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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면 유지에 대한 균형잡힌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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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면 유지에 대한 균형잡힌 견해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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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03월호 25-28면

체면 유지에 대한 균형잡힌 견해

성서를 보면 체면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인류의 존재 기간만큼이나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상 바로 첫 인간 범죄 직후에 체면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신은 아마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과일을 먹음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한 과정을 잘 알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범죄에 대한 심문을 받아야 하였다. 그들이 나타낸 반응은 흥미롭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고백을 요구하셨을 때, ‘아담’은 ‘하와’에게 그리고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 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대답하였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와’ 역시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였다. 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세 3:8-13.

당신도 이처럼 행동하려고 하던 경험이 있는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드러났을 때,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고 한 적이 있는가?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라고 공개적 사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갖은 변명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체면을 유지하려 한다고 해서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죄를 변명했지만 처벌을 받았다.—창세 3:16-19.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체면”에 민감한 부부였다. 그들은 뻔뻔한 거짓말로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을 속이려고 하였는데, 그 의도는 동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신들의 명성 곧 “체면”을 세우려고 했던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게 하심으로써 불쾌함을 보이셨다. (사도 5:1-11) 일례로 오늘날에도, 어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봉사에서 그가 실제 한 것보다 더 많이 한 것처럼 거짓 주장을 한다면, 여호와께서는 그 문제를 같은 식으로 보시지 않겠는가? 또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가 실상과 다르게 자신을 가장한다면 여호와께서 불쾌하게 느끼시지 않겠는가?—야고보 3:17.

그리스도인에게 체면 유지가 필요한가?

“체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대부분 나쁜 결과를 가져 온다. 그 이유는 그러한 태도가 나쁜 전제 위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명성이 최대로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체면을 유지하려는 것은 또한 자존심 즉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과장된 견해에 기초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한 태도를 여호와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잠언 16:18.

물론 성서에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는 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도 7:1) 그러나 이 말은 사람이 일생에 걸쳐 선한 일을 한 결과 특히 여호와의 관점에서 얻게 되는 명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말은, 받을 가치의 유무 여부와 관계없이 스스로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억지 존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또한 그리스도인 장로가 되기 위하여는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한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디모데 전 3:7)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선한 증거”는 그가 대학 학위 또는 명망있는 직업을 갖고 있거나 친구들에게 돈을 척척 쓰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그리스도인 행위와 질서잡힌 가족으로 인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체면”을 지나치게 중요시하지 않으셨음이 분명하다. 그분께서 종교 지도자들과 사귀는 대신에 가난한 사람들, 세리들 및 죄인들에게 전도하셨다는 사실은, 그러한 거만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의 “체면”을 심히 손상시키는 일이었다. (요한 7:45-48)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의 영광을 스스로 추구하지 않으시므로, 천적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길에서 빗나가지 않으셨다. 사실상 한 기회에 그분은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었다. (요한 8:49-54)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시기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하신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생각이 올바른 사람들 앞에서 훌륭한 명성을 얻게 되셨던 것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만일 우리가 사실을 숨기거나 허세를 부려 우리의 영광을 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며 장기적으로 볼 때 하등의 가치가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관심을 갖는 것이 훨씬 낫다. 예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태 5:11, 12.

예수께서는 체포되신 후에 특히 이러한 경험을 하셨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재판하면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그분의 명성을 욕되게 하려고 하였다. 그 후에 그분은 비웃음과 조롱을 받으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왕’이라는 사실을 조롱하는 뜻으로 그분의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눌러 씌웠고, 몸에는 자색 옷을 입혔다. (마가 14:55-65; 15:17-20) 그리고 예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에도 관원들은 형주를 둘러 서서 흡족히 바라보며 그분을 조롱하였다. 그분이 죽은 방식 자체가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매우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누가 23:32-38; 갈라디아 3:13) 이러한 모든 일을 당하실 때 예수께서는 자기의 명성을 보호하거나 체면을 유지하려 하셨는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성서는 알려 준다. (히브리 12:2) 그분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요한 17:4, 11) 그리고 그러한 훌륭한 행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받으신 상은 참으로 웅대하였다.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뛰어난 본이 되는가!—베드로 전 2:21, 22.

“체면”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체면 유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사실상 이 문제에 대하여는 고려해야 할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한 가지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문제이고 또 하나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이 체면을 유지하도록 느끼게 하는 환경에 몰아 넣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태 7:12) 따라서 사랑과 감정이입을 가진 감독자라면 충고나 시정의 말을 할 때 친절하고 사려깊은 방법 즉 “온유한 정신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갈라디아 6:1, 신세)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온유와 두려움으로” 재치있게 그렇게 할 것이다. (베드로 전 3:15) 그렇게 한다면 불신자들이, 정확하지 않은 것을 말하거나 그가 소중히 지녀온 신앙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도, 기분이 상하거나 수치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타인에 대한 해로운 뒷공론을 퍼뜨림으로써 그의 명성을 손상시키는 일을 해서도 안될 것이다.—잠언 16:28.

한편 우리 자신을 보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인 장성에는 체면 유지의 덫을 피하는 것이 요구된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욥’조차 그 덫에 걸렸었다. 그가 엄청난 압력하에 있었음은 잘 인정되고 있는 일이다. 그가 받은 고통 중에는 참혹한 질병, 가족의 사망 및 아내의 낙심케 하는 언행 등이 있었다. 더 나아가 세 사람의 소위 친구들이 찾아와서는 그가 남모르게 범죄한 것이 아니냐고 비난하였다. 참다 못한 ‘욥’은 그 때 열렬히 자기를 정당화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고 외쳤다. (욥 32:2) 그러나 ‘욥’이 ‘엘리후’의 현명하고 이치적인 설명과 특히 여호와 자신의 일깨워 주는 훈계를 들은 후, 그의 사고력은 올바른 균형을 되찾았다. 그러자 ‘욥’은 체면을 유지하거나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대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 결과 그는 풍부한 축복을 받았다.—욥 42:1-6, 12, 1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주의깊이 검토해 보아야 한다. 체면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실제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는 때때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속이려 하다가 우리는 심지어 자신을 속이게 될 수도 있다. 마음은 거짓되어 믿을 수 없으므로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예레미야 17:9) 특히 우리가 감정적인 압력하에 처하게 되거나 갑자기 궁지에 몰리게 될 때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을 기도하는 태도로 분석한다면 진상을 보도록 도움이 될 것이다. (시 139:23, 24) 그리고 일단 그것을 파악하였다면 우리는 ‘욥’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도움으로 균형을 되찾게 될 수 있다.

종종 우리를 걱정시키는 것은 반대자들의 견해가 아니라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의 견해이다. 장성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좋은 소식”을 위하여 그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조롱을 인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에 대해 갖고 있는 존경심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회중 내에서의 실수를 자인하거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그의 자녀가 잘못된 어떤 일을 범하였을 경우 극도로 부끄러워한 나머지 묵살해 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은 그리스도인 감독자에게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곤경에 처하였을 때 자기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장로야말로 사실상 회중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본을 세워 놓고 있는 것이다. 사고력이 바른 사람들은 그의 정직성으로 인하여 그를 존경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비난을 피하려고 애쓴다든지 자신이나 가족이 행한 일을 감추려고 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태도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짓말을 하게 되기가 쉽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나님께 가증한 것들이다.—계시 21:8.

그리스도인의 가치 있는 세 가지 특성

그러므로 우리는 체면을 유지하려는 욕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특성들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어떠한 특성들인가? 정직성이 그 중의 하나이다. (히브리 13:18, 신세) 우리가 정직성을 높이 평가한다면, 우리는 체면 유지에 거의 항상 수반되기 마련인 허세 부리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에게와 다른 사람에게 계속 정직성을 나타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겸손과 담대함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잠언 15:33; 고린도 전 16:13) 더 나아가서 겸손은, 첫째 자리에 체면을 유지하고자 하게 하는 거짓된 자존심을 극복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 담대함, 정직성 그리고 겸손은, 우리가 체면 유지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도움을 준다. ‘바울’은 어떤 사람들이 그를 미련하게 보았다고 말하였다. (고린도 전 4:10)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당신을 미련하게 본다면 당신은 그것을 염려할 것인가? 다시 말하여,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두려워하여 옳은 일 행하기를 피할 것인가? 특히 십대들이 체면 유지에 호소하거나 다수를 따르지 않고 올바른 원칙을 고수하기 위하여는 담대함, 정직성 그리고 겸손이 필수적이다.—베드로 전 4:4.

예수께서는 하나님 섬기는 사람들을 “무익한 종”에 비유하셨다. (누가 17:10) 당신은 자신을 그런 식으로 보는가? 아니면 당신은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가?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고 우리를 격려하였다. (로마 12:3) 그는 또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격려하였다.—빌립보 2:3.

성경은,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체면 유지나 자신을 위하여 명예를 얻으려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음을 명백히 지적해 준다. 겸손, 담대함 및 정직성 등의 중요한 그리스도인 특성들과 체면 유지 태도와는 온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도 체면 유지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살아 왔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특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행로를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의 정신에 작용하는 힘’조차,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기만 한다면, 변화시킬 수 있다. (에베소 4:23, 신세) 그러므로 체면 유지의 위험에 대하여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타락한 육체의 덫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하여 그것을 피하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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