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에 직면하여 남자답게 되어 두려워하지 말라
1. ‘아마겟돈’과 관련하여 ‘테오도르 루우스벨트’가 규명한 사건들의 시기는 어떻게 잘못된 것이었읍니까?
미국의 대통령 선거 운동 때에 ‘테오도르 루우스벨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 것으로 보도되었읍니다. “우리는 ‘아마겟돈’에 직면하여 있으며, 주를 위해 싸우고 있읍니다!” ‘루우스벨트’는 성서로부터 “‘히브리’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에서 결정적인 전쟁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계시 16:16) 그가 규명한 사건들의 시기는 상당히 때 이른 것이었읍니다. 왜냐하면, 그는 1919년 1월 6일 곧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두 달도 채 못되어 사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전쟁이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으로 인도되지는 않았읍니다.
2. 모든 전쟁 중의 전쟁에서 우리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은 그때에 무엇이 될 것입니까?
2 그러나 격동하는 현 1983년에, 우리는 우리가 모든 전쟁 중의 전쟁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려 주는 징후를 사방에서 보고 있읍니다. 우리가 그 전쟁 곧 싸움의 생존자가 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은 주로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3, 4. 그리스도인들이 그 전쟁에서 처하게 될 입장을 고려할 때, 그들이 “남자답게 행”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 필요가 있읍니까?
3 ‘아마겟돈’ 전쟁에서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대결하게 세상 통치자들을 함께 집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악귀들의 영감받은 표현”입니다.—계시 16:14-16, 신세.
4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는 명칭은 “군대가 집결한 산”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곧 전쟁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군대”는 그리스도교국의 정치적 통치자들을 포함한 “온 천하 임금들”의 군대입니다. 여호와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증인들은 그 군대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육적인 무기를 들고 싸울 필요가 없을 것이며, 다만 그 싸움을 관망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충성스런 증인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왕국을 확고 부동하게 지지한다는 이유로 맨 먼저 보이는 공격 목표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담대함으로 “남자답게 행”할 필요가 있읍니다.—고린도 전 16:13, 신세; 역대 하 20:17 비교.
5, 6.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 자기들 앞에 놓인 전후의 사업에 접하여, 여호와의 백성들 중 생존한 남은 자들은 자기 생애 내에 있을 ‘예루살렘’의 멸망에 직면해 있었던, 어떤 예언자와 같이 느꼈읍니까?
5 1918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상태와 그들 앞에 놓인 사업은 격동하는 중동에 살던 한 청년의 입장과 흡사하였읍니다. 그는 ‘힐기야’의 아들로서 ‘예레미야’라고 하는 ‘유대’인 제사장이었읍니다. 그가 제사장으로 봉사했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도시가 그의 생애 내에 멸망될 운명에 처해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던 고대 ‘이스라엘’의 영적 대응물이며 그 실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국 역시 ‘아마겟돈’에서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 직전에 임할 멸망에 직면해 있읍니다. 통용기원전 제7세기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살아남은 ‘예레미야’는 영감을 받아 그 도시의 황폐에 관한 「애가」서를 기록할 수 있었읍니다.
6 예언의 사업이 청년 ‘예레미야’ 앞에 제시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말씀을 들었읍니다.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찌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1:4-8.
7. (ㄱ) ‘예레미야’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한 예언자로서 봉사해야 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예언자”가 봉사할 필요가 있읍니까? (ㄴ) 그 정도로 그가 봉사하는 것은 나라들과 관련하여 그가 성공할 것임을 의미합니까? 혹은 누구의 유익을 위하여 아직도 배려가 베풀어지고 있읍니까?
7 ‘예레미야’는 온전한 성인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왜냐하면 그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감을 주어 기록하게 하신 것은 심지어 오늘날의 전 인류에게도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를 “열방의 예언자”로 삼으셨읍니다. (예레미야 1:5, 신세) 애국심에 불타는 완고한 나라들이 ‘아마겟돈’의 최후의 결전장으로 가차없이 모여들고 있으므로, 오늘날에는 “열방의 예언자”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현대의 “열방의 예언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소식이 그들을 가차없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행로로부터 돌아서게 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거기에는 개개인들이 관련되어 있읍니다. 경고를 받고 있는 그와 같은 수많은 개개인들은 자신들이 시민으로서 속해 있는 그 나라들과 함께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만일 이들이 그에 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 단순히 인간의 자국 정부의 권익을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과 대결하는 싸움에 휘말려들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의로운 마음을 가진 개개인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사려깊게도 그분의 “열방의 예언자”를 일으키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1918년 11월 11일에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이래 현 “마지막 때” 기간에 이 일을 하셨읍니다.—다니엘 12:4.
8. 여호와께서 세우신, 그리고 ‘아마겟돈’ 전에 일을 완수해야 할 “예언자”는 누구 혹은 무엇으로 밝혀졌읍니까?
8 인간의 다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마음으로부터 열망하는 그러한 개개인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세우신 “예언자”는 ‘예레미야’의 경우처럼 일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반열입니다. 이 반열의 성원들은 예언자 겸 제사장이었던 ‘예레미야’와 같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였으며, 여호와의 성령으로 출생함으로써 그들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의 일부가 되었읍니다. (베드로 전 2:9) 이 늦은 현 시대에 지상에는 이 “예언자” 반열의 남은 자들만이 존재하고 있읍니다. 이 복합적인 “예언자”가 그의 일을 마치기 전에는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은 시작될 수 없읍니다.
9. (ㄱ) ‘예레미야’는 어떤 세계 강국이 여호와의 고대 백성의 수도에 대하여 승리하는 것을 목격하였읍니까? (ㄴ) 고대의 어떤 도시가 그리스도교국을 전영합니까? (ㄷ) 그리스도교국은 무엇의 일부가 되었읍니까? (ㄹ) 큰 ‘바벨론’이 멸망당할 때, 그리스도교국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9 이제 한 가지 사실이 명백하여집니다. “예언자” 반열 곧 ‘예레미야’ 반열이 ‘아마겟돈’에 직면해 있다면 그 반열은 또한 큰 ‘바벨론’의 멸망에도 직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 ‘예레미야’가 고대 ‘바벨론’의 몰락을 목격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성서 역사상 그 세번째 세계 강국의 패망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예언하였읍니다. “여호와를 반대한 능한 사냥군” ‘니므롯’이 설립한 본래의 ‘바벨’ 혹은 ‘바벨론’에 근원을 둔 그 세계 제국은 그의 거짓 종교로 고대의 인류 세상을 오염시켰읍니다. (창세 10:8-12, 신세) ‘예레미야’는 기원전 607년에 고대 ‘바벨론’이 ‘예루살렘’에 대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격하였읍니다. 이와 같이 그는 거짓 종교의 고대 수도가 자체 내에 여호와의 성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분이 맡기신 순결한 종교를 부패시킨 그 수도에 대하여 승리하는 것을 목격하였읍니다. 이러한 이유로 고대 ‘예루살렘’은 현대의 그리스도교국을 전영합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참 그리스도교 영역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바벨론’적 종교의 희생물로 전락하여 사실상 현대의 큰 ‘바벨론’ 곧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탁월한 부분이 되었읍니다. 큰 ‘바벨론’이 계시록 17, 18장에 예언된 대로 현 세상의 가증한 정치 요소에 의해 멸망당할 때에 그리스도교국도 그와 함께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10.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생존한 것은 무엇을 전영하였으며, 그 직후에 열국의 어떠한 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것입니까?
10 ‘예레미야’는 기원전 607년 ‘예루살렘’과 그 영역의 패망을 생존하였으며, 이것은 그가 여호와의 참다운 대변자였음을 확증해 줍니다. 그리고 그 예언적인 장면과 일치하게 오늘날의 ‘예레미야’ 반열도 다가오는 그리스도교국의 무자비한 멸망을 생존할 것입니다. 그 후 오래지 않아, 현 사물의 제도의 비 종교적인 요소들은 ‘예레미야’ 반열을 일소하여 그 존재를 말살하기 위해 악의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지만, 그렇게 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아마겟돈’으로 인해 좌절되고 말 것입니다.—계시 16:16; 19:19-21.
11. ‘예루살렘’에서 곤경에 빠진 ‘예레미야’를 도와준 그 비‘유대’인은 누구를 전영하였으며, 이들은 마태 복음 25:31-46의 예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누구에 해당합니까?
11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의 멸망을 생존한 사람들 중에는 비‘유대’인이었던 ‘이디오피아’인 ‘에벳멜렉’이 있었읍니다. 그에 관한 기록이 예레미야 38장과 39장에 나와 있읍니다. 그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곤경에 빠진 ‘예레미야’를 도와주었읍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로서는 ‘예레미야’를 잠잠케 하기 위해 그의 생명을 노리고 있던 영향력있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가 담대한 행동을 취하여 생명을 구해 준 예언자를 통해 주신 특별한 예언에서, 여호와께서는 ‘에벳멜렉’에게 그가 그의 영혼을 노략물 같이 보전받아 ‘유다’ 땅과 그 수도 ‘예루살렘’에 임하는 멸망을 생존하게 될 것임을 보증하셨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이디오피아’인 ‘에벳멜렉’은 마태 복음 25:31-46에 실려 있는 예수의 양과 염소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상징적인 양을 전영하였읍니다. 이들 상징적인 양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형제들” 중 남은 자들을 도와주고 이 “마지막 때” 기간에 그들에게 직접적인 선을 행함으로써 ‘아마겟돈’에서 “염소” 반열과 함께 멸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통치하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의 보호 아래 그들은 지상에서 죽어 멸망되는 일없이 새로운 사물의 제도로 들어가게 될 것이며, 지상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그들 앞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에게 지금 요구되는 것
12. 우리 시대의 두려운 상태는 “마지막 때”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한 예언과 일치합니까?
12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는 두려움이 점점 더 고조되어 가고 있읍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지막 때” 곧 기원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의 현대적 실체가 일어나게 될 때에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예언하신 일의 정확한 성취입니다. (누가 21:5-7) 제1세기의 사도들과 제자들보다도 오늘날의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예수께서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또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나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 때문에 혼란과 불안으로 절망할 것이다. 사람들[희랍어, ‘안드로포이’]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 기절할 것인데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누가 21:25-27, 새번역.
13. 예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의 태도 및 그의 계몽받은 제자들의 태도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것임을 어떻게 알려 주셨읍니까?
13 여기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안드로포이) 즉 현 세상 혹은 사물의 제도에 속한 사람들과 그의 계몽받은 제자들 사이를 구별하셨읍니다. 그들의 특별한 유익을 위하여 그분의 예언에 그와 같은 설명이 첨가되었던 것입니다. 지식과 이해력을 가진 그의 추종자들은 ‘민족들의 혼란’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마음이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 기절”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낙심하거나 절망한 나머지 고개를 떨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태도 곧 정신과 마음 상태는 어떠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이러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높이 들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왔기 때문이다.”—누가 21:28, 새번역.
14. 임박한 “구원”은 남은 자들이 하늘의 영광을 입는 것을 말합니까? 그리고 지상에서 누가 “구원” 이후에 놓여 있는 놀라운 전망을 갖게 될 것입니까?
14 따라서 현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아마겟돈’ 전쟁에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될 점증하는 재난들은 멸망이 임박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빌립보 1:28) 이것은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이 전능하신 참 하나님 및 충실한 자들에 대한 그분의 약속에 확고한 믿음을 두는 자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들의 눈 앞에 다가온 그 “구원”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출생한 제자들 중 남은 자들이 하늘의 영광을 입는 것과 그들이 재난으로 얼룩진 지상 무대로부터 데려가심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이 그들을 위해 최종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전쟁, 기근, 온역, 지진 및 통치하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추종자들에 대한 광포한 박해가 그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일은 이른바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여호와의 왕국의 모든 대적들이 멸망됨으로써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때에, 하늘 왕국의 상속자들 중 남은 자들과 예언자 ‘예레미야’를 담대하게 도와준 ‘에벳멜렉’으로 전영된 그들의 충성스런 반려자들 앞에는 참으로 놀라운 전망이 있게 될 것입니다!
15. 성경에 의하면 “남자답게 행”하도록 일할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그들은 무엇을 할 필요가 있읍니까?
15 이들이 현재 “남자답게 행”하고 남자답게 처신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 장성에 이르고 메시야 왕국에 대해 최종적인 세계적 증거를 하는 사업을 위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고린도 전 16:13, 신세, 흠정역, 개역 표준역; 마태 24:14) 거룩한 기록을 담은 성서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청년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한 바와 같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 후 3:16, 17) 17절을 「신 영어 성서」로 읽어 보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모든 종류의 선한 일에 유능해지고 대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서」는 이러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은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온전히 구비되고 준비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영감받은 성경을 정기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에 따라 생활하며, 유능하게 행하기 위해 그러한 연구를 통하여 준비한 일을 수행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 줍니다.
16. 성인으로 자라가는 사람들의 우발적인 욕망을 피하는 것이, 홍수 전의 ‘노아’ 시대보다 훨씬 더, 현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우리는 전체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읍니다! 우리는 한 세상, 그것도 ‘노아’ 시대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세상이 사라지려고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읍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그 어떤 일보다도 인류에게 가장 웅대하고 가장 중요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확실히 여호와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증인들 누구나 관능적이고 주의를 산만케하는 청년의 욕망을 채우려고 할 때가 아닙니다. ‘바울’이 젊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한 바와 같습니다. “우발적인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희랍어, ‘안드로포스’]아, 이것들을 피하[라.]” (디모데 후 2:22, 신세; 디모데 전 6:11) 오늘날은 영감받은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은 말을 기술하였을 때보다 더 그러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 1서 2:17.
17. 우리는 보다 이전의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누구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까? 그러나 그러한 완전한 본으로서 누구를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됩니까?
17 그리스도인 장성을 나타낼 필요가 있는 지금, 우리는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소동하는 ‘유대’인 군중 앞에서 “보라, 이 사람이로다!”, “보라, 너희 왕이로다!”라고 말한 분의 완전한 본을 바라볼 필요가 있읍니다. (요한 19:5, 14) 그리스도 훨씬 이전에도 “[참]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엘리야’ 및 그의 동료 ‘엘리사’와 그 외의 사람들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신명 33:1; 열왕 상 17:18, 24; 20:28; 열왕 하 1:9-12; 4:7, 9, 16)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전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는 한편 이제까지 지상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이셨던, 이방인의 때가 끝난 1914년 이래 현재 하늘에서 통치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 11:1–12:3; 누가 21:24) 우리 자신이 그분과 같이 남자답게 처신함으로써, 우리는 운명이 정해진 현 사물의 제도의 ‘아마겟돈’에서의 멸망을 두려움없이 직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8.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우주 주권을 입증하는 일에 참여해야 할 우리의 막중한 책임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읍니까?
18 낡은 세상이 저물어 감에 따라, 우리는 심판의 날인 오늘날 지우거나 없애버릴 수 없는 우리 자신의 기록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명예와 칭찬을 가져다 줄 기록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세상과 더불어 영원히 단죄받게 하는 기록이 될 것입니까? 우리의 흠없는 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남자답게 행함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 신”인 ‘사단’ 마귀가 우리의 영적 통치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 후 4:4)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우주 주권을 지지하고, 그리하여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 앞에서 그것을 입증하는 일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의 책임은 실로 막중한 것이며, 그렇게 할 수 있는 우리의 기회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19. 깨어 믿음에 굳게 서는 것 외에도, 우리는 어떠한 면에서 “남자”답게 될 필요가 있으며, 누가 이렇게 하는 근원이 되십니까?
19 우리는 이제 우리의 특권과 기회에 계속 깨어 있고,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로서 약해지는 것을 허용치 않으십니다! 이 가치있는 목표를 위하여 우리는 “강건한 자가 되시오”라는 사도 ‘바울’의 시기 적절한 훈계에 유의할 필요가 있읍니다. (고린도 전 16:13)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을 한눈도 팔지 않고 응시하면서 기도할 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40:29(신세)에서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는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활력이 없는 자에게는 온전한 힘으로 넘치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아마겟돈’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목격한 뒤, ‘모세’가 홍해에서 ‘바로’의 군대가 수장된 후에 부른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읊는 것은 우리의 특권일 것입니다. “여호와는 용사[남자다운 분, 신세; ‘히브리’어, ‘이쉬’]시니 ···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출애굽 15:3, 2.
당신은 다음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는가?
◻ 우리가 ‘아마겟돈’ 전쟁의 생존자가 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은 무엇인가?
◻ 오늘날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종들의 어떠한 상태가 그분의 고대의 종 ‘예레미야’의 상태와 흡사한가?
◻ ‘에벳멜렉’이 수행한 봉사는 어떤 점에서 마태복음 25:31-46의 그리스도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양”의 활동을 전영하였는가?
◻ 누가복음 21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예언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태도는 열국 백성들의 태도와 어떻게 다른가?
◻ 누가복음 21:28은 무슨 “구원”에 대하여 말한 것인가?
◻ 우리 모두가 “이 사람이로다!”라는 말로써 소개된 분을 본받음으로써 오게 되는 좋은 결과는 무엇인가?
[17면 삽화]
‘에벳멜렉’이 하나님의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도움을 준 일은 누구의 활동을 전영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