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며 힘껏 노력함’
“우리는 열심히 일하며 힘껏 노력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종류의 사람들, 특히 충실한 자들의 구원자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디모데 전 4:10, 신세.
1-3.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일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살펴보는 것이 왜 적절합니까?
당신은 열심히 일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낍니까? 당신은 가치 있는 노력과 일의 성취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읍니까?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과는 현저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 당신 주위에는 항상 게으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보아 왔을 것입니다. (잠언 20:4; 19:24; 데살로니가 후 3:11) “서두르지 말고 적당히 하게나” 하는 충고를 듣는 일이 있읍니다. 첫출발은 단지 힘든 일을 싫어하는 것이었는데 쉽게 모든 일을 경멸하는 것으로 자랄 수 있읍니다.
3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물론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광범위하게 만연된 일반 세상의 강력한 태도에 물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치적이 아닐 것입니다. 이따금 일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수 있읍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견해가 하나님께 중요한 그리스도인 활동에 참여하는 문제에 있어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꾼들이 따라야 할 본
4. 일은 어느 정도로 중요합니까?
4 생활과 그 가치를 관찰해 온 많은 사람들은 일의 중요성에 대해 논평해 왔읍니다. 독일의 정치가 ‘카알 W. 본 훔볼르트’는 말하기를, “일은 침식(寢食)과 같이 사람에게 필수적이다”고 하였읍니다. 이 말의 진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지런하고 생산적이어야 할 이유를 이해케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열심히 일하는 데 대한 인식을 길러야 할 부가적인 이유가 있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여호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따라야 할 본을 세워 놓으셨읍니다.—에베소 5:1; 고린도 전 11:1.
5, 6. 여호와와 예수께서는 일에 대한 어떠한 본을 세우셨읍니까?
5 외경감을 일으키게 하는 열핵체(熱核體)인 태양으로부터 가냘픈 나비에 이르기까지 전체 우주는 하나님께서 일하는 분이심을 입증해 줍니다. 보이는 모든 창조물은 그분의 ‘작품’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을 끊임없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할 그분의 “행사” 혹은 “일”입니다. (시 145:4-6, 10; 8:4-9) 그분의 아들 역시 열심히 일하는 분이십니다. ‘갈릴리’의 한 마을에서 하던 목수 일을 뒤에 남겨두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즉 병을 고치고 전파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뜨겁고 먼지 많은 시골길을 수백 ‘킬로미터’나 여행하셨읍니다. (마태 4:17, 23-25; 누가 8:1; 9:57, 58)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하셨지만 오랜 시간, 늦게까지 일하심으로 피곤함과 시장기를 느끼셨읍니다.—마태 21:18; 마가 1:32, 35; 6:32-34; 요한 4:3-6, 34.
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께서는 ‘서두르지 말라’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음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계속] 일하시니 나도 [계속] 일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5:17, 신세 참조) 사실, 그분은 그분이 하신 “일”—그분이 하나님의 후원으로 행하신 일—이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증거라고 설명하셨읍니다. (요한 10:25, 38) 이것은 우리의 생명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성서에 기초한 우리의 모든 희망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열심히 일하는 숭배자로서 수행하신 일의 성취에 달려 있읍니다.
7. 일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반영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7 우리 각자는 일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방식을 반영할 수 있고 또 반영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심하게 비평적이거나 자기의 것을 지나치게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신체적 한계와 제한된 환경이 있읍니다. 또한 예수의 행로는 의당 우리가 휴식과 오락, 상쾌한 교제 및 어떤 위안이 되는 일을 즐길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마가 6:31; 누가 5:29; 7:34; 요한 2:2-10; 12:2, 3) 그러나 휴식의 필요성을 강요하는, 바로 그 불완전성이 휴식을 극도에 이르게 할 수 있읍니다. 성서는 게으름에 대하여 경고함으로써 그 점을 강조합니다. 사실상, 마치 배고픔이 음식의 맛을 더하는 것과 같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휴식과 긴장을 푸는 일을 더 즐겁게 해 줍니다.—전도 2:24; 5:12, 18.
8, 9.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8 “일”이란 말은 많은 사람들이 생활 필수품을 얻기 위해 행하는 세속적 일을 특히 생각나게 할 수 있읍니다. 성서의 충고는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양심적이고 부지런해야 함을 알려 줍니다. (잠언 10:4; 22:29) 그것은 또한 가정에서의 우리의 책임이나 심지어 학교에서의 우리의 공부에까지 그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활의 모든 분야가 그리스도인 원칙을 적용함으로 우리가 나타내는 발전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라].”—골로새 3:23, 24.
9 하지만, 여기에서 그리스도인 생활의 한 가지 특별한 분야 즉 전파하고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점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켜 보십시다. 이 일은 중대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을 통해서 ‘우리 자신과 우리에게 듣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디모데 전 4:16.
10, 11.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 믿음을 전파하는 데 열심히 일해야 할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읍니까?
10 그리스도인이 자기 자신의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라고 ‘바울’이 권하지 않은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경건한 전념을 실천에 옮기게 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디모데 전 4:8) 이 전망을 말한 다음에 ‘바울’은 이렇게 썼읍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열심히 일하며 힘껏 노력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종류의 사람들, 특히 충실한 자들의 구원자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디모데 전 4:10, 신세.
11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원—행복 가운데서의 영원한 생명—이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읍니다. 그러나 마침내 누가 구원될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충실한 자들” 즉 믿음을 발전시켜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입니다. 그 점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그 사도는 서두르지 않고 도리어 일반적인 생활을 하면서 편리할 때 가끔 다른 몇몇 사람들에게 이 가능한 구원에 대해 말해 주는 식으로 일할 수 없었읍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소식을 배워서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전망이 ‘바울’에게는 매우 감명 깊고 몹시 중요했기 때문에 그는 ‘열심히 일하며 힘껏 노력’하였읍니다. 당신도 그렇게 느끼십니까? 개인적으로 지난 달 혹은 6개월간의 당신의 활동에 이 점이 반영되고 있읍니다. 당신이 열심히 일하며 힘껏 노력하고 있음이 당신에게—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온전히 명백합니까?
왕국 소식을 전파하는 데 열심히 일함
12. 행함은 구원과 어떠한 관계가 있읍니까?
12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특정한 일을 행함으로 마치도 그것에 의하여 외롭다함을 얻고 구원받는 것처럼, 구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읍니다. (로마 3:28) 그러나 우리가 만일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의 결과로 행함을 산출할 것임에 틀림없읍니다. (야고보 2:18-26)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행함에 대하여 기도하는 태도로 생각해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13.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그분이 죽으신 다음에 제자들이 어떠한 일을 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13 ‘바울’이 행한 바와 같이, ‘열심히 일하고 힘껏 노력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예언적 진리를 성취하는 데 참여할 수 있읍니다. 예수의 말씀의 성취에 당신이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떠한 말씀입니까? 그 말씀은 ‘빌립’이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하고 요청하였을 때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요한 14:8)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한 14:9, 10, 12.
14, 15. 예수께서 요한 복음 14:12에서 하신 말씀은 추종자들이 더 큰 기적들을 행할 것이라는 의미였읍니까? 그 이유는?
14 예수의 제자들이 어떻게 그분이 행한 일보다 더 큰 일을 수행할 수 있었읍니까? 당신은 그러한 더 큰 일을 수행하는 데 참여할 수 있읍니까?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악귀들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또 몇번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등의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게 하셨읍니다. 이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회중을 상대하시고 축복하고 계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사도 3:2-8; 5:12-16; 9:36-40; 16:16-18) 그러나 그러한 일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일보다 더 큰 일들이었읍니까?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온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먼 곳에 있는 일부 사람들까지를 고치셨으며, 기적으로 수천명을 먹이셨고, 죽은 자를 부활시키셨고, 자연의 힘을 조종하기까지 하셨읍니다. (마태 8:5-16, 23-27; 14:14-33; 요한 11:39-44) 더우기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낸 영의 기적의 선물은 끝나 지나가게 되어 있었읍니다. (고린도 전 13:8-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예수보다 더 큰 일을 수행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15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께서 원하신 것을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가장 크고 가장 지속적인 선은 기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왕국a에 관한 그분의 놀라운 가르침에 의한 것이었읍니다. (누가 4:32, 43, 신세) 부활되신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뒤이어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그들을 가르치라’는 사명을 주셨읍니다. (마태 28:19, 20, 신세)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대적으로 증거하는 일을 수행해야 하였읍니다. 그 일은 예수의 전파보다 더 넓은 범위로, 더 오랜 기간에 걸치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행되어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분이 행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수행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16.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그분의 죽음과 승천으로 끝나게 되어 있었읍니까?
16 예수께서 수행하신 왕국에 관하여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은 예수의 죽음과 승천으로 끝나게 되어 있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이 중대한 교육 사업을 계속 주도할 것이지만 자기 추종자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더 많은 점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사도 1:3, 신세) 그분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 1:8.
17, 18.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예수의 추종자들은 더 큰 일에 관한 그분의 말씀을 어떻게 성취시키기 시작하였읍니까?
17 곧 이어서, 제자들은 예수보다 더 큰 일을 수행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기원 33년 오순절 날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읍니다. 그러자 그들은 어떠한 일을 행하였읍니까? 음식물을 배가시키는 일이었읍니까?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일을 가르치는 일이었읍니까? 일부 병자들을 고치는 일이었읍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말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즉 “하나님의 큰 일”을 선포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사도 2:1-11) 그 때 사도 ‘베드로’의 그러한 확신에 넘친 증거를 듣고 수천명이 예수를 받아들였읍니다.
18 그 날에 그렇게 많은 새로 믿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는 일만 해도 굉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들을 그 성의 여러 못으로 분산시켰을 것입니다. 그 날이 끝나자 제자들이 자기들이 수행한 일을 보고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말씀을 받고 침례를 받은 자들이 약 삼천명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하루에 약 120명으로부터 3,000명 이상(2,500‘퍼센트’ 이상의 증가)으로 증가하였읍니다. (사도 1:15; 2:41) 참으로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수행하기 시작하였읍니다.
19. 이 일은 단지 사도들이나 회중의 장로들만의 일이었읍니까?
19 그러나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느낄지 모릅니다. ‘나는 ‘베드로’나 ‘바울’이 아닌데요. 그들이야 예수보다 더 큰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읍니까?’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질문입니다. 「사도 행전」에 의하면, 사도들, 특별 복음 전도자들 및 회중의 영적 장로들은 확실히 왕국을 전파하는 일에 종사하였읍니다. 그러나 제자 ‘누가’가 말한 역사적인 이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회중]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도 8:1) 그러면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그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더라.]” (사도 8:4)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전파하였읍니다.
20. 오늘날 요한 복음 14:12의 성취에 참여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오늘날의 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시작하셨고 제 1세기 형제 자매들이 계속한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성서 예언의 성취를 알려주는 근래의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곧 현 악한 사물의 제도에 끝을 가져오실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현재의 일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마태 24:14, 신세)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볼 수 있읍니다. ‘나는 예수께서 요한 복음 14:12에서 말씀하신 이 중대한 일에 온전히 참여하고 있는가? 나는 열심히 일하며 힘껏 노력하고 있는가? 이 일이 끝날 때 나는 이 일에 온전히 참여했다고 만족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대하시는가?
21-23. 우리의 환경을 어떻게 재평가해 볼 수 있읍니까?
21 우리는 그리스도인 전파 사업에 만족할 만큼 참여하면서, 우리의 가족, 친척, 직장 및 학교와 관련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성경적 의무를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디모데 전 5:8)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는 데 죄책감을 갖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쁘게 이러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우리 개인의 시간과 활동을 평가해 볼 수 있읍니다.
22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균형잡힌 어떤 자기 분석과 자기 징계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다. 아마 알맞은 생활 표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이 아닌 여러가지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23 이런 면에 있어서 아무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바를 비평해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예수께서 행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의 자기 몫에 대한 예리한 인식을 여전히 나타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24. 가난한 과부는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되는 어떠한 일을 하였읍니까?
24 아마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지만 건강과 환경상, 다른 사람보다 못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양 자체가 표준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아주 적은 가치’밖에 없는 주화 둘을 헌금한 가난한 과부를 좋게 평하신 것을 되새겨 보십시오. 그 주화(두 ‘렙돈’)의 가치는 하루 품삯의 약 64분의 1 가치 밖에 되지 않았읍니다. 그것은 당신이 살고 있는 지방에서 얼마의 가치가 있읍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그 여자의 행동을 칭찬하셨읍니다. (마가 12:41-44) 우리 역시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증거 사업에 바친다면 즉 열심히 일하고 힘껏 노력한다면 그러한 승인을 받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25. ‘마리아’는 예수께서 죽으시기 직전에 그분에게 어떻게 하였읍니까?
25 우리는 또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에게 부었을 때를 생각해 볼 수 있읍니다. 그 기름이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일부 제자들은 불평하였읍니다. 안식일과 축제일을 감안할 때 그것은 한 사람의 일꾼이 일년간 일하는 삯에 해당하였읍니다.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 성원이 1년에 번 돈은 얼마나 됩니까? (요한 12:3-8; 마태 20:2)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한 일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 저가 힘을 다하여[할 수 있는 일을 하였으며, 신세]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마가 14:6-9.
26, 27. ‘마리아’는 어떠한 면에서 본이 되었읍니까?
26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라는 말에 유의하십시오. ‘마리아’는 기적을 행할 능력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읍니다. 그는 사도가 될 수 없었으며, 그리스도인 회중이 조직되었을 때 장로가 될 수도 없었읍니다. 또한 “좋은 소식”을 가지고 멀리 여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였읍니다.’ 그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어떤 언어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표현에는 ‘서두르지 말고, 적당히 하라’는 어감이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참으로 힘껏 노력하였읍니다. 일부 성서 번역가들은 이 말을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다” 혹은 “그는 자기 힘 닿는 대로 모든 일을 수행하였다”라고 번역하였읍니다.—‘C. K. 윌리엄즈’, ‘W. 바아클레이’.
27 이처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은 ‘마리아’에게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꾸준한 관심사였읍니다. 일찌기 ‘마리아’는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자 그분의 발 아래 앉았을 때 자기의 마음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나타냈읍니다. (누가 10:38-42) 이제 그는 이 뛰어난 전파자 예수를 계속 지지하였읍니다. 그리고 흥미있게도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행동을 세계적 전파 사업과 관련시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어디에나 이 여자가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리아’는 전파에 관심이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도 죽기까지 그러하셨읍니다.
28. 그리스도교는 어떠한 종교이며,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28 우리는 자기들의 모든 것을 바친 이 두 여자와 같습니까? 우리는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시작하셨고 지금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온 땅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파 사업에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까? 우리는 그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하십니다. 그리스도교가 기원 33년 오순절날에 시작되었을 때 그것은 증거하는 종교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그 일을 후원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자신이 살아계시고 또 모든 참 숭배자들에게 생명을 제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오늘날도 증거하는 종교여야 하고 여전히 그러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특히 충실한 자들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심을 다한 봉사자여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읍니다.—디모데 전 4:10, 신세.
[각주]
a 예수의 능력있는 일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분께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은 “기적을 행하는 자” 혹은 그와 같은 분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분이 뛰어나게 알려진 것은 “가르치는 분”이라는 뜻의 “선생님”으로 알려진 것이다.—마태 8:19; 19:16; 26:18; 마가 4:38; 요한 3:2.
[12면 삽화]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