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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들이 정부에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깨어라!—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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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7 5/8 22-23면

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정부에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사람들이 납세에 관한 질문을 하였을 때 그분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적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태 22:2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정부에 대해 이행해야 할 어떤 의무가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것”도 언급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정부에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분별력을 사용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권세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를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로마 13:7.

권세자들은 국민의 안전, 보호, 복지 등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세금이나 공세를 바치는 것은 빚을 갚는 것과 같다. 당국자들이 거두어들인 세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통치자들이 세금으로 받은 돈을 좋지 않은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고 해서 그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빚진 것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현 사물의 제도하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요구된 것을 지불해야 한다. 개인의 빚을 갚는 문제에 있어서도 돈을 받을 사람이 돈을 좋지 않은 데 사용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당국자들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리스도인들은 세금과 공세를 바쳐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권세자들에게 합당한 두려움을 나타내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 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로마 13:3, 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는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정부의 권세를 무시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통치자들이나 기타 하급 관리들에게 존경을 나타내는 것 역시 합당하고 올바르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부패한 통치자나 관리라면 그를 어떻게 존경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존경하는 것은 그 통치자나 관리가 도덕적으로 어떠하냐 혹은 어떠한 인간이냐 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지위 때문인 것이다. 물론 그 지위에 합당한 존경을 나타내어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 관리들을 대한 태도를 보면 그 통치자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존경을 나타내는 것과 관계가 없음을 잘 알 수 있다. 고대 역사가인 ‘타키투스’에 의하면 ‘벨릭스’라는 ‘로마’ 관리는 “벌을 받지 않으면 어떠한 악행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각종 야비한 행위와 음탕한 일을 일삼으며, 왕과 같은 권세를 행하면서도 노예적 근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벨릭스’의 지위 때문에 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변호를 시작하였다.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사도 24:10) 마찬가지로 근친 상간을 한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도 사도 ‘바울’은 존경심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니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사도 26:2, 3) 더우기 ‘바울’은 우상 숭배자인 총독 ‘베스도’를 “각하”라고 불렀다.—사도 26:25.

그러나 때때로 당국자들의 요구대로 하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마가 12:17)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히브리’ 예언자 ‘다니엘’은 ‘메대’ 왕 ‘다리오’ 통치 때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였었다. ‘다리오’는 “삼십일 동안에”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사형을 내린다는 법령에 서명하였다. (다니엘 6:7) ‘다니엘’이 그 법을 지키게 되면 삼십일 동안 기도를 중지해야 하였을 것이다. ‘다니엘’은 어떻게 하였는가? 그는 하나님께 드리는 합당한 숭배를 막는 그 법을 불문에 붙였으며 그 후에 기적으로 구출되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도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결코 선포하지 말라는 ‘산헤드린’ 즉 ‘유대’인 최고 법정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대답하였다.—사도 5:29.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혁명에 가담하거나 순결한 숭배의 요구 조건을 수행하는 것을 막지 않는—제한을 하는 경우라도—법에 공공연히 반항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도서 8:6, 7의 말은 이 점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지침을 제공한다. 그 귀절의 내용은 이렇다.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분별있는 사람은 “무슨 일”에나 적절한 시기와 적절한 판단 혹은 다루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은 도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성급한 행동으로 문제를 더하지 않더라도 이미 인생은 “화”로 가득차 있다. 더우기 아무도 장래가 어떨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미래가 불안정하고 엄청난 변화가 순식간에 발생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면 좋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

적절한 시기에 좋은 판단력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함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성서 「잠언」의 다음과 같은 건전한 충고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들의] 멸망을 누가 알랴.” (잠언 24:21, 22) 그렇다.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처럼 안전한 미래를 보증할 수 없다면 그러한 일을 위해서 자신에게 재난을 초래할 이유가 무엇인가?

현대적인 하나님의 종들도 성경과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본과 일치하게 자신에게 부과된 모든 세금을 내고 통치자들과 관리들에게 그 지위에 합당한 두려움과 존경을 나타내야 한다. 이러한 점에는 통치자들이나 관리들에게 존경하는 칭호를 사용하고 그들의 의무 이행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만약 통치자들의 요구가 참 숭배를 침해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할 것이다.—사도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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