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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는 몇이나 되는가?깨어라!—1977 |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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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고린도 전 15:56) 그 점은 천사가 ‘요셉’에게 말한 것과 일치한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태 1:20, 21.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수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다. 그를 통하지 않고는 지상의 아무도 죄와 사망에서 구원될 수 없다. ‘유대’ 최고 법정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 점을 이렇게 지적하였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 4:12.
예수께서 구원자로 언급되었다고 해서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님을 구원의 근원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 이름은 구원자인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아들까지도 아버지를 구원자로 인정하고 그분을 의뢰하였다. 히브리서 5:7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읽어 볼 수 있다: “그[그리스도]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되신 후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속 자기 아버지보다 더 낮은 지위에 계셨다. 예를 들어 그분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네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요한 20:17.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은 구원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올바로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구원을 실제로 마련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심을 명백히 하고 있다. 제자 ‘유다’는 자기의 짧은 편지를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짓고 있다. “우리 구주[구원자]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아멘.” (유다 25) 마찬가지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천적 아버지를 구원자라고 말하였다. “우리 구주[구원자]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라고 하였다. (디모데 전 1:1) “이것이 우리 구주[구원자]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느니라.]” (디모데 전 2:3-6)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구원자]시라.” (디모데 전 4:1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곳에서도 하나님을 구원자로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성서의 증거는 단 한분의 구원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심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포함하여 구원자로 불리운 다른 모든 자들은 독립적인 구원자가 아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그렇게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승인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구원이 아버지로부터 그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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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깨어라!—1977 |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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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 성서는 사람의 마음을 그의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의 집회 장소에 오더라도 그에게 사랑과 사려깊음을 나타내야 한다.—야고보 2:1-4.
그러한 태도가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아프리카’의 ‘말리’에 사는 한 젊은이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어떤 여호와의 증인이 그 사람과 성서 연구를 하였는데 증인은 왕국회관 집회에 그를 여러 번 초대하였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그 젊은이는 집회에 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마지못해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의 옷은 더러웠고 그의 몸에 비해 매우 작았으며 많이 찢어졌었다. 거기다가 모자를 썼는데 모자 끈이 무릎에까지 치렁거렸다. 그가 그러한 차림을 한 목적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를 왕국회관으로 들여 보내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따뜻한 환영을 받게 되니 참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것이 자기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그처럼 부끄러워해 본 적은 없읍니다. 나는 왕국회관에서 쫓겨나올 생각으로 그곳에 갔는데, 글쎄, 내가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 환영을 받게 되었읍니다. 솔직히 말해서, 단정한 옷을 입고 올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모두가 다 단정한 옷차림이었읍니다.” 공교롭게 그의 친구 한 사람이 거기에 참석하고 있어서 그는 더 당황하였다. 집회가 끝나자 즉시 그 친구가 그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데 그런 옷을 입고 왕국회관에 오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자네가 그러리라고 정말 생각지 못했네.” 그 후부터 그 젊은이는 개인적으로 성서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고 더 진지한 태도로 집회에 참석하였다. 이제 그는 성서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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