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72 8/22 11-14면
  •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 깨어라!—1972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여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
  • 누가 더 잘못하였는가?
  • 하나님의 더 높은 길이 알려짐
  • 어떠한 종류의 머리 직분인가?
  • 다른 여자들을 대하는 일
  • 여자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견해
  • 남자와 여자—각자의 존귀한 역할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7
  • 행복한 가정 생활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 가정 생활의 성공의 길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 여자
    성경 통찰, 제2권
더 보기
깨어라!—1972
깨72 8/22 11-14면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남자들이 여자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특히 남편이 아내를 어떻게 다루어야 쌍방에게 가장 큰 유익이 있는가?

가장 훌륭한 자격을 갖춘 분만이 그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그 분은 누구인가? 그 분은 인간 남녀의 정신과 육체를 설계하고 만든 분이어야 한다. 분명히,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물이 최선의 결과를 위하여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시다.

결혼이란 우연한 일, 여러 시대를 거치는 동안 우연히 발전된 일이 아님을 기억하라. 최초의 결혼식을 하나님께서 마련하셨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만드시고 다음에 여자를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부부로 결합시켜 주셨다. 각자는 성품과 책임이 약간 달랐다. 이에 대하여 창세기 2:18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보충으로서, 신세]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보충이란 상대물로서 완전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부족한 것, 필요한 것을 충족시킨다. 남자와 여자의 경우에 각자는 서로 필요한 것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남녀의 특성은 서로를 매우 훌륭하게 균형잡기 때문에 혹은 보완하기 때문에 결혼한 부부로서의 남녀는 “한 몸”으로 간주되었다. (창세 2:24) 이 마련이 남녀에게 가장 유익하였다는 사실은 성서의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알 수 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 1:31.

또한 여자가 창조될 때에 여자의 유일한 기능이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점에 유의하라. 여자가 남편의 보충 혹은 배필이라는 점만이 특별히 언급되었다. 여자는 분명히 자녀를 출산하는 일에 있어서 남편을 보충한다. 왜냐 하면 이 일은 남자 혼자나 여자 혼자서는 수행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는 기타 많은 면으로 남자를 보충한다.

여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

또한 여자와 여자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와 그의 남편 혹은 장차 가지게 될 자녀와의 관계보다 더 중요하였다. 이것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 수 있다. 우선, 남자가 더 중요한 책임을 받았지만 여자도 남자와 같이 하나님의 개성을 반영하는 특성을 받았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여자는 사랑이라는 속성에 있어서 남자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며, 이 사랑이 하나님의 개성에 있어서 중요한 속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 1서 4:8, 16) 그 말은 남자들에게와 꼭 같이 여자들에게도 적용된다.

또한 사도 ‘바울’은 단지 남자 신자들만이 아니라 여자 제자들도 포함시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린도 후 3:18) 사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그 분께서 그의 아들의 천적 정부의 요원이 될 특권을 여자들에게도 주신다는 점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는 ··· 남자나 여자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 3:2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시며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시고 여자들과 그 분과의 관계를 남자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신다.

누가 더 잘못하였는가?

그러나 얼마 후, 최초의 남자와 최초의 여자는 다 같이 그들의 것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을 탐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인도를 배척하고,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가지는 면에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기를 원하였다. 여자가 먼저 반역하고 다음에 남자도 반역하였다.—창세 3:1-6.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자만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에덴’ 동산에서 살텐데’ 하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옳지 않다. 남자가 먼저 창조를 받았으며 더 큰 책임을 가진 가족의 인도자로 지음을 받았다. ‘선장’으로서 그는 거친 바다에서도 똑바로 항해했어야 마땅하였다. 그러나 첫 남자 ‘아담’은 가장으로서 실패하였다. 그는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잘못은 더욱 심각하였다. 그러므로 로마서 5:12은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남자]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느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인도에서 떠난 후 인간 스스로 행위 규범을 고안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는 데 있어서 많은 경우에 여자들은 불리하였다. 왜냐 하면 남자가 체력이 더 세고 공격적이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게 되었고 흔히 여자를 학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더 높은 길이 알려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을 허용하시는데 시한을 두셨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처하게 된 나쁜 상태를 치료하시기 위하여 어떠한 행동을 하실 것인지를 점차적으로 계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생하시기 15세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과 관계하심으로써 그의 목적을 더 계시하셨다. ‘모세’를 통하여 그는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 율법 안에는 여자들에게 유익한 규정이 있었다. 이러한 규정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여자들은 주위의 이방 나라에 살던 여자들보다 훨씬 더 나은 상태에 있었다.

여러 세기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교를 소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더욱 온전히 알려주셨다. 그리스도인 마련 하에서는 여자들이 고대 ‘이스라엘’에서보다도 더욱 나은 위치에 있게 되었다. 참된 그리스도교는 남자들이 고안한 어떠한 생활 방식과도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하게 우월한 생활 방식이었으며 그러한 생활 방식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방법으로 실천될 때에 여자들이 혜택을 받았다.

그리스도교 제도하에서는 가족의 ‘선장’인 남자의 역할이 옹호되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방법을 고려하여 볼 때 그것은 가장 이상적인 마련이었다. 그러므로 에베소 5:23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라고 말한다. 만일 가정에 인도자가 없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최종 결정을 내릴 자가 없으므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항상 말다툼과 여러 논쟁이 있게 될 것이다.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족의 복지에 필요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역할을 남편에게 임명하셨다.

예를 들어 남편이 운전을 하다가 방향이나 속도에 있어서 즉각적인 변화를 요하는 어려운 사태에 접하게 될 때에 아내가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자기 생각대로 운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문제는 더욱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며 남편이 사랑으로 사려깊게 일을 처리해 나간다면 가족에게 참으로 최선의 결과가 있게 될 것이다.

어떠한 종류의 머리 직분인가?

그러면 남편의 머리 직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은 가정 내에서 그가 특히 심각한 문제에 있어서 그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그 머리 직분을 행사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가 가혹한 지배자 혹은 독재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신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왜냐 하면 에베소 5:28, 29은 이렇게 선언하기 때문이다.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부부는 “한 몸”이므로 남편은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아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남편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명하신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으로] ··· 알아 귀히 여기라.”—베드로 전 3:7.

당신은 어떻게 다른 사람을 귀히 여기는가? 물론 그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함으로써 그렇게 할 것이다. 당신은 그 사람의 의견과 호불호를 존중할 것이다. 문제가 없을 때 그에게 우선권을 줄 것이다. 골로새 3:12, 13의 이러한 교훈을 실천하는 것도 그를 귀히 여기는 방법이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라].”

남편이 이러한 성품을 나타낸다면 여자들은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기가 쉬울 것이다. 사실, 한 행복한 부인은 남편의 무엇을 가장 좋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주인이 나에 대하여 나타내는 부드러움과 이해심’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남편들에게 아내를 대할 때 나타내라고 권고하시는 성품이다.

또한 처음에는 자녀의 생활에 어머니의 역할이 더 중대하지만 나이를 먹음에 따라 아버지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은 도덕, 종교, 징계 등의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일을 아버지가 인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어머니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인도하는 일은 아버지가 해야 한다.—에베소 6:4.

인도자의 한 가지 일은 말로만이 아니라 몸소 실천함으로써 좋은 본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아버지가 자녀에게 본을 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한가지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장래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참으로 훌륭한 본이 된다!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에베소 5:25은 이러하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그렇다. 남편들은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여 아내를 위하여 생명까지 기꺼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러한 일을 하셨다.

남편이 아내를 그처럼 귀히 여기고, 존경하고, 이해하여 주고, 부드럽고 충실할 때 지각있는 여자는 그러한 남자로부터 해방될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여자에게도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으며 성서는 그 일에 대하여 훌륭한 많은 충고를 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주로 남자들의 책임을 논하고 있다.

다른 여자들을 대하는 일

남자들은 자기 아내가 아닌 여자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젊은이였던 ‘디모데’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이러한 충고를 받았다. “나이 많은 이를 책망하지 말고 오히려 아버지를 대하듯이 권하시오. 젊은이들에게는 형제를 대하듯이 권면하고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는 어머니를 대하듯이 권하시오. 젊은 여자들에게는 지극히 순결한 마음을 가지고 자매를 대하듯이 권면하시오.”—디모데 전 5:1, 2, 새번역.

남자들은 나이 많은 여자를 마치 어머니처럼 존경해야 한다. 그리고 젊은 여자를 마치 자기 누이인양 대함으로써 그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한다. 즉 그 여자를 ‘성의 대상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대해야 한다.

여자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견해

예수께서는 여자를 존중하셨다. 그는 여자들을 ‘열등’하다고 생각지 않으셨으며, ‘성의 대상자’로서 혹은 단순한 자녀 출산자로 취급하지 않으셨다. 한 번은 예수께서 두 자매인 ‘마르다’와 ‘마리아’를 방문하셨다. ‘마르다’는 음식을 장만하느라고 바빴으나 ‘마리아’는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들었다. ‘마리아’가 자기를 돕지 않는다고 ‘마르다’가 불평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누가 10:38-42) 예수께서는 집안 일을 경시하신 것이 아니라 여자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 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 한 여인이 예수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다. (누가 11:27, 28) 그 분은 여자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머니로서의 여자의 역할보다 더 중요함을 보이셨다. 결국,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은 여자의 생활에서 다만 조그마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남자가, 심지어 남편이라도, 여자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도록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서 원칙은 이러하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 5:29.

그러므로 당신이 성서에서 남자들이 여자를 대하는 방법에 대하여 가르치는 내용을 참으로 연구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서 확실히 여자들을 존귀하고 은총받는 위치에 두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하나님의 높은 표준을 따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 표준이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표준은 그러한 남자들의 그릇된 태도를 폭로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도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책임 추궁을 당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남자들은 하나님의 표준을 받아들인다. 만일 당신이 여호와의 증인들을 조사해 본다면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표준을 생활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지를 계속 배우며, 그 결과 자신들에게와 그들이 상대하는 여자들에게 유익을 더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과 어머니들과 누이들도 역시 하나님의 더 우월한 표준을 동일하게 존중하고 그들의 역할을 합당하게 수행할 때 진정한 화목과 행복을 발견한다. 그들 중 아무도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 마련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오는 월등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 생활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어 원만한 생활을 하는 남자들과 여자들도 해방을 필요로 한다.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증오, 범죄, 전쟁, 굶주림, 질병, 그리고 죽음에 시달리는 세상으로부터의 해방, 그러한 부당한 고통을 비단 여자들 뿐 아니라 남자들과 자녀들도 경험하는 세상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러한 해방은 정녕 피안의 꿈에 불과할 것인가?

[13면 삽화]

한 여인이 예수께 “당신을 밴 태[가] ··· 복이 있도소이다.” 하고 말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