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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을 부를 때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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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을 부를 때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 깨어라!—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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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7 10/8 22-23면

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사람을 부를 때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젊은 사람 ‘엘리후’는 주로 고통받고 있던 ‘욥’에게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아첨하지[칭호를 사용하지, 신세] 아니하니 이는 아첨할 줄[칭호를 사용할 줄, 신세]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자가 속히 나를 취하시리로다.” (욥 32:21, 22) 이 점을 보고, 우리는 사람을 언급할 때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그릇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아니면 어떤 상황하에서는 칭호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일인가?

‘엘리후’가 칭호를 사람의 낯을 보는 것 즉 편벽된 일과 관련시켰음에 유의하라. 그러므로 ‘욥’에게 한 그의 논평 가운데서 그는 아무런 아첨의 말도 하지 않았다. 또한 ‘욥’을 괴롭힌 사람이 그의 한 말을 통박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엘리후’는 후에 ‘이스라엘’에게 수여된 율법에 들어 있는 원칙을 지켰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 (출애굽 23:3) 또한 ‘엘리후’는 비록 젊었지만, ‘욥’의 친구들의 나이나 지위를 고려하여 그들의 편을 들지도 않았다. 그는 문제를 사실 그대로 드러내었으며, ‘욥’의 친구들에게 칭호를 부여하여 아첨하지도 않았으며, 그리하여 이 점은 그의 하는 말에 영향을 미쳤다.

‘엘리후’의 본은 아첨하는 칭호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릇됨을 잘 예시해 준다. 그러한 편벽된 대우는 불공평한 행동을 하게 하며,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초래한다.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자가 속히 나를 취하시리로다.” 즉 그분의 노를 사게 된다고 한 그의 말에 분명히 보이는 바와 같이, ‘엘리후’는 그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욥 32:22.

그리스도인 회중은 “형제들의 연합체”이므로, 어떤 형제를 다른 형제보다 높이는 어떠한 칭호도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다. (베드로 전 2:17, 신세) 한편, 회중에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단 하나의 머리 즉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태 23:8-10.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이 예수의 말씀을 무시해 왔다. 그러나 모두가 다 교만하게 그러한 칭호들을 자신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잘 알려진 성서 주석가 ‘앨버어트 바안스’는 개인적으로 “신학 박사”라는 칭호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하여 그것을 거절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러한 구별하는 칭호를 구하지 말라고 금하셨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분 자신이 그들의 주이며 선생이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등하였다. 그들은 권위에 있어도 동일하였다. 그들은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남보다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또는 유일하신 그들의 선생이시며 주이신 구주에게 절대적으로 속한 권리를 침해하는 듯한 칭호를 갈구하거나 받아서는 안 되었다 ···[‘랍비’]라는 칭호는 복음의 전도자들에게 적용되는 ‘신학 박사’와 같은 것이며, 내가 이해하는 한 그러한 칭호를 받아 들이는 것은 구주께서 하신 명령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한 칭호를 받는 자에게는 자랑과 우월감을 일으키고, 그러한 칭호를 받지 못한 자에게는 선망과 열등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러한 전체적인 정신과 경향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순수성’과 배치된다.”

만일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신학 박사”, “신부” “목사” 등등의 칭호로 불리워지기를 구한다면, 물론 그들은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될 일이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부를 때 그러한 칭호로 불러야 할 의무가 없다. 예수의 말씀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그렇게 부르는 것을 거절할 것이다. 그들은 여하튼 비 성경적인 칭호를 사용하는 일을 지지한다는 인상을 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칭호가 그릇되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특정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직책을 단순히 알리는 칭호들이 있다. 정부 관리들 또는 어떤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를 테면 의학, 법률,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칭호가 그러하다. 그러한 칭호의 사용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침이 되는 기본 법칙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태 22:21.

그러한 칭호들이 지존하신 분께만 마땅히 속해 있는 영예를 통치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아닌 이상 통치자들을 그들의 칭호로 부르는 데에는 분명히 이의가 없을 것이다. 멸성 인간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자이거나 그들을 통해서 모든 축복이 흘러나오는 그런 사람들도 아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그러한 영예를 돌리는 칭호들은 하나님의 종들은 사용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는 존경을 표시하는 칭호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로마’ 총독 ‘베스도’를 “각하”라고 불렀다. (사도 26:25) 마찬가지로, 오늘날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고위 판사직 또는 정부 부서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각하” “폐하” 등과 같은 칭호를 사용하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그들이 이러한 칭호들을 사용하는 것은 성경의 다음과 같은 충고와 일치한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로마 13:7)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기] ···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베드로 전 2:13-17.

총독, 판사, 왕, 대통령 등과 같은 지위는 물론 인간 제도들이다. 그 지위는 인간이 만든 지위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정부의 권세가 존재하도록 허락해 오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에 합당한 존경을 돌리며, 그들에게 그들의 직분에 적합한 공경을 바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용해 오신 마련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통치권에 순복하는 증거로서 관리들이 합당하게 자신들을 위하여 주장할 수 있는 관례적인 칭호들을 사용한다.—로마 13:1, 2.

그리스도인들이 존경을 나타내는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악행을 묵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아니다. (고린도 전 5:12, 13) 어떤 사람들이 부패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어떤 특별한 칭호 또는 칭호들로 불리우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변경시키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자기의 권위를 오용할 경우에도,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사람에 대하여 불경스럽게 행동해야 할 권리가 없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로마 12:19.

그리하여 성경에서는 어떤 사람의 권위 또는 합당한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들을 사용하는 것이 전적으로 적절함을 명백히 알려 준다. 그러나 마태 복음 23:6-12에 있는 예수의 말씀은 그분의 추종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 가운데 아첨하는 칭호들을 사용하는 일을 금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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