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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린’의 수의—그것은 예수의 수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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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0 07월호 22-26면

‘투린’의 수의—그것은 예수의 수의인가?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인가? 전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얼굴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물”이라 칭해지는 아마포 천 즉 ‘투린’의 수의(壽衣)에 나타나 있는 상(像)의 일부이다.

길이 4.3‘미터’, 폭 1.1‘미터’의 이 천은 예수의 사망 후에 그분의 시체를 싸는 데 사용된 “세마포”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가 15:46) 이 위에 핏자국이 있는 시체의 희미한 상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상처들이 예수에게 가해진 상처들과 일치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로는, 이 천을 세로로 접어 시체의 앞뒤를 덮었기 때문에 한 남자의 앞뒤가 나타나 있는 것이며, 열에 손상되어 생긴 두개의 검은 줄무늬 사이가 그 중심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공개 전시—이것은 수백만의 관객을 끌어들였다—후에 일단의 과학자들에게 이 수의를 면밀하게 검사하라는 허락이 떨어지자 세계의 이목이 이 유물에 집중됐다. 1978년 10월 중의 만 5일간을 이들 45명의 과학자들은 4‘톤’이나 되는 우주 시대의 정교한 도구들로 무장하여 이 유물을 자세히 조사하였다. 사실상, 「‘사이언스 뉴우스’」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투린’ 대성당의 제단 위에 안치된 5‘야아드’의 아마포는 아마도 어떤 다른 종교적 유물보다도 더 정밀한 과학적 시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과학자들의 조사 결과가 공표되기도 전에 신문들과 서적들은 이 수의에 대해 이렇게 대서특필했다.

●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

● “피로 기록된 5번째 복음서”

● “문자 그대로의 부활 ‘스냅’ 사진”

● “그리스도의 사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의 외모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부활에 대한 유형적인 증거가 있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마음이 흥분된다. 반면에, 그 수의가 위조품임이 드러난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떠하겠는가? 정말 크게 현혹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대대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그것은 사람들을 오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더 중요한 문제들을 무시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문제의 전모를 알고 싶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유물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마땅한가?

먼저, 왜 그렇게도 많은 과학자들이 이 수의를 가지고 흥분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일부 사람들이 흥분하는 이유

이 수의의 오늬무늬 직조법은 그리스도 당시의 ‘팔레스타인’에서 유행하던 것이며 천에서 취해낸 꽃가루는 한 때 그 곳에서 자라던 식물들에서 나온 것임이 밝혀졌다. 예수 당시의 아마포가 보존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 이전의 아마포 천들도 지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천이 특이한 것은 그 위에 나타나 있는 상 때문이다.

이 수의가 최초로 촬영된 1898년에 전혀 생각지도 않던 현상이 나타나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사진들을 현상하자 그 상이 실제로 음화(陰畫)라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 (사진술에서 음화란 현상된 ‘필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흑백이 뒤바뀐 그림을 말한다.) 이 수의에 나타나 있는 희미한 상은 음화 ‘필름’들로 볼 때 원모습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음화 ‘필름’들은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한 남자의 전신을 보여줬다.

팔목과 발의 자국들은 마치 꿰뚫린 것처럼 보였다. 또한 커다란 핏자국이 가슴 부분에서 관찰되었고 또한 그리스도 당시의 ‘로마’인의 채찍에 사용되던 둥근 납덩이를 닮은 아령 모양의 수많은 상처 자국이 관찰됐다. 머리 꼭대기에 핏자국들이 보였는데, 이는 가시 면류관이 씌워졌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가장 큰 수수께끼는 그 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의 시험들은 수의에 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중세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색소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강력한 현미경들을 이용함으로 그 상은 천 표면에 깔린 미세한 “적황색에서 ‘오렌지’ 색의 입자들”로 이루어졌음이 밝혀졌다. 무슨 원인으로 이 상이 생겼든지간에 그것은 천에 침투되지 않았다. 권위자인 ‘이안 윌슨’에 따르면, 분명히 “어떤 물리적인 힘이 이 수의의 표면 섬유와 작용할 때 생기는 것과 같은 ‘건조’ 과정이 그 원인이었으며 그러므로 그 입자들은 말하자면, 섬유 자체로부터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물리 화학자이며 수의의 권위자인 ‘레이 로저스’에 따르면, 최근의 이론은 그 상이 “복사 ‘에너지’의 분출로 인하여 생겨났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이 예수가 부활될 때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렇게 믿고 있는가?

일부 사람들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

진지한 성서 학자들 다수가 성서 기록을 근거로 이 수의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있다. 성서에서 시사하는 예수의 매장 당시의 상황은 이 수의에 나타난 것과 반대된다. 이 수의가 신빙성이 있으려면, 상이 형성될 때 다음의 두 가지 상황이 존재했어야만 한다. (1) 시체를 씻지 않았어야 했을 것이다. 이는 핏자국이 뚜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2) 아마포 천은 시체가 눌리지 않게 느슨하게 싸매졌어야만 했을 것이다. “[수의 위의]상은 단순히 사람의 육체와 아마포와의 접촉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고 수의의 지지자인 ‘에드워드 우엔첼’은 단언한다. 그는 이렇게 부언한다. “그러한 접촉은 상당한 변형을 초래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의 위의 상은 거의 혹은 전혀 변형되지 않았다.”

예수의 매장에 대한 ‘마태’ (27:59, 60), ‘마가’ (15:46) 및 ‘누가’ (23:53)의 기록은 매우 간략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시체를 “세마포”로 “쌌”다고 말하고 있다.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시체를 먼저 씻을 수가 없었는가? ‘유대’인들이 시체를 그런 식으로 다룬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이유는? 당시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퍼스’는 그들의 일부 적들과는 달리 “‘유대’인들은 언제나 사람의 장례에 아주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말했던 것이다.

목격 증인이었던 사도 ‘요한’은 매장하기 전에 예수의 시체에 “많은 주의”가 기울여졌음을 확증하는 몇 가지 부가적인 세부점들을 보충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보고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한 19:38-40.

‘유대’인의 장례 “법”은 어떠했었는가? 사실상 동 시대의 유일한 증거가 희랍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거기를 보면 먼저 시체를 씻은 다음 향유를 시체에 부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 9:37; 마태 26:12) ‘요셉’과 ‘니고데모’가 시체를 몰약과 침향과 함께 세마포[붕대, 신세]로 쌌다는 사실은 그들이 최소한 ‘유대’인의 전통적인 장례법대로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성서 외의 고대 ‘유대’ 기록도 시체를 씻고 향을 바르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는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시체를 보존 혹은 방부처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탈무드’」에서 말하는 것처럼 “향은 나쁜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장례 준비는 심지어 안식일에도 금지되지 않았다. (기원 2세기) 「‘미쉬나’」가 말한 바와 같다. “[안식일에] 장례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하고, 시체를 씻고 기름을 부어도 된다.”—「‘샤바트’」 23:5.

두 사람이 장례 준비를 위한 조처를 취했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 후에 빈 무덤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가] 보니 세마포[붕대, 신세]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붕대, 신세]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곳에 개켜 있더라.”(요한 20:6, 7)

“세마포”(희랍어: ‘신돈’)에 관한 언급이 없고 “붕대”(신세, 희랍어: ‘오소니아’) 및 “예수의 머리를 쌌던 수건”(희랍어: ‘수다리온’)이 언급되어 있다. “세마포”를 가는 조각으로 찢어 “붕대”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붕대로 시체를 쌌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붕대는 수의를 시체에 밀착시켜 “밀착 인화”를 만들게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투린’의 수의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투영된 상이 생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붕대가 수의 밑에 있었다 해도 역시 상을 변형시켰을 것이다.

별개의 천이 “예수의 머리”를 쌌던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로 볼 때 예수의 머리를 다른 천으로 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수의에는 시체를 쌌던 동일한 천에 머리의 상이 나타나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머리 수건이 실제의 수의였다고 주장하려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 사용된 희랍어 단어는 “작은 수건”(흠정역) 혹은 “손수건”(「‘가톨릭 콘프라터니티’」역)등 여러 가지로 번역되어 있으며, 누가 복음 19:20에서는 돈을 넣어두는 천을 뜻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길이 4.3‘미터’의 수의와 동일시 될 수 있겠는가! 이 머리 수건이 시체의 입을 고정시키기 위한 턱띠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요한’은 빈 무덤에 수의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가 “붕대”(신세)와 ‘머리 수건’을 구분해서 언급한 점으로 볼 때, 만일 그곳에 수의가 있었다면 “세마포” 혹은 수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성서 기록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시체를 씻은 다음 시체를 몰약과 침향과 함께 쌌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인들이 다음 일요일 아침에 하려고 했던, 향유a를 붓는 일만 빼고는 모든 관습을 다 따랐다. (누가 23:55, 56; 마가 16:1) 이러한 장례 준비는 현재 ‘투린’의 수의에 나타나 있는 상을 불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수의의 지지자인 ‘로드니 호아르’는 성서 기록에 대해 이렇게 시인한다.

“성 ‘요한’의 이 부분은 여러 해 동안 수의의 신빙성을 공박하는 주된 증거, 그것도 매우 강력한 증거가 되어 왔다.”—수의의 증거, 120면.

초기 그리스도인 필자들의 침묵—이상한 일

예수의 수의에 그분의 상이 나타나 있었다면 그것이 눈길을 끌었을 것이며 토론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러나 복음서들에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는 신약 성서는 수의에 관해 일체 침묵을 지키고 있다.

3, 4세기의 자칭 그리스도인들(그들 중 대다수는 허다한 유적들과 관련된 소위 기적들에 관해 많이 기록했다)도 예수의 상이 들어 있는 수의가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 수의가 그 동안 숨겨져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예수의 수의라고 상상된 것이 “발견”된 후에도, 7세기 필자들에 따르면, 그 위에 상이 있었다는 말은 없다. 수의의 옹호자인 ‘P. A. 비처’는 7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수의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다수 열거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거기에 입맞추”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상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제수이트’ 학자인 ‘허버트 더스톤’에 의하면 15, 16세기의 목격자들은 “수의에 나타난 상을 이것이 갓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세부적으로 색깔까지 생생하게 묘사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병사 ‘로버트 드 클라리’가 “고추 펼쳐져 누구나 우리 구주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 우리 주를 싼 ‘신돈’[수의]”을 보았다고 보고한 때는 1205년이었다. 이 오랜 기간 동안의 침묵에 대해 수의의 후원자인, ‘이안 윌슨’은 대단히 날카로운 질문을 몇 가지 던지고 있다.

“‘투린’의 수의가 진짜라면, 이와같이 흥미진진한 천이 어떻게 13세기 이상 전혀 기록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14세기 ‘프랑스’에서 불쑥 나타날 수가 있을 것인가?

“‘유대’인 및 ‘로마’인의 그리스도인 박해 때문에,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우상 파괴 논쟁 (725-842) 기간 동안에 형상이 담긴 물건은 모두 위험했기 때문에 그 동안 죽 숨겨져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가? 이것은 전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콘스탄틴’ 대제의 개종으로부터 우상 파괴의 개시까지는 400년의 기간이 있었으며 이 기간 동안에 온전한 진짜 십자가, 가시 면류관, 못들, 자주옷, 갈대, 묘석 등등의 이전에 ‘숨겨 있던’ 많은 유물들이 등장했다.

‘투린’의 수의와 같이 중요한 것이라면 누가 봐도 명백한 유물이 나타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이 유물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여기에 상이 있었다는 말이 나타나는 데 1,200년 가까이나 걸릴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든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 및 역사적인 문제들

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관해 많은 이론이 명멸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상 전체가 동일한 원인 아마도 모종의 “그슬리는” 과정으로 인한 것임을 최근의 조사 결과로 알 수 있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결론은 몇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이것은 수의의 상이 단지 명암만 다를 뿐 한 색깔이어야 함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6세기 목격자들은 그것이 두 가지 다른 색깔로 이루어져 있음을 암시했다. 당시의 예술적 복사품들이 그것을 여러 색깔로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목격자인 ‘시플레’는 이렇게 말했다.

“‘투린’의 상은 어두운 심홍색 얼룩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 상처 자국들이 시체의 상 위에 그려져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상의 색깔은 아주 옅은 노란색이다.”

오늘날의 수의가 14세기에 전시되었다가 당시의 ‘로마 가톨릭’ 주교 ‘앙리 드 트로와’(‘프랑스’)에 의해 위조품으로 딱지 붙여진 것과 비슷하지 않나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는 이것을 “교묘하게 그린” 것이라고 말했다. ‘조셉 한론’은 「‘뉴우 사이언티스트’」지에 기고하면서 하나의 흥미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14세기의 하나, 지난 세기에 또 하나 이렇게 위조품이 둘이 있을 수 있는가? 이 수의는 15세기와 16세기에는 널리 전시되었으나 그 후에는 그렇지 않았다. 첫 번째 위조품이 너무 명백해졌기 때문이었을 수 있는가? ·⁠·⁠· 수의의 소유자들이 이번에는 ‘바아벳 테스트’를 포함한 현대 과학 기술 및 의학 지식을 이용하여, 그리고 중동의 고대 아마포를 이용하여 더 빈틈없이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는가? 순전히 이 목적만을 위해 조상(彫像)을 하나 만들어 여기에 열을 가해서 천에 상을 남기게 하고는 파괴해 버렸을 가능성이 있는가? ·⁠·⁠· 하지만 정교하며 위선적인 고고학적 위조품들이 많이 있었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얕게 새긴 조각물(입체적 특징이 있는 그림)에 문지르면 비슷한 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성수의(聖壽衣) 조합 회장인 ‘아담 오테르바인’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 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영원히 신비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 이것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지를 과학이 증명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미지수이다.”

그것이 당신의 믿음에 영향을 주는가?

분명 이 수의에 관한 논쟁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하시리라고 생각하는가? 1세기 사람들은 어떻게 확신을 얻게 되었는가? 한 때 시체를 덮고 있던 천에 의존하지 않고, 여호와께서는 500명 이상의 목격 증인들로 하여금 부활되신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도록 마련하셨다. (고린도 전 15:3-8) 이러한 증거에 비하면, 이 수의는 하찮은 것으로 퇴색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떠들썩한 선전으로 말미암아 이 수의가 진짜라 할지라도, 부활에 대한 이러한 참된 증거를 흐리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믿음을 천 조각에 두도록 오도할 수 있는가? 수의 과학자인 ‘존 잭슨’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하나의 색다른 천에다 전적으로 자기의 믿음을 건다면 그것은 실제로 일종의 우상 숭배에 해당할 것이다.”—「‘가톨릭 다이제스트’」1979년 4월호.

이 수의의 흥미를 자아내는 가능성으로 인하여 마음이 끌리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수의에 대한 흥미가 참된 믿음을 갖다줄 수 있는가? 그것을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을 것인가? (고린도 후 5:7) 그것이 위조품으로 판명된다면 어떠할 것인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의심이 생기게 할 것인가? 당신이 이 수의를 가지고 흥분하고 있다면, 꼭 집어서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의 믿음에는 이와 같은 버팀대가 필요한가? 그것은 사실상 부러지기 쉬운 버팀목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의미심장한 질문들을 숙고해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극적인 것에 몰려드는 시대에 살고는 있지만, 이것이 중요한 문제들로부터 관심을 돌려 버리게 하는 일이 참으로 많다. 예를 들어, ‘로마 가톨릭’ 사제 ‘프랑코 바르베로’는 이렇게 논평하였다. “이 일에 소모되고 집중된 노력이 말씀을 전파하는 데 집중되었더라면 ‘투린’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인가!”(‘고딕’체로는 본지에서)

그렇다, 유물들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 참된 믿음을 세워주는 것이다. 이것이 “실망하게 하지 않[는]” 확실한 희망을 세워주는 것이다. (로마 5:5, 새번역) 예수를 부활시키신 분께서 세계를 경탄케 하는 천이 아니라, 영광스럽게 되신 아들을 사용하시어 참된 믿음이 없는 부패한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실 것이라는 것을 이 희망은 보증해 준다. 이와 동시에 그분께서는 참된 믿음을 가진 의로운 사람들을 새로운 질서로 인도하실 것이다.—베드로 후 3:13.

[각주]

a 이렇게 기름을 붓기 위하여 수의를 벗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시체 위에다 향유를 붓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마가 14:3, 8을 보라; 여기를 보면 아직 살아 있을 때 예수는 장례를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되어 있으나 여인은 단지 “향유[를] ·⁠·⁠·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24면 삽입]

성서의 필자와 초기 “그리스도인” 필자 중 아무도 한 남자의 상이 있는 수의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25면 삽입]

수의의 한 지지자는 성서의 기록이 수의의 신빙성을 공박하는 “매우 강력한 증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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