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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는 왜 의인이 고통받는 것을 허락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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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는 왜 의인이 고통받는 것을 허락하셨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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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파71 11/15 512-517면

하나님께서는 왜 의인이 고통받는 것을 허락하셨는가?

“나를 위하여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 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받으면 너희가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마태 5:11, 12, 새번역.

1. (ㄱ) 고통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견해는 어떠하며, 그에 대한 최종적인 결과가 고통을 조금이라도 달갑게 만들어 줍니까? (ㄴ) 하나님의 종들이 이탈할 수 없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종들은 ‘아벨’ 시대로부터 악인들의 손에 고통을 받아왔읍니다. 정신이 건전한 사람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그들에게도 박해와 고문은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평화롭게 살기를 훨씬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께 성실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이 악한 세상에 어느 정도의 고통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성실을 지킨 생활의 최종적 결과는 영원히 행복스러운 생활이라는 것을 그들은 확신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고통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혹은 달갑게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실은 이러한 고통과 고난이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 가운데 성실성을 저버렸다가 두고두고 후회하고 좌절감을 가질 수도 있읍니다. 비록 그것이 많은 희생을 요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성실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거기서 이탈할 수도 없고 이탈해서도 안되는 원칙입니다.

2. (ㄱ) 하나님을 충실히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어떠한 일을 당합니까? 증거를 드십시오. (ㄴ) 그러한 박해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2 성경과 역사책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충실히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성실을 위하여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여러분도 아는 대로 우리는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읍니다” 하고 편지하였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3:3, 새번역) 의인 ‘아벨’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실이 그러하였읍니다. ‘아벨’은 그의 형 ‘가인’의 손에 살해당하였읍니다. ‘가인’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3:12) 세명의 ‘히브리’인들은 풀무 가운데 던지움을 당하였읍니다.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형상에 절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파기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다른 사람들도 성실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당하였는가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알려 주고 있읍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브리 11:36-38)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고수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시련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하고 말한 것은 지당한 말이었읍니다.

3, 4. (ㄱ) 예수의 어떠한 말씀들을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히브리’ 예언자들보다 별로 더 나은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을 알 수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았음을 어떤 사실이 증명합니까?

3 그리스도교가 생겨난 이후 하나님의 종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5:20) 또 다른 경우에 그는 제자들에게,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누가 21:12-19) 이러한 말씀은 이미 제1세기에도 성취되었읍니다.

4 ‘바울’도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당하였음을 인정하였고, 자신도 ‘다소’의 ‘사울’로서 박해하던 자였음을 인정하였읍니다. 사도 26:9-11에 기록된 바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나이다].”

5. (ㄱ)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당하리라고 ‘바울’은 말하였읍니까? (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어떻게 여겼읍니까? (ㄷ)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5 ‘다소’의 ‘사울’이 후에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이 되고 나서는 그도 또한 과거에 자기가 섬기던 사람들의 손에 박해를 당하였읍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디모데’에게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편지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3:12) ‘빌립보’인들에게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립보 1:29) ‘바울’의 말을 보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을 위하여 박해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통받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읍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당신은 기꺼이 고통을 받고자, 아니, 그리스도에 관한 당신의 믿음을 위하여 기꺼이 죽고자 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자기 백성들이 박해받는 것을 허락하십니까? 박해는 무슨 좋은 목적을 달성합니까?

박해를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6, 7. (ㄱ) 박해는 가치있는 목적을 이룹니까? 그리고 자기 백성의 고통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이 있읍니까? 예를 드십시오. (ㄴ) 어떻게 하여 하나님께 책임이 없읍니까?

6 먼저 하나님께서 박해를 허락하신 그 일은 가치있는 목적을 달성한다는 사실과, 둘째로, 박해는 인류 세상에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자기 백성이 고통을 받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읍니다. (로마 5:12)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할 수 있겠읍니다. 아버지가 시킨 어떤 일을 하다가 아이가 자기 발을 부러뜨렸을 경우 아버지가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닙니다. 의사인 아버지가 그 다리를 고쳐주기 위하여 집에 와서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프겠지만 얼마 지나면 다리가 나아 새로운 다리처럼 될 것이다. 네가 아파하는 것이 염려되어 너를 고쳐주지 않은 결과로 네가 불구자가 되게 하지는 않겠다.’ 아버지가 뼈를 맞추어 줄 때에 뼈가 긁히고 삐걱거릴 것이며 아이는 아픔을 못이겨 소리를 지르고 아버지에게 애원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수술을 완성합니다. 아버지가 아이의 호소와 비명을 무시한 것은 그를 돌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돌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시초에 비슷한 일이 발생하였읍니다.

7 최초의 인간 부부인 ‘아담’과 ‘하와’가 고의로 하나님의 법을 범하였을 때에, 그들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역한 부부를 ‘에덴’에서 추방하셨읍니다. 그 결과 자신과 자손들에 대하여 그들의 창조주의 특별한 보호와 축복을 상실하셨읍니다. 죄의 결과 즉 고통, 슬픔, 및 사망에 대하여 그들 자신에게 책임이 있을 따름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파멸적으로 행동하였다. 그들은 그의 자녀가 아니고, 흠은 그들 자신의 것이다.” (신명 32:5, 신세; 로마 6:23)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그들의 상처를 고쳐줄 마련을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인간이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읍니다. ‘에덴’에서 ‘아담’에게 열려 있었던 전망 바로 그것입니다.—요한 3:16; 계시 21:4.

8, 9. (ㄱ) 악인이 의인을 박해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욥기」에는 무슨 사실이 기술되어 있읍니까?

8 그러나 모든 고통이 ‘아담’의 죄에서 연유한 내적 불완전성의 결과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악독한 박해자들이 그들에게 가해온 외적인 학대 때문에 크게 고통을 받고 있읍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허락하십니까? 그 대답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범죄하도록 한 반역한 천사 곧 ‘사단’ 마귀에 의하여 ‘에덴’에서 제기된 도덕적 쟁점 가운데 놓여 있읍니다. 그 쟁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성실성 문제를 내포하고 있읍니다. 이 사실은 의로운 ‘욥’의 경우에서 볼 수 있읍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이탈시킨 바와 같이 모든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이탈시킬 수 있다고 뽐내었읍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족장 ‘욥’까지도 이탈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읍니다.—욥 1:8.

9 하늘에서 하나님의 천사 아들들의 회합이 열렸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사단’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읍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욥’의 충성실에 ‘사단’의 주의를 환기시킨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성실을 지킬 수 있는가의 여부에 대하여 논쟁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사단’의 대답은 그러한 논쟁이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즉시 ‘사단’은 ‘욥’의 충성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읍니다.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물질적인 축복을 받기 때문이라고 ‘사단’은 주장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제안하였읍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찌니라.”—욥 1:7-12.

10. 성실을 유지한 ‘욥’의 행동은 무엇을 증명하였읍니까? 그리고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10 마귀가 그에게 가한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욥’은 의로운 길을 고수하였으며, 그 결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증명하였읍니다. ‘욥’은 자기의 행로의 성실성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자기를 비난한 자에게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읍니다. (욥 27:5) 현재 하나님의 종들을 대항한 모든 투쟁도 영감받은 말씀에 표현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성실성, 하나님의 의로운 원칙에 대한 성실성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벨’ 때로부터 지금까지 의로운 사람들은 하나님 여호와께 대한 성실성을 파하느니보다는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의롭다는 것을 믿으며 따라서 그러한 확신을 저버리느니보다는 죽기를 택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문제에 있어서 어느 편에 서 있읍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죽을 각오가 서 있읍니까? 당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직면하느냐에 따라서 결국 당신이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시련을 당하였다

11. (ㄱ) 성실성의 문제가 예수 당시에도 작용하고 있었음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ㄴ) 확고부동한 예수의 행동은 무엇을 증명하였으며 무엇을 세웠읍니까?

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사단’은 예수가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범할 만한 숭배 행위를 한 가지만이라도 하게 만들려고 기를 쓰고 노력하였읍니다. (마태 4:8-11) ‘로마’ 군인들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다음에 형주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실 때에도 예수께서는 성실을 고수하셨읍니다. 마귀는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예수를 하나님께 불충실하게 만들지 못하였읍니다. (빌립보 2:8)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성실을 지키심으로써 모든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이탈시킬 수 있다고 한 ‘사단’의 자만이 거짓말임을 완전히 확증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리하여, 성실성 유지에 대하여 그의 제자들이 본받을 수 있는 완전한 본을 세우셨읍니다.—베드로 전 2:21.

12-14. (ㄱ)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시련에서 제외되었었읍니까? (ㄴ) ‘바울’은 그가 성실을 유지한 문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ㄷ) ‘모샤임’ 박사는 ‘바울’ 시대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12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도 성실성 유지에 대한 시험을 면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러자 확신을 가진 ‘베드로’는 예수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더 잘 알고 계셨읍니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누가 22:31-34) 주님의 말씀이 맞았읍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세번 부인하였읍니다. ‘베드로’는 그처럼 결정적인 때에 성실을 유지하지 못하고 실패한 것이 슬퍼서 크게 울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 상태를 회복하고 나서 형제들에게 격려와 힘이 되어 주었읍니다. 그의 두 통의 편지(베드로 전 후서)는 그 사실을 증거합니다.

13 ‘바울’도 역시 마귀와 그의 앞잡이들에 의하여 고난을 당하였읍니다. 그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사도인 체 하는 거짓 사도들, 거짓 일군들을 만났었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 도중에 어떠한 일을 당하였는가를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내가 [전도인으로서]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린도 후 11:21-28)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인 성실을 지키는 일이 용이한 문제가 아니었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상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0:12) 한 때 든든히 서 있었던 ‘유다’와 ‘데마’와 기타의 사람들도 넘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디모데 후 4:10.

14 그리스도인들은 평화 애호자들이었는데도, ‘바울’ 시대 이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계속되었읍니다. 종교사의 저술가인 ‘존 엘. 폰 모샤임’ 박사는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무해하고 악의 없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 그들의 정신 가운데, 국가 복지에 해로운 의향이나 생각을 결코 품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런데도 바로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이교도들과 ‘로마’ 정부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성실성은 아직도 쟁점이다

15. 모든 종교 집단 가운데 오늘날 그리스도인 원칙에 대한 성실성 문제로 비슷하게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증거를 드십시오.

15 세상의 모든 종교 집단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신앙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교 원칙에 대한 성실성 때문에 가장 광범하게 비난을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 때문에 더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와 같이 법정이나 감옥에 끌려가는 수도 있읍니다. 어느 역사학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증인들에 관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세상 어느 권세 앞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근본적인 충성을 고수하는 점일 것이다.” (「이들 역시 믿는다」) 그 결과 미국 ‘오하이오’ 주 ‘아크론’의 「비이컨 저널」지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원칙은 인기가 없고 ‘로마’인들로부터 잔인한 박해를 받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생각나게 한다.”

16, 17. (ㄱ)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이 박해를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정치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무엇이며, 이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모욕을 당합니까?

16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에게 제사를 드리는 등의 애국적인 간단한 의식을 거절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는 일이 많았읍니다. 그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의식을 우상 숭배로 간주하였읍니다. 예수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된 한번의 숭배 행위도 거절하셨읍니다. (마태 4:9)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증인들도 그들의 숭배와 충성을 하나님께만 바칩니다. 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평온하고, 도덕적이고, 실로 본이 되는 생활을 해나가고 있읍니다. 또한 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국가를 우상화하기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전도인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의 대사로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느 나라의 기에 대하여도 경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지 않는 모든 법에 순종함으로써 그들이 사는 나라의 기에 존경을 나타냅니다. 증인들은 기를 경배하는 것을 양심적으로 이행할 수 없는 종교 행동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들은 그 행동을 ‘둘째 계명’의 위반이며, 우상 숭배를 금하는 성경 말씀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출애굽 20:4, 5; 요한 1서 5:21) 우상 숭배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인정해 주는 사람은 적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것을 생사의 문제로 볼 만큼 중대사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주장과 같습니다.—사도 5:29.

17 예수께서는 자기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처럼 자기의 백성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선언하셨읍니다. (요한 17:16) 고대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여호와의 증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정치나 전쟁에 대하여 엄정 중립을 지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박해를 당하였읍니다. 그러한 예로 독일 ‘나치’ 치하에서 ‘히틀러’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증인들이 수천명이나 되었읍니다. ‘다소’의 ‘사울’이 초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신앙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과 같이 ‘히틀러’도 여호와의 증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는 문서에 서명하게 함으로써 마찬가지의 일을 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증인들은 용감하게 그 일을 거절하였읍니다. 좀더 근래에 다른 몇 나라에서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그리스도인 중립과 양심에 거슬리게도 당원 증명서를 소지하도록 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들은 그 일을 완강하게 거부하였읍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잔악 무도한 박해를 당하였지만 집단으로서는 하나님께 대한 성실을 파기하지 않았읍니다.

18, 19. (ㄱ) 공산국가 내에서의 그들의 입장은 어떠합니까? (ㄴ) ‘아프리카’의 몇몇 신생국가에서 그들은 어떠한 처우를 받았읍니까?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18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중립적인 태도와 그리스도교 원칙에 대한 비 타협적인 입장 때문에 공산국가내에서나 비공산 국가에서도 투옥당하는 일이 종종 있읍니다. 공산국가 ‘폴란드’에서 어느 증인을 심리할 때에 검사는 이렇게 말한 일이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현존하는 사회 질서를 좀먹는다. 그들은 투표소에 가지 않으며, 국기 경배를 거절하며, 군복무를 않는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만큼이나 현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 ‘로마’ 황제들은 그것을 참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들도 용인될 수 없다.” 실질적으로 그의 불평은 증인들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9 하나님을 자유로이 숭배할 권리를 보장해 준다고 하는 여러 나라에서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러한 권리를 박탈당하였읍니다. 그들은 중공에서 금지되어 있읍니다. ‘러시아’를 위시하여 모든 공산국가에서 금지되어 있읍니다. ‘아프리카’의 몇몇 신생국가에서는 그들의 그리스도인 중립 태도 때문에 수치스러우리만큼 여호와의 증인들을 박해하였읍니다. 그러나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나라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숭배는 번성하고 있읍니다.

고통은 조만간 끝난다

20. 여호와의 증인들의 결의와 확신은 무엇입니까?

20 여호와의 증인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세계 어느 곳에서 살든간에 평화롭게 행동하려는 결의를 굳게 하고 있읍니다. 그들 가운데서는 ‘이사야’의 예언이 이미 성취를 보고 있읍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었으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합니다. (이사야 2:4)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멀지 않아 ‘아마겟돈’ 전쟁에서 모든 악을 신속히 종말지으실 것을 믿고 있읍니다. (계시 16:13-16)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입증될 것을 확신하고 있읍니다. 우주 주권 문제와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우주 내에 사는 모두를 만족케 할 것을 확신하고 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악과 박해를 허락하신 것이 가치있는 목적을 달성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이름을 입증하는 결과를 낼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21. 악을 허락한 결과 무엇이 확증되었읍니까?

21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신 그 기간은, 악인들이 자기네 악한 의도를 실현하고, “자기들의 죄의 분량을 채우”는데 충분한 기간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2:16, 새번역) 현존하는 세상 제도가 잔인하고 무자비하고 존재 가치가 없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사실을 확증합니다. 세상 제도가 부패하고 부당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당하게 심판을 하고 그들을 멸하실 필요가 있읍니다. 그리고 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심판을 즐거워할 것입니다.—베드로 전 4:15-19.

22. 박해는 어떠한 목적을 이루었으며, 어떠한 질문이 제기됩니까?

22 박해는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진정으로 어떠한 사람이며, 그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믿는 사람인가의 여부를 스스로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읍니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나라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고 취급한 방법 여하에 따라 그들 스스로 자기네가 하나님의 편인가 하나님의 반대편인가를 나타내는 표를 완전히 박아놓았읍니다. (마태 25:40, 45) 박해는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은 인류에 대하여 참을성이 많으시고, 한 사람이라도 멸망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확증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2:3, 4)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기 때문에 박해는 또한 그들이 인류의 애호자임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아 있읍니다. 임박한 ‘아마겟돈’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그 투쟁을 종결지으실 때에 당신은 그 논쟁의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당신은 성실을 지킨 사람으로 나타날 것인가? 이러한 질문으로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당신의 영원한 운명이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516면 삽화]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위해 향불을 피우는 애국적 의식을 거절한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 오늘날의 참 그리스도인들도 모든 우상 숭배 행위를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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