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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생활깨어라!—1979 |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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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하는 일을 그치고 인생의 전체 여정을 행복하게 생각할 대상으로 여길 것이다. 다시 요약하여 말한다면, 행복에 이르는 길은 없다. 왜냐 하면 행복이 바로 길이기 때문이다.”
“경건”의 중요성
현재의 축복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결심은 확실히 당신의 생활을 더욱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최대의 유익을 얻는 데는 그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어떻게 그러한가?
사도 ‘바울’이 묘사한 바와 같다.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디모데 전 6:6) 필요한 성품은 “경건”이다. 그것은 창조주를 경외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그것은 동료 인간에 대한 경건한 행동으로 나타난다.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시간을 내어 성서를 주의깊이 연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행실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그에 순응하여 생활할 때 참으로 커다란 유익이 있다. 그러한 행로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갈 새 질서에서의 미래의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다.—계시 21:4.
현재 성서 원칙에 따라 생활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이 있고 동료 인간과의 관계가 가장 좋은 상태로 호전된다. 그리스도인 “새 사람”의 특징인 동정심, 친절, 겸손, 참을성, 관대함을 보일 때 사람들의 응답은 호의적일 것이며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행복해진다.—누가 6:38; 골로새 3:10-14.
단순히 쾌락 추구로써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다. 성서는 부지런히 일하되 수고의 결실을 즐기기 위해 매일 “한움큼의 휴식”을 취하라고 권한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에 관해 정확히 배우는 중요성과 성서 원칙에 따라 생활하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솔로몬’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하였다. (전도 12:13) 당신은 성서의 지침에 따라 당신의 생활을 틀잡음으로써 그 본분을 다할 것인가?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정신의 평화와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인생에서 진정하고 영속적인 즐거움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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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믿음깨어라!—1979 |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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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믿음
“낡은 신앙은 쇠퇴해 가며 그것을 대치할 새로운 신앙은 나오지 않는다” 하고 1978년 11월 30일자 「더 월 스트리이트 저어널」지의 한 논설에서 말했다. 그 논설은 ‘기아나’에서의 집단 자살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 논설은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종교의 쇠퇴는 명백하다. 사교들이 호소하는 것은 믿음의 확실성을 갈망하는, 믿고자 하는 인간 의지의 심원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성 종파를 찾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남‘아프리카’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와 같은 그러한 문제로 여념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위하여서는 거의 시간을 바치지 않는다. 심지어 종교적 충동에서 악과 선을 가려내는 데 일천년의 경험을 갖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도 영혼을 붙들기 위한 그의 힘을 상실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희망을 과학에 둔다. 그러나 그 논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쇠퇴하는 것은 종교적 신앙만이 아니다; 계몽으로부터 나온 비종교적 믿음도 그렇다. 추리의 힘, 과학의 힘, 발전에 대한 믿음—모두 증가하는 의심의 도가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종교계와 마찬가지로 비종교계에 있어서도 그러한 추세로 인도하는 자는 기성 사제들이다.
“원자탄을 발명한 과학자들 역시 매호 표지에 최후의 심판 시계를 실을 잡지를 내기 시작했다. 즉 그들 자신의 꾀에 대한 당황케 하는 증언과 과학이 선하다는 것에 대한 그들 자신의 의심의 신조를 담고 있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과학 세계가 우주의 “대폭발” 기원에 대한 증거를 쌓는 데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질문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궁극적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없는 그들의 무능력에 직면할 때, 과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마저 흔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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