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와 함께 계속 앞을 바라보며, 계속 전진하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이사야 55:11.
1.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적을 이행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가 있읍니까?
의심할 여지 없이, 여호와께서는 항상 자신의 목적을 틀림없이 성공으로 이끄십니다. 인류 역사와 그의 말씀은 여호와께서 과거에 그렇게 하셨음을 증언하며, 그분이 ‘에덴’에서 하신 원래의 왕국 예언과 약속을 이행하는 데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확증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항상 앞을 바라보시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앞으로 성취될 많은 예언은 앞을 바라보아야 할 많은 강력한 이유가 됩니다.
2. 우리에게 어떠한 중대한 일이 맡겨졌으며, 우리는 그 일을 수행하는 데 누구의 도움을 받습니까?
2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계속 앞을 바라보기를 원할 뿐 아니라 또한 그분과 함께 계속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지상에 있는 그의 종들에게 할 일을 많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일의 일부는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여 사람들이 그 소식에 대해 지지 혹은 반대의 태도를 나타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마태 24:14; 25:31-46) 계시록 14:6, 7이 알려 주듯이 이 전파 사업의 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지적 종들의 어깨에만 지워져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을 지도하고 조종하는 천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읍니다.
3. 우리에게는 동료 신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의무가 있읍니까?
3 이 활동을 수행하도록 위임받은 그리스도의 참다운 추종자들인 우리는 서로간 충성스럽고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서로간 도움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외부 사람들을 섬기는 것보다 서로간 섬겨야 할 더 큰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갈라디아 6:10) 우리에게 그렇게 할 기회가 얼마나 더 있을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경제 상태나 격렬한 박해로 말미암아 우리의 노력이 제한을 받기 전에 서로간 힘써 선한 일을 합시다. 그렇게 하면 어려운 때가 닥칠 때 서로 계속 돕고 격려하는 데 필요한 태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약점과 결점에 대하여 참읍시다. 과민하고 불평하는 태도를 버리고 의를 위하여, 회중 내의 평화를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받읍시다. 그렇습니다. “형제들이여, [불리하게]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야고보 5:9, 새번역.
바로 앞에 놓여져 있는 일은 무엇인가?
4, 5. (ㄱ) 우리 바로 앞에는 어떠한 일들이 놓여 있읍니까? (ㄴ) 우리는 “큰 환난”에 대하여 무엇을 확신할 수 있읍니까?
4 우리 바로 앞에 놓여 있는 것 중 한 가지는 “큰 ‘바벨론’” 즉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집행입니다. (계시 17:15-18) 이것이 “큰 환난”의 시작이 됩니다. (마태 24:21)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참 추종자들과 그들의 동료들은 이 환난을 생존할 것입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읍니까? ‘마곡’의 ‘곡’으로 상징된 ‘사단’과 그의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의 평화와 번영을 시기하여 그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 지휘하의 천군이 마귀의 보이는 세력을 치게 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며, 이것이 ‘아마겟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전쟁”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계시 16:14, 16) 그 전쟁은 동족상잔의 전쟁과 온역과 우박과 번개와 불과 유황과 해일과 지진으로 특징을 이룰 것이며, 그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정당한 주권을 입증할 것입니다.
5 무슨 일이 발생하든지 간에 우리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구출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우리가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비이기적으로 그분을 섬기는 한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 반열로서 “큰 환난”을 생존하여 새 땅의 기초를 이룰 것입니다.
6. 왜 “큰 환난” 기간이 우리에게 크게 기뻐할 때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 점은 심지어 현재도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어야 합니까?
6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은 “큰 환난” 기간 즉 여호와의 날이 크게 기뻐할 때가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을 때, ‘노아’와 그의 가족이 여호와의 구원 수단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하였겠는가 생각하여 보십시오. ‘이스라엘’인들이 홍해를 건너 탈출하고나서 ‘바로’와 그의 군대가 그 바다에 빠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였겠는가 생각하여 보십시오.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의 전쟁은 여호와의 이러한 큰 구원 행적보다 훨씬 더 거대할 것입니다. “큰 환난”이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고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수반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이 여러 해 동안 선포해 오고 기대하여 온 일을 목격하고 기쁨에 벅찰 것입니다. 참으로 그 일은 부활되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만족감을 가지고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재료가 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자극을 받고 우리는 급속도로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을 열심히 알려야 합니다.
깨끗해진 땅을 밟음
7. (ㄱ) 인류는 어떠한 부모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까? (ㄴ) 어떠한 사람들이 천적 통치자들을 대표할 것이며, 어떠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7 “큰 환난” 후에, 깨끗해진 땅을 밟으며 그리스도와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144,000명의 남녀로 구성된 그의 신부의 천년 통치를 받기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넘치는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완전한 자녀로 구성된 거대한 가족을 양육할 것을 바라보며 인류에게 주의를 돌릴 것입니다. 이들은 참으로 사랑을 나타내는 부모가 될 것입니다! 사랑과 인정을 가지고 부모로서의 활동을 시작할 것이며 환난 생존자들이 그들의 약함과 불완전성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인도와 도움을 베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일으키신 후에, 신부는 그와 함께, 부활된 자들이 완전성으로 자라기 시작하도록 돕는 데 참여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가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점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장막 혹은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계시 21:1-4) 지상에는 그들을 대표하는 충실한 남자들 곧 군왕들이 있을 것입니다. (시 45:16) 이들 군왕들은 여러 세기 동안 사람들을 지배하여 온 부패하고 이기적인 정치인들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선택하라는 충고에 따라 ‘모세’가 선택한 사람들과 같을 것입니다. (출애굽 18:21) 이들은 공의와 사랑을 가지고 관리하여 모두에게 안전과 편안함을 줄 것입니다.—이사야 32:1, 2.
8. 우리는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 어떠한 상태가 있을 것을 기대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8 불경건한 세상이 멸망되고 ‘사단’과 그의 악귀들이 무저갱에 감금되면 더는 악이 없고, 더는 거짓 종교가 없고, 더는 악귀의 활동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모든 산에서 해함도 상함도 없을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고 있듯이 땅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1:9) 모든 사람들과 인종 사이에 평화가 있을 뿐 아니라 인간과 지상의 다른 피조물 사이에도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인류는 사랑을 가지고 지배권을 행사할 것이며, 인간은 동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고, 동물은 인간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온 땅은 “평화의 하나님”이신 창조주의 영광과 “평화의 군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반영할 것입니다.—호세아 2:18; 로마 16:20, 새번역; 이사야 9:6, 신세.
부활의 희망
9. 왜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읍니까?
9 또한 우리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최대의 확신을 가지고 기대할 수 있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부활이 있을 것을 누차 약속하셨고 그분은 거짓말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디도 1:2) 더구나 그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제시할 부활의 보증으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읍니다. (사도 17:31) 부활은 너무나 확실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당시 의심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죽은 자들을 실제로 살아있는 자로 간주하십니다.—마태 22:31, 32.
10. 무엇이 부활될 것이며, 어디로부터 부활될 것입니까?
10 무엇이 부활될 것입니까? 죽은 몸은 부활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흙으로 돌아갔고 다른 생물의 일부가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설명하는 바와 같습니다.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니라].” 그리고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십니다. (고린도 전 15:35-38) 그렇습니다. 동일한 분자로 구성된 몸이 아니라 영혼 즉 그 사람이 무덤 즉 ‘스올’ 혹은 ‘하데스’로부터 일으킴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된 바와 같습니다.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남겨두지, 신세] 아니하시[리라].”—시 16:10; 사도 2:24-27.
11. (ㄱ) 첫째 부활은 무엇입니까? (ㄴ) 누가 그 부활에 참예하며, 언제 부활됩니까?
11 부활된 영혼 즉 사람은 어떠한 몸을 가질 것입니까?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영광스럽고 신성을 갖춘 썩지 않는 몸을 가질 것입니다. 첫째 부활은 시간과 중요성과 질에 있어서 첫째이며, 이 부활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 즉 ‘시온’ 산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된 144,000명입니다. (계시 20:4, 6; 14:1, 3) 주의 임재 중, 잠자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리라].” (데살로니가 전 4:16) 이 부활 후에 죽는 이 집단의 나머지 사람들에 관하여 ‘바울’은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 전 4:17; 계시 14:13) 고린도 전서 15:51, 52에 설명되어 있듯이, 이것은 그들이 죽음 가운데 잠자지 않고 즉시 천적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아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될 것을 의미합니다.
12. 그 외에 누가 부활될 것이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언제 부활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읍니까?
12 죽은 인류 가운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사도 ‘바울’은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부활이 있으리라”고 증언합니다. 이와 동일하게, 예수께서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셨읍니다. 더우기, “사망과 ‘하데스’”가 그 가운데 있는 죽은 자들 모두를 내어 놓을 것이라는 기록이 있읍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예수 곁에서 형주에 달려 죽은 동정적인 행악자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진실로 내가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사도 24:15, 신세; 요한 5:28, 29; 계시 20:13, 새번역; 누가 23:42, 43, 신세) ‘아벨’로부터 침례자 ‘요한’에 이르기까지의 충실한 사람들이 왕국의 지적 대표자로 임명될 것이 분명한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이 첫째로 부활될 사람들 중에 포함될 것 같습니다. (시 45:16) “큰 환난”을 생존하기 위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달하였지만 그 환난 전에 죽은 혹은 죽을 사람들은 틀림없이 천년 통치 중 일찍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야 이치적일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부활될 많은 불의한 자들을 교육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3. 죽은 인류는 어떠한 특성을 가지고 부활될 것입니까?
13 지상의 생명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어떠한 몸을 가질 것입니까? 그들의 모습은 어떠할 것입니까? 과거의 부활, 특히 ‘나사로’의 부활이 예시하듯이, 그들은 틀림없이 그들이 죽기 전과 모습이 흡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 11:39-44) 키가 큰 사람이 키가 작은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아주 연로한 사람이 십대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로, 여자는 여자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은 동일한 개성과 동일한 기억을 가질 것입니다. 과거에 부활된 사람들의 경우가 분명히 그러하였듯이, 부활된 사람들은 건전하고 온전한 몸을 가질 것입니다. 그들은 이전에 그들을 죽게 한 병든 상태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완전한 몸을 가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완전한 몸은 불완전한 개성과 조화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불완전한 몸으로 나올 것이며, 그들이 영적으로 진보하고 왕국 통치에 순종하고 예수의 희생의 속죄 혜택을 받으면서 그들의 약함과 불완전성을 극복해 감에 따라 그들의 몸은 완전성에 더욱 더 가까와질 것입니다.
14, 15. (ㄱ) 죽은 자들의 부활은 하나님의 무엇의 표현이며, 누구의 말에 의하면 그러합니까? (ㄴ)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는 일을 어떻게 보실 것입니까?
14 부활의 마련은 참을성이 있고 충실한 ‘욥’의 말에 나타나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 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보셨겠나이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스올’ 즉 ‘하데스’에 있는 사람들을, 특히, ‘욥’과 같이 격심한 시련을 받으면서도 성실을 증명한 사람들을 아껴 보십니다.—욥 14:14, 15.
15 그리고 확실히 수억의 사람들의 부활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한 때 자기에게 온 문둥병자가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고 믿음을 가지고 말하였을 때에 그에게 대답하신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인류를 위하여 부활시키는 일을 기꺼이 즐거움으로 하실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문둥병자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누가 5:12, 13.
16. 믿음을 가지고 부활을 바라보는 것이 어떻게 지금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16 참으로 우리는 또한 부활을 열렬한 기대와 기쁨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지금도 우리와 동료 인간들에게 격려와 축복의 진정한 근원이 될 수 있읍니다. 사망이 우리 가족의 생명을 앗아갈 때에 우리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극단적인 슬픔과 비탄에 사로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4:13, 14) 우리는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 후 1:3, 4) 우리에게는 부활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의 생명을 빼앗을지라도 그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기억에서 지우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 10:28) 이것은 우리를 강화시켜 주어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떠한 행동을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을 유지할 수 있읍니다.—계시 2:10; 12:11.
17. 생명의 상을 놓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7 충실성을 유지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자극제는 생명의 상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디모데 후 4:8 비교) 성서는 고의적으로 죄를 반복하는 사람들—하나님의 영을 거스리는 죄를 짓는 사람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마태 12:31, 32; 히브리 10:26, 27) 확실히 이 사실로부터 격려를 받고 우리는 충실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면에서 사도 ‘바울’의 본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린도 전 9:27) 그렇습니다. 생명의 상을 놓치지 않도록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고착하고자 노력하는 면에서 실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계속 앞을 바라보고, 계속 전진하라
18. 우리는 경주를 하고 있으므로 어떻게 처신해야 합니까?
18 참으로 우리 앞에는 바라보아야 할 만한 일들이 많이 있읍니다. 참으로 바로 앞에 있는 미래의 전망 뿐 아니라 앞에 있는 천년간의 전망은 밝습니다! 우리의 행로는 경주에 비유되어 왔으며, 우리는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경주는 무엇을 연상시킵니까? 그것은 강렬하게 노력하는 것, 목표 즉 경주에서 이기려는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사실, 그렇게 하라고 성서는 권고합니다. “우리도 모든 무거운 짐[물질주의 혹은 육체의 죄있는 경향 등]과 얽매이기 쉬운 죄[믿음의 상실]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경주의 길을 견디며 달려 갑시다. ··· 예수만을 바라봅시다.”—히브리 12:1, 2, 새번역.
19.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이 덫에 걸려 상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어떠한 충고를 하셨읍니까?
19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본을 세우셨으며 그는 우리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충고하십니다. (마태 6:33) 예수께서는 또한 그의 대 예언 가운데서 마지막 때인 바로 오늘날에 관하여 이렇게 경고하셨읍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 깨어 있으라.”—누가 21:34-36.
20. 세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여야 합니까?
20 참으로 현명한 행로는 우리가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이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바울’의 충고는 그가 그 충고를 기록한 당시보다 오늘날 더욱 적절합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 세상을 잘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 같이 할 것입니다. 이 세상 형태는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7:29-31, 새번역) 우리가 세상이 제공하는 것을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듯이, 세상을 충분히 이용하며 우리 생활에서 그 일에 몰두하고 우리의 영적 건강까지 희생하며 그렇게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것은 참으로 웅대한 약속입니다! 우리는 온전히 그 약속에 따라 행동하고 우리의 생활 전체를,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영위하며 다른 어떠한 관계 혹은 즐거움도 지나치게 중요시하지 않음으로 그것을 참으로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읍니까?—요한 1서 2:17.
21. 지금 재물을 향유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물질을 추구하는 데 빠질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한 가지 비유 가운데서 그러한 정신 태도를 배격하라고 경고하셨읍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누가 12:16-21) 또한, 예수께서는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계속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적 필요를 돌보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시지 않았읍니까? (마태 6:33) 또한 우리는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물질적으로 어떠한 것을 소유할 것인지에 대하여 과도하게 염려할 필요가 없읍니다. 만일 그러한 것이 중요하다면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것을 그의 말씀 가운데 기록시키셨을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며, 심지어 풍부한 사치품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읍니다.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며 그들은 세상이 높이 평가하는 재물에 관한 한 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는 물질면으로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풍부한 영적 축복과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하는 동료 숭배자들과의 친우 관계와 반려 관계에 있어서 부요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영의 열매를 나타낼 것입니다.—시 133:1; 갈라디아 5:22, 23; 디모데 전 6:17.
22.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면에서 우리 각자는 여호와와 함께 전진할 수 있읍니까?
22 그 때까지 우리는 여호와와의 우리의 관계를 깊게 하고 믿음 안에서 우리와 친척이 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에서 자라고 우리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더욱 일치시키는 면에서 계속 전진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연구하고 기도하며 회중 집회에 참석하고 우리가 배우는 것을 부지런히 적용시키는 것은 우리의 영적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합니다. 계속적인 영적 진보를 위한 여호와의 마련을 이용함으써 우리는 우리의 희망을 강하게 유지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희망을 받아들이고 생활을 그 희망과 조화시키도록 도울 기회를 활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진보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가 천년간 통치할 때 완전성으로 자라가는 데 필요한 태도를 배양하는 일에 일찍 출발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전진하기를 바랍니다.
23. ‘바울’은 히브리 6:10, 11에서 어떠한 사실 때문에 무슨 보증을 하였읍니까?
23 여호와께서 목적하시고 약속하신 것을 그 분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아무런 성과 없이 그분께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추호의 의심도 있을 수 없읍니다. 사도 ‘바울’이 보증하였듯이, 하나님은 불공평하시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그의 이름에 대한 사랑으로 행한” 모든 일을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우리의] 희망이 실현될 때까지 동일한 열의”를 계속 나타냅시다.—히브리 6:10, 11, 신영어 성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