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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여가를 보람있게 사용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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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여가를 보람있게 사용할 수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변화의 필요성
  • 잠언을 적용함
  • 현대적인 본
  • 무엇을 할 것인가?
  • 여럿이 함께 모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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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1
파71 11/15 523-526면

당신은 여가를 보람있게 사용할 수 있는가?

여가! 이 말을 들으면 당신은 아마 휴식을 생각하거나 미뤄오던 일을 해치울 것을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그 시간을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여가라고 하면 기대가 크지만, 여가가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왜 그렇게 되는가? 성서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창세 8:21) 만일 어떤 사람이 선한 원칙 한계 내에서 처신하지 않는다면 그는 여가 시간에 자신을 망칠 수도 있다. 이것은 자유 시간을 충분히 즐겨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즐겨야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을 보낸 다음에 실증을 느끼거나 시간을 남용 또는 허송한 데 대하여 후회감이 있어서는 안된다.

인생 문제에 성서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을 따르기 때문에 보호를 받는다. (고린도 전 10:31) ‘바울’은 또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라고 편지하였다. (로마 14:19) 이러한 성귀는 우리가 자기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의 가치를 판단하는 훌륭한 기준이 된다. 그것은 생각이 좁거나 광신적이 되어 성서 이외의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보내서는 안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또한 정해진 범위 내에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것들을 즐기는 문제를 배제하지도 않는다. (디모데 전 4:4)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제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사람의 거처로 주셨으며, 사람은 여러 가지 아름다움과 기술과 이 놀라운 지구상의 다양한 것들을 즐길 능력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들이 즐거움이 되는 것들을 즐기는 것을 단죄하지 않으셨다. 당신도 기억하겠지만, 그는 ‘갈릴리’의 어느 결혼 잔치에 가서 기적을 베풀어 좋은 포도주를 공급해 주셨다. 성서에서는 포도주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시 104:15; 요한 2:3-11.

변화의 필요성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주일에 하루 아니면 이틀간 세속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또한 저녁 시간도 있다. 두가지 직업을 가지고서 저녁 시간을 다 바쳐버리는 사람들은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만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가족을 거느리고 있다면, 그들은 대단히 중요한 가정 생활의 일면을 박탈하는 것이 된다. 만일 환경이 허락한다면 재물을 많이 소유하는 것보다는 건설적인 일을 위하여 자유 시간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최선의 휴식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나 순전한 “장난”만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휴식이란 속도나 직무의 변화, 특히 일반적으로 시간을 내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생활 부면에 좀더 발전하도록 하는 일의 변화이다. 어떤 사람이나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여가 시간은 균형잡힌 생활이나 개성을 북돋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잠언을 적용함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부분이 농부였고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도 약간 있었다. ‘솔로몬’ 왕의 잠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각 생활 부면에 교훈이 되었다. 그러한 잠언은 사실상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영감받은 교훈이었다. 한 가지 잠언은 이러하다.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집안, 신세]을 세울찌니라.” (잠언 24:27) 이 잠언은 먼저 가족에게 생활 필수품과 거처를 제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다음에 가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남자의 책임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밭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였다. 쉬는 날인 안식일에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논하고 가르쳤다. 아버지는 또한 시간을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하였다. 이 가운데는 축제 때에 ‘예루살렘’에 여행하는 것, 포도 수확이나 다른 추수의 축제에 시간을 보내는 것, 결혼식 또는 다른 활동 등이 포함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교육적이기도 하였고 즐겁기도 하였다.

영감받은 잠언은 변치 않는 인간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원칙만은 현대 사회에도 적용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외적 압력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여가는 더 많아졌다. 자기의 “밭”이 농장이든지 공장 또는 사업계이든지, “밭”에서 보낸 이외의 시간을 자기의 “집안을 세우”는 데 보낸다면 우리 시대의 속도와 긴장은 훨씬 더 가벼워질 것이고 생활은 더 새롭고 즐거워질 것이다.

일차적인 요구 조건은 자녀들의 복지에, 자녀들을 북돋우는 데 진정한 관심을 가져 그들로 하여금 인생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직장에 나가지 않는 시간은 첫째로 모든 종류의 문제에 관하여 가족이 논의하는 데 보낼 수 있다. 그렇게 한다면 문제가 일어날 경우에 좀더 자유로이 표면에 나타나서 해소되거나 해결 또는 시정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세속 직장에 나가지 않는 시간에 집을 수리하거나 자동차를 손질하거나 잔디를 다듬을 때에 아들과 함께 일한다면 아들과 함께 적절한 관계를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을 실제 일에 참여시켜야 한다. 그는 이런 방법을 통하여 남자답게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가정 일에 딸을 참여시킬 수 있다. 이렇게 훈련을 받으면 딸은 진정한 숙녀로서 성장하게 된다.

현대적인 본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성서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녀를 돕는 면에 있어서 가장 명확하고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이 올바른 방법이라는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여가를 가장 즐겁게 만족스럽게 보낸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유익한 실례로서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서 볼 수 있는 실례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여호와의 증인들도 급속도로 변천하는 현 세대에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관찰해보면, 그들은 이러한 일들을 과도한 부담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여가를 전부 희생할 만큼 돈벌이에 몰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여가를 마련한다.

그 이유는 이 사람들이 성서에 들어 있는 희망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서를 연구함으로써 그들은 모든 인류를 소유하고 계시는 창조주께서 메시야 왕국을 통하여 해방과 생명을 가져오실 웅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전념하며, 실제 그들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의 마련의 한계 내에서 유익한 방법으로 보낼 의무가 있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를 보고 하나님의 봉사가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대단히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견해를 얻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즐거운 작업이다. 좋은 일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비할 데 없는 즐거움이며, 그것은 격려적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쁨은 대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남는다.

일반적으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기들의 여가의 많은 부분을 그 말씀을 전파하는 일을 하도록 계획한다. 이것은 그들이 종종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의 자유 시간을 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성서, 성서의 원칙들, 하나님의 왕국이 가져올 인류의 희망 등을 말해 주는 데 보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일을 자기네 벗들과 가족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이웃 집을 방문하여 이웃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해 준다. 그들은 자녀들도 동반한다. 또한 저녁 같은 다른 자유 시간에 관심가진 사람들의 집에서 성서 연구를 사회한다.

그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몇 시간을 이 일에 바친 다음에, 설사 그 날 자기의 여가를 전부 거기에 바쳤다 하더라도, 시간을 허비해버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흥미있게 괄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으로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를 논의하고 공부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매주 자기 여가 시간 중 한 시간을 바치지만 마찬가지로 생각한다.—마태 11:29, 30.

그렇다고 성서 연구, 토론 및 회중 집회 참석이 여호와의 증인들의 모든 자유 시간을 다 점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휴식 혹은 기분 전환을 하는 여가 시간도 있다. 이러한 시간은 대부분 가족이나 벗들과 교제하는 데 보낸다. 이렇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소풍이나 외출 또는 근처의 흥미있는 지역에 여행을 가거나 오락을 즐길 수도 있다. 일상 생활의 압력을 해소하고 격려하고 덕을 세워 주는 사상, 감정, 의사 및 경험을 서로 나누기도 한다.—로마 1:11, 12.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형태의 기분 전환을 필요로 한다. 어떤 사람이 어느 형태의 오락을 취하든지 그것은 올바른 원칙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목공 일, ‘라디오’ 제작, ‘페인트’ 칠, 꽃 가꾸기, 사진 촬영, 바느질, 외국어 공부 등등 취미를 기를 수도 있다. 음악 감상, 독서, ‘텔레비’ 시청, 숲속 산책, 상가 구경 기타 다른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휴식을 취하면서 잠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시간 낭비 같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자기에게 기분 전환이 되고 유익하며, 그가 그 일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고 중용을 취하며, 균형을 잡는다면 그가 비난받을 근거는 없다.

사도 ‘바울’은 어떤 음식물을 먹는 것이나 먹지 않는 것, 또는 어느 날을 쉬는 날로 하거나 보통 날로 하거나, 하는 등의 일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개인 생각이나 의견에 따라 남의 일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자기에게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좋지 않은 것이다. 마치 ‘바울’이 무엇이든지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하고 말한 바와 같다.—로마 14:10-14.

반대로 그 사도가 계속하여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만일 어떤 일이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거나 실망시키는 것이라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즐겨하는 것이더라도 우리 개인의 “권리”만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만일 그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그것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핑계할 수 없다. ‘바울’은 이렇게 교훈하였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로마 14:21.

각자가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내 자유 시간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 충분히 생각을 하는가? 그 시간이 낭비되는가? 아니면, 유익한 목적을 달성하는가? 어느날 저녁을 오락이나 즐거운 일에 보낸다면 중용을 취하는가, 아니면, 저녁에 너무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아 다음날 졸리거나 일을 능율적으로 할 수 없게 되는가? 또한 토요일 저녁이나 직장에 나가지 않는 전날 저녁에 늦게 영화를 보거나 늦게까지 ‘텔레비’를 보거나 혹은 늦게까지 다른 일을 하여 다음날 아침 늦게 잠을 자서 그 날의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가? 만일 ‘예’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그리고 자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시간을 균형잡히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며 변경을 필요로 한다. 만일 어떤 활동을 하고 난 다음에 허무감을 갖거나, 보람없는 일이라고 생각되거나, 시간을 낭비하여 약간 죄의식을 갖는다면 자기의 오락 시간을 약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징조가 된다.

여럿이 함께 모일 때

한 가족, 두 가족 혹은 세 가족이 함께 모일 때 할 수 있는 일이 대단히 많이 있다. 대화나 활동에 아이들과 노인들이 포함되는 것이 좋다. 성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가장 건설적이고 즐거운 일은 함께 성서를 읽는 것, 즉 각자가 차례로 몇 귀절을 읽고 질문을 하며 그 내용에 대하여 해설하는 것일 것이다. 본 잡지나 자매지인 「깨어라!」 혹은 ‘왙취 타워’ 협회의 다른 출판물을 읽는 사람들은 이러한 책의 내용을 비슷한 방법으로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일 성서에 근거한 또는 다른 종류의 놀이를 한다면, 경쟁심을 최하로 줄이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 가운데서 한 두 사람만 뛰어나고 다른 사람은 당황하거나 열등감을 갖게 하는 일을 피하게 된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어느 개인을 “뛰어나게” 하지 않는 놀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누구나 자의로 의사 표시를 하든지 묵묵히 있든지 하게 하라. 질문은 어느 개인에게 보다는 집단에게 하는 것이 좋다. 누구든지 말하고자 한다면 말을 하고 모든 사람이 듣고 배울 수 있게 한다.

모든 경우에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우리가 어떤 일을 즐길 때 다른 일을 하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방문 시간의 길이와 방문의 빈도에 대하여 모두가 판단력을 잘 사용해야 한다. 잠언에서는 이렇게 좋은 충고를 하고 있다.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잠언 25:17.

위급한 때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성서는 이 급속히 퇴폐해가고 있는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의 징조로서 “처신하기 어려운” 때를 예언하였다. (디모데 후 3:1, 신세) 우리는 범죄와 부도덕이 증가하고 영화나 서적의 외설적인 내용이 급속히 증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영화나 운동 경기 등 세속적인 오락을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이 점차 위험해지고 있다. 미국 ‘뉴욕’의 어느 큰 극장 안에서 최근에 폭탄이 발견되었다. 강도, 약탈, 심지어 폭동 등이 모이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주고 있다.

상태가 이러한데도, 이 위급한 때의 생활 밖에 다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약간 “탈선”적인 오락이 마음에 들 것이다. 좀더 신중하고 안정된 생활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기분”을 내보고자 할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영감받은 「전도서」 필자의 말을 보고 자기의 행동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며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을 알라.”—전도 11:9.

젊은이들은 선천적으로 놀이를 좋아한다. 마음이 그러한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젊은이들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즐기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억제력을 행사할 것을 경고하신다. (디모데 후 2:22) 무절제하게 놀아나거나, 행한 일이 좋지 않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자기의 행동에 대하여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전도서」 필자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청년의 때는 지나간다.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동안에 방탕, 재난 및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사게 될 지나친 행동을 삼가야 한다. 지금 적절한 오락이나 기분전환의 일을 선택하라.—전도 11:10.

좋은 영화나 ‘텔레비 프로’나 기타 오락으로서 적당한 것이 점차 적어지기 때문에 노소를 막론하고 더욱 주의를 요한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입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한 결과를 낸다. 그러한 상태 때문에 자기의 정신을 만족과 보람을 가져오는 기본적인 것들에만 기울이게 된다. 그러하기 때문에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게 되며, 동시에 평화를 쌓아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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