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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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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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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파75 6/15 275-283면

성서—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1.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성서 필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읍니까?

성서는 16세기 가량 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약 40명의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읍니다. 이들은 불완전하고, 약점과 실수가 있는 사람들이었읍니다. 인간으로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없었읍니다. 필자 중 한 사람인 ‘바울’은 자기와 자기의 동료 선교인 ‘바나바’를 신으로 잘못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사도 14:15)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많은 성서 필자들은 학식과 재능이 출중한 사람들이 아니었읍니다. 그들 중에는 매우 평범한 사람들, 목축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던 사람들도 있었읍니다.

2. 불완전한 사람들이 실제 하나님의 “말씀”인 문헌을 만들어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였읍니까?

2 그러면, 이들 불완전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소식인 문헌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였읍니까? 그들은 자기 자신의 충동에 따라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읍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있던 성경의 부분에 관하여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디모데 후 3:16.

3, 4. 성서의 영감성에 대한 의심은 왜 위험하게 될 수 있읍니까?

3 당신은 아마 성서를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으로 인정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인정은 얼마나 강합니까? 그 인정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읍니까?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예레미야 20:8) 당신은 그것을 위하여 기꺼이 욕설, 신체적 학대 심지어 죽음까지 당하겠읍니까? 고통과 반대를 받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성에 대한 조그마한 의심도 더 큰 의심을 일으켜 믿음을 침식하고 유혹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킬 수 있읍니다. (야고보 1:6) 그러나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일임을 참으로 확신한다면, 당신은 압력을 이겨내고 편의주의적 행동을 저항할 수 있는 훨씬 나은 위치에 있게 됩니다.

4 성서가—적어도 일부는—인간 사상의 소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난관을 모면하기 위하여 성서의 말씀을 무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희생할 수도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누가 17:33) 그러므로 사람에 의해 기록된 성서가 왜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고려하는 것은 단순히 일시적인 관심 이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 자체가 거기에 관련되어 있읍니다.

성서 필자들은 정보를 어떻게 받았는가?

5. 성서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 직접 받아쓰게 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5 지상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데 사용된 “여러 방법” 중에는 구두로 직접 불러주는 방법이 있었읍니다. (히브리 1:1, 2, 새번역) 성서 중에서 직접 받아쓰게 한 부분으로는 십계명(그것은 두 돌판에 기록된 형태로도 주어졌다)이 있고 또 ‘이스라엘’ 사람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내포된 기타 모든 법과 규정들이 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이 율법 언약을 전달하셨읍니다. (사도 7:53) 그 후에 ‘모세’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는 지시를 받았읍니다. (출애굽 34:27) ‘모세’ 이외의 예언자들도 구체적인 소식을 받았으며 후에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읍니다. (예로서, 사무엘 하 7:5-16; 이사야 7:3-9 및 예레미야 7:1-34 참조) 그러한 구체적인 소식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대표한 천사가 말해 주었읍니다.—창세 31:11-13.

6. 꿈, 환상 및 황홀경의 성질을 설명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는 데 있어서의 그들의 역할을 설명하십시오.

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분의 소식을 전하시기 위하여 때때로 꿈과 환상과 황홀 상태를 사용하셨읍니다. (민수 12:6; 사무엘 상 3:4-14; 사무엘 하 7:17; 다니엘 9:20-27) 꿈 혹은 “밤의 환상”의 경우, 잠자는 사람은 하나님의 소식 혹은 목적을 전달하는 활동 사진을 머리 속에 받았읍니다. 환상을 본 다른 사람들은 온전히 깨어 있으면서 의식이 있는 머리 속에 정보를 사진처럼 받았읍니다. (마태 17:2-9; 누가 9:32) 어떤 환상은 그 사람이 황홀 상태에 들어간 다음에 받았읍니다. 의식은 있었지만, 그가 환상에 매우 몰두하였기 때문에 주위의 다른 것을 망각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 10:10-16; 11:5-10) 후에, 꿈, 환상 혹은 황홀경으로 정보를 받은 성서 필자들은 자기들이 본 내용을 의미 있는 말로 묘사하기 위하여 단어들과 표현들을 선택해야 하였읍니다.—하박국 2:2; 계시 1:1, 11.

7. 성서 필자들은 역사적 부분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입수하였읍니까?

7 성서의 상당 부분은 역사 곧 개인들, 가족들, 부족들 및 나라들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로 되어 있읍니다. 성서 필자들은 어떻게 이러한 정보를 얻었읍니까? 때로는 필자들이 기록한 그 사건들을 직접 목격하였읍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역사 기록, 족보 등을 참조하기도 하고,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나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듣기도 하였읍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필자가 광범하고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하였읍니다. 제사장이며 유능한 서기관이있던 ‘에스라’는 두권의 「역대기」를 편찬하기 위하여 약 20개의 문헌을 사용하였읍니다.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 집필에 관하여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하여 이것을 순서대로 엮’었다고 하였읍니다. (누가 1:3, 공동번역) 인간의 출발과 그 이전의 사건들에 관한 역사적 내용,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의 대화 등등(「창세기」와 「욥기」에 들어 있음)은 하나님께서 필자들에게 혹은 그 이전 사람들에게 밝히신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내용들이 필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면, 그것은 성서에 포함될 때까지 구두로 전수되거나 기록으로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8. 성서에 들어 있는 현명한 금언들과 충고들 중 많은 부분의 근원은 무엇이었읍니까?

8 성서에는 역사 외에 현명한 금언과 충고가 많이 들어 있읍니다. 필자들은 자신의 경험이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 배웠으며, 그들에게 주어졌던 성경을 공부하고 적용한 바탕 위에서 그렇게 하였읍니다. 우리는 성서 가운데서 이 점을 나타내는 내용을 많이 봅니다. 시편 필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을 돌보신 점을 관찰하고 나서 이렇게 선언하였읍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시 37:25) ‘다윗’의 아들 ‘솔로몬’ 곧 전도서의 현명한 필자는 자기의 관찰에 입각하여 이렇게 결론지었읍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전도 2:24) 인간 경험을 기초로 한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필자들은 부지런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였읍니다. 그 점은 전도서 12:9, 10(신세)로 보아 분명합니다.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모으는 자가 현명하게 된 사실 외에도 그는 또한 사람들에게 지식을 계속해서 가르쳤으며, 그는 많은 잠언들을 정리하려고 숙고하였고 철저한 조사를 하였다. 모으는 자가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고 진리의 정확한 말들을 기록하려고 노력하였다.”

하나님의 영의 역할

9. 성서를 기록하는 데 인간의 노력이 많이 들어갔으므로 성경은 제한된 의미로만 하나님의 소식입니까?

9 성서를 기록하는 데 인간의 노력이 그만큼 많이 들어 갔으므로 성서는 제한된 의미로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쓴 부분만 하나님의 소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부가 하나님에 의해 영감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분의 활동력 곧 영으로 성서 필자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읍니다. 이 점을 인정하고 시편 필자 ‘다윗’은 “여호와의 [영]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his word, 영문]이 내 혀에 있도다” 하고 선언하였읍니다.—사무엘 하 23:2, 신세 참조.

10. ‘하나님의 말씀’(word)이라는 표현이 성서 내용과 관련하여 무슨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설명하십시오.

10 ‘다윗’의 혀에 있었던 “말씀”(word)은 한개의 “단어”가 아니라 복합적인 소식이었읍니다. 성서에 “말씀”(word)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방법을 보면 그 점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예언자 ‘엘리사’의 시종 한 사람이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 ‘예후’에게 “장관이여 내게 당신에게 할 말씀[a word]이 있나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열왕 하 9:5) 그 “말씀”(word)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식이었읍니다. 그 “말씀”은 ‘예후’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 지파 왕국의 왕으로 선택하셨음을 알리고 ‘아합’의 왕가에 심판을 집행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었읍니다. (열왕 하 9:6-10)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분명한 소식을 의미하는 예로 예레미야 23:29에 이러한 말이 있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my word]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같지 아니하냐?” 하나의 “단어”(word)가 그러한 파괴적 힘을 가질 수는 없고 강력한 소식이 시행되었을 때 그러한 힘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성령을 사용하여 성서 필자들의 머리 속에 그러한 강력한 소식을 넣어주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셨읍니까?

11. 성서 예언이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11 예언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영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성서는 이렇게 알려줍니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아무런 사사로운 해석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십니다. 왜냐 하면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는 대로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후 1:20, 21, 신세) 이 말의 뜻인즉 성서 예언은 필자들 개인이 그 당시의 인간사와 시대 조류를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석하여 그러한 일들이 어떻게 진전되리라고 추리한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필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정신에 자극을 받아 그 영감받은 소식을 보통 자기 자신의 말로 발표하도록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어들은 필자의 것이지만 소식은 여호와 하나님의 것입니다.

12. 과거사를 기록하도록 인도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영은 어떤 역할을 하였읍니까?

12 그러나 성서의 내용 가운데는 그 사건이 발생한지 여러 해 후에 기록된 부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예수의 지상 봉사 활동에 관한 기록도 그러한 예입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기록을 완성하는 데는 하나님의 영의 작용이 필요하였읍니다. 그 점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보아 분명합니다.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도 모든 것을 당신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고 내가 당신들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 14:26, 공동번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성서 기록에 포함된 정보를 정확하게 기억하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13. 성서에 포함된 내용의 선택을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였다는 어떤 증거가 있읍니까?

1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또한 자기의 영을 통하여, 성서 내용이 자신의 목적에 부합되어 하나님의 승인받는 종들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교훈이 되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서에 포함될 내용의 선택을 인도하셨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로마 15:4) 그리고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경험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다음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본, 신세]이 되고 또한 [유대인들의]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린도 전 10:11.

14.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악행에 빠지도록 사건을 조종하여 그러한 일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가 되도록 기록될 수 있게 하셨읍니까? 설명하십시오.

14 이 말을 보고 모든 경우에 하나님께서 위대한 극작가처럼 후대의 종들이 경고와 격려의 교훈을 받을 수 있는 사건들을 연출하셨다고 결론지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사도가 언급한 여러 사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평을 하고 우상 숭배를 하고 음행에 빠졌을 때에 그들은 자기들 자신의 선택과 욕망에 따라 그 환경에서 행동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전 10:1-10)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유혹에 빠졌다는 사실은 후에 사도가 말한 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경고에 힘을 더해 줍니다.—고린도 전 10:12.

15. ‘유다’의 편지는 하나님의 영이 자료의 선택을 인도하였음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읍니까?

15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건들을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과정에 따라 여러가지 상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장래에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점들을 하나님께서 필자들로 하여금 기록케 하신 것입니다. 성서 기록을 위한 자료의 선택을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였다는 사실은 제자 ‘유다’의 편지에 잘 설명되어 있읍니다. ‘유다’는 본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구원에 관하여 편지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의 영향을 받아 그는 동료 신자들이 당한 입장을 극복하기 위하여는 그들에게 어떤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본래 의도하였던 내용을 다루지 않은 이유를 그는 이렇게 썼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다 3, 4) ‘유다’가 하나님의 영의 지도를 받아 그 뒤에 기록한 내용은 부패케 하는 영향력을 저항하기 위하여 동료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들이었읍니다.

16. 성서 필자들은 자료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때때로 솔선력을 사용하였읍니까? 설명하십시오.

16 하나님의 영이 성서를 위한 자료의 선택을 인도하였다는 사실은, 필자들이 기록된 내용에 관해 솔선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흔히 목표를 염두에 두고 그에 따라 글을 썼읍니다. 그들은 어떤 질문에 대답을 하였고, 오해를 일으킨 점들을 해명하기도 하였읍니다. 이러한 한가지 예는 ‘데살로니가’ 회중에 보낸 사도 ‘바울’의 두번째 편지입니다. 그 회중에 속한 일부 사람들은 그릇되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임재하시는 일이 임박하였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리고 또한 ‘부지런히 일하고, 회중 밖의 사람들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라’는 그의 이전 충고를 깊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바울’의 두번째 편지는 이 점을 설명하고 그러한 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견해를 밝혔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4:10-12; 데살로니가 후 2:1-3; 3:10-15) ‘바울’과 같은 성서 필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에 순응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기록한 내용은 하나님의 목적에 온전히 일치하였고 그러므로 믿을 만합니다.

인간적 견해들—하나님의 뒷받침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17, 18.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는 사도 ‘바울’의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17 그러나 성서 필자들이 자기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 같이 보이는 경우 어떠합니까? 예로서 사도 ‘바울’의 다음의 말을 봅시다. “이것은 내 말이요 주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처녀들에 관해서는 내가 주께로부터 받은 명령이 없으므로 내 의견을 말하려 합니다.” “내 의견대로 말한다면 그 여자[과부]가 그대로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 전 7:12, 25, 40, 새번역) ‘바울’의 이러한 말은 무슨 뜻입니까?

18 사도 ‘바울’은 그러한 점들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인용할 수 없었으므로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영의 지도 하에 글을 썼기 때문에 그의 의견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으며 하나님 자신의 견해를 나타낸 것이었읍니다. 이 점은 사도 ‘베드로’가 ‘바울’의 편지들을 나머지 성경과 동일시한 점으로 보아서도 분명합니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베드로 후 3:15, 16.

19. 어떤 면에서 성서는 하나님의 소식입니까?

19 성서 내의 모든 점은 하나님의 영의 지도하에 기록되었고,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되며, 문제들을 사실대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전체적인 면에서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 혹은 소식임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성서에 사람들의 진술이 인용되어 있거나 어떤 환경하에서의 사람들의 행동이 서술되어 있을 때에는, 언제나 성서 문맥을 보면 그 행동을 본받을 것인가 피할 것인가 혹은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일 것인가 배척할 것인가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20. 성서를 잘못 사용하면 불완전한 인간의 견해를 하나님의 견해인양 인용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십시오.

20 「욥기」를 예로 들어 봅시다. 그 책의 많은 부분은 ‘욥’의 세 동료들이 나타낸 그릇된 견해와, 때로는 ‘욥’ 자신이 나타낸 그릇된 견해를 싣고 있읍니다. 그러한 그릇된 결론들과 사실들의 그릇된 적용 등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예로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그릇되게도 하나님께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성도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니라]”고 하였읍니다. (욥 15:15)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릇된 주장을 한 데 대하여 ‘엘리바스’와 그의 친구들을 책망하셨읍니다. ‘엘리바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욥 42:7) ‘엘리바스’와 그의 친구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감을 받지는 않았으나 「욥기」의 필자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서 그들의 말을 정확하게 기록하였읍니다. 이 기록은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신 점에 관한 그릇된 논리를 밝히고 폭로하는 역할을 해 줍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 곧 소식입니다. 그렇더라도 이 점은 우리가 성서로부터 어떤 부분을 인용할 때에 조심해야 함을 나타내 줍니다. 만일 배경과 문맥을 잘못 선택한다면 사실상 불완전한 인간의 견해를 하나님의 견해인양 잘못 인용할 수도 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데 인간을 사용하신 점에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남

21. 만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사용하여 전체 성서를 기록하셨다면, 그것은 우리 불완전한 인간에 의한 것보다 더욱 가치있었을 것입니까?

21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씀”을 기록하는 데 인간을 사용하신 것은 그분의 크신 지혜의 증거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불완전한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을 공급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사용하실 수도 있었읍니다. 그렇게 하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동일한 호소력을 지녔겠읍니까? 천사들이 하나님의 감탄스러운 특성들과 그분의 웅대한 행적들을 기록할 수 있었음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자기들의 깊은 충성과 그분의 한없는 선물들에 대한 자기들의 인식을 나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했다면, 우리 불완전한 인간은 경험과 지식이 우리보다 훨씬 월등한 완전한 영물의 표현들이 수록된 기록을 우리 자신과 부합시키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겠읍니까? 그들의 영역 내에서의 생활은 우리가 아는 생활—즐거움과 두려움, 실망과 슬픔 등을 가진 생활로 묘사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용하심으로써 자기의 “말씀”이 온정, 다양성, 매력을 갖도록 하셨읍니다. 그것은 오직 인간을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22. 만일 성서에 인간적 요소가 전혀 없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을 것입니까?

22 만일 성서에 인간적 요소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또한 그 소식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창조주 앞에 승인받은 신분을 갖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자비하시다’ 하고만 기록되어 있다면, 우리가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데 충분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는 우리 인간이 터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성서는 인간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생활상의 구체적인 사례가 들어 있고 그러한 점들이 인간적인 견지에서 표현되어 있읍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약함에 굴복하여 심각한 죄를 범하게 된 인간들에 관하여 알려 주며, 때로는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였는지에 관해 그 사람 자신의 말을 알려 줍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이 어느 정도 자비를 받았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23, 24. ‘다윗’이 ‘밧세바’와 관련하여 어떤 일을 하였는지를 말하고, 이 점으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되는지 설명하십시오.

23 ‘다윗’ 왕의 예를 들어봅시다. 그는 탁월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나 환경에 말려들어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었읍니다. ‘다윗’은 그의 왕권을 충실하게 받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었읍니다. 그는 욕망이 자라게 되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들였읍니다. 그가 실제 성적 관계를 가질 의향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정욕은 마침내 간음을 범하게 할 정도로 되었읍니다. 그 결과 ‘밧세바’가 임신하였다는 것을 알고, 그는 ‘우리아’로 그의 집에 돌아와서 그의 아내와 관계를 갖도록 함으로써 그 문제를 은폐시키려 하였읍니다. 이 일이 실패되자 ‘다윗’은 자포자기에 빠지게 되었읍니다. ‘밧세바’가 자기와 간음한 사실이 폭로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 곧 그의 남편을 없애고 그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틀림없이 죽을만한 위치에 서도록 마련하였읍니다. ‘우리아’는 죽임을 당하였고 그 후에 ‘다윗’은 과부가 된 ‘밧세바’를 아내로 맞았읍니다.—사무엘 하 11:2-27.

24 예언자 ‘나단’이 ‘다윗’에게 그의 중대한 범죄를 지적하자, 그는 심히 통회하여 자기 죄에 대해 깊은 슬픔을 나타냈읍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고 그는 실토하였읍니다. (사무엘 하 12:13)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깊은 회개를 보시고 그것을 받아 주셨으며, 그를 벌하기는 하셨지만 그를 종으로서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자기의 시 가운데, “주[여호와]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을 때 그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읍니다.—시 86:15.

25.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하신 점으로부터 우리는 여호와의 자비에 관해 무엇을 알게 됩니까?

25 한편, 성서는 ‘예레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의 불충실한 거민에 관하여 알려 줍니다.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회개하라는 권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반항적으로 불법한 행동을 하였읍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비를 끊으시고 그들에게서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어 그들이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무서운 재난을 당하도록 버려두셨읍니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도움을 부르짖었어도 하나님께서는 듣기를 거절하였읍니다. 왜 그랬읍니까?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읍니다. 이에 관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시고 우리를 군축하시며 살륙하사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시[었나이다].”—애가 3:43, 44.

26. 실생활의 사례들은 여호와를 아는 데 어떤 도움이 됩니까?

26 실 생활에 기초한 그러한 구체적 사례들을 살펴볼 때에 우리는 여호와가 어떠한 하나님인가,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 것인가에 대하여 균형잡힌 지식을 얻을 수 있읍니다. 불완전한 인간들은 아무리 심각한 죄를 범한다 하더라도 참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태도가 없이 계속하여 의로운 명령을 범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 불완전한 인간에게 호감이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성품을 광범하게 알려 주고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인격체이심을 실감할 수 있게 됩니다.

27. 성서는 마음을 시험할 수 있도록 어떻게 기록되었읍니까?

27 성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를 밝혀낼 수 있게 기록되었읍니다. (히브리 4:12) 성서 가운데서 결점들과 모순들 같이 보이는 것을 찾아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읍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한가지 이유는 성서가 자세한 모든 점들을 전부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성서는 승인한다거나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사람들의 논리, 언사 및 행동을 기술하고 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어떤 기록을 읽고 하나님이 참으로 공정하고 정당하게 행하시는지 의문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서가 권고하는 방법으로 생활을 변화시키지 않는 구실로 삼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성품을 인식하는 사람들만 승인받는 종으로 갖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됩니다.—신명 30:11-20; 요한 1서 4:8-10; 5:2, 3.

28. 성서의 가치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외관상의 모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질 것입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28 그러나 성서를 심각히 고려해 보았고 그것이 생활을 위한 얼마나 훌륭한 지침인가를 실제 체험한 사람들은 그것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식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모순 같이 보이는 점들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외면상의 문제 거리 때문에 눈이 멀어지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서가 하나의 조화된 전체임을 인식하고, 그러기 때문에, 성서가 전체적인 면에서 어느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을 기술하고 있는 문맥을 무시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가령, 예를 들어, 당신에게 매우 좋은 친구가 있는데, 그가 훌륭한 아버지이며, 자녀의 복지를 참으로 잘 돌보는 사람으로 당신이 알고 있다고 합시다. 만일 그 사람이 자기 아들을 엄하게 벌주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당신은, 즉시, 그가 부당하고 불합리하게 그러한 짓을 하였다고 속단하겠읍니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그가 아들을 그렇게 다룬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서도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우리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여호와의 성품, 방법, 행적 등에 관하여 많은 정보를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어느 특정한 상황에 대하여 자세한 점들을 알려 주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사랑이 없고 자비가 없고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상심하게 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실망하는 것은 성서 전체에 들어 있는 증거 곧 그분이 사랑이 많고 자비롭고 정당한 하나님이라는 풍부한 증거를 무시하는 것입니다.—출애굽 34:6, 7; 이사야 63:7-9.

29. 성서 안에서 어떤 외관상의 모순을 보더라도 왜 놀랄 필요가 없읍니까?

29 성서에 비슷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 경우에 사소한 차이와 외관상의 모순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할 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읍니다. 예수의 지상 봉사에 관한 내용을 봅시다. 그 내용은 네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읍니다. 직업상의 배경이 알려져 있는 세 사람 중 한 명은 교육받은 의사였고, 또 한 사람은 세리였고 다른 한 사람은 어부였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록 내용을 그들에게 직접 받아 쓰게 하신 것이 아니고, 단순히 그들이 기록에 정확을 기하도록 성령으로 인도만 하셨기 때문에 자연히 차이점이 있을 것입니다. 각 필자는 자기가 실제 기록한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기록할 수도 있었읍니다. 필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요한’은 이렇게 썼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들도 제자들 앞에서 행하셨읍니다.” (요한 20:30, 새번역) 그러므로 복음서의 기록은 매우 요약된 것으로서 한 책에 들어 있는 자세한 내용이 다른 책에는 들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읍니다. 복음서의 기록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충하여 우리가 보다 완전한 줄거리를 이해하도록 도와 줍니다. 동시에 그 차이점들은 성서가 믿을 만하다는 더 큰 증거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필자들이 거짓 이야기를 집어넣자고 함께 모여 모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 주기 때문입니다.

30. 성서와 관련하여 왜 사소한 차이를 가지고 변명을 늘어놓을 이유가 없읍니까?

30 그러므로 사람들이 사소한 문제를 놓고 변명을 늘어 놓을 이유가 없읍니다. 그들이 아무리 연구를 많이하고 또 유식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직접 목격하지 않은 일에 대해 판단을 내릴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그들이 현장에서 그 사건들을 목격하였다 하더라도 그들도 역시 그것을 기록한다면 자기들이 보고 들은 점들 중 약간 다른 부면들을 강조하였을 것입니다. 사실상, 복음서의 기록을 정직하게 평가한다면, 하나의 중대한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를 확증하는 것으로서 네개의 독립된 그러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증거가 있다는 점이 분명해 집니다.—요한 20:31.

하나님의 소식은 믿을 만하게 전수되었는가?

31. 성서 원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31 네 복음서와 성서의 나머지 부분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소식은 원본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본은 오래 전에 없어졌읍니다. 닳아서 없어졌든지 혹은 풍화작용으로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 세기에 걸쳐 복사하고 또 복사하고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소식이 변질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32. 하나님의 소식의 항구성에 관해 성서 자체는 무엇이라고 말하며, 이것은 성서의 보존에 있어서 어떤 점을 필요로 합니까?

32 성서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의 항구성에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이사야 40:8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후세대에도 이 말이 적용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의곡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복사하는 동안에 인간적인 착오가 많아져서 믿을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소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믿을 만한 형태로 보존되었다는 증거가 있읍니까? 분명히 있읍니다!

33. 성서 복사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였읍니까?

33 성경을 복사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조심을 하였읍니다. 많은 「히브리어 성경」 복사자들은 복사하면서 단어 수만 아니라 글자 수도 세었읍니다. 조그마한 착오라도 생기면—글자 하나만 잘못되었어도—그 전체 부분을 잘라 내고 결함이 없는 새로운 것으로 대치시켰읍니다. 복사자들은 글을 쓰기 전에 그 단어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습관이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 단어라도 기억에 의해 쓰는 것은 중대한 죄로 간주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 성경 복사자들도, 흔히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마찬가지로 주의하였읍니다. 그렇게 한 결과 착오가 놀랄 만큼 적으며, 착오가 있는 경우라도 그 소식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읍니다.

34. 고대 사본들의 비교 연구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 책들의 신뢰성에 관하여 무엇을 나타내 줍니까?

34 약 2,000년 전의 사본을 포함하여 수 천개의 고대 성서 사본을 비교 연구해 보면 사본이 정확히 전수되었음이 나타납니다. 「히브리어 성경」 교본에 대하여, 학자 ‘더불류. 에이치. 그린’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토록 정확하게 전달된 고대의 저술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명한 학자 ‘프레데릭 케년’ 경은 “체스터 비이티 성서 파피루스”에 관한 그의 일곱권의 저서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들[파피루스]을 검토한 결과, 첫째이며 가장 중요한 결론은 그들이 현존하는 성서들의 근본적인 건전성을 확증한다는 만족스러운 것이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중대하고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귀절들의 중요한 삭제나 첨가도 없으며, 중대한 사실 혹은 교리에 영향을 줄 만한 변경도 없다. 귀절의 변경은, 단어의 순서 혹은 사용된 정확한 단어 등 사소한 문제에만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 그러나 그들의 근본적인 중요성은, 지금까지 입수하였던 것들보다 더 오래된 증거로 현존하는 성서의 완전성을 확증하는 데 있다.”

그는 「성서와 고고학」이라는 그의 저서에서도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처음 저술한 때와 현존하는 가장 오랜 사본과의 시간 차이는 사실상 무시하리만큼 적은 것이며, 성경 필자들이 기록한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되었는가 하는 성경에 관한 마지막 의문이 될 만한 것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송두리째 없어지게 되었다. 신약 책들의 확실성과 전반적인 완전성은 결국 확증되었다고 간주 할 수 있다.”

35. 성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읍니까?

35 진실로, 하나님의 영의 인도 하에 사람들의 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소식은 현재까지 믿을 만한 형태로 전해져 왔읍니다. 신뢰할 만한 보존은 목적이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소식 그 자체는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읍니다. 오늘날에도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였던 다음의 말이 지상 전역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데살로니가 전 2:13) ‘데살로니가’의 사람들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충실히 고착한 이유로 기꺼이 고통을 받으며, 이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2:14-16) 당신도 그렇게 확신하고 있읍니까? 그 “말씀” 곧 소식이 당신 속에서 역사하고 있읍니까? 당신은 일상 생활에서 그것으로부터 유익을 받고 있읍니까?

[276, 277면 삽화]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기록해 주셨다

천사들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이전 문헌에서 사실들을 발췌하는 것을 인도하였다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식이 전달되었다

깨어 있을 때에 예언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환상을 받았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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