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앞날은 밝다!
1.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도 1:14, 15; 2:17, 18)
번영, 평화, 다복한 생활! 실로 바람직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고 있읍니까? 가족을 부양하는 남자들은 흔히 재미를 못 느끼는 직장에서 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실직의 위협을 받고 있읍니다. 많은 주부들은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하루도 편안감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읍니다. 절대 다수의 젊은이들도 비슷한 생의 전망을 가지고 자라갑니다. 인생을 좀더 편하게 살아 왔다고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의 경우에도 미래는 불안이 덮여 있읍니다.
2. 인류의 장래는 어떻게 보입니까? (이사야 60:2)
2 사실, 인생이란 그저 이러한 것입니까? 어디든지 세상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이 제도는 중병을 앓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에너지’ 위기,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 식량 부족, 환경 오염, 혁명, 냉전과 열전, 핵 무기의 축적, 인종 문제, 많은 사람들의 치솟는 불만 등이 있읍니다. 지상 어디를 보나 문제거리가 없는 곳이 없으며, 인간 생명과 생존은 위협을 받고 있읍니다!
3. 왜 우리는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계시 3:10)
3 일부 사람들은, ‘그것이 내게 영향을 주지 않는 한 무슨 관계인가?’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합니다. 실로 근시안적입니다! 피할 수 없는 결론은, 얼마 안가서 이러한 문제들이 모든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4, 5. (ㄱ) 대다수의 인류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으며,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성서에 해결책이 들어 있을 가능성은 무엇입니까? (디모데 후 3:16, 17; 로마 15:4; 고린도 전 10:11)
4 인간 지도자들은, 경제, 과학 및 정치 분야에서 국제적인 범위로 갖가지 가능한 해결책을 제안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헛되고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입증되지 않았읍니까? 문제 해결을 위해 제안된 대부분의 계획들은 구체화되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렸읍니다. 세상 지도자들은 아무도 참으로 장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대다수의 인류는 인생의 목적이 없는 것 같이 보이며, 그들은 일반적으로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는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다.
5 여기 인용된 말은 성서 고린도 전서 15:32에 나오는 말입니다.a 그러나 그곳에서는 적극적인 견해를 가지라고 권장합니다. 혹시 성서에서 인류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읍니까? 물론, 성서를 배척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이렇게 불확실한 상태인 것을 볼 때에 이제 성서를 다른 각도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어떻든, 성서는 매우 역사깊은 책이며 그 일부는 3,400여년 전에 기록되었읍니다. 그 책은 모든 인종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왔읍니다. 성서는 가장 많은 수의 현재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된 책이며,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책보다도 널리 베포되었읍니다. 그렇다면, 성서는 인생의 앞날이 밝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읍니까?
인생의 제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냄
6. 그리스도교국에 대한 성서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야고보 1:27; 5:3-5)
6 일부 성서 비평가들은, 그리스도교국이 가난한 사람들을 약탈하고, 종교 전쟁, 종교 재판 및 현 20세기의 전쟁을 통하여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린 사례들을 지적하였읍니다. ‘만일 성서가 사람들로 그러한 행동을 하게 한다면, 우리는 성서를 조금도 원치 않는다’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피흘리는 죄를 지은 사람들이 비그리스도인 행위를 하기 위해 성서를 구실로 사용한 것뿐입니다. 성서는 그들의 행동을 강력히 단죄하며 그들이 거짓 그리스도인임을 밝혀 줍니다. 성서는 참으로 도덕적인 생활을 할 것을 권장합니다.
7, 8. (ㄱ) 성서는 어떠한 질문들에 대답해 주고 있읍니까? (마태 7:7) (ㄴ) 성서는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도왔읍니까? (시 119:105, 165)
7 어떤 비평가들은 성서가 비과학적이며, 구식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이 신화의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합니까? 오늘날 우리는 우리 생활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질문에 대해 확실한 해답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질문 가운데는, 사람은 어디서 나왔는가? 현 상태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 생명은 지상에서 멸절될 것인가? 인류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있읍니다.
8 성서에는 이러한 질문들과 기타 사람들이 자주 제시하는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읍니다. 성서는 신화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다루고 있읍니다. 사실상, 성서는 지상 모든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참다운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생활을 해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고 있읍니다. 당신 자신이 성서를 직접 살펴보면, 성서가 당신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고 있으며, 당신의 생애에서 진정한 행복을 맛보도록 실용적인 도움을 당신에게 주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서는 인생을 의미깊게 만들도록 당신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우주가 존재하게 된 유래
9, 10. (ㄱ) 성서에 의하면 우주의 기원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45:12, 18) (ㄴ) 우주 그 자체는 창조에 관하여 어떻게 증거하고 있읍니까? (히브리 3:4)
9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아야 합니다. 즉,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어디서 나왔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목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알려 줍니다. (창세 1:1) 그러나 현대의 사색가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참으로 전능한 하나님 곧 창조주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우주가 진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10 당신은 천문관(天文館)에 가본 일이 있읍니까? 만일 가보았다면, 반구형의 천정에 하늘의 모양을 정확하게 투영하는 정교한 기계와 또한 태양계의 모형이 정확히 운동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을 ‘인간이 개발한 사진 기술 및 공학 기술의 훌륭한 산물이로구나’ 하고 당신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간 생각해 보십시오. 우주의 모형을 만드는 데 유능한 인간이 있어야만 한다면, 어마어마한 우주 그 자체를 건설하는 데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지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11. 일부 박식한 세상적 사색가들은 할 수 없이 무엇을 자인합니까? (로마 1:20-23)
11 19세기에 와서 ‘차알스 다아윈’은 우주가 전부 진화의 산물이라는 이론을 세웠읍니다. 그러나 당신도 이 모든 것을 만든 자가 없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생명체가 우연히 생겨났다고 생각합니까? 지성적인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이 불합리하다고 느끼고 있읍니다. 예를 들어,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다아윈’의 진화설이 우주가 존재하게 된 다른 방법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1
‘다아윈’ 자신도 생명의 기원에 대해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자인하였읍니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관련된 점으로서,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또 다른 사실이 내게 깊은 인상을 준다. ··· 그것은 이 광대하고 놀라운 우주와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멀리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 맹목적인 우연 혹은 필연의 결과라고 생각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점, 아니 불가능하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러한 점을 생각할 때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제 1원인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느낀다.”2
12. 우리는 무엇을 겸손히 인정해야 하며,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 14:15-17)
12 그렇습니다. 명백한 논리는 반드시 위대한 제 1원인 곧 창조주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강력한 망원경으로도 하나님의 감탄스런 우주의 깊이를 단지 탐색하기 시작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하나님의 탁월한 지혜와 권능에 비하면 실로 하찮은 것임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우리가 행복하고 의미깊은 생애를 즐기려면 하나님을 도외시 할 수 없읍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포함하여 우주를 창조하신 데는 목적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웅대한 목적에 관해 더 알수록 인생의 앞날이 밝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상에 생물이 시작된 경로
13. 이 지구는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서 왜 특출합니까? (시 104:24)
13 이제 이 광대한 우주 가운데서 조그마한 점에 불과한 이 지구로 관심을 돌려 봅시다. 이 지구에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읍니다. 그것은 찬란한 색채로 덮여 있으며, 거기에는 경탄스러운 각양 각색의 생물이 가득 있읍니다. 그 위에는 생명이 있읍니다. 달 여행을 갔던 한 우주 비행사는 지구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였읍니다.
“우주 전체 어디를 보나 색채라고는 지구뿐이었다. 그곳에는 바다의 찬란한 푸른색, 육지의 밤색과 갈색, 구름의 흰색 등등을 우리는 볼 수 있다. ··· 그것은 하늘 전체 중에서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3
이 지구가 광대한 우주 가운데서 보석처럼 탁월하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거기에는 과연 생명이 풍부히 있읍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생명에는 틀림없이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14. 생명은 어디로부터 어떻게 나왔읍니까? (시 104:30, 31)
14 생명이 어디서 나왔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성서 필자 한 사람은 3,000년 전에 그 근원을 이렇게 지적하였읍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 36:7, 9.
일부 완고한 성서 비평가들은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할 수 없이 인정하였읍니다. 진화론자 ‘다아윈’마저도 원래 생명체는 “창조주가 몇 가지 혹은 한가지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었”을 것이라고 인정하였읍니다.4 만일 하나님이 ‘몇 가지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면, 차례차례 수백가지 창조된 “종류”에 동일하게 생명을 불어넣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하셨읍니다. (창세 1:12, 21, 24, 25) 하나님께서 첫 사람을 창조하신 일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 2:7.
성서에 따르면, 이렇게—곧 하나님의 직접 창조에 의하여 인간 생명이 6,000년 전에 이곳에 존재하게 되었읍니다. 인생의 앞날이 밝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5. 생물이 우연히 생겨날 수 있읍니까? (시 100:3)
15 성서의 직접적인 창조 기사와 대조해 보면, 일부 진화론자들의 설명은 허황하게 들립니다. 예를 들면, 한 진화론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읍니다.
“굉장히 오래 전, 머나먼 옛날, 25억년 전, 치명적인 햇빛이 쬐는 가운데, 유독한 공기에 덮이고 ‘암모니아’ 화합물이 들어 있는 바다, 유기물 분자들의 반죽 속에서, 핵산 분자 하나가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해서인지 그와 같은 또 다른 것을 존재하게 하였으며, 이렇게 해서 다른 모든 것이 뒤따라 있게 되었다!” (‘고딕’체는 부가하였음)5
확신이 가는 이야기입니까? 진화론자 ‘르콤 드 누이’는 지구와 같은 크기의 화합물 바닷 속에서 유리한 조건하에 하나의 단백질 분자가 저절로 생겨날 확률을 계산한 일이 있읍니다. 그는 말하기를, 십억년이 10243번(1 다음에 영이 243개 따르는 수) 지날 때 한번 발생할 수 있다고 하였읍니다.6 그러나 살아 있는 하나의 세포는 단백질 분자 한개가 아니라 수백개의 분자와 기타 여러 가지 복잡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읍니다! 생명체는 결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16. 왜 진화론을 “신화”라고 부를 수 있읍니까? (디모데 전 1:3, 4)
16 진화론에는 사실과 어긋나는 점들이 많이 있읍니다. 예를 들면, 모든 생물 곧 동식물 및 인간이 자기 종류만을 생산한다는 것은 불변의 유전 법칙입니다. 여러 품종의 개들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 종류 안에는 여러 가지 변종이 있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개 종류는 언제나 개를 생산합니다. 그것을 고양이나 기타 다른 종류와 교배시킬 수는 없읍니다. 진화론자들에게는 실망적인 일이지만 바위에 남아 있는 화석에서 예측되었던 종류 사이의 “중간 동물”들이 나오지 않았읍니다. 뿐만 아니라, “돌연변이”(突然變異) 곧 세포질 변화는 거의 언제나 해로와서 진화와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람의 경우라면 저능아나 결함있는 사람이 태어납니다. 일부 저명한 과학자들이 이제 진화론을 “신화”7, “현명한 추측”8, “과학의 미명 아래 나타난 가장 큰 동화”9 등의 말로 묘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17. 사람은 어떤 면에서 동물보다 훌륭하게 만들어졌읍니까? (창세 1:27, 28)
17 그러나 사람 자신은 “신화”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사람은 살아 있읍니다.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존재이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양심의 지배를 받는 인간 자체는 모든 하등 동물과 완전히 구별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동물과 같이 단지 살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음에 틀림없읍니다. 사람과 짐승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읍니다. 자기의 자식을 보살피고 교육시키는 데 20년 정도를 보내는 동물이 어디 있읍니까? 사랑, 친절, 선견지명, 발명력 등의 감탄스런 특성을 나타내고, 아름다움, 예술 및 음악 등을 인식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사람뿐입니다. 그처럼 풍요하게 부여받은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인간은 고대의 ‘다윗’ 왕처럼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여호와여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 139:4, 14.
“진화론”이 생활에 미친 영향
18, 19. 진화론은 (ㄱ) 도덕에 어떤 영향을 주었읍니까? (시 10:3, 4) (ㄴ) 통치자들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읍니까? (요한 1서 3:15)
18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 사이에 그것이 인기있고 유행적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그것은 창조주나 그분의 도덕적 법에 대해 책임감이 없이 ‘자기 멋대로’ 하고 싶어하는 부도덕하고 독립적인 사람들에게 도피구를 마련해 주었읍니다. ‘H. G. 웰즈’는 「역사의 개요」에서 진화론이 어떻게 발전하였는가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썼읍니다. “새로운 생물학은 고래의 도덕적 지주를 대치할 만한 건설적인 것을 아직 가져다 주지 못하였다. 심한 도덕의 타락이 잇따랐다.”10 그것은 인생을 가치있게 하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였읍니다.
19 역사가 ‘웰즈’는 진화론적 가르침의 또 다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읍니다. “우세한 사람들은 ··· 자기들이 강하고 교활한 자는 약하고 신뢰성이 있는 자를 누르고 일어선다는 ‘생존 경쟁’의 덕분에 우세하게 되었다고 믿었다. ··· 그러므로 인간 무리들 가운데 큰 개들이 으시대고 활개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보였다.”11 그리하여 진화론은 “그리스도교국”이 잔인한 전쟁을 하는 것을 정당화해 주었읍니다. 「진화론과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책은 1914년에 있었던 제 1차 세계 대전의 비극과 그 후 사악한 ‘나찌’ 사상의 득세를 ‘다아윈’의 진화론 때문이라고 하였읍니다.12 마찬가지로, 진화론은 공산주의의 출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카알 마르크스’는 ‘다아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즐거워 하였으며, 그것이 하나님에게 “치명타”를 가하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13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다아윈’의 저서는 매우 중요하며, 나에게 역사에 있어서의 계급 투쟁에 대한 기초가 된다.”14
지금까지도 공산주의 나라들은 “적자 생존”이라는 진화론적 가르침을 근거로 세계 지배라는 그들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읍니다. 다른 나라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에 가담하고 있으며, 그 결과 이 핵 시대의 대대적인 군비 경쟁이 일어나고 있읍니다. 온 인류의 생명이 위태롭게 되어 있읍니다.
20. 진화론을 믿으면 당신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읍니까? (골로새 2:8)
20 이것은 당신 자신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당신이 진화론에 말려든다면 크게 해를 입을 수 있읍니다. 만일 진화론이 참이라면, 인생은 목적이 없고 의미가 없게 됩니다. 인생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악순환”에 불과하며, 그의 최종 결과는 죽음일 뿐입니다. “적자 생존”을 믿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에게는 동료를 사랑하고 단정한 도덕 생활을 하고 야수들과 달리 행동할 만한 동기가 없읍니다. 진화론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전부가 소극적일 뿐입니다. 그것은 인생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에 하나도 만족스런 대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대답을 줄 수 있읍니다.
왜 인생에는 문제거리들이 가득한가?
21, 22. (ㄱ) 인간의 현재 입장은 무엇에 비할 수 있읍니까? (ㄴ) ‘아담’은 무슨 “표지”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어떤 결과를 당하였읍니까? (창세 2:15-17; 3:17-19)
21 그 입장은 한 가족이 차를 타고 아름다운 대로 위를 여행하는 것에 비할 수 있읍니다. 그 대로를 계속 달리면 영화로운 낙원에 다다르게 됩니다. 모든 것은 상쾌한 여행에 적절합니다. 그러나 넓은 곁길이 보이고 거기에는 “위험—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표지가 붙어 있읍니다. 호기심과 독립 정신에 이끌려 그들은 곁길로 들어가 대로에서 점점 멀어져 갑니다. 결국 가파른 내리막 길이 됩니다. 그들은 이제 것잡을 수 없이 달려 갑니다. 이제 대로로 돌아오기란 불가능 합니다. ‘브레이크’가 고장났읍니다. 정지할 수도 없읍니다. 그들은 점점 더 빨리 내려갑니다. 결국 그들은 낭떠러지에 곤두박질하여 죽게 됩니다.
22 성서는 인류가 바로 그러한 입장임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첫 사람에게 하나의 “도로 표지”를 보여 주셨읍니다. 그 표지는 ‘ 이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읍니다. 그 남자와 그의 아내는 그 간단한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나타내야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고의로 대로를 떠나서 죄의 길로 들어갔읍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심판하에 사망과 멸망을 당하는 길입니다. 로마서 5:12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처럼 우리는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모두가 인류의 조상이 낙원에서 즐겼던 완전성에서 멀리 떨어진 험난한 길을 여행해야 합니다. 근년에 와서는 그 길이 매우 울퉁불퉁하고 불쾌해졌읍니다! 그것은 넓은 일방 도로이며, 세상의 정치가들이나 현인들은 인류에게 뒤로 돌아가는 방법을 지금까지 알려 주지 못하였읍니다. 그 안에 있는 각자에게 있어서 그 길의 끝은 죽음입니다. 그리고 인류 세상 전체의 멸망이 뚜렷이 가능하게 되었읍니다.
23, 24. (ㄱ) 요한 복음 14:6은 무엇을 의미하며, 예수의 경우에 어떻게 그것이 사실입니까? (ㄴ) 그 대로로 되돌아가면 당신에게 어떤 유익이 있읍니까? (요한 3:16)
23 그러나, 보십시오! 한 가닥의 빛이 조그마한 한 곁길에 비치고 있읍니다. 그 길은 그 넓은 길에서 대로로 돌아가게 하는 좁은 길입니다. 처음 보기에 그 길은 극히 험난한 것 같습니다. 그 길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현재 넓은 길을 정신없이 가고 있는 인류의 대다수는 그 좁은 길을 무시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군중을 따라가기를 더 좋아합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이 편리하고 또 일시적으로 재미를 느끼게 하기 때문에 계속 넓은 길을 갑니다. 그들은 더 가면 위험을 당한다는 경고에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나 방심하지 않는 일부 사람들은 그 좁은 길로 향하고 있읍니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은 어느 정도 난관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면 여행이 유쾌하게 됩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 그 길은 풍요를 맛볼 수 있는 회복된 낙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 즐겁고 평화로운 낙원에서 훌륭한 것들을 보는 것은 실로 환희에 찬 일입니다!
24 성서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이 점도 인류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독립을 주장하고 군중과 함께 멸망에 이르는 넓은 길을 가고 있지만,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이곳 지상에 계시던 때에 이 점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6) 예수께서 지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수행하시고 인류를 위해 생명을 희생하는 정도까지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생명의 수석 대행자”로 임명하셨읍니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또한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알리기 위함이었읍니다. (사도 3:15, 신세; 요한 18:37) 오직 그분만이 인류 개개인에게 지상에 이룩될 하나님의 낙원에서 행복한 인생을 온전히 즐길 아름다운 대로로 들어서는 방법을 알려 주실 수 있읍니다.
25. 낙원이 된 땅에서의 생애는 왜 매우 바람직합니까? (계시 21:3, 4)
25 당신은 그러한 대로를 달려 영화롭게 된 땅에 도달하고 완전한 건강과 행복 가운데 영원히 살 전망을 가지기를 원치 않습니까? 실로, 그러한 종류의 인생이라면 장래가 밝은 것이 분명합니다!
26. 당신이 참으로 진리를 배우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요한 8:31, 32)
26 우리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생명의 수석 대행자를 믿음으로써만이 그 생명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읍니다. 삶이란 목적이 있을 때, 그리고 먼 장래에까지 계속될 만족스럽고 보람찬 인생에 대한 확고한 희망이 있을 때 크게 달라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희망에 도달할 수 있읍니까?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에서 친히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당신과 당신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요한 17:3, 신세) 우리는 성경을 부지런히 살핌으로써 진리를 배울 수 있으며, 그것을 매일 실천함으로써 지금부터도 참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읍니다.
당신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세계 상태
27. 우리는 현재 어떤 입장에 처해 있읍니까? (디모데 후 3:1)
27 세계 상태가 악화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대도시에서는 빈곤과 범죄가 증가하고 있읍니다. 당신이 어디 살고 있든 간에 식비는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겨우겨우 살아가는 데도 생활비가 계속 치솟고 있읍니다. 많은 지역에서는 불법이 횡행하고 있읍니다. 더 큰 폭력, 심지어 전쟁까지도 어느 순간에든 폭발할 것 같은 입장입니다. 마치 인류는 멸망의 길을 최종적으로 내리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28. 모든 재난의 배후에는 누가 있으며, 그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고린도 후 4:4)
28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세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악한 영물로서 “큰 용,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그는 국가들 간의 외교 관계를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천국을 통하여 조화롭고 인자한 인류의 통치로 ‘사단’의 권세를 대치시킬 하나님의 때가 도래하였읍니다. 그것은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로로 인도하여 행복 가운데 영원한 생명을 즐기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때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물러나기를 거절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은 이러한 상태입니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계시 12:9, 12) 마귀의 목표는 인류를 멸망으로 던져 넣는 것입니다.
29.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시 37:9-11)
29 그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오늘날 지구상 어디를 보든지 ‘온 세상이 악한 자[‘사단’] 안에 처’해 있다는 증거가 뚜렷합니다. (요한 1서 5:1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그의 사악한 의향을 달성하도록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세상 사회의 멸망이 임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구출할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서 예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알려 주십니다.
성서 예언이 생명을 구하도록 돕는 방법
30. 왜 당신은 우리 시대에 관한 성서 예언들이 성취될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까? (베드로 후 1:19-21; 다니엘 9:24-27)
30 많은 성서 예언들은 이미 놀라운 성취를 보았읍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지상에 나타나시기 수백년 전에, 이러한 예언들은 그분이 전도 활동을 하실 정확한 때—기원 29년부터 33년—와 그의 생애 및 죽음에 관한 자세한 점들을 밝혔읍니다. 그 모든 점들은 성취되었읍니다. 또한 예수께서도 몇 가지 탁월한 예언을 말씀하셨읍니다. 그 중 하나는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관한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제 1세기 ‘유대’ 사물의 제도에 주목할 만하게 성취되었읍니다.
31, 32. 기원 70년에 예언은 어떻게 생명을 구하도록 도움을 주었읍니까? (누가 21:20-24)
31 마태 복음 24:3, 15-22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 “가증한 것” 곧 ‘로마’ 제국 군대에 의해 포위당할 것을 지적하셨읍니다. 예언 가운데서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일을 보면 “산으로 도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33년 후 그 군대는 실제로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해 왔읍니다. 그들은 진을 쳐서 도시를 포위하고 침투해 ‘예루살렘’ 성전 한쪽 벽에까지 들어와서 “거룩한 곳”에 서는 등 예수의 예언의 여러 가지 점들을 성취시켰읍니다. (마태 24:15, 새번역) 그러나 그처럼 불가능하게 보이는 입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도시를 떠날 수 있었읍니까?
32 갑자기, 그리고 표면적인 이유도 없이, ‘로마’ 군대가 철수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요단’ 강 건너 산으로 도망할 수 있었읍니다. 그 후, ‘로마’ 군대는 기원 70년에 ‘티투스’ 장군의 지휘하에 재차 쳐들어 왔읍니다. ‘예루살렘’과 그의 성전은 철저히 파괴되었읍니다. 역사가 ‘요세퍼스’에 의하면, 포위, 기근 및 칼에 의해 민족주의적 ‘유대’인들 1,100,000명이 생명을 잃고 97,000명이 노예로 잡혀 갔읍니다. 그러나 참으로 생명을 사랑한 사람들은 성서 예언에 순종함으로써 생명을 구하였읍니다!
33. ‘유대’ 제도의 마지막 때와 유사하게 오늘날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누가 21:25, 26)
33 예수께서는 제 1세기의 예언된 그 사건들을 기원 1914년 이후 세대에 발생할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의 모형으로 사용하셨읍니다. 오늘날도 생명이 구원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지금 우리는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전체 세상 제도 곧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도달하였읍니다. 1914년 이후의 사건들은 사실이 그러함을 명백히 증명해 줍니다! 예수의 예언의 최종적 성취로, 그 해에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는 1차 세계 대전의 유혈 참극이 벌어짐으로써 “재난의 시작”이 있었읍니다. 예언된 대로, 이어서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었읍니다. 제 1차 세계 대전보다 훨씬 처참한 제 2차 세계 대전이 뒤따랐으며, “불법이 성”하여 세상을 현재 괴롭히고 있읍니다. (마태 24:7-13; 누가 21:10, 11) 민족들이 번민하고 있읍니다. 아무도 돌파구를 모릅니다.
34.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십니까? (다니엘 2:44)
34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이기적인 왕국들 곧 나라들을 심판하실 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인데,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며,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할 것이라고 하셨읍니다. (다니엘 2:44) 그러면 그 왕국은 예수의 왕국 통치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스러운 상태하에서 생명을 줄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을 돕기 위해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들은 구명(救命) 사업을 하고 있읍니다. 그 일은 예수의 위대한 또 다른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마태 24:14, 신세.
35. (ㄱ) 끝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올 것입니까? (ㄴ) 예언을 청종하면 당신은 어떻게 유익을 받을 것입니까? (누가 21:34-36)
35 물론, 우리는 언제 “끝이 올 것”인지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의 생명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욥기 24:1은 이러합니다. “심판 날이 전능자에게는 비밀이 아니나 그를 아는 자들은 그날을 전혀 모른다.” (신 영어 성서) 그러나 그날이 매우 가까왔음에 틀림없읍니다! 기원 1914년에 시작된 “재난”을 목격한 사람들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4:34) 이루어질 일들 가운데는 오늘날의 부패한 사회의 멸망도 포함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 (마태 24:21, 22) 만일 “큰 환난”이 감해지지 않는다면 지상에서 인류가 멸절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생명을 보존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시 145:20) 당신도 성서 예언을 청종한다면 재난을 피하여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남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36. 당신은 요한 1서 2:15-17을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읍니까? (마가 12:28-31)
36 당신은 생존자들 가운데 포함될 것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멸망으로 줄달음질치는 넓은 길에서 돌아서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읍니다. 그것은 당신이 생명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도로 표지에 순종하는 점에 달려 있읍니다. 만일 당신이 참으로 살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줄 알게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요한 1서 5:3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들 중 일부가 ‘요한’의 이 편지 앞 부분에 기술되어 있읍니다.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큰 환난” 기간에도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을 받아 회복된 낙원으로 들어가 영원히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들, 곧 부도덕, 탐욕, 부정직, 거짓말, 도둑질, 세상의 분쟁 등등으로부터 돌아서야만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지금도 가치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읍니다.
37. (ㄱ)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해야 합니까? (요한 15:17-19) (ㄴ) 당신은 하나님의 왕국을 받들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마태 6:33)
37 예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셨읍니다. (요한 17:16)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읍니까?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목표와 계획으로부터 떠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그의 신이며 통치자인 ‘사단’ 곧 “악한 자”의 지휘하에 멸망으로 돌진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상충하는 세상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태 복음 24:3과 25:31(신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표징은 예수께서 왕국 권능을 가지고 하늘에 “임재”하신 표징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1914년 이래, “세상 나라가 우리 주[하나님]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라고 한 예언도 성취됩니다. (계시 11:15) 지금이야말로 그 나라 곧 왕국을 지지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장래 생명은 하나님의 왕국에 달려 있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시대의 전쟁, 혁명, 정치 운동, 세상적 계획 등을 양심적으로 지지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한 것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제도는 멸망의 운명에 처해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부축하려고 애쓸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오히려 우리는 확실한 해결책인 하나님의 왕국을 전적으로 받들도록 합시다!
38. 우리는 오늘날의 통치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누가 20:25)
38 이 말은 우리가 무정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14:33, 새번역) 현존하는 정부들이 존속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법을 준수하고 통치자들을 존경할 것을 원하십니다. 로마서 13:1(새번역)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세금을 바치고 하나님의 법에 상충되지 않는 한 모든 법을 지킴으로써 “가이사”(정부)에게 합당한 것을 바치라는 뜻입니다.—마가 12:17.
39. 이웃 사랑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고린도 전 13:4-7)
39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더하여 우리는 이웃에게도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읍니까! 그러나 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성서는 골로새 3:18-21에서 간단히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연합된 가족을 이룩하기 위한 실로 훌륭한 기초입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도 우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성품을 배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 3:12, 14.
40. 여호와의 증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요한 13:34, 35)
40 ‘오늘날 지상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생활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의 단체가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단체가 있읍니다. 당신의 이웃에 왕국회관이 있다면 거기에 가 보면 그러한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들은 국제적인 단체이며 그 수는 200만을 넘습니다. 대부분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며, 이웃 사람들과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고, 그 지역 사회 사람들과 동일한 직업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지상에서 수행되기를 바라며, 그에 따라서 생활을 해 나아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열심히 성서를 연구하고, 일상 생활에서 성서 원칙을 적용하고, 이웃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해 주고 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입니다. 그 지방에 있는 왕국회관에 가서 그들의 모임에 참석해 보십시오. 거기에는 딱딱한 의식도, 연보 주머니를 돌리는 일도, 허례 허식도 없읍니다. 그 대신 당신은 거기서 지금도 생활에서 커다란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 낙원이 된 땅에서 완전한 가운데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을 바라는 인정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41. 증인들은 중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였읍니까? (사도 10:34, 35)
41 당신은 이런 희망을 가지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과 연합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들은 성서 원칙에 따라 생활한 결과 세계적인 연합을 즐기고 있읍니다. 전쟁, 인종주의, 국가주의 등 국가들이 여러 세기 동안 노력했으나 해결하지 못한 난제들을 그들 사이에서는 해결하였읍니다. 성서에 따라 생활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는 폭력, 범죄, 부정직, 부도덕 등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없어졌읍니다. 그들은 사회적 병폐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일은 매우 드물지만, 만일 그들 중 한 사람이 심각한 잘못을 범한다 하더라도, 그가 회계한다면 사랑으로 그를 개선시켜 줍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의 사회적 신분, 교육 정도, 국적, 피부색 등에 따라 사람을 보는 견해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사도 17:26.
인생의 앞날이 밝은 이유
42.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 어떠한 장래가 기다리고 있읍니까? (시 72:1-8)
42 생명을 사랑하고 현재 자기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 앞에 웅대한 장래가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 장래는 어떠할 것입니까? 그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생활과 같은 단조로운 생활이 아닐 것입니다. “처음 것들”—현 제도의 슬픔, 죽음, 고통—은 “다 지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된 다음엔 무엇이 따를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친히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고 선언하십니다. (계시 21:4, 5)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는 하늘에 계신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아버지’로서 인류의 전체 가족을 인자하게 다스릴 것입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할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가 그 왕국의 기초를 이룰 것입니다. (이사야 9:6, 7) 그러한 상태에서는 인생이 참으로 만족스럽고 즐거울 것입니다! 지상에서 동료를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인생에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도 그분의 “음성”을 듣고 나와 낙원이 된 땅을 즐길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요한 5:28, 29.
43. 당신은 어떻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읍니까? (스바냐 2:2, 3)
43 “현 악한 사물의 제도”는 넓은 길에서 곧 추락하여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과 함께 멸망당할 필요가 없읍니다. 하나님의 백성—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합함으로써 당신은 하나님께서 지상의 피 흘리는 죄를 지은 나라들을 멸하러 오시는 때에 생명을 구원받을 수 있읍니다.
“내 백성아 갈찌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찌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6:20, 21.
44. 당신 앞에는 무슨 웅대한 기회가 놓여 있읍니까? (신명 30:19, 20)
44 그러므로, 지금 성서 표준에 따라 참다운 인생을 출발함으로써 당신은 열정적이고 장래를 내다보는 하나님의 백성의 사회와 함께 “큰 환난”을 통과하고 지구상에서 결코 죽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사실, 지금 살아 있는 “큰 무리”가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읍니다!
45. (ㄱ) 현재와 장래에 효과를 발휘하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디모데 전 6:11, 12) (ㄴ) 인생의 앞날이 밝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음을 당신은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디모데 전 6:17-19)
45 여호와께서는 전세계에 살아 있는 증인들의 사회에서 바로 지금 효과를 나타내는 중요한 것을 일으키셨읍니다. 그것은 당신에게도 효과를 낼 수 있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낙원이 된 땅에서도 탁월하게 효과를 발휘할 것이며, 그곳에서는 결국 “호흡이 있는 자마다” 위대하신 생명의 수여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시 150:6) 진실로 인생의 앞날은 밝습니다!
참조 문헌
1. 「지성인의 다이제스트」 1971년 12월호 59면.
2. 「차알스 다아윈: 그의 생애」 제 3장 66면.
3. 일본 「요미우리 신문」 1969년 1월 17일.
4. 「종의 기원」 ‘차알스 다아윈’ 저, 마지막 문장.
5. 「생명의 원천」 ‘아이작 아시모프’ 저, 1960년 발행, 224, 225면.
6. 「인간의 운명」 ‘르콤 드 누이’ 저, 1947년 발행, 34면.
7. ‘존 N. 무어’ 교수, 미시간 주립 대학교 교지 1971년 12월 27일자, 5면.
8. 「생명의 원천」 ‘아이작 아시모프’ 저, 1960년 발행, 85면.
9. ‘캐나다’, 「글로브 앤드 메일」 지, 1970년 11월 26일자, 46면 ‘N. S. 케링탄’.
10. 「역사의 개요」 ‘H. G. 웰즈’, 제 3판 1921년 발행, 956면.
11. 동서 957면.
12. 「진화론과 그리스도교인」 ‘필립 G. 포더질’ 저, 1961년판, 17면.
13. 「다아윈과 다아윈주의 혁명」 ‘힘멜파브’ 저, 398면.
14. 「마르크스와 과학」 ‘J. D. 버어날’ 저, 1952년 발행, 17면.
[각주]
a 달리 표시되지 않는 한, 이 소책자 내의 성경 인용문은 「성경 전서 개역 한글판」에 의거함.
[6면 삽화]
재능있는 과학자들은 태양계의 모형들을 제작하였다. 광대한 우주 자체를 만드는 데는 훨씬 더 큰 지성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8면 삽화]
한 우주 비행사는 지구를 “하늘 전체 중에서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묘사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체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10면 삽화]
여러 형태의 개가 있어 그들은 상호 교배가 가능하다. 그러나 고양이와 같은 다른 “종류”와는 교배가 불가능하다
[11면 삽화]
진화론이 강력한 공격을 받다—「시아틀 타임즈」 1971년 11월 21일
결국 ‘다아윈’이 틀렸는가?—「와싱턴 데일리 뉴우스」 1971년 12월 27일
과학자들, 진화가 아니라 신이 사람을 창조하였다고 역설—「이스톤 익스프레스」 1973년 5월 3일
[12, 13면 삽화]
사람과 동물 사이의 거대한 간격을 연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별개의 “종류”로 창조되었다
[15면 삽화]
사람은 훌륭한 낙원에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낙원을 계속 즐기는 것은 순종에 달려 있었다
[20면 삽화]
‘티투스’의 ‘아아치’(‘로마’ 소재)에 새겨진 이 양각(陽刻)은 기원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을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고 있다
[21면 삽화]
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서 예언을 따름으로써 생명을 구하였다. 오늘날 당신도 그렇게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다
[22면 삽화]
‘제 1차 세계 대전은 전면 전쟁의 세기로 인도하였다. ··· 이전에는 그렇게 많은 나라들이 관련된 일이 없었다. 살륙이 그렇게 광범위하고 무차별한 경우도 없었다.’—「제 1차 세계 대전」, ‘H. W. 볼드윈’ 저.
[22면 삽화]
400,000,000명의 사람들이 심한 영양 부족 상태라고 추산된다.
[28면 삽화]
경건한 사람들의 새로운 사회는 참다운 인생을 누리며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