 고통을 느꼈읍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그 사도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로마 9:1-3.

12. ‘바울’이 ‘유대’인들을 크게 염려한 것은 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읍니까?

12 ‘바울’이 전파하는 것을 보고 그의 동족들은 그를 배도자 혹은 그들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로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사실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이었읍니다. 성령의 계몽을 받은 그의 양심은 그들에 대한 그의 강한 사랑을 증거하였읍니다. 그는 동족들의 구원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기꺼이 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들 때문에 그가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태도는 아주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았느리라.]”—고린도 후 11:24, 25.

13. ‘바울’은 어느 정도로 자기의 ‘유대’인 형제들을 기꺼이 돕고자 하였읍니까?

13 그러나 ‘바울’이 어느 정도로 그들을 기꺼이 돕고자 했는지 유의하십시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나의 형제[를]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로마 9:3) 그러므로 그 사도는 천적 생명의 전망과 함께 하나님의 구원의 마련을 받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동족들이 받게 되는 저주를 자신이 대신 기꺼이 지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갈라디아 3:13 비교) 그의 말은 그의 비이기적인 깊은 사랑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돕기 위하여 자기의 능력의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기꺼이 하려고 하였읍니다.

14. 우리는 “좋은 소식”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태도를 나타내도록 감동을 받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오늘날에도 불신자들에 대하여 동일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의 반대나 무관심 때문에 우리 안에 악의적인 생각을 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인간 가족의 일부로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로마 5:6-8) 그리고 그들이 살아있는 한 혹은 여호와께서 모든 불의를 멸망시키실 때까지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이 여호와의 뜻입니다. (베드로 후 3:9) 이 점을 깊이 인식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영적으로 돕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주의 깊이 기도하는 태도로 고려하도록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수의 훈계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 5:44.

15. 이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생활하는 것이 최선의 생활 방식임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15 또한 “좋은 소식”이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은 확실히 최선의 생활 방식입니다. 우리는 실패할 운명에 처한 세상 제도를 영속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정력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부도덕이나 불법에 관련되지 않도록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서 오게 되는 가슴 아픈 일이나 고통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골로새 3:5-10, 12-14) 현재의 유익 외에도 우리는 의로운 상태하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웅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읍니다. (베드로 후 3:13)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러한 희망을 가지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16. 사람들이 가능한 한 속히 진리를 배울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사람들에게 바로 오늘 “좋은 소식”이 필요합니다. 내일이면 너무 늦을지도 모릅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좋은 소식”을 모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자기의 생활을 파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의 부도덕한 행위, 한번의 격렬한 분노, 마약의 사용 등으로 인하여 회복할 수 없는 해를 입을 수 있읍니다. 그 외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불경건한 세상에 대해서 행동을 취하실 날과 시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마태 24:36-44) 그러므로 우리는 남아 있는 시간을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얻도록 돕는 데 현명하게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사도 18:6) 우리도 사도 ‘바울’이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라고 말한 것처럼 느껴야 합니다.—고린도 전 9:16.

말로 선포하는 것으로 국한되지 않음

17.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파하는 일 외에도 또 무엇이 필요합니까?

17 그러나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증명하는 것은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진실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 주고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했느냐에 관계 없이 친절하게 그들을 대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로마 12:17-20) 그렇지만 자기 가족의 필요를 돌보는 것이 낯선 사람들의 필요를 돌보는 것에 우선하는 바와 같이 동료 신자들에 대한 의무가 불신자들에 대한 의무에 우선합니다. (디모데 전 5:8) 성서의 충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라디아 6:10.

18. (ㄱ) 물질적으로 궁핍한 영적 형제들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어떠한 의무가 있읍니까? (ㄴ) 어떤 때 그리스도인이 궁핍한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베풀 의무가 없읍니까?

18 동료 신자들에게 선한 일을 할 기회는 많이 있읍니다. 사고, 천재지변, 혹은 어떤 다른 재난 때문에 어떤 신자들이 어려운 상태에 있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우리의 영적 형제들을 돕기 위해서 우리의 능력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 1서 3:16-18) 물론 어떤 사람이 무책임하고 게으르며 능력이 있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사람을 물질적으로 도와 줄 의무는 없읍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 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것이 성서의 규정입니다.—데살니로가 후 3:10.

19. 사도 ‘바울’의 편지에 의하면 어떻게 우리는 동료 신자들을 영적으로 도와 줄 수 있읍니까?

19 동료 신자들이 영적인 것을 필요로 할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에 의하면 회중에 있는 모두는 영적인 도움을 베풀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있읍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그리스도인 의무를 소홀히 하기 때문에 훈계를 받을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늙은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할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디도서 2:4, 5) 문제는 시련 때문에 용기를 잃거나 상심하는 사람들은 격려를 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그들은 당신이 말하는 성경적인 사상을 듣고 격려를 받을 것입니다.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 그들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약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강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권리 행사를 제한함으로써 형제들의 약점을 담당하여야 합니다. (로마 15:1-3) 회중에 있는 모두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기꺼이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서로 약점을 받아 들이고 진심으로 서로 간에 용서해야 합니다. (골로새 3:13) 이처럼 우리가 서로 돕는다면 확실히 사랑의 띠가 강화될 것입니다.

20. (ㄱ)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식별하게 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사용함으로써 오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20 우리는 신자와 불신자들을 위한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증명합니다. (요한 13:34, 35) 이것은 우리의 힘이나 시간, 물질적인 소유를 사용하며 다른 사람의 영적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처럼 우리 자신을 사용한다고 하여 우리가 궁핍함을 느끼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행복은 계속 증가할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20:35)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본 받고 항상 그분의 충성스러운 제자들로서 우리를 증명함으로써 즐거움을 계속 증가시키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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