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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의의있는 인생을 발견하였다!깨어라!—1982 |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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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 종교를 발견하게 되어 기뻤다”고 현재 ‘켐’은 말한다.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캄보디아’에 있는 비탄에 잠긴 나의 동족에게 얼마나 알리고 싶은지 모르겠읍니다! 이 일이 현재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동료 인간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이 생명을 구하는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이제 나는 즐거움에 넘쳐 인생에는 분명히 목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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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필요를 인식하는 일깨어라!—1982 |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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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필요를 인식하는 일
‘이탈리아’인 ‘비아지오’와 ‘캄보디아’인 ‘켐’은 여러 모로 서로 다르지만, 매우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둘 다 그들의 생활이 어쩐지 공허하고 성취감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의 물질적인 필요들이 충족되었지만, 영적인 필요들은 충족되지 않았다. 그들은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원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의 가장 유명한 교훈을 이런 말씀으로 시작하셨다.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5:3, 신세) ‘켐’과 ‘비아지오’의 경험은 이 점을 잘 예증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들로부터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게 호응하였다. 그것은 마음속 어디선가 그 소식이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소식”에 대한 인식에서 우러나와 그들은 현재 다른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얻도록 돕는 일보다 더 만족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비아지오’와 ‘켐’에게 인생의 목적을 부여한 것은 “좋은 소식”에 대한 깊은 인식이었다.
슬프게도,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소년들이 “좋은 소식”을 알기는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지는 못하는 수가 있다. “청소년은 ‘진리’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옵니다”라고 한 십대 ‘증인’은 말하였다. “그는 ‘나는 참으로 그것을 믿는가?’ 하고 자문해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부 청소년들은 세상이 강조하는 부와 쾌락의 추구에 대해 방임하다가 그들 자신의 영적 필요들에 눈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행복으로 인도할 것인가? “세상은 무섭습니다” 하고 그 청소년 ‘증인’은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청소년들은 당황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모르고 있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께서 사태를 이 이상으로 허락하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안전감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한 안전감과 목적 의식은 그저 ‘재미를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지 않은가? ‘비아지오’에게 확실히 그랬고,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진리를 배워 온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다.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는 또 다른 유익이 있다. “나에게는 참다운 친구들이 있읍니다” 하고 이 청소년 ‘증인’은 말한다. “학교에 있는 친구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이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 ‘파티’에서조차 그들은 ‘환각’ 상태가 되거나 술에 취하지 않고는 실제로 서로 이야기를 하며 즐기지를 못합니다.” ‘비아지오’도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 되기 전에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 자신과 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우리가 어떤 ‘클럽’이나 ‘디스코테크’에 갈 수 있는 저녁에만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곳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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