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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파81 08월호 47면

독자로부터의 질문

● 일부 성서 역본에서 디도서 2:13을 마치 예수 한분에게만 관련시키어 그분을 하나님과 구원자로서 부른 것처럼 번역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디도서 2:13을 「신세계역」으로 읽어 보면 이러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행복한 희망과,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많은 성서 번역자들은 이 귀절의 마지막 부분을 마치도 예수 한분만을 의미한 것처럼 번역하였읍니다. 예를 들어, 「개역 한글판」을 보면 이러합니다.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이러한 번역자들은 희랍어 “문법”에 따라 이렇게 번역한다고 종종 주장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 또한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번역을 하는 방향으로 기울게 합니다.

이 희랍어 귀절의 문자적 번역은 “위대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glory of the great God and Saviour of us Christ Jesus)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알프레드 마아샬’ 저, 희영 신약 행간역) 여기에서 접속사 “그리고”로 연결된 두 명사(하나님, 구원자) 앞에 단일 전관사(the)가 있는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약 일세기 전에, 이러한 구문(構文)에 적용되는 “법칙”이라고 여겨지는 방식을 ‘그랜빌레 샤아프’가 만들었읍니다. 그의 주장은 정관사가 두번째 명사(구원자) 앞에서 반복되고 있지 않으므로 두 명사는 같은 사람 혹은 같은 주어에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원자”가 모두 예수를 묘사하는 것이 될 것이며, 마치도 ‘위대하신 하나님이시자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를 뜻하는 것처럼 될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가끔 전술한 견해가 마땅히 올바른 희랍어 문법에 의해 요구된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디도서」에 적용된 “법칙”의 타당성이 학자들 사이에 크게 논란이 되어 왔읍니다.

예를 들어, ‘헨리 알포오드’(희랍어 신약 3권)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무도 그것이 자기들이 해석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논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부언하기를, 누구나 ‘그 말의 본래의 뜻이 무엇인가’를 오히려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문법에 의해 결정될 수 없읍니다.

「신약 희랍어 문법」(‘모올튼-터너’, 1963년)에서는 디도서 2:13에 대하여 이렇게 진술합니다. “두분을 별개의 분으로 고려하도록 확증하기 위해 정관사의 반복이 엄격히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샤아프’의 법칙’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니젤 터어너’ 박사는 다음과 같이 인정합니다. “불행하게도 이 시대의 희랍어에서 그 법칙이 실제로 결정적인 것인가를 확증할 수 없다.”(「신약에 대한 문법상의 통찰력」, 1965년) 사용된 희랍어 구문에 관하여 ‘알렉산더 부트맨’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읍니다. “아마 세속 문학에 있어서나 혹은 신약에 대하여 예외가 없는 엄격한 법칙을 규정하기란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신약 희랍어 문법」

「해설자의 희랍어 신약」에서 ‘화이트’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문법상의 논란은 ·⁠·⁠· 특히 우리가 이 서간들의 정관사의 일반적인 소홀한 취급뿐 아니라 (디모데 전서 1:1; 4:10의 ‘구원자’) 앞의 정관사 생략을 고려할 때 큰 신임을 두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그리고 ‘알포오드’ 박사는 강조하기를, ‘바울’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다른 성귀들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가장 뚜렷이 서로 구별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예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 1:1; 2:3-5) 이것은 성서의 전반적인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즉 예수는 창조된 아들이며 자기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요한 14:28; 고린도 전 11:3.

따라서 ‘화이트’ 박사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전체로 보아, 이 성귀를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낫다고 우리는 결정한다.’ 많은 현대 번역판들은 이와 일치합니다. 주 성귀에 혹은 각주에 그들은 디도서 2:13을 뚜렷이 다른 두분을 언급한 것으로 번역합니다. 즉 이 두분은 여호와이신 “위대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신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이며, 두분 모두 영광을 가지고 계십니다. (누가 9:26; 디모데 후 1:10) 「신 미국 성서」, 「믿을 만한 신약」, 「예루살렘 성서」(각주)와 ‘J. B. 필립스’역, ‘제임스 모팻’역 및 ‘차알스 K. 윌리엄스’역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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