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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3 6/1 18-21면
  • 한 연로자로부터 ‘디모데’가 받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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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연로자로부터 ‘디모데’가 받은 교훈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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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3
파83 6/1 18-21면

한 연로자로부터 ‘디모데’가 받은 교훈

여러 해 전에 현대 ‘여호와의 증인’의 한 회중의 장로들은 동료 그리스도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여러분은 저를 너무나 많이 도와 주셨으며 여러분이 해주신 모든 일에 대해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도움은 현재의 제가 되도록 도와 주었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편지가 이들 장로들을 기쁘게 하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충실한 장로들은 항상 그들의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그리고 연로한 장로들은 종종 젊은 장로들이나 경험이 적은 장로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훌륭한 교훈을 해주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그의 두개의 편지에서 젊은 동료 장로 ‘디모데’에게 그렇게 하였다.

어떻게 해서 ‘바울’과 ‘디모데’ 사이에 사랑에 찬 관계가 있게 되었는가? 우리는 ‘바울’의 교훈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

분명히 ‘디모데’는 ‘바울’이 그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을 하면서 ‘루스드라’에 왔을 때인 기원 47-48년 경에 ‘바울’을 만났을 것이다. 그 때에 ‘디모데’는 아마 십대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방문 중에 ‘디모데’, 그의 어머니 ‘유니게’ 그리고 그의 외조모 ‘로이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러나, ‘디모데’의 아버지는 믿지 않는 희랍인이었다. 그 때문에 ‘바울’은 특히 ‘디모데’에게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하여간, ‘디모데’는 훌륭한 발전을 하였으며 “거짓이 없는” 믿음을 발전시켰다. (디모데 전 1:5) ‘바울’이 ‘디모데’를 여행 동반자로 선택한 것은 약 2년 후에 그의 두번째 선교 여행을 하면서 ‘루스드라’에 다시 찾아왔을 때였다.

그 후 약 15년 동안 사도 ‘바울’과의 교제가 계속되었다. ‘디모데’가 ‘바울’의 첫 번째 편지를 받은 것은 ‘에베소’에서 장로의 자격으로 봉사하고 있을 때였다. 그 편지는 기원 61년에 ‘바울’이 ‘로마’에 있는 감옥에서 풀려난 지 얼마 후에 그리고 그가 기원 64년에 두번째로 투옥되기 전에 쓴 것이다. 두번째 편지는 아마 ‘바울’이 죽기 직전인 기원 65년에 썼을 것이다.—디모데 후 4:6-8.

‘바울’이 ‘디모데’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고 불렀고, 심지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래서 ‘바울’이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아버지 같은 충고를 한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이 자신의 죽음이 가까왔음을 알고 있을 때, 그가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쓴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는가! 특히 그의 두번째 편지에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개인적 관심이 나타나 있다. 그 편지에는 첫 번째 편지에서보다 “너,” “너의” 및 “네 자신”이라는 인칭 대명사가 약 25 ‘퍼센트’ 정도 더 자주 나온다. 분명히 이 연로한 장로는 젊은 동료에게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개인적 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디모데 전 1:2; 5:23; 디모데 후 1:2; 4:9.

그에 더해서,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도 ‘바울’은 ‘디모데’가 그리스도인 회중의 관심사를 잘 섬기기를 원했다. ‘디모데’의 신체적 및 정신적 한계를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가 비교적 젊어서 “청년의 정욕”에 영향받기 쉽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교훈하였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디모데 후 2:22; 디모데 전 4:16) ‘디모데’가 그보다 연로하고 경험이 많은 장로로부터 하나님의 교훈을 받은 것에 대해 참으로 감사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날의 젊은 장로들 역시 그러한 도움과 지도를 깊이 인식한다.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교훈에는 무엇이 포함되었는가?

‘너는 배운 일에 계속 거하라’

그리스도인—장로이든지 아니든지—으로서 충실한 행로를 계속하는 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요구한다. 아무도 젊음의 힘이나 능력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결코 안된다. 기도의 가치를 결코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바울’의 다음과 같은 조언은 적절하였다. “분노와 다툼[논쟁, 신세]이 없이 거룩한[충성스러운, 신세] 손을 들어 기도하[라.]” (디모데 전 2:8) 장로들이 회중 문제들을 토론하기 위해 함께 모였을 때 하나님의 지도를 구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이같이 여호와께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것은 끝없는 논쟁을 막아 주며 분노를 터뜨리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막아 준다.

인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회중과 밀접히 머물러 있어야 하며 회중의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바울’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디모데’는 이것이 오늘날의 교직자들이 하는 것처럼 정치가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였다. 도리어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세계의 정치적 권위들로 그리스도인들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계속하고,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왕국 소식을 계속 전파하도록 허락해주게 그들을 움직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탄원하는 것이다.—디모데 전 2:1, 2.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충실한 행로를 고려하는 것이 ‘디모데’를 도와 ‘그가 배운 일에 계속 거하’게 해줄 것임을 알았다. (신세 참조)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 ·⁠·⁠· 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느니라.]” (디모데 후 3:14, 10, 11) 오늘날 수천명의 연로한 장로들은 ‘바울’이 세운 것과 동일한 훌륭한 본을 세우며, 여기에는 그들의 가르치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고린도 전 4:17.

‘건전한 말을 본받아 지키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 성경의 진리의 순수한 소식은 그리스도인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디모데 후 3:16, 17.

그러나, ‘에베소’에 있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건전한 말씀의 본’이라고 부른 것에 더 이상 일치하지 않았다. (디모데 후 1:13, 난외주) 그들은 “[말씀에 관해, 신세] 질문과 논쟁만을 일삼는 [정신적으로, 신세] 병든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찮은 일에 대한, 신세] 끊임없는 논쟁”에 빠져들어갔다. (디모데 전 6:4, 5, 새번역) 그러므로 ‘바울’은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고 교훈했다. (디모데 후 2:23)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장로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도와 줄 참으로 중요한 것들에 계속 주의를 집중하여야 한다. 이 중요한 것들은 어떠한 것들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설립된 왕국과 전파 사업과 그리스도인 생활 방식이다.—디모데 전 6:11, 12, 새번역.

‘디모데’가 살던 시대에 ‘후메내오’와 ‘빌레도’ 및 아마 다른 사람들이 거짓 교리를 퍼뜨려,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렸다. 진리로부터 그렇게 이탈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내가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고 말했다. 분명히 그들은 회중으로부터 제명 처분되었다. (디모데 후 2:17, 18; 디모데 전 1:20) 우리는 오늘날 상황이 다를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디모데 전 4:1) 젊고 경험없는 장로는 이것에 대해 지나치게 당황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얼마의 사람들의 배교가 결코 진리를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그것은 배교자들이 “자기의 사욕을 좇[아] ·⁠·⁠·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키는 사람들임을 나타내 줄 뿐이다.—디모데 후 4:3, 4.

“건전한 말을 본받”거나 “건전한 교훈을 받”는 데에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 포함된다. (디모데 후 1:13; 4:3, 난외주) 일부 젊은 장로들은 그들이 “죄”에 대하여 또는 소위 양심 문제에 관하여 보다 최신의, 보다 관대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범죄를 옹호하는 세상적 지혜의 논쟁은 “거룩한 것을 범하는 텅빈 말”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적 철학으로부터 돌아서고, “‘지식’이라고 거짓되이 불리우는 반대 이론으로부터” 돌아서라고 ‘바울’은 강권한다.—디모데 전 6:20, 21, 신세.

참된 지식은 하나님의 영과 조직의 인도 아래서 개인 연구를 함으로써 얻어진다. 이것은 그 문제에 있어서 장로나 어떤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는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정확한 지식, 신세]에 이를 수 없”는 거짓 종교 지도자들 같이 되지 않을 것이다.—디모데 후 2:15; 3:7.

‘잘 다스리라’

“잘 다스리”기 위해서 그리스도인 장로는 “모든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고 잘 가르치고 ·⁠·⁠·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디모데 전 5:17; 디모데 후 2:24, 25, 새번역) 각 회중 성원들을 개별적으로 대해야 한다. ‘바울’은 여러 해의 경험을 통해 연로한 사람을 아버지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는 것이 지혜로움을 배웠다.—디모데 전 5:1, 2.

사람은 경험을 얻어감에 따라 문제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는 눈을 발전시킨다. ‘디모데’는 그의 주의를 필요로 할 수 있는 특정한 상황들에 깨어 있어야 하였다. 예를 들어, 가까운 친척이 없이 돌보아 주어야 할 과부들이 있는가? 어떤 그리스도인 종들과 그리스도인 주인들(오늘날의 그리스도인 고용인과 고용주처럼)이 그들의 관계에 대해 바로잡을 필요가 있을지 모르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가? 그들이 부유한 상업 중심지인 ‘에베소’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진다는 것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는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 하나님께 두”라는 교훈을 할 필요가 있었는가?—디모데 전 5:3-16; 6:1, 2, 9, 17-19.

회중 내에 있는 일부 사람들이 하나님의 규칙에 고착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알게 되었거나, 심지어 보기까지 하였는가? ‘바울’은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그러한 목격자들]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고 훈계한다. 그리고 회중의 여자 성원에 대하여는 어떠한가? 그들은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였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 중 일부는 회중 내에서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마련을 무시하고 있었는가?—디모데 전 5:20; 3:11; 2:11, 12.

장로와 봉사의 종으로 섬기도록 임명받은 남자들은 신중히 그리고 필요한 주의를 기울여 선택되고 있었는가?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고 ‘바울’은 교훈한다. 장로와 봉사의 종의 임명은 개인적인 감정에 기초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비추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임명을 토론할 때, 젊은 장로들은 그들보다 나이가 많고 더 많은 경험을 한 장로들의 의견을 주의깊이,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디모데 전 5:22; 3:1-10.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

‘디모데’는 분명히 수줍어하는, 즉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그는 권위를 행사하는 데 있어 주저하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래서는 안 되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바울’은 그에게 말한다. “오직 ·⁠·⁠·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 어떻게?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디모데 전 4:12.

오늘날의 어떤 그리스도인 장로 역시 비교적 젊기 때문에 주저하거나 수줍어할 수 있다. 그는 장로 모임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주저할 수 있다. 반면에 겸손의 부족을 나타내서 너무 주제넘게 되는 경향을 나타낼 수 있다. 우리가 받게 되는 어떠한 그리스도인 특권도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에 의한 것”임을 기억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디모데 후 1:9, 새번역.

젊은 장로들은 솔선하여 “전도인의 일”을 하는 데 있어 신체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디모데 후 4:5)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수행되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오락, 취미, 휴가 및 ‘스포오츠’가 우리의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위해 합당하게 떼어 놓은 시간을 침식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디모데 전 2:4; 4:8.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교훈을 지키는 데 있어서, 젊은 장로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방해하게 해서도 안 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상기시켰다. 그 문제에 관하여 어떤 그리스도인 장로나 다른 어떤 그리스도인이든지 “우리 주의 증거 ·⁠·⁠· 를 부끄러워 말”아야 한다. 사실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당해야 한다.—디모데 후 1:7, 8, 새번역 참조.

참 숭배를 옹호하는 데 있어 담대하게 말하였기 때문에 젊은 장로 ‘디모데’와 그의 연로한 동료 장로 ‘바울’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러한 제 1세기의 감독자들의 본을 따름으로써, 현 20세기에 사는 장로들 역시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 그들이 젊든지 연로하든지 “훌륭하게 봉사하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위하여 훌륭한 신분을 얻”는다.—디모데 전 3:13, 신세.

[19면 삽화]

장로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고 더 많은 경험을 한 장로들로부터 기꺼이 배우고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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