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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홀연한 승천’을 기다리고 있는가?깨어라!—1983 |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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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머물게 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러한 믿음이 성서에 들어 있는가?
성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홀연한 승천을 할 것이라고 가르치는가? 그들은, 나머지 사람들은 재난을 당하게 버려두고 데려가심을 받을 것인가?
사실은 “홀연한 승천”(rapture)이란 말은 성서에 나오지 않는다. 이 믿음은 데살로니가 전서 4:16, 17에 기초한 것인데, 거기에는 그와 관련된 “끌어 올려”(caught away) 갈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기록은 이러하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홀연한 승천을 믿고 있는 신자들은,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시고, 죽은 “성도”들이 부활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끌어 올려 가는 일, 즉 홀연히 승천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새로운 불멸의 몸을 받고 올라가 공중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고, 그분은 그들을 하늘로 데리고 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오심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성서는 그리스도의 돌아오심의 목적이 무엇임을 알려 주는가?
그리스도의 돌아오심의 방법과 그 목적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문자 그대로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시사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성서는 그분은 이 땅에 그리고 인간과 관련된 특정한 확정적인 목적을 달성하시는 데에 그의 주의를 돌리신다는 의미로 돌아오시는 것임을 알려 준다.
데살로니가 전서 4:16에 언급된 그리스도의 강림은, 성서가 하나님께서 땅으로 강림하신 것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예컨대, 성서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사무엘 하 22:10)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미가 1:3) 이러한 말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하늘 처소를 떠나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상사에 그분의 주의를 돌리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땅에 주의를 돌리실 때, 그분은 죽음에서 잠자고 있는 자들을 하늘에서 통치하는 일에 자기와 연합시키기 위해 부활시키신다. (데살로니가 전 4:14, 15; 계시 20:6) 그들은 영계에 계신 예수와 연합하기 위해, 예수와 같이, 보이지 않게 올리움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아직 지상에 살아 있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지상의 행로를 마치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자로 부활되어] 공중에서 [보이지 않는]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전서 4:17에 언급된 “그 후에”란 말은, 그 후 죽게 되는 충실한 자들 역시 영의 부활을 받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고린도 전 15:51-5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는, 훨씬 더 많은 것이 성취된다. 하나님의 하늘 왕국의 즉위한 왕으로서 그분은 먼저 ‘사단’을 하늘로부터 추방하여, 그를 이 지구 근처에 감금하신다. 그의 하늘 보좌에서 예수께서는 검열과 심판을 행하기 위해 땅으로 주의를 돌리신다. 민족들을 “그 앞에 모으고”,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분리하신다.—마태 25:31-33; 계시 12:7-12.
예수께서 행하시는 그 분리 사업은 개개인들이 그분이 돌아오실 때 “살아남은 자”, 즉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인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대하는 태도에 기초한다. 예수의 “형제”들은 “왕국의 좋은 소식”(신세)를 전파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사업을 맡았다. (마태 25:34-45; 24:14; 28:19, 20) 예수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양”으로 분리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는 일을 그리스도의 “형제”들과 함께 행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홀연한 승천 혹은 천적인 부활을 받아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 그들은 “큰 환난”을 통과하여 지상 낙원 상태에서 영원히 살 성서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왕국의 지상 영역과 관련하여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초대를 하실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태 25:34, 46; 계시 7:9,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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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언어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깨어라!—1983 |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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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언어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
나는 언어가 없다면 우리의 생활이 어떠할 것인가를 상상해 본다. 우정적인 대화도 유용한 지식이나 경험의 교환도 전혀 없을 것이며, 당신은 이 잡지를 읽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류에게 교훈과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인쇄된 하나님의 말씀도 전혀 없을 것이다.
언어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현재 3,000가지 이상의 언어가 지상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중 1,000여가지가 ‘아프리카’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 모든 언어들은 어떻게 발달하였는가? 보다 오래된 언어는 미개한 것이었고, 현대 언어들은 다듬어진 것인가? 복잡성에 대해, 당신은 범어와 ‘줄루’어와 같은 언어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어린 아이는 세살까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언어를 할 줄 알게 된다. 이것을 일부 사람들은 인간이 이제까지 행하도록 요청받은 것 중에 가장 힘든 지적인 업적으로 간주한다. “인간의 언어는 신비한 것이다. 그것은 신의 선물이고 기적이다”라고 저명한 사전 편찬가 ‘루드비히 쾰러’는 기술하였다. 「진화」(‘라이프’ 자연계 문고)라는 책은 인간의 조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은 오직 그들 간의 의사 소통의 방식을 발전시킴으로써만 ··· 살아 남을 수 있었다. ··· 약 100만년 전의 원인(猿人)은 ··· 아마 몇가지 언어음을 터득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언어는 인간의 발명품인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인가?
언어는 참으로 어떤 원인의 끙끙거리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통해 발전하였는가? 만일 그렇다면, 고대 언어는 유치하고 원시적인 반면, 현대 언어는 보다 복잡하고 능률적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지상 거민의 약 50‘퍼센트’가 ‘인도-유럽’ 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이 어족의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언어에는 범어와 희랍어가 포함된다. 이러한 고대 언어들을 현대 언어들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고대 문헌이 풍부한 희랍어를 고려해 보라. “우리의 기록은 미개한 언어가 유치한 출발에서 문학을 서서히 진화시킨 것으로 보여주지 않는다”고 희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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