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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지키시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 소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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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파83 1/15 4-7면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지키시는가?

사건의 제일 원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창조주이시다. 성서의 첫 번째 책을 읽어 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1, 14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읽을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이렇게 하여 여호와께서는 거대한 시각 표시물을 가동시키셨다. 지구는 축을 따라 회전하고, 달은 지구 주위 궤도를 따라 운행하며, 또 이 둘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여 인간에게 날과 달과 계절을 알려 준다. 그 천체들은, 그것들의 운행과 조정을 위해 우리가 비용을 들이거나 책임을 지지 않아도 시각을 아는 데 도움을 준다.

왜 시간을 의식해야 하는가?

여호와께서는 시간을 의식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도 그러기를 원하신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 모두가 다 시간을 사용하는 데 지혜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건 시간표에 대해 합당한 민감성을 기르는 일을 소홀히 해 왔다.

이를테면, 기원전 제7세기에 하나님의 선민은 당시가 어떠한 때인지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변명할 이유가 없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여호와의 심판, 신세]를 알지 못하는도다.” (예레미야 8:7)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계절의 변화에 응해야 할 때를 안다.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반복적인 호소를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시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때였음을 알고자 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입장은 어떠한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우리는 알고 있는가? 여호와께서는 항상 자신의 뜻과 심판을 나타낼 지정된 때를 가지고 계시다. 사도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사도 17:30, 31) 독자도 우리가 그 ‘심판 날’에 가까왔다는 것을 믿는가? 아니면 그때가 요원하다고 생각하는가?

기원 제1세기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는 데 사용하실 분이 이 땅에 나타날 때가 도래하였다.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그분의 오심은 대단히 중요한 날이었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한이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읍니다.” (갈라디아 4:4, 새번역)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임함은 정확히 계획에 따른 것이었다.

기원 제1세기, 그리스도의 오심은 ‘예루살렘’ 성에 대한 심판 기간을 밝혀 주는 표시가 되었다. 기원 33년에 예수께서는 그 성의 거민들에게, 적군에 의한 다가오는 멸망에 대해 경고하셨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와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누가 19:44) 이 예언은 37년 후에 성취되었다. 만일 독자가 그 당시에 살았더라면, 독자는 당시가 어떠한 때인지 알았겠는가? 당시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때라는 것을 독자는 알았겠는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와 비슷하게 오늘날은 어떤 때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예언된 ‘심판 날’이 가까왔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시간표를 살펴봄

여행을 하기 전에 기차나 비행기의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시각표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언제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는 시간표를 필요로 한다. 성서는 하나님의 시간표 역할을 한다. 이 책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사건들의 예정된 도착 시기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원 제1세기의 모든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비하고 있어야 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 이유는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예언자 ‘다니엘’을 통해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기원 제29년에 오실 것을 예언하셨기 때문이었다. (다니엘 9:24-27) 사실인즉 ‘다니엘’의 예언을 알고 있던 기원 제1세기의 ‘유대’인들은 바로 그 해에 그분이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3:1, 2, 15) ‘유대’인 학자 ‘압바 힐렐 실버’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메시야는 기원 제1세기의 2사분기경에 오실 것으로 기대되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성서의 시간표를 사용하여, 우리는 지금이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보이지 않게 임재해 계시는 때임을 식별할 수 있다.a 그러므로,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기 위해 그분이 임하시는 것과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그분의 1,000년 심판 ‘날’은 대단히 가까와 있다.—사도 17:31; 다니엘 4:10-17; 마태 24:7-31; 누가 21:24; 계시 20:4-15.

믿음이 때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영향을 끼친다

19세기 전에, 하나님의 시간표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누구나, 또 그분의 아들이 임하는 여호와의 지정된 때에 대해 조급했던 사람은 누구나 놀라운 축복을 놓쳤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만약 우리가 불안하게 되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어디있느냐?”(새번역) 하고 질문한다면, 우리 역시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지 못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게 될 것이다. (베드로 후 3:4) 환경 때문에 조바심을 갖는 이런 유형의 영이 기원 제1세기 ‘에베소’의 그리스도인 회중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믿음에 심각한 위협을 주었다. 하나님의 시간 계획에 대한 조급함으로 인하여, 당신의 믿음도 약해지는 것을 느끼는가? ‘에베소’인들에게 준 ‘바울’의 충고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에베소’에 있던 비그리스도인 희랍인들은 시간이 직선으로 움직인다고 믿지 않았다. 희랍의 철학 학교들은 시간에 대해 순환적인 견해를 가르쳤다. 사건들이 기계적으로 되풀이된다는 것, 즉 인생은 끝없는 순환 가운데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한 순환기에서 그의 시간을 허비해도, 그는 반복되는 다른 한 생애에서 그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에베소’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심판을 포함한 사건들에 대한 여호와의 시간표에 관해 무관심한 태도를 야기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쾌락 지향적인 생활 방식이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을 둘러싸고 있어, 하나님의 시간 계획에 대한 그들의 의식이 나태해지도록 강한 압력을 가했다. 만약 그들이 관능적인 생활과 자기 만족에 탐닉함으로써 현재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지혜롭다고 믿었다면, 그들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개념은 없었고 오로지 현재에 대한 개념만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미래를 상속하기를 원했더라면,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에베소 5:5.

계속되는 귀절들에서, ‘바울’은 이들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시가 어떠한 때인가를 온전히 알라고 경고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비그리스도인 행동에 빠져 들고도 영적인 파산을 당하지 않고 빠져 나올 시간이 충분히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 임하나니 ·⁠·⁠·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에베소 5:6, 10)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표에 비추어 보면 우리의 행실은 확실히 우리의 장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들 ‘에베소’인들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절호한 시간을 [삼]”으로써 할 수 있다.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지를 ·⁠·⁠· 식별[함]”으로써 할 수 있다. (에베소 5:16, 17, 신세 참조) 그렇게 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 바로 지금이다! 그 이유는?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다른 기회가 다시는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세대가 모두 관찰한 사건들로서, 성서에 예언되어 있고 1914년 이래 발생해 오고 있는, 그리고 “마지막 날”(새번역)을 표시해 주는, 무수한 사건들은 시간이 더 급속히 지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여호와와 그분의 임명하신 심판관과의 좋은 관계를 세워 나갈, 남아 있는 시간이 없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마태 24장; 마가 13장; 누가 21장; 디모데 후 3:1-5; 베드로 후 3:10, 11.

시간을 의식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마련

하나님께서는 헌신하고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한 집단의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때를 의식하게 돕도록 마련하셨다. 이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신세)은 “때를 따라” 영적 “양식”을 공급해 주고 있으며 또 우리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마태 24:45; 고린도 전 15:58)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와 미래에 공히 하나님의 봉사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데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시간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매주 투자할 동일한 양의 시간 즉 168시간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얼마나 잘 투자하고 있는가? 우리의 시간 투자는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참으로 알고 있음을 나타내는가?

‘나는 시간이 없어’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생활의 다른 부면에서 시간을 기꺼이 사야 한다. 취미, 음악, 오락, 세속 일 등,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TV 비디오 게임’처럼, 새로운 기기들이 우리의 시간을 강제로 삼킬 수 있다. 건전한 오락 활동에 얼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고 혹은 필요한 것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우리의 시간 사이에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가?

독자는 어느 시인의 말이 자기에게 적용되기를 원하는가?

다음의 시인가?

“그대는 말하는가? 시간은 가는 거라고.

아, 아니야! 시간은 아니야!

오호라, 가는 건 우리 인간이야.”

아니면 다음의 시인가?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시 145:2.

어느 것이 적용되는가는 우리가 지금이 어느 때인가를 아는 것에 달려 있다.

[각주]

a 부가적인 지식을 위해 ‘뉴우요오크’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발행한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제14장을 참조하라.

[6면 네모]

천적 왕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임재해 계시다는 증거

독자는 다음 사건들을 관찰하였는가?

세계적인 전쟁 마태 24:3, 7

범죄의 증가 마태 24:12

기근 마가 13:8

세계적인 전파 마가 13:10

지진 누가 21:11

온역 누가 21:11

미래에 대한 공포 누가 21:26

이기심 디모데 후 3:2

쾌락을 사랑함 디모데 후 3:4

[5면 삽화]

비행 시각표는 여행자들에게 도착과 출발을 알려 준다

성서의 시간표는 하나님의 일들이 발생할 때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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