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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 교제에서 여호와를 송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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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 교제에서 여호와를 송축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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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2
파72 10/1 439-444면

일상 교제에서 여호와를 송축함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 전 10:31.

1. (ㄱ) 고린도 전서 10:31의 성경 원칙은 얼마나 광범하게 적용됩니까? (ㄴ) 이 연구에서 우리는 우리 생활 중의 어느 부분을 고려할 것입니까?

여호와를 송축한다는 것은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며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그분에게 헌신한 종들인만큼, 자기들의 생명을 하나님 곧 여호와를 송축하는 일에 전적으로 바쳤읍니다. 그러므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에 우리는 진정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고린도 전 10:31) ‘바울’은 여기서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견해를 논하였지만, 이 귀절에서 그는 더욱 광범한 원칙, 곧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그 일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하였읍니다.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모든 봉사, 회중 집회 참석과 참여, 우리의 개인 및 가족적인 연구 등이 모두 여호와를 송축하고 찬양하는 방법임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우리 생활에서 그러한 일을 하고도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러한 시간에 그리고 이러한 시간에 있게 되는 일상 교제에서 우리는 어떻게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읍니까?

2.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경우에 불신자들과 교제하는 일이 불가피하며,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합니까?

2 참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의 교제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사람들과 접촉해야 할 때가 많으므로 그 사실에 유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요한 17:15, 16) 아버지들은 가족을 물질적으로 부양하기 위하여 낮 시간의 대부분을 세상 동료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교육을 받기 위하여 여호와를 송축하는 일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불가피한 교제를 제외하고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과 교제를 하거나 벗하는 일을 피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일 뿐 아니라 생명을 얻는 길이기도 합니다.—고린도 전 15:33; 잠언 13:20.

3. 개인 연구, 집회 및 야외 봉사 시간 외에 또 어떤 경우에 여호와를 송축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3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세속적인 교제를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 교제에서 어떻게 말과 생각으로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는지 설명하겠읍니다. 여기에는 부가적으로, 오락을 즐기기 위해 형제들이 함께 모였을 경우와 우리가 혼자 있을 때도 포함시켜 설명하겠읍니다. 우리는 일상 교제에서 어떻게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겠읍니까?

세속 직장에서

4. 우리는 직장에서 좋은 행실 외에 어떤 다른 방법으로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읍니까?

4 여러분 그리스도인 가장들은 가족을 부양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읍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흔히 직장에서 세상 사람들과 교제를 하게 됩니다. 물론 여러분의 좋은 행실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증거가 되며, 여호와께 영광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제에서 우리의 말로 여호와를 송축할 기회도 많이 있읍니다. 동료 직장인들의 대화는 보통 세상 상태와 사건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상태가 고난과 혼란을 더해가고, 사람들의 관심이 심각해감에 따라 동료 직장인들의 생각을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성서적 해결책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집니다.—누가 21:25-33.

5.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동료 직장인들에게 성서를 가장 잘 가르칠 수 있읍니까? 우리는 무엇을 피하도록 해야 합니까?

5 동료 직장인들에게 그러한 증거를 할 때 우리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권고의 말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의 종이 다투어서는 안됩니다. 도리어 모든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고 ··· 반대하는 사람들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디모데 후 2:23-26, 새번역) 그렇습니다. 재치있는 질문으로 그들의 진심을 이끌어 내어 그들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고 성서의 견해에 대해 생각을 해보도록 하고 좋은 논리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여호와에 관해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는 논쟁과 ‘어리석은 토론’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친절하고 온유한 방법으로 그들과 이야기하고 추리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여호와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읍니다.

학교에서

6. 젊은 전도인들은 왜 학교에서 증거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가지고 있읍니까?

6 청소년들이 학교에 다니는 시절부터 성인 세계의 문제들과 부정에 대해 지금처럼 잘 알고 염려를 나타냈던 때는 없었읍니다. 젊은이들이 오늘날처럼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던 때는 없었읍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은 교우들과 선생님들과 교제하는 동안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지고 있읍니다. 시편 필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권고합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 청년 남자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찌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시 148:7, 12, 13.

7. 급우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어떠한 장점이 있읍니까?

7 당신의 학급을 여호와를 찬양할 자신의 독특한 구역으로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당신과 같은 나이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구역입니다. 그 구역에는 “부재자”란 없읍니다. 그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개방적이고, 진리를 탐구하며, 편견없이 토론을 할 수 있읍니다. 관심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당신은 거의 어느 때나 그러한 사람들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항상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을 급우로 여길 것이며, 낯선 사람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당신에게 거침없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 면으로 보아 급우들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장 훌륭하고 가장 비옥한 “밭”입니다.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하십시오.—고린도 전 3:6-9.

8. 급우들에게 증거할 수 있는 한가지 기회는 언제이며, 어떠한 태도로 소식을 제시해야 합니까?

8 급우들과 우연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우리는 대화를 세상 문제와 그의 해결책에 대한 성서의 견해, 성서 예언, 또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당하고 있는 문제들과 압력들에 관한 성경의 실용적 충고 등으로 유도할 수 있읍니다. 이런 경우에도 언제든지 성실하고, 침착한 태도로 의견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고려를 나타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한 대화에서 우리는 훌륭한 논리를 사용하고,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을 사용하여 가르치고, 말투가 독단적이 아니라 친절해야 합니다.—디모데 후 4:2; 베드로 전 3:15.

9. (ㄱ) 학급 토론에서 어떻게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읍니까? 그리고 그러한 경우를 위해서 어떻게 준비를 가장 잘 할 수 있읍니까? (ㄴ) 어떤 젊은 증인들은 학교에서 증거하는 데 어떤 성공을 거두었읍니까?

9 학급 토론 시간이 증거를 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과학 시간은 우리가 여호와를 믿는 건전한 이유와 성서의 과학적 정확성에 관한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이러한 일은 선생님이나 동료 급우들과의 개인적 대화에서도 할 수 있으며, 기회가 있으면 학급 토론에서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진화되었는가, 혹은 창조되었는가?」나 「성서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가?」와 같은 책을 철저히 연구하여 그러한 경우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책에 들어 있는 훌륭한 논증 방법을 머리 속에 명확하게 담고 있다면, 기회가 생길 때에 여호와께 영예와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청소년들 중 그러한 책들 몇 권을 학교에 가지고 다녀서 좋은 결과를 본 사람도 있읍니다. 그러한 점들을 토론하고 나면, 급우들 중 그 문제를 더 깊이 알아보고자 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이 어린 좋은 소식 전도인은 「진화론」 책에 관하여 이렇게 보고하였읍니다. “어느 날 저는 한 반에서 그 책 9부를 전하였읍니다. 다음 날은 이전에 증인들과 한번도 이야기를 안해 본 소년에게 또 한 부를 전하였읍니다. 그는 밤을 새면서 그 책을 읽은 다음 저에게 ‘그 책 다섯부를 더 구해야겠다!’고 요청하였읍니다.” 열 두살된 어느 젊은이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 선생님은 그 책을 읽은신 다음 반학생들에게 추천하셨읍니다. 그 결과 저는 34부를 전할 수 있었읍니다!” 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이 여호와의 창조 능력과 심지어 그분의 존재 자체까지도 의심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는 이 때에,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은 ‘젊을 때에 자기 창조주를 기억’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읍니다.—전도 12:1.

10. (ㄱ) 그리스도인 젊은이는 학급에서 성서의 견해를 설명할 때에 어떤 제목을 사용할 수 있읍니까? (ㄴ) 전도서 12:12, 13의 교훈은 왜 적절합니까?

10 역사 시간에는 성서가 역사적으로 철두철미 정확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는 기회도 생깁니다. 그렇게 한다면 성서의 저자 여호와께 찬양이 됩니다. 연설 시간이나 국어 시간에는 전체 반 학생들에게 연설할 수 있는 기회도 생깁니다. 그리스도인 젊은이는, 하나님의 존재, 하나의 교리, 완전한 정부 또는 성서의 견해나 어떤 제목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 같은 성경적 제목 중 자기가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점을 선택하여 연설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연설이 끝난 다음에 그 제목을 반 전체가 토론하는 경우가 흔히 있읍니다. 이러한 기회는 더 자세한 증거를 하고, 또 어느 학생이 성서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내는 데 좋은 기회가 됩니다. 후에 개인적인 대화로 그들의 관심을 더욱 배양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동료 학생들이 전도서 12:12, 13에 기록된 여호와의 다음과 같은 교훈을 인식하도록 도울 수 있읍니다.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11. 급우들에게 성서 진리를 전할 때에 무슨 성품을 나타내야 하며,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무엇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읍니까?

11 학교에서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잘 이용하려면 담대함과 용감성이 필요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 시간 ‘파이오니아’ 봉사와 ‘벧엘’ 봉사를 약 9년 동안 즐겨온 어느 형제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 때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읍니다. 소식을 들었다면 좋은 반응을 보일만한 학생들도 몇명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여호와와 그의 목적을 이야기하는 면에 지금과 같은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였읍니다. 과거로 되돌아가서 그 시절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좋겠읍니다.” 당신은 학교에 다니는 어린 여호와의 증인입니까? “주[여호와]여 ···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였던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기도하십시오. (사도 4:29) ‘바울’이 ‘에베소’의 형제들에게 간청하였던 것과 같이 당신도 간청하십시오. ‘바울’은 “내가 입을 열 때에 내게 할 말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오. ··· 내가 마땅히 해야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오.” 하고 부탁하였읍니다. (에베소 6:19, 20, 새번역)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이 일상 교제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에 담대하고 용감하다면 여호와께 크나큰 영예와 영광을 돌릴 수 있읍니다.

12.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 제도의 젊은이들보다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를 드십시오.

12 우리 젊은이들의 말만이 아니라, 그들의 훌륭한 행실도 그들을 이 제도의 사람들 중에서 뛰어나게 해 주며, 그렇게 하여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빌립보 2:14, 15) 어느 그리스도인 어머니가 자기 어린 딸의 선생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을 때,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뻤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교사가 이와 같은 편지를 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귀댁의 어린 딸은 제가 이곳에서나 다른 곳에서 만나 본 아이들 중에서도 태도나 행실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확실히 댁의 아이는 댁에게 영예가 됩니다. 저는 그 애가 앞으로도 여러 햇 동안 제 곁에 있을 수 있다면 좋겠읍니다.” 그 소녀는 자기 어머니에게 영예가 되는 것 이상으로, 여호와께 영예가 되지 않겠읍니까? 그의 생활은 그분의 의로운 원칙의 지도를 받고 있읍니다. 그 소녀가 일상 교제에서 하나님을 송축할 때에 여호와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형제들과의 회합에서

13. 우리의 일상 교제에 있어서 어떤 다른 기회에 우리는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읍니까?

13 우리 형제들과 함께 모여 휴식을 취하고 오락을 즐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세상적인 교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경계심”을 버리지 못하지만, 형제들과의 회합에서는 그러한 느낌이 없이 긴장을 풀 수 있으며, 올바른 교제를 보장해 줍니다.—시 133:1.

14. (ㄱ)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때 어떻게 하여 휴식도 취하고 영적 격려도 받을 수 있으며, 히브리 10:24, 25에 있는 ‘바울’의 교훈은 이 점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읍니까? (ㄴ) 우리의 회합을 즐겁기도 하고 격려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어떤 방법들이 제안되어 있읍니까?

14 우리는 잘 선택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거나 여러 가지 놀이를 하거나 단순한 방문으로 휴식 시간을 즐길 수도 있지만, 영적인 문제를 대화의 주제로 삼아서 그 시간에 휴식도 즐기고 또한 영적으로 보람도 얻을 수 있읍니다.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을 때에 그러한 기회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쑤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 10:24, 25) 만일 우리가 초대한 주인이라면, 우리는 얼마의 시간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면서 보낼 수 있도록 계획할 수 있읍니다. 대단히 즐겁기도 하고 많은 형제들에게 격려적이기도 한 한가지 간단한 방법은, 참석한 사람들 각자가 진리를 어떻게 배웠고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게 된지 아무리 오래 되었더라도, 이러한 경험담을 듣고 우리의 경험담을 발표하게 되면 여호와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새로와지고 하나님의 조직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집니다. 또는 주인이 성서에서 생각을 자극하는 어느 장을 선택하여 모인 사람들 전체가 읽도록 할 수도 있읍니다. 참석한 사람 중에 어느 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귀절을 토론할 수 있읍니다. 이렇게 하면, 믿음을 대단히 강화해 주는 매혹적인 성경 토론이 될 수 있읍니다. 우리의 형제들과 하루 저녁을 이렇게 보내면 실로 유쾌합니다. 그러한 교제를 하고 나면 우리는 크게 격려를 받고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휴식 시간에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동하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고린도 전 10:31.

혼자 있을 때

15, 16. (ㄱ) 우리가 혼자 있을 때에 어떻게 여호와를 찬양할 수 있으며, 이러한 때에 무엇에 대하여 기도할 수 있읍니까? (ㄴ) 우리는 기도를 계획된 때에만 제한시켜야 합니까? 기도의 특권에 대한 ‘바울’과 ‘베드로’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15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종종 있읍니다. 가정 주부들은 가정 일을 보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아버지들은 일을 할 때나 직장에 가고 오는 시간에 혼자 있을 수도 있읍니다. 아이들은 놀 때에나 여름 휴가 때에 혼자 있는 수도 흔히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생활 중에 혼자 있을 때에 어떻게 여호와를 송축할 수 있읍니까?

16 우리는 그러한 때에 여호와와 교제를 함으로써 찬양할 수 있읍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나이가 어떠하든, 어느 때에나 여호와께 이야기할 수 있읍니다. 우리가 아름답고 맑은 날 야외에 나갔을 경우와 같이 예기치 않고 계획하지 않은 때에 하나님과 통신 연락을 하는 것은 대단히 즐겁습니다. 우리는 걸어가면서도 마음으로 여호와께 이야기할 수 있읍니다. 살아있는 점에 대하여, 하나님을 알게 된 데 대하여, 그분이 주신 진리에 대하여, 그분을 찬양하고 진정한 감사를 드리면 됩니다. 당신이 어느 때에나, 특히 혼자 있을 때엔 여호와께 이야기하고자 하는 느낌을 가지도록 여호와께 기도로 교제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고하였으며, ‘베드로’는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하였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5:17; 베드로 전 4:7) 여호와께 드리는 찬양의 기도를 단순히 틀에 박히게 계획된 때에만 제한시키지 마십시오. 여호와께 드리는 의사 표시가 의미를 상실하거나 진정한 맛을 상실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어느 연로한 형제는 밤에 잠에서 깨면 기도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그때에 가장 훌륭한 기도를 드린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우리는 여호와와 함께 교제하며 그분을 송축할 수 있읍니다.

17. 혼자 있을 때에 성서에 나오는 충실한 사람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 왜 좋습니까?

17 혼자 있을 때에 성서에 기술된 충실한 사람을 하나 선택하여 그분의 생애와 경험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히브리 13:7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고 하였읍니다. 고대의 그러한 충실한 사람들은 그들의 생을 마쳤지만, 그들이 영위한 충실한 행로는 지금까지 여러 세기 동안 기록으로 남아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행실이 충실한 것인가 아닌가를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리고 주저함이 없이 그들의 믿음을 전심으로 본받을 수 있읍니다.

18. (ㄱ) 우리가 혼자 있을 때 이미 인생을 마친 충실한 형제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들과 정신적으로 교제를 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ㄴ) 이러한 교제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제 가운데 속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가령 혼자서 계속적인 정신 집중을 요하지 않는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의 충성과 인내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읍니다. 그가 당한 시련들을 생각해 보고 그러한 것들이 당신의 머리 가운데 생생히 남아 있게 하십시오. 그가 감옥에서 밤에 잠을 자지 못하던 모습, 매를 서른 아홉 대씩 다섯 번이나 맞은 일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고린도 후 11:23-33) 그가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돌로 맞은 다음 죽은줄 알고 도시 밖에 버림을 받은 일을 그려 보십시오. 그가 다시 살아났을 때에 주위에 둘러섰던 제자들의 즐거움을 느껴보고, 비록 고통스럽고 참혹하게 매를 맞기는 하였지만 그 도시에 다시 들어가서 다음날 선교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바나바’와 함께 떠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14:19, 20)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되새겨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 전 10:13) 우리는 혼자 있을 때에도 이러한 방법으로 가장 좋은 교제를 선택할 수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의 인생 행로를 생각함으로써 그분들과 같이 여호와를 송축하도록 힘을 얻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동기가 생깁니다.

19, 20. (ㄱ) 어떻게 함으로 왕국 노래를 듣고 배우는 것이 큰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있읍니까? (ㄴ) 이러한 왕국 노래를 부르고 심사숙고할 때에 우리는 누구와의 교제를 즐기게 됩니까?

19 그리스도인 어머니들과 아내들은 집에 혼자 있을 때에 왕국 노래의 녹음을 듣거나 곡을 기억하여 일하면서 혼자 부르는 것도 유익한 일입니다. 어느 자매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때때로 집에 혼자 있으면 약간 침울하고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읍니다. 그러나 왕국 노래를 틀기 시작하면 기분이 상승하고 명랑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자매는 여러 가지 왕국 노래를 암기하였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왕국 노래의 가사를 외워서 곡을 들으면서 속으로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하였읍니다. 이러한 노래들의 가사는 대단히 격려적입니다.

20 한 가지 예로 「마음의 음악에 맞추어 노래함」의 노래 28장을 생각해 봅시다. 노래 제목은 “여호와께 찬미드리라”입니다. 제 2절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여호와 높이고 자신 낮추면, 그 하늘의 영광 네가 빛내니 주 앞에서 걸어 주 바라 보며, 늘 맡은 바 사명 첫째로 두라.” 몇 마디 말이지만 의미는 참으로 깊습니다. 잠간 멈추어 가사를 심사숙고해 보면, 왕국 노래 하나 하나는 영적 의미가 깊고 유익합니다. 여호와께 이러한 노래를 부르면 우리는 그분과의 교제를 즐기게 되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권고를 따르십시오. “서로 가르치고 권하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감사에 넘치는 마음에서 주[여호와]를 찬양하시오.”—골로새 3:16, 새번역.

21. 우리는 우리의 모든 교제에서 무엇을 해야 하며, 이렇게 하면 무슨 성경 원칙을 이루게 됩니까?

21 이 기사 내용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활동과 교제에서 여호와를 찬양할 필요성을 살펴보았읍니다. 생활상의 책임을 이행하기 위하여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접촉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기회에도 하나님께 영예를 돌릴 수 있읍니다. 직장에 나가는 기회를 동료 직장인들에게 친절하고 이치적인 방법으로 여호와와 그분의 목적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학교에 다닌다면, 우리의 유리한 입장을 살려 급우들과 선생님들에게 성실하고 용감하게 증거를 하도록 합시다. 형제들이 회합하였을 때면, 우리의 대화로 서로 믿음과 인식과 열정을 새롭게 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경우라면, 노래와 기도로, 그리고 옛날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을 생각함으로써 여호와와의 교제를 추구합시다. 우리의 생활에서,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일상 교제에서 여호와를 송축합시다. 그리하여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합시다.—고린도 전 10:31.

[440면 삽화]

세상 상태가 악화되기 때문에 세속 직장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여호와의 목적에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

[441면 삽화]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은 학교에서, 과학시간과 같은 경우, 여호와의 솜씨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다

[442면 삽화]

우리가 여호와의 솜씨를 즐길 때마다, 그분께 감사를 표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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