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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77 4/15 180-184면
  • 생명을 보존시켜 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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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을 보존시켜 주는 믿음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필수적인 의로운 심적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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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파77 4/15 180-184면

생명을 보존시켜 주는 믿음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스바냐 2:3.

1-3. (ㄱ) 다가오는 세계적 재난의 때에 무엇을 근거로 생명을 보존할 자들이 있을 것입니까? (ㄴ) 이것을 증명하는 어떠한 성경적인 예들이 있읍니까?

다가오는 대격변 혹은 재난이 큰 것이기는 하지만 성서는 생명을 보존할 자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확증해 줍니다. 이들은 무엇을 근거로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인류에게 가져오신 대격변의 경우에 재삼 재사 실증되었읍니다. 믿음을 실천한 자들 즉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들의 신념에 따라 생활한 사람들은 생명을 보존하였읍니다. 제일 처음에 있었던 예가 ‘노아’와 그의 가족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실천하였으며, 생명을 보존하였던 것입니다. (히브리 11:7) 또한 주목할 만한 예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에 생명을 보존한 ‘롯’과 그의 두 딸의 경우가 있읍니다. ‘롯’은 두 딸의 약혼자들을 염려해서 그들에게도 경고와 재촉을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그들이 ‘롯’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읍니다.—창세 19:14.

2 통용 기원전 9세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보내서 ‘앗수르’ 수도 ‘니느웨’ 사람들에게 경고하게 하셨읍니다. 그들의 극심한 악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멸망을 선언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 경고를 청종하였읍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 3:5, 10) 그 회개한 세대의 ‘니느웨’ 사람들은 그 위기에서 생명을 보존하였던 것입니다.

3 몇 세기 후에 예언자 ‘예레미야’와 그의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된 ‘이디오피아’ 종 ‘에벳멜렉’은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생명을 보존하였읍니다. (예레미야 39:16-18) 역사는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면 그곳에서 피하라는 예수의 경고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두번째 멸망시에 그들이 어떻게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는지를 알려 줍니다.—누가 21:20, 21.

4. 그 때 생명을 보존할 자들이 있을 것을 또한 어떠한 예언들이 확증해 줍니까?

4 우리 시대에도 생명을 보존할 희망을 갖게 하시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스바냐’로 하여금 이렇게 기록케 하셨읍니다.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스바냐 2:3)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사야 26:20, 21에서 ‘유다’ 백성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자기의 충성스러운 모든 종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백성아 갈찌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찌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필수적인 의로운 심적 상태

5-7. 참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상태는 왜 (ㄱ) 정직, (ㄴ) 겸손, (ㄷ) 영적으로 주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5 믿음을 얻는 데는 진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인 것처럼 그러한 지식을 얻는 데는 의로운 심적 상태가 필수적입니다. (로마 10:13-15)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확신을 배양하려면 정직하고 겸손하고 진리에 대한 굶주림을 느껴야 한다는 말은 옳은 말입니다. 예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정직한 것이 아니라 위선적이었기 때문에 예수를 믿을 수 없었읍니다. (마태 23:13-33; 요한 8:46) 그러나 일반 서민들은 기꺼이 그분의 말씀을 들었읍니다.—마가 12:37.

6 또한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과 신뢰를 두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하려면 겸손하게 기꺼이 배우려고 해야 하는데 교만한 자들은 결코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음을 알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싫어하심으로 그러한 자들에게 그러한 선물을 주실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시 25:9; 에베소 2:8; 야고보 4:6.

7 영적으로 주린 것 역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지식을 얻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잘난 체하고 자기 만족에 빠져 있고 자기 죄와 세계 상태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주린 사람들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주린 사람은 자기의 영적 필요성을 인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영적 필요성을 의식하는 자, 신세]는 복이 있나니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 5:3, 6) 예수께서는 또한 이러한 초대를 발하셨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태 11:28-30) 여러 세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이사야’에게 이와 비슷한 뜻을 발표하게 하신 일이 있읍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 나를 청종하라. ···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이사야 55:1-3.

튼튼한 믿음을 얻는 일

8. 어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이상 살펴 본 바와 같이 의로운 심적 상태를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부터 마음의 감동을 받는 것이 분명합니다. 참된 것을 “믿으려는 뜻”이 있어야 합니다. 교만하게 그리고 위선적으로 믿음의 기초가 되는 증거에 도전하고 의심하기로 한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없읍니다. 그는 단순히 믿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마치도 혹평을 하고 의심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9. 믿음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알려 주는 어떠한 성귀들이 있읍니까?

9 믿음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면 성서에는 ‘믿음이 약하다’는 표현이 있는가 하면 예수께서는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제자들을 책망하신 일이 있읍니다. (로마 4:19; 마태 8:26)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믿음의 굳은 것”, “이만큼 큰 믿음”, 그리고 “온 세상에 전파”될 만큼 탁월한 믿음에 관하여 말합니다.—골로새 2:5; 마태 8:10, 신세; 로마 1:8.

10, 11. (ㄱ) 튼튼한 믿음을 갖기 위하여 무엇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까? (ㄴ)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성경적 충고를 청종해야 합니까?

10 지식이 없이 믿음이란 있을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튼튼한 믿음을 가지기 위하여는 부지런히 지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정신, 신세]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영감받은 충고를 청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고려할 때,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음으로써만 정신을 변화시킬 수 있읍니다.—로마 12:2; 마태 4:4.

11 이 바쁜 시대에 영적 필요성을 돌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고려할 시간을 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일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둘러싸여 있던 이교적 환경 때문에 그들에게 주어진 충고는 오늘날에도 물질주의와 쾌락 추구의 압력으로 보아 매우 적절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기회를 사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이렇게 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임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에베소 5:15-17, 난외주.

12. ‘기회를 사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12 오늘날 우리가 ‘기회를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무가치한 것들을 추구하기 위하여 시간을 바치는 일을 중단하고 그 시간을 뜻있는 것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확대 적용하면 절대 불가결한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단순히 흥미있는 일이나 즐거운 일 심지어는 교육적인 어떤 일로부터 얼마의 시간을 떼어내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읍니다. 그것은 또한 ‘텔레비젼’를 덜 보거나, 신문이나 세속 잡지를 덜 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읍니다. 또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취미 생활을 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읍니다. 이것은 성서적인 것들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선 성서적인 것들을 돌보고 남은 시간을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에 바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다른 일들이 시간을 다 빼앗아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영적인 것들을 밀어내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교훈하신 것입니다.—마태 6:33.

13-15. (ㄱ) 튼튼한 믿음을 위하여 정확한 지식이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정확한 지식을 얻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며, 어디에서 그것을 얻을 수 있읍니까? (ㄷ) 믿음을 튼튼히 하는 데 그 외에 또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13 그러나 단순히 성서를 읽는 것만으로는 믿음을 튼튼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읽은 것을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정확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사도 시대에 ‘유대’인들 가운데는 ‘히브리’어 성경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확한 지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열심도 아무 소용이 없었읍니다. (로마 10:1-4, 신세) 정확한 지식을 얻고 동시에 이해하기 위하여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고통을 받고 죽을 것에 관하여 말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해서 그들을 격려하신 예와 같습니다. (누가 24:15-47) 또한 복음 전도자 ‘빌립’은 ‘이디오피아’ 내시를 일깨워 주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는 이사야 53장의 내용을 읽고 있었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사도 8:27-39.

14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교훈을 받고 있읍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러분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성서 연구 집회에서 ‘복음 전도자들로, 목자들로, 가르치는 자들로, 감독자들로, 장로들로’ 일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진리의 정확한 지식을 얻도록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히브리 10:24, 25; 에베소 4:11-13; 디모데 전 3:1-7; 베드로 전 5:1-3.

15 믿음을 튼튼히 하는 데 기도의 가치를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교훈하셨으며, 믿음은 그 영의 열매들 중의 하나입니다. (누가 11:13; 갈라디아 5:22, 23) 예수께서는 또한 우리가 만일 믿음으로써 구하고 기도에 힘쓴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보증하셨읍니다. (마태 7:7; 17:20) 그러나 또한 우리가 해야 할 몫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노력해야 합니다. 마치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햇볕과 비를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처럼 우리가 튼튼한 믿음을 얻는 데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몫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몫을 하실 것입니다.—마태 5:45.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16. 믿음과 행함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있읍니까?

16 생명을 보존하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저항을 제일 적게 받는 길을 가는 경우가 아닙니다. 그것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코 너무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행함이 없는 것은 생명이 없는 시체와 같기 때문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 것이며 그것은 생명을 보존하지 못할 것입니다. (야고보 2:14-26)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는 싸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벗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고 상기시킨 바와 같습니다.—디모데 전 6:12.

17-19. (ㄱ) 어떠한 예들이 믿음의 가치를 강조합니까? (ㄴ) 믿음은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보호해 줍니까? (ㄷ)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데는 또 무슨 일이 포함됩니까?

17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움으로써 우리는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됩니다. 오히려 “믿음의 방패”로써 우리는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할 수 있읍니다. (에베소 4:14; 6:16) 믿음은 또한 오늘날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이기심에 감염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보호해 주는 흉배의 역할을 할 수 있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5:8; 요한 1서 2:16) 그러한 보호를 받을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에 직면해서도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읍니다. 이는 ‘믿음의 시험받은 질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짐으로 ‘예레미야’는 40년 이상이나 난폭한 백성에게 두려움 없이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야고보 1:2, 3.

18 예수 당시처럼 오늘날에도 이 세상은 의로운 원칙에 따라 생활하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핍박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참됩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분은 어떻게 이기셨읍니까? 그분의 믿음으로써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 16:33; 요한 1서 5:4) 그러한 믿음은 우리를 성서의 가르침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보호할 것이며, 거짓 지식과 이 세상 지혜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를 이 세상 물질주의와 돈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입니다. (디모데 전 6:10, 20, 21) 그리고 그것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과의 관계를 단절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시 18:4.

19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데는 믿음의 근거와 생명을 보존할 전망에 대하여 우리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일도 포함됩니다.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잘도 표현한 바와 같습니다.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린도 후 4:13.

생명을 보존하여 어디로 인도되는가?

20. (ㄱ) 어떠한 예언적 명령을 청종하는 것이 생명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까? (ㄴ) ‘스바냐’는 왜 “혹시”라고 말하였으며,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20 튼튼한 믿음을 얻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움’으로써 우리는 오늘날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긴급한 다음과 같은 충고를 청종할 수 있읍니다.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원래 이 말은 기원전 607년에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되기 전에 그들에게 한 것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나타내실 것인지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추정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스바냐 2:3.

21. 세계적인 재난의 때에 생명을 보존한 사람들 앞에 놓여 있는 전망은 무엇입니까?

21 이 낡은 사물의 제도의 종말에서 생명을 보존하면 우리는 앞에 있는 무엇을 바라 볼 수 있읍니까? 평화스럽고, 의롭고, 풍부한 새 질서입니다. 지구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이루시는 즉 이 땅을 낙원이 되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창세 1:28; 2:16)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계시 21:4) 그 때에 또한 예언자 ‘이사야’의 25:6, 8에 있는 말이 성취될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큰 환난”에서 생명을 보존한 모든 사람들 앞에 놓여져 있는 참으로 영화로운 전망입니다!

[183면 삽화]

우리가 만일 튼튼한 믿음을 갖고자 한다면 이 바쁜 시대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포함해서 덜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위하여 시간을 내야 한다

[184면 삽화]

믿음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우리는 또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정기적으로 모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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