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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운을 내시오’
    파수대—1978 | 6월 15
    • 적극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롭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격려한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립보 4:8) 그러한 것들이 우리 대화의 주제가 될 때 듣는 사람들을 세워 주고 그렇다, 그들이 격려를 받게 될 것이다.

      확실히 자기 자신의 복지와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기여하기 때문에 즐거운 기분을 배양하고 유지하도록 노력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바다에서 위험한 폭풍이 있었을 때의 사도 ‘바울’의 ‘기운을 내라’는 충고는 이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훌륭한 충고이다.

  • 산상수훈—여섯째부터 아홉째까지의 행복
    파수대—1978 | 6월 15
    • 산상수훈—여섯째부터 아홉째까지의 행복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여섯째 ‘행복’을 이렇게 지적하셨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 5:8, 공동번역.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내면적으로 깨끗한 사람이다. 그들은 애정, 욕망, 인식 그리고 동기가 순결하다. 그것은 단순한 외부적 혹은 의식적인 정결함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마태 23:25-28; 마가 7:3, 4) 성경은 외부적인 경건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을 나타내라고 격려한다.—디모데 전 1:5.

      마음이 정결한 사람들은 특히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기 때문에 행복하다.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육안을 통해 하나님을 문자적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출애굽 33:20; 요한 1:18; 요한 1서 4:12) 그러나 지상에 있는 올바른 동기를 가진 숭배자들이 현재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예를 들어 성실을 지키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동하시는 것을 관찰하는 것은 ‘하나님을 보’는 한 가지 방법이다. (욥 19:26; 42:5) 숭배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는 것은 사람이 “여호와[께] 보이러” 오거나 그분 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출애굽 34:24; 신명 31:11; 이사야 1:12.

      ‘마태’가 ‘본다’고 사용한 희랍어는 “정신으로 보며, 감지하고, 아는 것”을 또한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완전히 반영하셨기 때문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요한 14:7-9)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청종한 마음이 순결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통찰할 수 있었다. 예수의 속죄 희생에 대한 믿음을 나타냄으로써 그들은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그분의 보좌 앞에 가납될 만한 숭배를 드릴 수 있었다. (에베소 1:7) 이러한 의미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에 이르게 될 때에 그 절정에 이를 것이다. 왜냐 하면 거기에서는 그들이 실제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서 3:2; 고린도 후 1:21, 22.

      정확한 지식과 참된 숭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볼 기회는 마음이 순결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성경은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을 보지도 알게 되지도 못하였음을 알려 준다. “범죄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보지도 못하[느니라].”—요한 1서 3:6; 요한 3서 11; 시 24: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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