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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인내하는 방법
  • 깨어라!—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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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75 9/22 20-21면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인내하는 방법

죽음은 갑자기 일어난다. 사람은 여러 햇 동안 깊이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망하는 일을 당하는 일이 있다. 그 사망의 충격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같이 느껴질 것이다. 눈에서 눈물이 한없이 흐를지 모른다. 그가 느끼는 허탈감은 평생에 가장 쓰라린 감정적 경험일 것이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그는 어디서 격려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그는 이 가장 고통스러운 입장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울음을 터트리는 것을 약함의 증거라고 생각지 말라. 눈물을 흘리면 감정이 진정된다. 성서에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이 굉장한 사람이었는데, 그도 운 일이 있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에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였다. (창세 23:2) 그의 손자 ‘야곱’은 아들 ‘요셉’을 잃었을 때에 울었다. (창세 37:35)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눈물을 흘리신 일이 있다. (요한 11:32-35) 눈물을 흘리는 것은 비통함을 나타내는 정상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물론 절제없이 무한정 눈물이 계속되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다.

슬픔을 당한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그 죽음을 골돌히 생각하려는 유혹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수심에 잠겨있는 것은 문제를 시정하지도 개선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가엽게 여기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감정을 계속 침체해 있도록 할 뿐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좋다. 정신 집중을 요하는 활동이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일을 바쁘게 하는 것 등은 상당히 편안감을 준다.

많은 사람들은 감정의 상처를 개방해 놓고 기억의 세계에서 살아가려고 함으로써 계속 감정을 자극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햇 동안 사랑하던 사람이 살아있을 때와 꼭 같이 가정을 꾸밈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들은 아주 정상적인 변경도 하기를 꺼린다.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하는 것은 허사이다. 이것은 슬픔을 연장시켜 줄 뿐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현재를 즐기고 미래를 위하여 살아갈 때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가능한 한 정상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인내하고 비정상적인 슬픔을 피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이전의 활동과 책임을 다시 수행할 때에 자연적인 치유 과정에 도움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슬픔을 인내하는 데 있어서의 가장 큰 장애물은 그러한 죽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손실을 당하였는가를 곰곰 생각하려는 경향일 것이다. 자기가 현재 얼마나 외로운가를 생각하는 것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이전에 해 주던 일들을 이제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슬픔을 이겨나가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생각을 자신에게서 돌려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의 감정은 아물게 될 것이고, 생활에서의 공허감은 점차 메워질 것이다. 만일 그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사람들이 자기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생활을 가치있게 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상의 치료법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격려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격려이다. 성서는 “사람이 왜 죽으며, 죽은 자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만족스러운 대답을 준다. 이러한 방법으로 성서 진리는 슬픔과 비탄을 가볍게 해 준다. 그것은 희망을 주며, 희망은 애도자가 자제력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그런 성서 지식은 사랑하는 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을 제거해 준다. 창조주께서는 성서를 통하여 죽은 자들이 다시 삶을 누리리라는 희망을 밝혀 준다.—사도 24:15; 요한 5:28, 29.

부활에 관한 놀라운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눈물과 슬픔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의 슬픔은, 성서가 주는 희망을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와 같이 크지도, 깊지도 않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여호와]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데살로니가 전 4:13-15, 18.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들은 기도로 하나님께 향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위안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배워서 실천한다면 아픈 가슴이 낫게 된다.—시 86:6, 7.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실시하는 무료 가정 성서 연구 활동에 대하여 듣고 슬픔을 당한 때에 그러한 도움을 요청하였다. 한 사람은, “최근에 뜻밖에 가족 상을 당하였는데, 현재의 생명이 인생의 전부인가를 알고 싶습니다” 하고 편지하였다. 두말할 것도 없이,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서를 사용하여 그러한 사람들에게, 죽음의 이유, 죽은 자들의 상태, 부활을 통하여 온 땅을 뒤덮는 낙원에서 살게 되리라는 죽은 자들의 희망 등에 관하여 이해하도록 도와 주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감정적 경험이지만, 그것은 인내할 수 있다. 건전한 육체 활동을 부지런히 하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분의 말씀인 성서를 공부하여 사람들이 죽는 이유와 죽은 자들을 위한 희망 등을 배우라. 당신이 비탄과 슬픔에 젖어 있을 때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당신을 돕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긴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들이 다음번에 당신의 집을 방문할 때에 당신을 돕겠다는 그들의 진정한 제의를 받아들이라.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그들의 왕국회관으로 직접 찾아가보라. 당신은 크게 환영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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