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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담배를 피우지 않는가?깨어라!—1978 | 4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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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가 그러한 일을 그만 두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관련이 있다. 어떠한 면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은 예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자신의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바쳐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분명히 흡연으로 자신들의 건강을 위태롭게 하고, 아마도 망치게 하여, 하나님께 고의적으로 열등한 것을 바치게 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해롭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사도 ‘바울’의 충고와 반대되게 행동하는 것이다. (로마 12:1) 그 뿐 아니라 이러한 제사는 “거룩한” 것이 되어야 하므로, 그리스도의 참다운 추종자들은 다음과 같은 ‘바울’의 권고를 청종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린도 후 7:1) 이 말에는 흡연과 같은 불결한 습관을 허용할 여지를 두지 않는다.
또한, 자기 자신의 의지력에 관한 문제를 고려해 보자. 이러한 의지력이 담배에서 발견되는 ‘니코틴’에 중독됨으로 인하여 약화된다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인 자제를 배양하고 나타내도록 권면한다. (갈라디아 5:22, 23; 베드로 후 1:5, 6) ‘니코틴’에 중독된 사람이 경건한 자제를 실제로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한 가지 점을 더 고려해 보자. ‘니코틴’ 중독은 정신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며, 노예가 되게 한다. 따라서, ‘니코틴’은 본래 “마약 취급자”라는 의미인 희랍어 단어 ‘파르마키아’의 어원이 된 중독성 마약들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마약 사용과 영매술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 희랍어 단어는 영매술을 행하는 것과 관련되었다. 사실, 성서 필자들은 이 단어를 사용하였으며, 영매술을 명백히 단죄하는 문맥 중에 이 단어가 “술수” 및 “영매술”이라고 번역되었다. (갈라디아 5:20, 21; 계시 9:20, 21, 신세) 그러므로, 담배 중독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가납될 만한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을 자격이 없다.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이유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담배를 멀리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누구든간에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일에서 회중의 대표자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합당치 않다. 왜 그러한가? 사실상,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에게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정결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이사야 52:11; 출애굽 30:17-21; 레위 22:2-8.
몰래 담배를 피우는 일 역시 하나님의 승인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온당치 못한 일이다. 왜냐 하면, 그러한 짓은 패역한 짓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담배를 피우는 일로서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회중과 연합하여 있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숨김으로써도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적절하게도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리라].”—잠언 3:32.
수십만의 사람들은 진지한 기도를 통하여 그리고 여호와께 의지함으로 깊이 뿌리박은 습관과 행실을 벗어 버렸다. (고린도 전 6:9-11)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흡연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으로, 그들은 여호와께 대한 충실한 봉사와 그분의 새 질서에서의 생명을 얻는 데 장애가 되는 불결한 습관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자제력과 힘을 얻게 되었다.—누가 11:13; 빌립보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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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없어도 공허하지 않다깨어라!—1978 | 4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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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없어도 공허하지 않다
◆ ‘텔레비젼’이 흥미와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반면에 너무 많이 보면 창조성을 해칠 수 있다. 단순히 보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행동에 대치할 것은 없다. 그러므로 「U. S. 뉴우스 앤드 월드 리포오트」지의 편집자에게 ‘코네티컷’의 한 소년은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저는 16세로서 292일 동안 ‘텔레비젼’을 보지 않았읍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제가 공허감을 느끼기 보다는 내 생활이 많은 창조적인 것으로 채워지기 시작하였읍니다. 아마 지금은 우리가 ‘텔레비젼’ 시청 습관을 진지하게 재검토해 볼 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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