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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격을 직면하여 믿음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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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격을 직면하여 믿음을 나타냄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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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6
파76 11/1 490-494면

공격을 직면하여 믿음을 나타냄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 전 10:13.

1. 우리 모두는 믿음에 관해 어떠한 점을 자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까?

당신의 믿음은 어느 정도입니까? 상태가 험난한 때에도 흔들리지 않을만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읍니까? 먹고 싶은 음식, 입고 싶은 옷, 애착성을 가지고 있는 집 등을 박탈당하는 때에도 여호와를 의뢰하고 확고함을 유지할 수 있읍니까? 투옥을 당하고 건강을 잃고 심지어 생명을 상실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믿음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읍니까? 그러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충실한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예수께 말한 사도들과 같이 느낄 것입니다.—데살로니가 후 3:2; 누가 17:5.

2. ‘사단’의 반대에 관하여 무엇이 분명합니까?

2 어떤 사람들은 ‘그 일이 내게는 닥치지 않겠지’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읍니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 (누가 21:12, 16, 17) 이 말씀을 들은 사도들은, 이튿날 아침에 해가 뜰 것이 확실한 것처럼, 이 예언이 그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의 모든 추종자들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모든 형태의 박해를 다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러한 일들은 집단으로서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닥칠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사단’은 어떠한 공격 방법을 사용하든지 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박해”할 것이 분명합니다.—디모데 후 3:12, 새번역.

3. 왜 오늘날도 믿음이 필요합니까?

3 오늘날 우리에게는 예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원 제1세기로부터 금년 1976년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당한 박해의 역사 기록을 가지고 있읍니다. ‘로마’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피에 굶주린 ‘로마’ 시민들이 관중석에서 환호를 올리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야수에게 찢겨 죽임을 당한 참혹한 기록을 잘 알고 있읍니다. 현 20세기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압력을 당하고 있읍니다. 사실 지금도 몇몇 나라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그리스도인 활동이 금지되어 있읍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의 많은 수가 감옥 안에 있으며, 일부는 생명을 잃었읍니다. 하나님의 백성 모두는 그들의 성실성을 파괴하려는 갖가지 압력을 받고 있읍니다. 우리는 확고히 서기 위하여 믿음이 필요합니다.

4. 현대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커다란 믿음을 나타내었읍니까?

4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에게 시험을 직면할 만한 믿음이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읍니다. 지난 세기 말에 소수의 남녀가 전통적 종교의 사고 방식을 탈피하여 여러 세기 동안 진리로 인정받아 온 교리를 거짓이라고 선언하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하지 않았겠읍니까? 그리고 1922년에 미국 ‘시다 포인트’ 대회에서, 수천명에 불과하던 그들이 “광고하라, 광고하라, 광고하라, 왕과 그의 왕국을” 이라는 외침에 호응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하지 않았겠읍니까? 그 당시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조직이 오늘날처럼 수백만명으로 증가할 것을 예견하지 못했읍니다. 그리고 국가주의가 팽배하던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그리고 정치적으로 호응하지 않은 사람은 인류를 증오하는 자로 간주되던 그 당시, 누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성을 고수하였고 중립을 유지하였읍니까?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었읍니다! 제1세기의 처음 시작 때부터 현대 역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읍니다. (고린도 후 5:7)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 때에도 믿음은 그들로 하여금 그 소식을 믿도록 하였읍니다. 충실한 사람들의 이러한 믿음은 보상을 거두었읍니다. 그들의 확신은 헛된 것이 아니었읍니다. 오늘날 수백만의 사람들은 그 점을 인식하고 있읍니다.

5. 장차 우리의 믿음을 필요로 하는 어떤 일이 발생할 것입니까?

5 그러나 아직도 우리 앞에는 도전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단’의 공격을 직면하여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사물의 제도의 멸망 직전에 살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을 파괴하려고 하는 원수의 활동을 여호와께서 어느 정도로 허락하실 것인지 현재로서는 분명히 알 수 없읍니다. 우리 개개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읍니다.—마태 24장, 마가 13장, 누가 21장.

벗어날 길이 명확하지 않을 때 믿음이 필요함

6. 우리의 믿음에 시험이 되는 어떠한 상태를 당할 수도 있읍니까?

6 이 “마지막 때”가 급속히 그 절정을 향해 진행함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은 벗어날 길이 분명치 않은 곤경에 처할 수도 있읍니다. 사실상, 우리 생활에서 비상 사태가 발생하여,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이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다음 달 혹은 다음 해의 생활을 상당히 염려하기도 하지만, 사태가 위급하게 되어 식품, 의복, 주택, 심지어는 우리의 자유와 생명이 위태롭게 되고 내일의 사정이 의심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의지할 곳이 전혀 없는 것 같이 보인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나타낼 것입니까? 우리는 누구를 의지할 것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극도의 시험을 당할 수도 있읍니다.

7. ‘바울’은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무슨 “비결”을 배웠읍니까?

7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에 있는 동료 신자들의 회중에게 편지를 썼읍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약 25년에 걸친 그리스도인 경험에서 터득한 하나의 “비결”을 말하였읍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 4:11-13.

8. 무슨 경험들을 통하여 ‘바울’은 가치있는 교훈을 배웠읍니까?

8 여호와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은 궁핍한 때에 하나님께서 탁월한 방법으로 도와 주시는 것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는 이 비결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예로서, 고린도 후서 4:8-11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결코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 망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읍니다. 또한 고린도 후서 11:24-27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여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확실히, 그는 다음 날에는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의아해 할 처지를 많이 당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 경험을 통하여 많은 교훈을 배웠읍니다. 우리도 그것으로부터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다.

9. ‘바울’이 배운 그 “비결”을 우리는 어떻게 배울 수 있읍니까?

9 사태가 험난할 때에 혹은 벗어날 길이 명확하지 않을 때에 중단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힘을 주시며 궁핍한 때에 어떻게 물질을 공급해 주시며, 절망적으로 보이는 처지에서 벗어날 길을 어떻게 만들어 주시는가를 결코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알 수 없을 때에는 주저하는 것이 인간적인 반응입니다. 이 때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는 바가 매우 강하고 견고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사람의 머리 속에는 인간적 감각으로 탐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확실한 보장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 보장이 믿음입니다. ‘바울’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였읍니다. “믿음은 바라는 사물에 대한 보증된 기대이며 보지 못한 실체의 명백한 증거입니다.”—히브리 11:1, 신세.

10. (ㄱ) 기원전 1473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장애를 직면하였읍니까? (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명령하셨읍니까?

10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어느 정도 기대하시는가에 대한 좋은 실례가 있읍니다. 그것은 여호수아 3장과 4장에 기록된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에 있었던 예입니다. 때는 기원전 1473년 봄철이었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단’ 강 동편, 사해 북쪽에 진을 치고 있었읍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였지만 이제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되었으므로 그들은 원수의 땅에 쳐들어가 그 땅을 점령해야 하였읍니다. 그 땅은 정당하게 그들의 소유였읍니다. 그러나 눈이 녹고 봄비가 내려 ‘요단’ 강의 급류가 되어 있는 그 시기에 약 300만을 헤아리는 남녀 및 유아가 가축과 짐 꾸러미를 가지고 그 강을 어떻게 건널 것입니까? 그런데도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제사장들을 앞세우고 강으로 행진하라고 지시하셨읍니다. 명령과 함께 다음과 같은 약속이 있었읍니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여호수아 3:13.

11. (ㄱ)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읍니까? (ㄴ)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믿음을 나타내었읍니까?

11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불어난 급류를 지금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이 줄어들 때까지 몇 주일 더 기다려야 한다. 이런 “불가능”한 상태에서 강을 건너다가 살림, 가축 혹은 아이들이 떠내려가는 꼴은 볼 수 없다. 여호와께서 홍해를 가르신 바와 같이 강물을 가르신다면 물론 우리는 기쁘게 강을 건너겠다’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하였읍니까? 어떻게 되었는지 읽어봅시다.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여호수아 3:14-17.

12. ‘이스라엘’ 사람들의 본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줍니까?

12 그들은 믿음을 실로 감탄스럽게 나타내었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장차 불확실한 입장을 당할 때에 그들 모두에게 훌륭한 교훈이 됩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자기가 어떤 일을 수행하실 것이며 어떤 방법으로 수행하실 것인가를 세세히 밝히신다면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읍니까? 믿음이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에 그 길이 아무리 불가능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강물에 발을 디딜만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시고자 합니다. 그런 때에 믿음에 따라 행동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을 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서는 “믿음의 시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야고보 1:3; 베드로 전 1:7.

파괴점이 없음

13. 시련을 당할 때에 우리가 의아해 할 만한 어떤 질문이 있읍니까?

13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의아해 합니다. ‘여호와께서 충실하시고 자기 백성을 뒷받침해 주신다는 것은 확신하지만, 때때로 나는 내 자신을 염려하며, 어떤 시련이나 압력을 당할 때에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의심한다. 나는 인내할 힘이 있을 것인가? 나는 취약점이 있어서 그로 인해 “파괴점”에 도달하고 말 것인가?’ 또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느낄 것입니다. ‘내 자신은 무슨 일이든지 견딜 수 있지만, 내가 부모로서 내 자녀들에게 어떤 일이 닥치는 것을 보고는 참을 수가 없다. 그들이 위험을 당할 때에 내가 인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14. (ㄱ) 우리는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결코 당하지 않은 시련을 당할 것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암니까? (ㄴ) 성서는 시험에 관해 어떤 위안을 주고 있읍니까?

14 그러한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사도 ‘바울’로부터 매우 고무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읍니다. 그는 동료 신자들의 회중에 편지하는 가운데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함정이 되었던 일들을 기술하였읍니다. 고린도 전서 10:7-10에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여호와]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는 이러한 일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의 본이 된다고 하였으며, 그는 또한 ‘그런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는 식의 어리석은 생각을 갖지 말도록 경고하였읍니다. 그 다음에 그는 성서 가운데서 가장 고무적이고 믿음을 강화하는 말 가운데 하나를 기술하였읍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 전 10:13.

15. (ㄱ) 그리스도인 성실성에는 ‘파괴점’이 있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피할 길을 내”주십니까?

15 이 귀절이 하나님의 뜻을 진심으로 행하려고 하는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읍니까? 만일 우리가 충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성실성에 ‘파괴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힘이나 세력, 간계 혹은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비밀 무기’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성실성을 틀림없이 파괴시킬 수 있는 것은 없읍니다. 우리에게는 소위 ‘취약점’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원수가 그 점을 이용하여 우리를 파괴시킬 수가 없읍니다. 우리가 인간 육체로서 견딜 수 있는 한 하나님께 충성을 하면, 우리의 힘으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개입하셔서 “피할 길”을 내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험을 제거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목적은 “너희로 능히 감당하”도록 즉 인내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16. 인내하는 데 있어서 믿음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16 성서를 통하여 문제를 이렇게 올바로 이해하면, 상태가 아무리 극단적으로 되더라도 그 입장에 대해 옳은 견해를 갖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박해자들에게 자녀를 빼앗긴 부모도 그 일을 인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도움에 의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자기들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러한 일을 허락하신다면, 그 문제를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께 맡길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를 돌볼 능력을 누가 더 가지고 있읍니까? 우리 자신입니까?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천군입니까? 입장이 극도로 절망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며, 여호와께서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것인가를 당장에는 우리가 모를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믿음이 필요하며, 아이처럼 여호와를 신뢰하는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인내할 수 없읍니다.—히브리 11:6.

지금 작은 일에 충성하라

17. 무슨 원칙을 따르면 앞날의 시련을 직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까?

17 하나님의 백성은 장차 어떤 시련을 당할지 확실히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시련을 당하든 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다음의 원칙이 참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누가 16:10.

18. 현재 “지극히 작은 것”에 충실하면 장래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입니까?

18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매일 당하는 믿음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이겨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그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데 있어서 장애물로 대두되는 것들은 많이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시험을 “지극히 작은 것” 곧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것부터 성공적으로 직면한다면,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앞날의 시험을 직면할 수 있도록 강화될 것입니다. 마귀가 있는 힘을 다하더라도, 그가 아무리 꾀를 내더라도 그러한 것들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단’의 공격 하에서 믿음을 나타낸 사람들은 그러한 시험을 과거에 성공적으로 이겨내었으며 장래에도 이겨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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