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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화목하라”파수대—1977 |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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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겸손한 정신과 태도 그리고 경쟁과 다툼이 없는 것이 회중에 어떤 유익을 줍니까?
21 혈연적인 가정에서와 마찬가지로 회중 성원들이 겸손하게 어린 아이와 같은 정신과 태도를 나타낸다면 서로간의 관계가 평화로울 것입니다. 이기적인 경쟁이나 맹렬한 다툼이 없기 때문에 마음을 느긋하게 하는 평온한 분위기가 있게 됩니다. 우리가 아주 비천하게 보이는 일에 있어서까지도 기꺼이 자진적으로 섬긴다면, 참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안녕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면 전체 회중을 세워 주고, 강화시키며,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도록 움직입니다.
22. “서로 화목”하게 하는 강력한 요소는 무엇입니까?
22 그러므로 아주 어린 사람이나 아주 수줍은 사람, 성서 진리와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 아주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됩니다. 회중은 그러한 사람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따뜻하게 포용해야 합니다. 그러한 회중 환경에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풍성할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화목”하도록 회중 성원들을 돕는 강력한 요소입니다. 그로 인해 형제들이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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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파수대—1977 |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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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
1. 우리는 무엇으로 “말”의 맛을 내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금은 우리의 육체적인 건강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숭배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체의 건강에도 반드시 소금이 필요합니다. 제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영적 건강을 앞장 서서 보호하였던 사도 ‘바울’의 충고는 이 사실과 일치합니다. 아직 개인적으로 사귈 기회가 없었던 한 회중에 편지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로새 4:6.
2.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악귀들을 쫓아 내지 못하도록 “어떤 자”를 금하려고 한 사도들과 관련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 이 말은 사도 ‘요한’이 자기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주의를 이끌었을 때 사람들의 말에 얼마나 이러한 “소금”이 사용되었느냐 하는 점에 의문을 느끼게 합니다. 그와 관련된 내용은 이러합니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마가 9:38.
3, 4. (ㄱ) 그 때 ‘요한’은 아마 무엇을 기대하였을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요한’의 설명에 어떠한 이기적인 요소가 나타나며, 그가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려 줍니까?
3 이 귀절을 보면 ‘요한’은 그리스도인 방식으로 그들을 가르치시는 스승으로부터 칭찬의 말을 듣거나 그분이 등을 두드리며 칭찬해 주기를 기대하였던 것 같습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 북부 지방에서 특히 고집센 악귀를 쫓아내신 경우를 기억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는 무능력한 악귀들린 자들로부터 더러운 영들인 악귀를 쫓아낼 권한을 줄 수 있는 예수의 권리를 자신이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요한’의 견해로 볼 때는 예수로부터 그러한 권한을 인정받지 않은 사람은 악한 영들인 악귀를 쫓아 내기 위하여 그분의 강력한 이름을 사용할 권리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악귀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려고 ‘요한’이 제시한 이유를 보면 이기적인 요소가 엿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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