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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74 4/1 149-154면
  • 땅의 새로운 왕을 위하여 재산을 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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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땅의 새로운 왕을 위하여 재산을 늘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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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유에 의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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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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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파74 4/1 149-154면

땅의 새로운 왕을 위하여 재산을 늘림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잠언 14:35.

1. 예언적 비유 가운데서 왕의 입을 통하여 원수들을 죽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신 분은 어떠한 분이었읍니까?

“그리고 나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왕의 이러한 말에 해당하는 당사자들은 간담이 서늘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말을 하였읍니까? 그 말을 한 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냉혹한 명령을 하실 분으로 결코 생각지 않을 그런 분이었읍니다. 그 분은 비유 즉 예언적 비유 가운데서 왕의 입에서 그러한 말이 나오게 하셨읍니다. 그러나 실은 그 분 자신이 비유 가운데 나오는 왕으로 상징된 분이었으므로 그것은 그분의 말이었읍니다.—누가 19:27.

2. (ㄱ) 그 때 예수께서는 어디로 가는 도중이었으며, 어떤 사건을 기대하고 계셨읍니까? (ㄴ) 감람산을 내려가시다가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임할 어떤 일을 예언하셨읍니까?

2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22‘킬로미터’ 떨어진 ‘여리고’ 성에 계셨으며, 때는 기원 33년 봄 ‘니산’월이 시작할 때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로 오셔서 거기에서 하루 밤을 머무셨읍니다. 그분은 ‘유대’인의 유월절이 되기 닷새전인 ‘니산’월 9일 일요일에 거룩한 도시로 개선의 입성을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이었읍니다. 바로 이 개선 입성시에 그 분은 감람산을 내려가던 제자들을 멈추어 세우고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네가 오늘이라도 평화에 이르는 길을 알았더면 좋았을 터인데! 그러나 지금 그 길이 네 눈에 가리워있구나. 때가 올 터인데 그 때에 네 원수들이 진을 치고 너를 에워싸고 사면으로부터 공격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그리고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포개 놓이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으신 때를 네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누가 19:41-44, 새번역.

3.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살륙이 언제 있었으며, 그 규모는 어떠하였읍니까?

3 예수께서는 이렇게 해서 예언적 비유 가운데의 왕이 자기의 왕됨을 원하지 않는 원수들을 죽음에 처할 것으로 설명하신 것입니까? 그 후의 사태 진전을 보면 ‘예루살렘’ 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선 입성하시는 왕으로 환영하지 않았읍니다. 닷새 후 즉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있는 원수들은 예수를 성벽 밖에서 저주받은 죄수처럼 형주에 달아 처형하였읍니다. 원수들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히브리’어와 ‘라틴’어 및 희랍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쓴 패를 형주에 붙인 것을 보고 격렬하게 반대하였읍니다. (요한 19:17-22)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을 모독한 자로 그리고 ‘로마’ 제국에 대한 선동자로 고발된 사람이 자기들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원치 않았읍니다. 삼십삼년후 그들이 ‘로마’에 항거하여 폭동을 일으켰을 때 그들은 예수를 그들의 메시야와 왕으로 옹호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메시야의 야망을 옹호하였읍니다. 그들이 ‘로마’에 항거하여 폭동을 일으킨지 다섯째 해에 예수께서 예언하신 끔찍한 대살륙이 있었읍니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고 멸망시켰을 때 백십만명의 반역한 ‘유대’인들이 생명을 상실하였고 단지 97,000명이 생존하여 포로로 잡혀 갔읍니다.

4. (ㄱ)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그 살륙은 무엇의 모형 혹은 상징이었읍니까? (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그 살륙을 피할 수 있읍니까?

4 그러나 ‘예루살렘’과 성전이 ‘로마’인들에 의하여 기원 70년에 그와 같이 멸망을 당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팔레스티나’ 땅에서나 사람이 거주하는 지상 어느 곳에서도 생존한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기 위하여 강권을 사용하지 않으셨읍니다. ‘로마’ 제국은 그후 여러 세기에 걸쳐 계속 ‘팔레스티나’ 땅을 지배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기원 70년에 이교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을 살륙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번째 임하실 때 그 분이 땅의 새로운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땅의 모든 사람에게 있을 더 큰 규모의 전세계적인 대살륙에 대한 상징 혹은 전영에 불과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부활되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그의 비유가 성취될 때 지상에 있는 그의 원수들을 그의 앞에 이끌어다가 그의 왕국의 화해할 수 없는 원수로서 하늘의 천사들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명하실 때가 올 것이며, 그 때는 매우 가까왔읍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위험한 때에 살고 있으며 우리가 그의 왕국의 원수인지의 여부를 알아낼 필요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금 올바른 입장을 취해야 다가오는 그 살륙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읍니다.

비유에 의한 설명

5, 6. 그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무엇을 하실 것을 기대하였으며, 그러므로 그는 왜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읍니까?

5 우리가 지금 올바른 입장을 취하도록 도움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기원 33년 이른 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리고’에서 말씀하신 그 비유 전체를 조사하여 보고 그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읍니다. 예수께서 세리장 ‘삭개오’의 집을 방문한 결과로 이 멸시받던 사람이 ‘유대’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는 신자가 되었읍니다. (누가 19:1-10)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메시야로 선언하고 왕국을 회복하고 ‘로마’ 제국의 손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배권을 장악하실줄로 생각하였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머리에서 이러한 그릇된 생각을 시정하여 주시기 위하여 그의 왕국이 멀리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6 그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가라사대 어떤 귀인[귀족 출신의 한 사람, 신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니라.]”—누가 19:11, 12.

7. (ㄱ) 비유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왕권을 받아 행사하려면 그때부터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함을 어떻게 암시하셨읍니까? (ㄴ) 예수는 어떻게 참으로 “귀족 출신”이셨읍니까?

7 이러한 방법으로 예수께서는 자기가 아직 왕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왕권을 받기 위하여 먼 여행을 해야 함을 암시하셨읍니다. 천구백년 전의 여행은 비교적 느렸음을 고려할 때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것은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것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왕권을 받기 위하여 ‘여리고’에서 22‘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예루살렘’같이 가까운 곳으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누가 19:12, 새번역, 공동 번역) 예수께서는 ‘나사렛’ 성에서 비천한 목수로 성장하셨지만 그 분은 참으로 귀인 혹은 “귀족 출신”이었읍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던 ‘다윗’ 왕의 육적 후손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수도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릴 ‘다윗’ 왕국을 상속할 권리를 가지고 계셨읍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매우 많은 기적을 행하셨으므로 이제 그의 제자들은 ‘로마’가 그 땅을 점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므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였읍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즉시 설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왕국이 그가 ‘예루살렘’에 가는 데 소요될 시간 정도로 그렇게 가깝지 않음을 아셨읍니다.—누가 3:23-31; 마태 1:1-17.

8, 9. (ㄱ) 그 시간은 ‘로마’를 왕복하는 데 걸릴 정도의 시간이었읍니까? 왜 그렇지 않았읍니까? (ㄴ) ‘예루살렘’의 ‘시드기야’ 왕에게 하신 말씀에서 여호와께서는 왕권을 수여하실 분이 자신이심을 어떻게 지적하셨읍니까?

8 그 시간은 또한 ‘팔레스티나’에서 ‘이탈리아 로마’ 제국으로 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정도도 아니었읍니다. ‘로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받을 곳이 아니었읍니다. 그의 왕권의 근원은 ‘가이사’도, ‘로마’의 원로원도 아니었읍니다. 그 사실은 ‘로마’ 군인들이 유월절날에 그를 왕권을 주장하는 선동자로 형주에 처형하였을 때 고통스럽게 증명되었읍니다. 예수께서 왕권을 받기 위하여 여행할 먼 곳은 예수의 조상 ‘다윗’의 메시야 왕국을 설립하신 분이 계신 곳이었읍니다. 그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며, 그 분이 계신 곳은 하늘이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왕의 합당한 후손에게 왕권을 수여할 분이 자신임을 지적하여 ‘예루살렘’의 ‘시드기야’ 왕이 기원전 607년에 폐위되기 직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9 “[왕]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에스겔 21:26, 27.

10. 예수께서 귀인을 본받아 왕권을 얻기 위하여 먼 여행을 떠나는 것은 왜 건방지거나 주제넘은 일이 아니었읍니까?

10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유 가운데의 귀인을 본받아 왕권을 얻기 위하여 많은 시간이 소요될 여행을 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은 건방지거나 주제넘은 일이 아니었읍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그가 ‘다윗’ 왕가에 속한 그의 지적 어머니 ‘마리아’에게 수태되기 직전에, 예수라고 불리우게 될 그의 이 아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누가 1:31-33) 이제 지존하신 분의 이 아들이 그의 생명을 하늘에서 땅으로 옮기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기적이 필요하였읍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천적 아버지로부터 ‘다윗’ 왕국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하늘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읍니까?

11, 12. (ㄱ) 예수께서는 어떠한 기적에 의하여 왕권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여행하실 수 있었읍니까? (ㄴ) 예수의 그러한 부활은 왜 우리의 이론이 아닙니까?

11 하나님의 불변의 법칙은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5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왕국을 수여하실 수 있는 최고 권위자에게로 가기 위하여 하늘로 돌아가는 여행을 하시려면 분명히 또 다른 기적이 있어야 하였읍니다. 확실히 예수께서는 그의 “혈과 육”을 버려야 하셨읍니다. 이렇게 하려면 그는 자기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인간 희생으로 무죄하게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적 죽음이 그를 하늘에 있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희생된 아들을 다시 생명으로 일으키시되 “혈과 육”을 가진 아들로 일으켜서는 안되었읍니다. 그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천적 눈에는 보이는 영의 몸을 가진 영적 아들로 일으킴을 받아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려면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희생된 아들을 부활시키는 기적을 행하실 뿐 아니라 불멸성과 썩지 않음을 약속된 상으로 받은 영의 존재로 그를 부활시키셔야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바로 그렇게 하셨읍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론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의 기록이 알려 주는 사실입니다.

12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베드로 전 3:18, 19.

13, 14. (ㄱ) 예수께서 “혈과 육”을 가진 인간으로 사망하실 때에 그는 어디에 있게 되었읍니까? (ㄴ)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 직후에 비유에 나오는 “먼 나라”로의 여정에 오르셨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압니까?

13 물론 예수께서 “혈과 육”을 가진 인간으로 죽으실 때 그는 비유에 나오는 “먼 나라” 즉 그의 아버지께서 계시는 하늘로 가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참으로 죽으셨으며 그의 몸은 무덤 속에 있었읍니다. 따라서 날 수로 사흘 동안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스올’이라고 부르는 곳, 희랍인들이 ‘하데스’라고 부르는 곳에 계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세째날에 영의 존재로 부활받으실 때 그의 희생된 인간 생명의 가치를 가지고 계셨지만 즉시 “먼 나라”로 가는 여정에 오르지는 않으셨읍니다. 그 날 그는 무덤이 있는 동산에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14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요한 20:17) 사십일간 그는 보이지 않게 지구 근처에 계셨으며 수시로 인간의 형체로 물질화하여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 자신이 다시 살아 있으며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셨음을 그들에게 증명하셨읍니다.—사도 1:1-5.

15, 16. (ㄱ)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언제 그 “먼 나라”로 가는 여정에 오르셨으며, 어느 증인들 앞에서 떠나셨읍니까? (ㄴ) 언제까지는 그분이 그 “먼 나라”에 도착하셨을 것이며, ‘베드로’는 이것을 어떻게 확증합니까?

15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때가 바로 그 분이 “먼 나라”로가는 여정에 오른 때일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부활되신지 사십일째 되는 날이었읍니다. 감람산에서 얼마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물질화한 몸으로 나타나 승천하시고 사라지는 것을 볼 때 두 천사가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사도 1:11) 영계에 계신 예수께서 비유 가운데의 “먼 나라”에 도착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는 우리가 모르지만 그의 도착은 열흘 이내 즉 기원 33년 그해 오순절 이전이었읍니다. 그날 ‘예루살렘’에 있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졌으며 사도 ‘베드로’는 영감을 받아 수천명의 ‘유대’인 청중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16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형주]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사도 2:34-36, 신세 참조.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17. 예수의 비유는 그 분이 오랫 동안 떠나 있을 때 그의 제자들이 지상에서 무엇을 해야 함을 지적합니까?

1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시게 되어 있었으며, 돌아오실 때는 “왕권”을 가지고 오시게 되어 있었읍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왕국, 신세]가 당장에 나타날줄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분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귀족 출신의 한 사람”같이 오랫 동안 떠나 계실 것을 암시하였읍니다. (누가 19:11, 12) 그러면 그의 제자들은 그 분이 “왕권”을 가지고 돌아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였읍니까? 예수께서는 그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고 그들을 떠나시지 않았읍니다. 예수의 비유는 그 분이 그렇게 하실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떠나는 귀인에 대하여 이러한 기록을 보게 됩니다.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누가 19:13.

18. (ㄱ) 여러 가지 성서 번역판과 「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는 은 열 ‘므나’에 얼마의 가치를 부여합니까? (ㄴ) 종들은 은 ‘므나’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였읍니까?

18 「미국역」은 고대 ‘므나’에 대한 화폐 가치를 부여하여 이렇게 그 귀절을 번역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노예 열명을 불러들여 그들에게 각각 이십 ‘달라’를 주고 자기가 없는 동안에 그것으로 장사를 하라고 말하였다.” ‘모팻’의 성서 번역판은 ‘므나’에 영국의 화폐 가치를 부여하여 이렇게 번역하였읍니다. “그는 먼저 자기의 열명의 종을 불러서 그들 각자에게 오 ‘파운드’ 지폐를 주면서 그들에게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것으로 장사하라’고 말하였다.” 1970년판 「신 영어 성서」는 ‘므나’를 단지 한 ‘파운드’로 평가하였읍니다. 「신 아메리칸 성서」는 막연하게 귀인이 자기의 종들에게 “열개의 돈”을 주었다고 하였읍니다. “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라는 1971년 출판물은 제1세기의 은 ‘므나’의 가치를 14.094‘달라’로 평가하였읍니다. 이것은 예수 당시에는 많은 돈이었읍니다. 당시 이것은 100‘드라크마’와 같았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845.64‘달라’에 해당하는 은 ‘달란트’의 60분의 1에 불과하였읍니다. 은 ‘므나’의 가치가 오늘날 어떠하든지간에 귀인의 종 열명은 은 ‘므나’로 장사를 해야 하였으며 그렇게하여 장래의 왕을 위하여 재산을 늘려야 하였읍니다.

19. “열명의 종”은 누구를 상징하였으며, “열 ‘므나’”는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19 예수의 비유 가운데의 열명의 종은 주 예수의 제자들을 상징하였읍니다. 그는 부활 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무엇을 맡기고, 기원 33년 오순절이 되기 열흘 전에 승천하셨읍니까? 예수께서는 ‘갈보리’에서 형주에 달려 죽으실 때에 지상에서 조금이라도 가치있는 물질은 모조리 빼앗겼읍니다. 세째날 부활되실 때에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까지 무덤에 남아 있었읍니다. (요한 20:6, 7) 그러면 예수께서는 하늘의 “먼 나라”로 올라가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맡길 수 있는 무엇을 가지고 계셨읍니까? 그것은 은 열 ‘므나’처럼 장래의 왕 메시야를 위하여 가치있는 증가를 볼 수 있는 기초 혹은 재산으로 사용될 수 있는 소중한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질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참으로 있는 것이었으며, 참으로 존재하였읍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읍니까? 예수께서 삼년 반 동안 ‘이스라엘’에서 공개적 봉사를 하심으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 대하여 경작하신 관심의 밭이었읍니다.

20. (ㄱ)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이 열 ‘므나’로 장사 하듯이 이익을 남길 수 있는 활동의 밭에 어떠한 가치가 부여되었읍니까? (ㄴ) 한 종과 예수 자신은 어떻게 그 활동의 밭에 그러한 유용한 가치를 부여하였읍니까?

20 그렇습니다. 그 상징적 은 열 “므나”는 예수의 집중적인 가르침과 전파가 ‘유대’인 곧 ‘이스라엘’인 세계에 산출한 결과 즉 여호와의 선민이 예수를 약속된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한 결과를 상징하였읍니다. 이와 같이 예수의 제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밭이 있었읍니다. 그들은 이 밭에서 일하면서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성서 예언을 성취시키는 일을 하신 것을 볼 때 예수께서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것을 ‘유대’인들이 믿도록 혹은 납득하도록 세워주고 장성하도록 격려할 수 있었읍니다. 그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명하신 일에 종사함으로써 매우 생산적이 되게 할 수 있는 밭이었읍니다. 비유 가운데서 한 종은 그것을 밭 혹은 농지에 비유하여 돌아온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당신은 ···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누가 19:21) 예수께서는 또한 이보다 앞서 ‘사마리아’에 계셨을 때 제자들에게 그것을 설명하셨읍니다.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요한 4:37, 38.

21. (ㄱ) 예수께서 늘리기를 원하신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유대’인의 밭이 생산적이 아니라면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였읍니까?

21 이와 같이 예수의 제자들은 유용한 것, 가치 있는 것, 응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것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가지고 일 혹은 ‘장사’를 시작하여 늘릴 수 있었읍니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 즉 종들을 통하여 늘리기를 원하신 것은 은이나 금이 아니었읍니다. 그 분이 증가시키고자 원한 것은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리고 그를 메시야 왕으로 옹호하는 제자들이었읍니다. 그리고 만일 이미 일구어진 ‘유대’인의 밭이 그들 모두를, 특히 예수와 함께 일할 왕국의 144,000명의 후사들을 산출하지 못하면 제자들은 그들의 활동의 밭을 이방인 즉 비‘유대’인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었읍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경작지를 증가시켜 그리스도의 왕국의 지지자들을 산출할 토지를 다섯배 혹은 열배가 되게 할 것이었읍니다.

22. 수효가 열인 “종들”은 비유의 완전한 성취에서 누구를 상징합니까?

22 예수의 비유의 “그 종 열”명은 통용 기원 제1세기의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읍니다. 성서의 비유에서 열은 특히 땅의 것과 관련하여 전부 혹은 완전을 상징하므로 “종들”의 수가 “열”로 정해진 것은 적절합니다. 따라서 비유 가운데의 “종 열”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출생한 기름부음받은 종들 전부를 훌륭히 상징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할 장래의 후사들이며 그리스도께서 기원 1914년 이방인의 때의 끝에 왕권을 잡으실 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천구백년 동안 배출되었읍니다. 이것이 마땅합니다. 왜냐 하면 기원 제 1세기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현 이십세기에 왕국의 권능을 가지고 보이지 않게 돌아오실 때까지 육체로 생존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3. (ㄱ) 비유의 마지막 부분은 어느 기간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성취됩니까? (ㄴ) 왕의 원수들이 죽임을 당할 때가 가까왔으므로 비유와 관련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합니까?

23 따라서 열 ‘므나’를 가진 “종 열”명에 관한 예수의 비유의 마지막 부분은 현 이십세기에 침례받고 영으로 출생하여 기름부음받은 지상에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성취되어야 합니다. 조사에 의하면 지상에는 아직 만명 내외의 남은 자가 있으며 그들은 상징적 열 ‘므나’를 가지고 ‘장사’를 하며 땅의 새로운 왕의 재산을 늘리고 있읍니다. 이들 만명은 144,000명이라는 전체수의 제자들 곧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온 인류의 영원한 축복을 위하여 그와 함께 천년간 통치할 그들에 비하면 참으로 적은 수입니다. 이들 상징적 열명의 종 모두가 장래의 왕의 “열 ‘므나’”를 가지고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살펴보면 흥미있읍니다. 땅의 정당한 메시야 왕의 모든 원수가 죽임을 당할 때가 임박하였으므로 그 흥미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살펴 보고 예수의 비유의 현대 성취에서 우리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152면 삽화]

예수의 비유를 읽어 보면 여행을 떠나는 귀인은 열명의 종 각자에게 한 ‘므나’씩 주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말하였다. 열명의 종은 예수의 제자들을 상징하였다

[153면 삽화]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마태 복음 28:18-20에 지적된 바와 같이 상징적 ‘므나’를 나누어 주셨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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