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거듭나”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
    파수대—1982 | 2월 1일
    • “거듭나”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

      “중생(重生)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것은 ‘뉴우요오크’ 「포스트」지 1980년 5월 19일자에 실린 ‘로스앤젤레스’ 발신 기사의 표제였다. 그 기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미국인 성인 전체의 반 이상이 지속적으로, ‘거듭난’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앞으로 나올 ‘갤럽’ 여론 조사는 말한다. 그 자료는 ·⁠·⁠· 8천 4백만의 미국인 성인들이 지금도 여전히 관련이 있다고 여기는 개인적인 서약을 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그보다 얼마 전에 수행한 한 조사는 미국의 십대 ‘프로테스탄트’교인들 중 거의 반 수가 “‘거듭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주간지 「퍼레이드」지 1980년 7월 6일자는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들인 ‘카터’, ‘레이건’ 및 ‘앤더슨’, 이 세 사람 모두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였다고 말하였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사업계에서의 자신의 성공을 거듭난 덕분이라고 말한다. 크게 성공한 ‘뉴우요오크’의 한 회사 중역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을 주께 털어 놓으면 주께서 도와 주신다. 한번은 ‘본위트 텔러’를 사야 했을 때인데, 250만 ‘달러’가 부족하였으며 나는 그 돈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몰랐다. 그것은 정말 기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티파니’를 매입하는 데 100만 ‘달러’가 부족하였을 때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거듭난’ 야구 선수들이 증가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샌프란시스코’ 발신 기사는 점점 더 많은 야구 선수들이 거듭났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자기들의 성공이 거듭난 덕분이라고 말한 몇몇 야구 선수들의 말을 인용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인터뷰’를 하는 기회가 별로 없으니까,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영예를 돌리고 싶다. 그분은 내 인생에서 첫째가 되는 분이다.” 또 한 사람은 “하나님을 동반자가 되게 하면 야구 시합이나 인생 시합을 하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고 말하였다.

      그밖에도, “전기 교회”의 재정적 성공에 관한 한 보고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종교 방송은 큰 사업이 되어 미국 전역에 퍼지고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프로그램’ 제작에 드는 비용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다: ‘제리 팔웰’의 성공. 표적: ‘마음과 지갑’.”—「더 월 스트리트 저널」.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모든 종교가들이 이러한 추세를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까닭에 ‘뉴우요오크’ 「타임즈」지는 ‘장로교인들은 복음 전도 역할에 있어 분열되어 있으며 ‘거듭난’ 집단들의 영향력이 그 종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추세를 단순한 감정주의라고 비난한 사람들도 있다. 한 신학교 교수는 ‘거듭난’ 태도 때문에 “가르치기가 정말 힘든 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였다. 한 신학교에서는 학생의 반 가량이 거듭났다고 공언하였다.

      일반적인 견해로는 “거듭나”는 것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섬기기로 “서약”하는 것과 같은 말로 여긴다. 저명한 복음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그렇게 제기하였다. 이것은 얼마의 질문들을 야기시킨다. 예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좁고 험하며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7:13, 14) 그분은 또한 자기의 추종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요한 15:19; 17:16) 그분의 이러한 말씀이 어떻게 미국 성인 인구의 반 이상이 “거듭나”는 경험을 하였다는 주장과 조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다. 만일 한 나라의 성인 인구의 반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불법이 그토록 만연하고, 범죄가 그토록 만연하고, 탈세가 그토록 만연하고, 정치적 부패가 그토록 만연하고, 성적 부도덕이 그토록 만연하고, 물질주의가 그토록 만연하고, “자아” 제일주의적 태도가 그토록 만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서는 ‘거듭난’ 사람들에게 투기 사업에서의 성공을 약속해 주는가?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야구 선수들의 동반자들이 되어서 그들이 시합에서 이기도록 도와 주시는가?

      예수께서는 한 ‘유대’ 관원인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한 3:5, 7) 예수의 이러한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일부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은 어떠한 단계를 통하여 거듭나게 되며, 거듭난 사람들의 의무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만족스러우리만큼 대답되기에 앞서, 여호와 하나님의 원칙들과 땅과 인간에 대한 그분의 목적에 대한 몇가지 기본적인 사실들을 확립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 일부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파수대—1982 | 2월 1일
    • 일부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한 3:5, 7.

      1, 2. (ㄱ) 일부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만족하리만큼 설명되기에 앞서 우리는 무엇을 이해하고 인식해야 합니까? (ㄴ)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공의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주며, 그분이 공의로우시다고 해서 어떻게 하셔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까?

      일부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만족하리만큼 설명되기에 앞서, 여호와 하나님의 기본 속성들과 땅과 인간에 대한 그분의 목적에 대해 이해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조사해 보면 하나님의 뛰어난 특성들 중 한가지가 공의라는 것을 의문의 여지없이 알게 됩니다. 또한 의(義)는 바로 그분의 보좌의 기초입니다. (신명 32:4; 시 89:14) 그러나 그분이 공의롭고 의로우시다고 해서 그분이 지성있는 피조물들 모두에게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일부 창조물들을 영자(靈者)들, 즉 인간보다 월등한 천사들로 지으셨읍니다. 또한 그분은 지상의 모든 충실한 피조물들에게 똑같이 보답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침례자 ‘요한’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태 11:11) “거듭남”이라는 주제를 고려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땅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3.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 그들 앞에는 어떠한 즐거운 전망이 놓여 있었읍니까?

      3 일부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상황으로 인하여 일부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는 일을 하시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우리의 첫 조상으로 소급해 올라가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러한 명령을 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세 1:28)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들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온갖 아름다운 동물들과 꽃들 및 감미로운 과일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정원에 두셨으므로, 그들의 입장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었읍니다. 그들이 땅을 정복하고 자기들과 같은 인간들로 땅을 채움에 따라, 전 지구는 결국 ‘아담’과 ‘하와’처럼 완전한 인간들이 거주하는 낙원이 될 것이었읍니다. 그들 앞에 놓인 전망은 그 얼마나 즐거운 것이었읍니까!

      4, 5. (ㄱ) 왜 우리의 첫 조상은 자기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하지 못하였읍니까? (ㄴ)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땅과 인간에 대한 자신의 목적이 누구에 의해 성취되도록 마련하셨읍니까?

      4 그러나 우리의 첫 조상은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모든 마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으며 그분의 법을 범하였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아들들로 된 자신의 가족에서 추방하셨으며 그들에게 죽음을 선고하셨읍니다. 그 결과 그들의 후손들은 모두 죽음에 굴복하는 죄인들로 태어났읍니다. (창세 3:19; 로마 5:12) 우리의 첫 조상이나 그들의 후손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인류 가족에게 주신 원래의 명령을 이행할 수 없었읍니다. 이것은 땅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목적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임을 보증하고 있읍니다.—이사야 46:10, 11; 55:10, 11.

      5 그러면, 땅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어떻게 성취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예언하신 것처럼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하나의 씨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그 주된 씨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알려 줍니다.—창세 3:15; 22:17, 18; 갈라디아 3:16, 29.

      하나님의 본래 목적이 실현될 방법

      6.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어떤 방법으로 열어 주셨읍니까?

      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본래 목적이 실현될 수 있게 하셨읍니까? 무엇보다도 ‘아담’의 반역으로 인해 인간 가족에게 지워져 있는 단죄의 멍에를 제거하심으로써입니다. 예수께서는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이 일을 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는 형주에서 희생의 제물로 죽으심으로써 단죄의 멍에를 제거하는 이 일을 성취하셨읍니다. 사실상 그분이 땅에 오신 주된 이유들 중 하나는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시는 것이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아담’의 후손들이 여호와의 승인받은 가족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읍니다.—마태 28:20.

      7. 예수께서는 무엇을 기초로 죽은 자로부터 영자로 일으킴을 받으셨읍니까?

      7 그러나, 죽어 있는 대속자는 인류에게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째날에 일으키셔서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게 하셨읍니다. (베드로 전 3:18) 여호와께서 이 일을 하신 기초가 되는 것은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침례받으실 때 일어난 일이었읍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를 영으로 출생한 아들로 탄생시키셨읍니다. 침례자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의 형태로 예수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을 뿐 아니라, 다음과 같이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읍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 3:16, 17; 히브리 10:5-10.

      8. ‘요단’ 강에서 “거듭나”신 것에 더하여 예수께서는 무슨 임무를 위해 기름부음받으시고 임명을 받으셨읍니까?

      8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영적 아들이 되셨을 뿐 아니라, ‘메시야’ 즉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왕국의 왕이 되도록 기름부음받은 분이 되셨읍니다. 또한 동시에 그분은 죄의 속박을 제거하기 위해 죽어 가는 인류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읍니다. (히브리 7:26) 더우기, 이사야 61:1, 2의 이러한 말씀이 이제 그분에게 적용되었읍니다. “주 여호와의 신(영, 신세)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유순한, 신세)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께서는 영으로 출생, 즉 “거듭나”셨읍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아들로서 예수께서는 ‘사단’ 마귀가 성실을 깨뜨리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죽기까지 계속 충실하셨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로부터 부활시키셨읍니다.

      9. 죽기까지 충실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무엇을 온전히 갖추게 하셨으며,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하셨읍니까?

      9 그 후 곧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읍니다. (빌립보 2:9-11)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셨다는 사실은 수백명의 증인들에 의해 입증되었읍니다. 하늘에 계신 자기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분은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즉, 능력]를 내게 주셨[느니라.]” (마태 28:18) 이제 그분은 자기의 희생의 죽음의 가치를 통하여, 인류를 회복시킬 수 있는 권리를 온전히 갖추게 되셨으며, 또한 부활되셔서 하늘의 하나님의 우편으로 올리우심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셨읍니다. (누가 22:69) 이렇게 하여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땅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목적이 실현되게 하실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셨읍니다. 그러므로 ‘메시야’에 관한 모든 예언은 바로 그분에게 적용됩니다.—참조 시편 72편; 이사야 9:6, 7; 11:1-10.

      일부 사람들이 “거듭나”는 이유

      10, 11. (ㄱ) 예수에게 그분의 왕국에 참여하는 공동 후사들이 있을 것임을 어떤 성경적 증거가 알려 줍니까? (ㄴ)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이 특권에 참여할 것이며, 우리는 주어진 이 수자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일을 혼자서 성취하실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천사들이 자신과 함께 자신의 정부에서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의 성취에 그분과 함께 참여할 자들은 그분처럼 지상에서 인간이었던 자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왕국 정부에 참여하기 전에 먼저 그분처럼 지상에 있는 동안 “거듭나”야 합니다. 그들 위에 작용하는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하늘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가진 영적 아들들로 출생합니다. 그런 자격으로 그들은 하나님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즉 그들은 “아들이 되게 하는 영을 받았읍니다. 그래서[그들은] 그 영에 의하여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읍니다.” (로마 8:15, 새번역) 예수께서는 자기 사도들에게 이러한 희망을 거듭 제시하셨읍니다. (누가 22:28-30; 요한 14:2, 3) 마찬가지로, 사도들도 이 희망에 대해 언급하였읍니다.—로마 8:17; 고린도 전 15:52, 53; 요한 1서 3:2.

      11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이러한 천적 신분을 갖게 될 것입니까? 이 제목에 관한 모든 성귀들을 종합해 보면, 그처럼 “거듭나”는 자들은 비교적 소수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럴 것으로 기대해야 합니다. 그것은 매우 특별한 상, 가장 큰 특권인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누가 12:32) 이들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 것입니까? 사도 ‘요한’은 이마에 인맞은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인들, 또한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는 144,000명을 본 일에 대해 말합니다. 또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에 대해서 알려주는 문맥으로 볼 때 이 수를 문자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함이 명백합니다.—계시 7:3, 4, 9; 14:1, 3; 20:4, 6.

      그분의 이름을 위할 백성

      12, 13. 이들 장래의 왕국 공동 후사들에 대한 여호와의 현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12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들 장래의 왕 및 제사장들이 아직 육체를 가지고 인간으로 있는 동안 할 일을 계획해 두셨읍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떠한 일입니까? 예수께서 ‘유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도록 기름부음받으신 것처럼, 이들 역시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이사야 61:1, 2, 신세; 누가 4:16-21, 신세; 사도 8:4, 12) 따라서 예수께서는 자기의 초기 제자들에게 고별시에 이러한 교훈을 주셨읍니다.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 침례를 주[시오.]” (마태 28:19, 20, 신세) 그리고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자기의 충실한 11명의 사도들에게 그들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사도 1:8.

      13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된 목적 중 한 가지는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 15:14)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이므로 이들은 여호와의 증인들로 알려져 있읍니다. (이사야 43:10-12) 유순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여 제자를 삼고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들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뿐이 아닙니다. 마치 고대 ‘이스라엘’에서 여호와의 율법이 그들 가운데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에게도 적용되었던 것처럼, 영적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어진 명령들은 그들의 동료인 “다른 양”의 “큰 무리”에게도 적용됩니다.—요한 10:16; 계시 7:9.

      14.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에게 부과된 또 다른 의무는 무엇입니까?

      14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에게 부과된 또 다른 의무는 하나님의 영의 열매, 즉 “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자제”를 맺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예수께서는 자기의 참된 추종자들이 그들 사이에 나타내는 사랑으로 식별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3:34, 35)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의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 사도의 한 걸음 더 나아간 이러한 말이 알려 줍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에베소 4:22-24; 고린도 전 9:27)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죽기까지 충실성을 입증함으로써만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계시 2:10.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바뀌지 않았다

      15. (ㄱ)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어떠한 잘못을 범해 왔읍니까? (ㄴ) 이것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서 어떠한 희망이 크게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입니까?

      15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땅과 인간에 대한 여호와의 본래 목적을 무시하는 데서 잘못을 범하고 있읍니다. 그분의 말씀은 그것이 과거에는 어떠하였고 지금은 어떠한지를 명백히 알려 주며, 그분은 변치 않는다고 보장하십니다. (창세 1:28; 이사야 45:18; 말라기 3:6) 그러나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이 크게 중요시하는 것은 인류가 죄에 빠진 다음에 발표된 여호와의 한층 더 밝혀진 목적, 즉 예수의 희생을 기초로 제한된 수의 인간들을 선택하여 하늘 왕국에서 자기 아들과 함께 공동 통치자들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창세 3:15; 디모데 후 4:7, 8, 18) 참으로 이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선 “거듭나”야 합니다. (요한 3:3)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초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마련은 하늘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서 그 점을 명백히 알 수 있읍니다.

      하나의 구원—두가지 희망

      16, 17. 그리스도의 희생의 유익이 하늘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어떤 성귀들이 알려 줍니까?

      16 예수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 6:9, 10)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은 틀림 없이 지상에 사는 의인들이 있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들에 대해서 이처럼 예언되어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실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처음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늘에 관한 말일 수 없읍니다. 왜냐하면 하늘에는 슬픔, 울부짖음, 고통 혹은 죽음이 있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계시 21:3, 4, 새번역.

      17 하나님의 인자하신 마련으로부터 유익을 받을 사람들이 두 집단임을 로마서 8:19-21에 실려 있는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이 알려 줍니다. “피조물[한가지 집단]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또 한가지 집단]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결국은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믿음으로 유익을 받는 사람들 모두가, 즉 “땅에서 구속함을 얻”어 하늘에 가게 되는 144,000명과 지상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즐길 수십억의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의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계시 7:4, 9; 14:3; 마태 25:31-34.

      18, 19. (ㄱ) 땅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가 매우 가까왔음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ㄴ)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과 ‘아브라함의 씨’를 구성합니까? (ㄷ) 고려되어야 할 어떠한 질문이 남아 있읍니까?

      18 전술한 바로 볼 때 땅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목적은 아직 앞으로 실현될 일임이 명백합니다. 그리고 마태 복음 24장, 마가 복음 13장, 누가 복음 21장, 디모데 후서 3:1-5 및 계시록 6:1-8에 나와 있는 그러한 성서 예언들의 성취는 그 때가 매우 가까왔음을 알려 줍니다! ‘사단’의 반역과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본래 목적을 실현시키는 데 사용하실 특권받은 집단을 위하여 천적인 상을 마련하셨읍니다. “거듭나”는 사람들은 오직 이들뿐입니다. 주이시면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들은 그분이 자기 추종자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왕국을 구성합니다. 이들은 “땅의 모든 민족들”을 축복할 ‘아브라함의 씨’를 구성합니다.—창세 22:18, 신세; 갈라디아 3:29.

      19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그의 왕국의 공동 후사들이 “거듭나”야 하는 이유와 그들의 수가 얼마나 되고 그들의 현재 임무가 무엇인지 등을 고려하였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남아 있읍니다. 즉 “거듭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13면 삽화]

      예수께서는 침례 받으실 때 하나님의 왕국의 왕으로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셨다

      [16면 삽화]

      예수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자기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거듭남”—인간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
    파수대—1982 | 2월 1일
    • “거듭남”—인간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읍니다.”—요한 1서 3:9, 새번역.

      1, 2. 우리는 (ㄱ) 구원받는 자들이 누리는 결과들에 대하여, (ㄴ) 특정한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시는 여호와의 목적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되었읍니까?

      앞 기사에서 우리는 수백만의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거듭 났’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였읍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으로부터—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구원은 단 하나이지만, 이들 구원받는 집단들이 누리는 결과는, 천적인 것과 지적인 것 등, 두가지라는 사실도 살펴 보았읍니다.

      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단’ 강에서 침례받으신 데 뒤이어 거듭나셨다는 사실도 살펴 보았읍니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비둘기의 형태로 예수에게 내려 오게 하셨고, 동시에 예수가 자신의 영으로 출생한 아들이라고 인정하셨읍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로 거듭나게 하신 여호와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즉 죽었다가 부활되시어 하나님의 왕국의 영광스럽고 능한 왕이 되게 하시기 위한 것임도 살펴 보았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와 함께 통치할 공동 후사들을 두시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며, 이들 역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읍니다.—마태 3:13-17; 요한 1:12; 3:3; 히브리 10:5-10; 계시 20:6.

      3. 예수의 왕국 공동 후사들이 “거듭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은 예수와 어떻게 다릅니까?

      3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이들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언제 “거듭나”게 됩니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일하시고 그들을 영적 아들들로 출생하시기 전에 그들은 어떠한 단계들을 밟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예수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완전한 인간으로 출생하셨읍니다. 30년 후에 예수의 아버지는 예수를 영적 아들로 출생하여 그로 “거듭나”게 하셨읍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은 전부 선천적인 죄인들로서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과 관계하시고 그들을 영적 아들들로 출생하실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시 51:5; 골로새 1:21.

      사람의 역할: 여섯 가지 기초적 단계

      4, 5. (ㄱ) 하나님께서 장래의 제자가 될 사람들을 영적 아들로 삼을 것인가를 고려하시기에 앞서 이들은 몇가지 단계를 밟아야 하며, 그 외의 누구에게도 이 단계가 요구됩니까? (ㄴ) 그 첫째 단계는 무엇입니까?

      4 장래에 제자가 될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영적 아들로 삼을 것인가를 고려하시기에 앞서 어떠한 단계를 밟아야 합니까? 그들이 밟아야 할 단계에는 여섯 가지가 있읍니다. 그러나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의 궁극적인 상이 천적인 것이든 지적인 것이든, 하나님께서 이 동일한 것들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5 우선 그러한 사람들은 창조주이시고 생명의 수여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그리고 그들의 구원자이시고 구속(救贖)자이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시 36:9; 100:3; 마태 20:28; 로마 10:13-15)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밤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가운데 이 단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당신과 당신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요한 17:3, 신세.

      6. 이들이 밟아야 할 둘째 단계는 무엇입니까?

      6 그러나, 지식 자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음과 같은 말씀처럼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매우 명백하게 알려 주듯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 현실로 여깁니다. 그것은 단순히 믿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제자 ‘야고보’가 깨우쳐 주듯이, 악귀들까지도 믿고 떨며, 더 나아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3:16; 히브리 11:1, 6; 야고보 2:19, 26.

      7.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서 제일 먼저 행할 일은 무엇입니까?

      7 믿음의 증거로서 요구되는 제일 먼저 행할 일은 회개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그릇된 행로를 회개하고 죄짓는 일을 기꺼이 그쳐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전파 활동을 시작하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태 4:17) 자기의 그릇된 행로를 회개하려면 그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는 자기 행로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슬퍼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사실상, 지상 낙원에서의 생명을 얻으려는 사람들도 누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악인은 다 [하나님께서] 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145:20.

      8.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에 뒤이어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합니까?

      8 그러나, 죄가 되는 일을 단지 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전환의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돌아 서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는 ‘베드로’가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준 이러한 교훈을 청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렇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사도 3:19; 26:20)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즐길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이 단계가 요구된다는 사실은 잠언 2:20, 21의 말씀에서 뚜렷이 볼 수 있읍니다.

      9. (ㄱ) 더 나아가 어떠한 두 가지 단계가 이들,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요구됩니까? (ㄴ) 예수의 침례는 무엇의 상징이었읍니까?

      9 그 다음 예수께서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려고 ‘요단’ 강에서 자신을 제공하신 것처럼, 어떠한 희망을 가졌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요구되는 다음 단계는 하나님께 자신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내포하며, 그 후에는 그분의 아들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합니다.a (누가 9:23) 더 나아가서, 여섯째 단계로서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침례를 받음으로써 이 헌신을 표상하고 공개적으로 그것을 나타내야 합니다.—마태 28:19, 신세; 비교 사도 2:41, 신세.

      매우 중요한 여호와 하나님의 역할

      10. “거듭나”는 데는 인간의 역할 이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떠한 실례에서 볼 수 있읍니까?

      10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 믿음을 실천하는 것, 회개하는 것, 전환하는 것, 헌신하는 것 및 침례받는 것—이러한 단계들을 밟으면 자동적으로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나”게 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에 태어날 때 자신의 노력으로 태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영적으로도 자신의 노력으로 “거듭날” 수 없읍니다. 육적인 출생에도 인간 부모의 활동적인 역할이 필요하듯이 이러한 영적 출생, 즉 “거듭나”는 일에도 천적인 부모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천적 조직 곧 ‘여자’의 활동적인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사야 54:1, 5) 위와 같은 단계들을 밟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자신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거듭나”게 될 수도 있는 대열에 있게 하는 것뿐입니다.

      11. 그것이 자기의 뜻일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역할을 다 한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일하십니까?

      11 인류의 유전받은 불완전성 때문에 이제 하나님께서는 천적 왕국으로 부르고자 하시는 개개인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러한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로마 5:1, 9) 이처럼 어떤 사람이 의롭다고 공식적으로 선언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지 그 사람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님에 유의하십시오. 이로 인하여 그의 신분은 “피조물”, 즉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의 나타나”기까지 기다려야 비로소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지적]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될 수 있는 일반 인류의 신분과는 다르게 됩니다. (로마 8:19-22) 하나님에 의해 이처럼 의롭다고 선언된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인간 생명을 완전케 하는 권리를 갖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으로 그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실 수 있읍니다.—로마 8:33.

      12. 예수와 초기 제자들의 경우에 “거듭나”는 일은 어떠한 현상을 수반하였으며, 왜 그것이 중단되었읍니까?

      12 하나님께서는 이제 친히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사람들을 자신의 영적 자녀들로 출생시키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그분의 성령, 즉 활동력을 통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은 그 활동력이 그들을 위해 활동하게 하셔서, 그 결과 그들이 “거듭나”게 하십니다. 예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순절날 모여 있던 그분의 제자들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그들을 영적 아들들로 출생시키셨음을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나타내셨읍니다. 그러나 일단 참 그리스도교의 기초가 확립되자, 그러한 눈에 보이는 표시는 더는 필요치 않게 되었으며 “폐하”여지게 되었읍니다.—마태 3:16; 사도 2:3; 10:44-48; 고린도 전 13:8-10.

      13. “물”과 “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한 3:5)

      13 예수께서는 ‘유대’인 관원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실 때 바로 이러한 영적 중생의 마련에 대해 언급하신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한 3:1, 5-7) 여기에 언급된 물은 의문의 여지없이 침례받는 문자적인 물을 말합니다. 그러면 영은 무엇을 말합니까? 개개인 위에 작용하는 여호와의 성령을 말합니다.

      14. “부르심”과 “택하심”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며,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목적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사명을 받습니까?

      14 성령은 “거듭나”는 자들은 그보다 먼저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에 대한 이러한 부르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후사들이 되라는 하나님 자신의 초대입니다. 그 초대에 응하는 사람들이 “택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 17:14, 신세 참조) 그들은 “택하신” 회중의 일부가 되며, 그 회중의 사명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 2:9) 이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경우처럼, 전파 활동을 하도록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말을 읽을 수 있읍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이사야 61:1, 2; 누가 4:16-21; 고린도 후 1:21.

      15. 영은 사람이 ‘거듭났’음을 어떻게 증거하며, 그 확신은 무엇에 의해 강화됩니까?

      15 이들 “택하신” 자들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언하였읍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 (로마 8:16) 하나님의 성령은 어떻게 이 일을 합니까? 이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천적 희망을 심어 줌으로 그렇게 합니다.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 전 1:3, 4) 이들이 천적 아버지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함에 따라, 그분은 이들이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확신을 강화시켜 주십니다.

      본인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16. 언제 이후로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은 지적 희망을 강조하였으며, 이것은 어떤 결론에 이르게 합니까?

      16 현대에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헌신한 종들을 영으로 출생한 보이는 조직, 즉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을 통하여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마태 24:45-47, 신세) 이 조직의 인도하에 1935년경까지 천적인 희망이 제시되고 중요시되고 강조되었었읍니다. 그 무렵, ‘빛이 뿌려져’ 계시록 7:9의 “큰 무리”의 신분이 명백히 밝혀졌으며, 이에 따라, 지적 희망이 강조되기 시작하였읍니다. (시 97:11) 그러므로, 그 무렵까지 144,000의 온전한 수가 거의 찼을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이 이치적입니다. 물론, 불충실함이 증명된 사람들은 교체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할 만하게도, 이런 사람들은 비교적 소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에 의하여 교체될 것입니까? 역시, 십중 팔구 아직 입증되지 않은 새로 침례받은 사람들에게보다는 성실한 가운데 인내해 왔고 다년간 자기의 헌신에 고착해 온 사람들에게 이 천적 희망이 주어질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이 이치적일 것입니다. (누가 22:28-30, 비교) 그러나, 최근 보고들을 보면 일부 새로 헌신한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자신들이 ‘거듭난’ 것으로 여기는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17. 일부 사람들은 어떠한 느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천적 희망을 불어 넣어 주셨다고 잘못 생각하게 됩니까?

      17 비교적 최근에 헌신하고 침례를 받았는데도 자신이 ‘거듭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음과 같은 질문을 심각하게 숙고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희망을 심어 주셨다고 느낄 만한 어떠한 이유가 있는가? 나의 감정적 느낌은 내가 이전에 큰 ‘바벨론’에 있을 때 가지고 있던, 하늘이 모든 선한 사람들의 귀착점이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내가 심한 내적 갈등을 겪어 처음에는 그 생각을 물리치려고 투쟁하였지만, 점차 그것이 이기고 말았기 때문인가? 그러나 그것이 이긴 것은 내가 아마 무의식적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인가? 그러한 투쟁들 자체가 당신이 ‘거듭난’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18. 깊은 영적 사물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그 사람이 ‘거듭났’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아니면 당신이 144,000명의 기름부음받은 자들 중의 하나로 선택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영적인 사물에 대한 예리한 인식때문에, 깊은 영적 진리를 좋아하는 것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거듭났’다고 주장하지 않는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온전한 의미로서의 ‘영적인 사람들’임에 유의하십시오. (고린도 전 2:14, 15, 새번역)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되어 있는 믿음의 남녀들의 영적 힘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들 중에 ‘거듭난’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그들 모두는 바로 이곳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하의 생명으로] 더 좋은 부활”을 받을 것을 기대하였읍니다.—히브리 11:35.

      19. (ㄱ) 대단한 열심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천적 희망을 부여하셨다는 증거가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어떠한 경우가 천적 희망을 가졌다는 일부 사람들의 공언이 겸허의 부족으로 인한 것일 수 있음을 알려 줍니까?

      19 아니면 당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신이 일부 동료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큰 열심을 나타내기 때문입니까? 그러나 그것 자체가 결정적 요인이 될 수는 없읍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영적인 의무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일에 관해 교훈할 필요가 있음을 재삼재사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11:20-22; 갈라디아 4:9-11) 아니면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당신의 공언은 겸허의 부족 때문입니까? 최근에 일부 사람들은 기름부음받은 자에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회중 내의 연합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성서 연구 집단을 따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와는 반대로, 장성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다른 양”으로 구성된 지방 회중이라 할지라도, 그 회중과 여전히 밀접하게 연합합니다. (요한 10:16) 그러나,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과 각 그리스도인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됩니다.—로마 14:10.

      20. 전술한 바로 볼 때 우리는 “거듭나”는 일에 대해 어떠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까?

      20 전술한 모든 내용으로 볼 때 우리는 어떠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롭고 의로우시며 현명하고 인자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기의 지성있는 피조물들을 각각 자기 위치에서, 어떤 사람들은 하늘에서 그분의 목적에 기여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곳 지상에서 그렇게 하도록 임명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천적인 상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의해 얻어지거나 이기적으로 탐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독특한 것이며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소수의 자기 피조물들에게, 그들 자신의 어떤 특별한 공적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지혜롭고 공의롭고 인자한 목적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부여하시는 참으로 놀라운 과분하신 친절입니다. “거듭나”는 일은 이들에게만 국한됩니다. (로마 3:23, 24; 11:33-36) 또한 지상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도 올바른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추구할 수 있는, 말할 수 없이 큰 특권인 목표입니다. (계시 21:1, 3, 4) 그 모든 것이 과분하신 친절입니다. 아무도 여호와 하나님께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느냐?”고 말할 만큼 주제 넘어서는 안됩니다.—다니엘 4:35.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