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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 수훈—“먼저 ··· 형제와 화목하[라]”파수대—1978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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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액과 그에 2할을 부가하여 갚아 주도록 요구하였다. (레위 6:1-7) 그러나 예수께서는 속건제와 특정한 범과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면 어떤 제물이든지 그 바치는 사람에게 형제의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있다면—자기 양심이 형제에게 잘못했다거나 어떤 일을 해 주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경우일 수도 있고, 자기에 대한 형제의 태도를 통해서 불쾌하게 하는 일을 행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경우일 수도 있다.—그 바치는 일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그 제물을 “제단” 즉 성전 제사장의 뜰에 있는 번제단에 산 채로 두어야 하였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동료 인간과의 관계는 참 숭배의 확정적이고도 중요한 부분이다. 동료 인간을 합당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동물 희생을 “천천의 수양”에 이를 정도로 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는 의미없는 것이다. (미가 6:6-8) 사도 ‘요한’은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기술하였다.—요한 1서 4:20.
계속하여 예수께서는 지체하지 말고 불안을 해소할 것을 다음과 같이 권고하셨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마태 5:25ㄱ.
‘원고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잘못한 사람은 법정 밖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잘못한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을 나타내며 보상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내면 고소하려는 사람은 자비를 보이려고 할 것이며 아마 그 잘못한 사람이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문제를 그처럼 신속히 해결해야 할 실용적인 이유를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마태 5:25ㄴ.
일단 그 문제가 법정으로 가서 피고가 유죄임이 드러나고 그가 돈을 갚을 수 없다면 재판관은 그를 “관예”에게 넘겨 줄 것이다. 이제 그 관예 즉, 형리는 그 죄인을 옥에 넣을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태 5:26) 「마태복음」의 희랍어 사본에 의하면, 투옥 상태는 마지막 ‘코드란테스’ 즉 농부의 하루 품삯의 64분의 1에 해당하는 동전을 갚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죄수의 빚을 갚아 주지 않는다면 그가 투옥되어 있는 기간은 장기간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숭배에는 동료 인간을 적절하게 대우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동료 신자들에게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지니라고 권고한다. (로마 14:13) 그러한 거칠 것이 생긴다면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급히 사화”해야 한다. (마태 5:25) 여호와께서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한다고 말씀하신다.—호세아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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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자유가 있는 곳파수대—1978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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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자유가 있는 곳
●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참다운 자유란 자기 좋을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뉴우지일랜드’의 한 젊은이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였다. 나는 15세에 집을 떠나서 ‘오오클란드’에 있는 친척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파아티’에도 가고 ‘호텔’에서 술도 마실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참다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의 태도는 경찰을 적으로 생각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후에 나는 소위 친구라는 사람들을 통해 마약에 접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 마약이나 술에 취해 있었다. 어느날 밤 어떤 ‘파아티’에서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 연구를 바로 얼마 전에 시작했다는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성서에 대한 나의 관심이 되살아 났으며 내가 제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바로 다음날 그 여자가 성서 연구하는 데 앉아 있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계속 발전하였다. 돌이켜 보건데 나는 벗들을 원하였으나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었다. 나는 소위 ‘자유’를 누리지 못하였으며 세상 친구들과 어울려도 즐거움이 없었다. 진정한 자유를 여호와의 백성 사이에서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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