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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한 사람들
  • 깨어라!—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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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8 1/8 20-23면

인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한 사람들

오늘날 평생 동안 인종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인류를 계속 괴롭혀 온 그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하였다.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중요한 요소는 합당한 교육 즉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이 요소가 빠져 있을 때 종종 편견을 가지게 된다. 편견은 일종의 예단 즉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이 증거를 실제로 조사하기 전에 판결을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차별 대우하는 경향이 있다.

인종 문제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그 증거를 조사해 보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정확한 지식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다른 인종이나 국가에 속한 사람들과 관련된 부당한 내용을 들어 온 경우가 많다. 그 결과는 참으로 유감스럽다.

본인이 직접 이야기하는 다음의 경험담들은 이 점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한 흑인은 어떠한 인종 편견과 차별 대우가 있었는지 설명하면서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에 한 백인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 보자. 그의 이야기는 종종 어떻게 편견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가를 지적하면서 올바른 근원에서 나온 정확한 지식을 배움으로써 건전한 변화를 하게 되고 유익을 얻게 된 점을 설명하고 있다.

남부의 백인이 해결책을 발견하다

나는 백인으로 태어나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남부에서 자랐다. 그 당시 인종 분리라는 개념이 남부의 법조문에 기록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과 우리 이웃인 백인들의 마음판에도 새겨져 있었다. 어려서부터 흑인종이 열등하다는 말을 들어 왔기 때문에 그것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하였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자라면서 우리는 그 증거처럼 보이는 사실들을 보았다. 한 가지는 흑인은 검은색이다. 어른들은 아무리 씻어도 이것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저주받은 인종’이라는 증거라고 말하였다.

할 일을 지시할 때는 항상 백인 감독자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려 주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너무 멍청하기 때문에 지성을 요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흑인들은 원숭이와 인간의 중간, 사실상 인간에 가까운 동물임이 분명하다’는 말을 들었다.

학교에 갔을 때 진화론은 이러한 사상을 강조해 주었다. 종종 흑인들은 단지 쉬운 일이나 농장에서의 힘든 노동을 하거나 하인이 되기에 적합한 “짐승”과 같은 자들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흑인들이 총명하지 못하고 단지 건장하여 뜨거운 햇볕 아래서 고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종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종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종종 흑인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거나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그의 위치를 벗어나려고 하면 강력한 말로 혹은 폭력으로 그를 ‘자신의 위치’에 있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심지어 교회들도 흑인들이 우리와 함께 숭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태도를 격려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를 가졌는데 종종 목화밭에 있는 단순한 초라한 집일 경우가 많았다. 그와 관련해서도 사람들은 그들의 예배가 의미있는 설교와 주일학교 라기 보다는 소리치고 노래 부르는 시간이라고 하였다.

잡담을 할 때 그 화제는 종종 ‘그들의 생활 방식 즉 동물보다 조금 나은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부도덕한 경우나 사생아들의 경우가 언급되었다. 또한 어떤 남자나 여자가 새로운 배우자와 동거하기 위해서 이혼을 하지 않는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그들의 정신 상태가 그 모양이라고 하였다. 불과 몇세대 전 노예 제도가 시행되던 때에 흑인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여 여러 주인들에게 팔았다거나 노예 시장에 흑인을 공급하기 위하여 노예 여자들을 기르는 데 건장한 노예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들어 보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 내 나이 또래인 어린 흑인이 나무를 자르기 위해 가로켜는 톱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몸이 더워지자 그에게서 실제로 냄새가 났다. 나는 아, 이것이야 말로 사람들이 흑인들은 이상한 체취를 풍긴다는 말을 증명해 주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날 나는 목욕을 하였지만 그의 초라한 집에는 아주 빈약한 목욕 시설 밖에 없다는 점과 어려서 위생에 대한 가정 교육을 받지 못하여 자주 목욕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내가 자라면서 내 주위에 있는 백인들의 일반적인 태도가 나에게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내가 십대 중반에 ‘여호와의 증인’들과 연구하기 시작하였을 때 내 생각을 인종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과 일치시키기 위해서 종종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편견을 “버리기”가 어려웠다. 나는 생각을 조정하면서 착잡한 감정을 느꼈던 점을 기억하고 있다.

옛 생각을 옹호하려는 경향도 물론 있었지만 오래된 신화가 폭로될 때마다 나는 진정으로 즐거워하였다. 나는 이미 성서가 다른 면으로도 참되고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서가 이러한 인종 문제에 있어서도 참됨을 알게 되니 믿음이 강화되었다. 모든 인종은 한 사람 ‘아담’의 후손이다; 따라서 그들 모두는 하나님 보시기에 동등하다. 아무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흑인들과 전계세에 있는 다른 인종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가 더 알게 됨에 따라 능력, 지능 등의 차이도 전부는 아닐지 모르지만 주로 편견으로 인해 기회를 박탈당한 결과임이 분명해졌다.

30년 이상 흑백인들과 함께 일하고 즐기고 연구하고 숭배해 오면서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진정한 가식이 없는 사랑만이 인종 편견의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남부의 흑인이 해결책을 발견하다

나는 1940년대 말에 남부에서 자랐다. 나의 가정은 대부분의 흑인 가정들처럼 매우 빈곤하였다. 아버지는 들판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나는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열등하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백인들이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명백하였다.

나는 흑인들이 미국에 노예로 오게 된 이후 압제를 받아왔디는 것을 부모로부터도 들었고 인종을 분리하는 우리의 학교에서도 그러한 말을 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자유롭고 동등해야 되는데도 우리를 이등 시민으로서, 백인들보다 열등한 사람들로서 계속 유지되도록 모든 체제가 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어려서 백인에게 말할 때 감히 눈을 똑바로 쳐다 보지 못했다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보복이 두려워서 고개를 조금 숙이고서 “예 선생님” 혹은 “아닙니다, 선생님” 하고 대답해야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도시에 갔을 때 어떤 백인이 아버지의 다리에 총을 쏘더니 “야, 검둥이 춤을 추어 봐” 하고 외치는 일도 있었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학대와 차별 대우를 받을 각오를 하였다. 우리는 ‘버스’의 뒤에 타야 하였고 종종 음식을 먹으려고 식당의 뒷문 있는 곳이나 창가로 가야 하였다. 그리고 공공 장소에 있는 화장실에도 “백인” 그리고 “유색인”의 표시가 있었는데 물론 “유색인” 것은 항상 좋지 않은 것이었다. 1960년대 중반의 어느날 나는 어떤 경마장에 갔더니 “당신네들을 위해서 정해진 날이 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많은 말들이 있었으나 우리는 백인들과 같이 승마를 할 수 없었다.

백인들에 의해 흑인들이 직면해야 하는 경제적 악순환 때문에 특히 나는 좌절감을 느꼈다. 과거에는 노예 제도와 강제적인 인종 분리 때문에 흑인들이 교육이나 직업을 얻을 기회가 제한되었으며 경제적인 상태나 가정 생활을 개선할 수 없었다. 심지어 최근에도 교육의 부족이나 차별 대우 때문에 흑인 아버지는 물질적으로나 교육적인 면으로 자기 가족을 적절히 부양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많은 흑인들은 자신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훌륭한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선생들이 그 점을 디음과 같이 강조하던 것을 기억한다. ‘공부하라, 훌륭한 교육을 받으라, 여러분이 고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벌판에서 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못마땅한 것은 고된 일이 아니었다.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일을 해도 형편없는 품삯을 받기 때문에 남는 것이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많은 흑인들의 용기를 꺾게한 것은 그 제도였다. 직장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좌절감을 가지게 된 일부 사람들은 좌절감을 달래기 위하여 ‘알코홀’, 마약에 의지하거나 범죄를 하였다. 이것은 단지 흑인들은 무능하고 게으르다는 백인들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 주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불공평하고 잔인한 경제 제도가 지속되는 데 대해 나는 깊은 분개심을 느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좋은 교육을 받으면 실제로 내가 이러한 불공평에서 벗어날 것인가? 좋은 교육이 나에 대한 백인들의 기본적인 태도를 변화시킬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 때문에 나는 참으로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 연구를 함으로써 나는 만연해 있는 인종적인 불공평의 진정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어려서 배운 기도가 구제를 위한 유일한 영속적인 희망 즉 하나님의 왕국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마태 6:9, 10.

나는 성서 연구를 통해 모든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항상 합당하게 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성서는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전도 8:9)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과 교제해 보니 인종과 관련하여 성서가 설명하는 것과 같은 견해를 그들이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는 것을 실제로 믿고 있다. (사도 17:26) 증인들은 예수께서 자기의 참된 추종자들이 나타낼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러한 사랑을 실제로 나타내고 있다.—요한 13:34, 35.

증인들은 그들의 인종이 어떠하든지 간에 이러한 사랑을 그들 중에서 실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제도에서 자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들도 인종적인 적의를 가졌었던 적이 있거나 그들에게 쏟아진 인종적인 분노를 경험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볼 때 어떤 사람이 인종적인 차이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다른 인종에 속한 사람들과 잘 알게 되려고 노력할 때 오랫 동안 지속되어 온 편견에 근거한 신화가 깨뜨려지는 것을 관찰하였다.

나는 나의 가족과 내가 그러한 인종적인 문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 준 성서 진리를 배우게 된 것에 대해 감사를 느낀다. 우리는 모든 인종에 속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만이 모든 인류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기꺼이 돕는 데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

이것은 희귀하거나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편견을 배워왔다. 더 많은 사람들이 편견의 희생물이 되어왔으며 그 결과 그들은 부당한 인종 차별로 고통을 당해왔다. 그러나 다행히 하나님의 말씀은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하나님의 말씀은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견해를 알려 주며 우리가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 준다.

첫째로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성서는 우리 모두가 한 인간 가족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각 인종 혹은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모든 점에서 동등한 것이다. (사도 10:34, 35)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동일한 견해를 나타내셨다.

그의 추종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자기가 그들을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요한 13:34, 35) 그들 사이의 이러한 사랑은 일종의 배타적인 것 즉 특정한 인종이나 인종들에 속한 성원들에게만 나타내는 것이어서는 안되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의 사도 한 사람은 “형제들의 총 연합체를 사랑하라”고 격려하였다. 또 다른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베드로 전 2:17, 신세; 요한 1서 4:20.

이러한 그리스도인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말함으로써 그 점을 설명하고 있다. (로마 12:10) 당신이 그렇게 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당신은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김으로써 진정한 존중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빌립보 2:3) 그러한 진정한 그리스도인 사랑의 영이 있을 때 인종 편견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에서 즉 이백만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한 조직에서 그러한 일이 이미 있었다. 이것은 모든 ‘여호와의 증인’ 개개인이 불경건한 제도에서 배운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지구상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들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이러한 인종적인 문제를 해결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점은 누구나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1964년 7월 「미국 가톨릭」이라는 책에서 ‘가톨릭’ 필자인 ‘윌리엄 J. 훼일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이 종파의 가장 매력적인 특징 중의 하나가 인종 평등에 관한 전통적인 방침이라고 생각한다. ‘여호와의 증인’이 된 흑인들은 온전한 인간으로서 환영받을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에 관하여 자세히 연구한 후에 ‘G. 노르만 에디’는 「성서와 종교 저어널」이라는 종교 서적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그들의 사회적인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나는 그들이 모든 인종에 속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 놀랐다. 인종적인 형제 우애라고 입으로만 외치는 어떤 사람들과는 달리 증인들은 피부 색깔이나 용모에 관계없이 모두가 그들의 사회로—심지어 탁월한 인도하는 자리에 까지—모두를 받아들인다.”

당신은 참다운 형제 우애를 보기 원하며 모든 인종에 속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함께 거주하는 것을 보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여호와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모이는 지방 왕국회관에 참석해 보도록 권하는 바이다. 그들이 모든 인종에 속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 사랑을 나타내는지 스스로 살펴보도록 하라.

[23면 삽입]

“‘여호와의 증인’이 된 흑인들은 온전한 인간으로서 환영 받을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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