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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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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봄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미래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이유
  • 여호와의 보호에 대한 확신
  • 현재 새 질서 상태를 위해 바로잡음
  • 미래에 대한 감격적인 전망
  • 장래에 대한 확신을 지금 강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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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파75 9/15 421-426면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봄

“처음 확신을 끝까지 굳게 잡으[시오].”—히브리 3:14, 새번역.

1. 미래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읍니까? 설명하십시오.

의로운 “새 질서”에 대한 밝은 미래를 설명하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석에서 “도저히 그럴 수 없다!”고 무시해버립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이 되고 “오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미래에 대해 이러한 실망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기적인 나라들이나 탐욕적인 국가 동맹들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스리는 미래를 열렬히 예상할 때에 그들의 마음은 확신에 넘칩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전망은 흐려질 수 있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읍니까?

2. 미래에 대한 확신있는 전망을 갖는 데 무슨 위험성이 있으며, 사도 ‘바울’은 이 점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경고합니까?

2 위험성은 현 사물의 제도에 지나치게 휩쓸리는 데 있읍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좌우간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그렇게 휩쓸리는 행동을 정당화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말에 동의합니까? 그러나 그렇게 휩쓸리는 일이 깊어지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당신은 그러한 행동의 결과를 직접 보았을 것입니다. 아마 온 가족—부모와 자녀—이 미래에 대한 전망이 그들에게 더 이상 실제성이 없을 정도로 현재 생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 보기에는 이른바 “실제적” 방법으로 획득한 것만이 실재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들의 마음을 악한 것을 갈망하는 믿음 없는 마음으로 변하게 한 것입니다. 심한 말같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하였읍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 가운데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없도록 하시오.” (히브리 3:12, 새번역) ‘바울’의 이 말이 얼마나 포괄적인가를 유의하였읍니까? 그는 우리 중 아무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을 여러 햇 동안 충실하게 섬긴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장차 일어날 일들을 검토해 보고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것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을 마음에 확고히 하도록 합시다. 이렇게 하여 미래에 대한 확신이 강화되면, 우리는 “처음 확신을 끝까지 굳게 잡”을 것입니다.—히브리 3:14, 새번역.

미래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이유

3. 성서는 임박한 세계적 대결을 어떻게 묘사하며, 무슨 자랑스런 선언이 있을 때에 그 일이 있을 것입니까?

3 오류가 없는 지침인 성서는 가까운 미래에 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성서는, 악귀들에게 속아넘어간 나라들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전쟁 체제로 이끌려가는 것을 묘사하고 있읍니다. 이렇게 알려줍니다. “저희[악귀의 영감받은 표현들]는 ···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그곳을 ‘아마겟돈’이라고 합니다. (계시 16:14, 16) 나라들이 아주 철저히 속아 넘어갔기 때문에 임박한 하나님과의 대결에 대해 경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만하게도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외치면서 미래의 안전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랑의 선언이 나오자마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5:3) 이 일은 아직도 멀리 있는 일입니까? 나라들에 의한 현재의 평화 노력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놀라운 현상이 진전될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4. (ㄱ) 어떻게 “큰 환난”이 시작됩니까? (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어떤 공격이 여호와로 하여금 그들을 구출하게 합니까?

4 놀랄 만큼 갑자기 짐승같은 정치 요소는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을 덮칠 것입니다. “큰 ‘바벨론’”의 가증한 책략은 통치자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정도가 되어 심지어 그의 음녀 같은 봉사도 그를 통치자들의 분노로부터 보호하지 못할 것입니다. 통치자들은 그의 가식적인 권위를 경멸하기 때문에 그를 발가벗기고 살을 먹고 불로 살라버립니다. (계시 17:5, 16; 18:8, 21) 이리하여 지상에 있는 마귀의 보이는 사물의 제도에 대한 “큰 환난”이 시작됩니다.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겉보기에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이 방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같습니다. (에스겔 38:11)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라고 합니다. (시 91:2)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마귀는 그러한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구름이 땅에 덮임 같이” 그는 큰 군대를 동원하여 겉보기에 방비가 없는 것같은 하나님의 종들을 공격합니다. (에스겔 38:2, 16) 이 비겁하고 부당한 공격은 여호와의 의로운 분노를 일으키며, 하나님께서는 일어나셔서 전례없이 강력한 공격 무기, 곧 창궐하는 질병, 쏟아지는 비, 우박, 불과 유황 등을 보이는 적의 군대 위에 내려서 하나님의 종들을 구출하십니다. (에스겔 38:18, 21, 22) 원수 군대는 신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에 여호와의 백성을 열심히 공격합니다. 그들은 너무 늦게야 자기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5. 반대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승리는 얼마나 철저합니까?

5 승리는 얼마나 철저합니까? 그것은 단지 10분의 1이 살륙당하는 정도입니까? 하나님의 종들을 증오하는 그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비참할 것입니다. 그들은 10분의 1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승리는 완전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충실한 숭배자들을 “큰 환난”의 최종 부분을 통하여 보호하셨으며, 이제 그들은 반대자들이 일소된 땅에 서 있읍니다. 그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손을 한번 쳐든 적도 없읍니다. 여호와께서 아들의 지휘 하에 있는 메시야 왕국과 천사 군대를 사용하여 그렇게 하셨읍니다!—계시 19:11-15; 19-21.

6. 그리고 나서 ‘사단’과 그의 악귀들에 대한 무슨 최종적인 조치가 행해질 것이며, 메시야 왕국의 다스림으로 어떤 상태가 이루어질 것입니까?

6 ‘아마겟돈’ 전쟁이 끝난 후에 아직 한가지가 남아 있으며, 그것이 신속히 완수됩니다! 공격자들인 ‘사단’ 마귀와 그의 보이지 않는 악귀 군대들이 무저갱에 던져집니다. 그들이 무저갱에 던져진 다음 뚜껑이 닫혀 일천년 동안 봉함됩니다! (계시 20:1-3) 이제 그리스도 하의 메시야 왕국이 그 거대한 파멸을 살아남은 사람들을 방해없이 다스리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 부활된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연합하여 땅에 가득차게 됩니다.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실 때에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던 동일한 능력을 적용하여 순종한 인류를 의로운 천년 통치 동안에 완전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7. 미래에 대해 온갖 자세한 내용을 다 알고 있지 않다고 하여 왜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우리는 무슨 유리한 점을 가지고 있읍니까?

7 미래에 대한 기록은 실로 감격적입니다! 우리가 자세한 모든 점들을 다 알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점들을 알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알고 있는 점들만 가지고도 현재 우리 주위에서 밝혀지기 시작하는 신속한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충분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모든 교직자들이 큰 ‘바벨론’과 함께 죽을 것인가, 그 거대한 종교 제국의 모든 부분이 동시에 온 땅에서 사라질 것인가 등의 질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웅대한 약속에 믿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러한 지식이 필요하기나 한 것처럼 그러한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읍니다. 그 대신에, 우리는 천년 후의 장래 일은 고사하고 가까운 장래의 일 한가지도 자세히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유리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를 신뢰한다면 장차 일어날 일들을 기대할 이유가 충분히 있으니 실로 감사할 일입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읍니다. (예레미야 17:7) 부가하여, 우리가 확신을 가질 또 다른 웅대한 이유가 있읍니다.

여호와의 보호에 대한 확신

8, 9. (ㄱ)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가질 또 다른 탁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일이 발생될 것을 압니까?

8 이상 논의한 사실로 보아 우리가 확신을 가질 가장 큰 이유는 여호와께서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뒷받침하신다는 지식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땅에 대해 실망적인 보고를 가지고 왔던 겁에 질린 정탐군들과는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하고 이렇게 선언하였읍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민수 14:9)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8:31) 사실, 필자 ‘바울’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충실한 숭배자들 사이의 사랑의 띠가 끊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절대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는 어느 것도,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읍니다. (로마 8:35-39) 확신을 가질 얼마나 탁월한 이유입니까!

9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찬란하고 매혹적인 미래를 바라볼 풍부한 이유가 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분의 말씀 가운데 발표하신 내용과는 다르게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읍니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과 같지 않으시며, 언제나 벗들에 대해 충실하셨읍니다. ‘바울’은 그것을 믿었으며, 하나님께 대한 그리고 약속된 미래에 대한 그의 확신은 헛된 것이 아니었읍니다. 만일 그가 오늘날 지상에 살아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간절히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10. (ㄱ) 시편 91편은 “큰 환난” 기간에 개개인이 보호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합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보호를 하실 것입니까?

10 그런데,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 편이시기 때문에 “큰 환난” 기간에 우리 각자를 죽음이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기적을 통하여 개입하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까? 일부 사람들은 시편 91:7-12와 잠언 3:25, 26을 그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잘못 인용하였읍니다. 시편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a 우리가 이 귀절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기서 ‘모세’가 다가오는 “큰 환난”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때에 하나님의 종들 각자를 완전히 보호해 줄 것을 선언하고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 세기 후에 ‘바울’이 자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충실한 추종자들이 조롱과 욕설과 감옥과 환난과 기타 여러 가지 박해와 횡포한 죽음까지도 당하였다는 것을 설명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럴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한 집단으로서 “큰 환난” 기간에 원수에 의해 멸절되지 않도록 보호하실 것이며, 그분께서도 심판을 집행하실 때에 그들을 다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점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히브리 11:36-38.

11. (ㄱ) 잠언 3:25, 26은 하나님의 충실한 추종자 개개인이 납치나 체포를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까? (ㄴ) 이에 대한 어떠한 예들이 있읍니까?

11 전술한 「잠언」의 필자인 ‘솔로몬’은 우리가 신체적 해를 전연 받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만한 이유를 주고 있읍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큰 환난” 기간에 충성된 추종자들을 납치나 체포당하지 않도록 하시리라는 증거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솔로몬’이 이 글을 쓸 때 오늘날 우리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 특히 자기 왕국에서 살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1:1-4; 3:25, 26) 그의 말을 이러한 면으로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정직한 생활을 하도록 돕기 위해 그리고 일상 생활에 유익을 주기 위해 충고한 것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걸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읍니다. 무슨 종류의 ‘걸림’에 대해 말한 것입니까? 예를 들면, 사람들을 찾아 거리를 배회하는 음녀의 유혹에 걸리는 것이었읍니다. (잠언 5:3-14) 우리는 그의 말이 우리를 위해서도 탁월한 교훈임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 말은 우리가 감금당하는 일이 없을 것을 보증하는 것이 아닙니다. 충실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마지막 때”에 감금을 당한 일이 있었읍니다. (예레미야 37:15, 21) 우리는 또한 “큰 환난” 기간에 그리스도인 성실을 충성스럽게 고수한다는 이유로 생명을 상실하는 사람이 전혀 없을 것으로 기대할 수도 없읍니다. 사도 ‘야고보’가 생명을 상실한 바와 같습니다. (사도 12:1, 2) 그렇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읍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12. (ㄱ) 우리가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고 있음을 어떻게 압니까? (ㄴ) 충실하다가 생명을 잃는 자들을 여호와께서는 잊으실 것입니까? 그분은 무슨 마련을 하셨읍니까?

12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하나의 집단으로서 보호하고 계시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읍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단’에 의해 오래 전에 지상에서 일소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큰 환난” 기간에 늙어서 혹은 병들어 죽기도 하고, ‘말라위’의 형제들과 같이 박해 때문에 죽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한 가능성을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미래를 확신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읍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부활로 나오리라고 선언하셨읍니다. (요한 5:25-29) 그러므로, 부활이 죽음의 영향을 제거합니다. ‘사단’이 “환난” 기간에 우리 각자를 시험하는 일을 중지할 것이라고 성서는 약속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의 충실한 봉사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실 것을 알면 위안이 되지 않습니까?

13. (ㄱ) 큰 ‘바벨론’의 멸망 때에 하나님의 백성도 전부 멸망될 것입니까? (ㄴ)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어떠한 반응을 일으킵니까?

13 집단으로서 우리를 보호하는 일은 큰 ‘바벨론’의 멸망과 ‘아마겟돈’ 전쟁을 통하여 새 질서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바벨론’이 무력하게 되고 세상사를 관장할 그의 능력이 사라질 때에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으로서의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질 만한 훌륭한 이유가 아니겠읍니까!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의 멸망에 대해 즐거워하라고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러한 외침이 있읍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계시 18:20)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실 때에 보호를 받을 것과 하나님의 의로운 새 질서에 들어가게 될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마태 25:46.

현재 새 질서 상태를 위해 바로잡음

14. 현재 의로운 표준에 부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변화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가능성이 있읍니까?

14 그러나, 미래에 대해 확신있는 전망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지금 우리 생활과 사고방식을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과 조직을 통해 밝히는 표준에 따라 바로잡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랫 동안 젖은 습관과 태도를 고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나는 새 질서가 온 후에 내 방식을 변경시키겠다. 그 때에는 더 용이할 것이다’ 하고 말하면서 핑계를 대서는 안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고의로 경시하는 것은 그분 앞에 죄가 될 수 있으며, 새 질서에 들어갈 권리를 완전히 상실할 수도 있읍니다.—야고보 4:17.

15.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할 분야는 교리적 및 예언적 이해 뿐입니까? 우리의 사고 방식과 행동을 바로 잡도록 우리는 어떤 도움을 받고 있읍니까?

15 바로 잡는 일이란 ‘충성된 종’이 설명하는 바에 따라 교리적 또는 예언적 이해에 단지 지성적으로 동의하는 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마음의 변화, 예를 들면, 인종적 사회적 신분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편견이나 태도를 근절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읍니다. (사도 10:34) 또는 시정해야 할 낡은 세상의 잔재로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다고 밝혀진 것일 수도 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서 이러한 필요한 것들을 바로잡도록 돕기 위해 유능한 회중 감독자들을 주셨읍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을 격려하였읍니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 (데살로니가 전 5:12, 13) 그들의 사려깊은 지도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 그들의 일을 용이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새 질서 생활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에 일치하게 틀잡게 해 주며, 자기 백성을 대하는 여호와의 방법이 우월함을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로 미래를 예리하게 기대하도록 해 줄 것입니다.

16. ‘이사야’와 그리스도 예수께서 본을 보이신 바와 같이, 일의 임명에 관하여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합니까?

16 새 질서에는 해야 할 온갖 종류의 일들이 풍부히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임명받든지 기꺼히 봉사하고 일할 태도를 가질 것입니까? 과거에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이 받은 책임이 고상한 것이거나 비천한 것이거나 그러한 자발성을 나타냈읍니다. ‘이사야’는 예언자라는 어려운 일을 열렬히 받아들였으며,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외쳤읍니다. (이사야 6:8) 예수께서는 제자들로부터 “주”라고 인정을 받았는데도 그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종의 입장에서 봉사할 자발성을 보이셨읍니다. (요한 13:3-17) 우리를 위해 얼마나 훌륭한 본을 보이신 것입니까!

17.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임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 것입니까? 우리는 무슨 다른 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까?

17 우리가 받은 임명이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처음에는 땅을 낙원 상태로 만드는 데 필요한 고된 일을 좋아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비이기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우리 개인의 관심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부활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고 그들을 돌보는 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된 사람들 대다수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새 질서 사고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만도 얼마나 큰 일인가를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읍니까? 게으른 경향이 있는 사람은 그 때에 잘해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고 경고하고 있읍니다. (잠언 21: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현재와 장래에 하도록 주신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있어서, 현재 우리의 사고 방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즐거움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읍니다.

18, 19. (ㄱ) 낙원 땅에서, 살 장소에 관해 어떤 가능성이 있읍니까? (ㄴ) 우리는 새 질서에서 임명받은 지역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왜 우리는 거기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게 되지 않을 것입니까?

18 우리가 미래 낙원에서 살 장소에 있어서도 우리 원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살 장소를 임명받을 가능성이 있읍니다. 그러한 마련에 얼마나 잘 적응할 것인가는 우리가 현재 요청받은 회중 혹은 서적 연구에 기꺼히 참석하는가 하는 점에 나타날 수 있읍니다. 우리가 새 질서에서 임명받은 지역에 적응한다면 그것은 즉시 우리의 “고향”이 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선교인들은 오늘날도 전도의 임명에 관하여 그렇게 느끼고 있읍니다.

19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섬길 “군왕”들을 선택하도록 마련하신다는 사실도 위안이 됩니다. 이 점에 있어서도 그분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이해하심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방임되지 않고 충성되고 입증된 사람들이 우리의 유익을 보살펴 줄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점 또한 확신을 가질 이유가 됩니다.

미래에 대한 감격적인 전망

20, 21. (ㄱ) 왜 우리는 미래에 대해 추측할 필요가 없읍니까? (ㄴ) 미래에 대해 성서가 알려 주는 감격적인 것들 몇가지는 무엇입니까?

20 미래를 내다 볼 때에 우리 앞에는 여러 가지 매혹적인 전망들이 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 밝혀져 있지 않은 세세한 점에 관해 추측을 할 필요가 없으며, 도리어 그러한 문제에 대해 초조해 하고 걱정하는 대신 여호와를 기꺼이 섬길 것입니다. 누가 부활될 것인가, 아이들을 어떻게 보살필 것인가, 어떤 형태의 집을 지을 것인가, 우리가 기계들을 사용할 것인가 등등의 질문을 추측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만일 우리가 그러한 점들을 참으로 알 필요가 있다면 여호와께서는 그 답을 알려 주셨을 것입니다.

21 모르는 것들을 추측하는 대신 성서가 알려 주는 감격적인 것들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승인을 받은 생명의 전망입니다. 성서는 지상에 생명체가 가득찰 것을 알려 줍니다. 죽은 자들을 다시 맞이하는 것은 실로 큰 즐거움일 것입니다! 사랑하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때에 기쁨의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그리고 성서에 언급된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을 직접 만나는 일을 상상해 보십시오! 또한 우리의 몸이 ‘소년 때의 활기를 회복’하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이겠읍니까! (욥 33:25) 완전한 식품, 만족스러운 작업, 접촉하기 즐거운 동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할 완전한 지유 등이 있는 낙원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22.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는 어떠한 보증이 있읍니까?

22 미래가 그렇게 될 것을 우리는 참으로 확신할 수 있읍니까? 확신할 수 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으므로 그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히브리 6:18)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형성해 가시는 분을 온전히 확신하고 앞날의 사건들을 열렬히 바라봅니다!

[각주]

a 「파수대」 1975년 2월 15일호 81, 82면 참조.

[425면 삽화]

겁에 질린 자들과는 달리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을 온전히 확신하고 좋은 보고를 가져왔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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