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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75 12/1 541-547면
  •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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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 소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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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5
파75 12/1 541-547면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라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 전 4:8.

1, 2. 성서 필자 ‘요한’은 우리 생활에서 ‘아가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의 중요성을 어떻게 말하였읍니까?

사도 ‘요한’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언급한 다음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읍니다.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 일은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 1서 4:11) 그러므로 ‘요한’은 여기서 예수의 “새” 계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요한 13:34, 35)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는 점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지상의 자녀에게 원칙에 입각한 사랑(아가페)을 나타내심으로써 본을 보이셨읍니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자녀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는 그 본을 따라 사랑을 나타내되 여호와 하나님께만이 아니라 서로에 대하여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2 ‘요한’은 요한 1서 4:20, 21에서 이 의무를 다시 확인하고 그 문제의 심각성을 말하였읍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그러므로 ‘아가페’ 사랑,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에게 나타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함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3. 우리가 사랑해야 할 보이는 형제는 누구입니까?

3 우리가 사랑해야 할 보이는 형제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동일 민족, 동일 피부색 혹은 동일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만 보이는 형제라고 국한시킬 수 없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형제는 그리스도인 회중에 속한 동료 여호와의 종들이며, 지구상 어디 있든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의 회중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믿음 안에 있는 우리 형제들입니다. (갈라디아 3:26-28)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사랑에 의하여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열심히 사랑할 의무를 갖게 되었읍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4. ‘바울’은 고린도 후서 13:5에서 무엇을 권고하였으며, 모두는 무슨 질문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까?

4 오늘날 조직적인 면에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서로 그렇게 사랑하고 있읍니다. 국가 집단 사이에 싸우는 일이 없으며 인종 편견이나 증오심이 없읍니다. 이상적인 상태 그대로입니다. 참 그리스도교의 표지가 조직 내에 분명히 있읍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사랑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 개개인은 어떠한가? 우리는 개인적으로 서로 참 ‘아가페’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가? 우리는 개인적으로 서로 열심히 사랑하는가? 이 점에 있어서 각자는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설정된 표준에 따라 자신을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린도 후 13:5.

5. (ㄱ) 사랑은 그리스도인 특성으로서 선택적입니까? (ㄴ)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얼마나 포괄적이어야 합니까?

5 우리는 예수의 말씀으로부터, 그리고 ‘요한’의 말씀으로부터, 형제들에 대한 사랑이 필수적인 그리스도인 특성임을 알았읍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할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편리한 때에만 행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바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중요한 법, 곧 우리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주는 법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회중 내에서 친밀히 접촉하는 소수에게만 국한시킬 수 없읍니다. 우리의 사랑은 지구상 모든 곳에 있는 형제들의 전체 집단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베드로’가 쓴 바와 같이 형제들의 전체 연합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베드로 전 2:17, 신세) 그러니 우리의 사랑을 일부에 한정시키지 않고 형제들의 전체 연합체를 포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형제들에 대한 그리스도인 사랑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6. 그리스도인들은 ‘아가페’ 사랑을 나타낼 능력을 어떻게 얻기 시작할 수 있읍니까?

6 사랑이 그리스도인 생활에 그렇게 중요한데,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사랑을 어떻게 획득합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는 여호와의 숭배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므로, 그들이 중요한 법인 예수께서 추종자들에게 명령하신 “새 계명”을 이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바울’이 갈라디아 5:22에 지적한 것처럼 ‘아가페’ 사랑이 하나님의 영의 열매라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께서 오늘날 지상에서 사용하고 계시는 조직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또 따라야 합니다.

7. 사랑이라는 특성을 배양하는 데 있어서 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중요합니까?

7 거기에 더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운 속성에 관한 지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이 무엇이며, 그것이 형제들과 동료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배워야만 합니다. 지식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여 얻습니다. 개인적으로 또는 오늘날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연합하여 공부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모든 진리에 대해 깊은 인식을 길러야 하며, 성서를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고 하였읍니다.—베드로 전 2:2.

8. 마음이 관련됩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8 그리고 물론, 자신의 마음이 관련됩니다. 사랑이란 주로 마음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는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썼읍니다. (베드로 전 1:22) ‘아가페’ 사랑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올바른 지식이 있으면, 사랑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마음이 올바른 길로 인도를 받게 됩니다. 먼저 사랑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다음에 형제들과 동료 인간에게 사랑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마음 속에 그러한 사랑을 기른 그리스도인은 결국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께 헌신할 수 있게 되고, 여호와의 법을 수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원칙에 일치하게 일상 생활을 함으로써 이 헌신을 수행합니다.—요한 1서 5:3.

9. (ㄱ) 때때로 성서의 지식을 얻는 것이나 전파 활동하는 것보다 무엇이 더 어렵습니까? (ㄴ) 형제와 관계를 가지는 데 있어서 ‘아가페’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9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어렵지 않게 자기 머리에 여호와와 그분의 법과 요구 조건에 관한 지식을 주입하고, 또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도 즐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일한 사람에게 있어서, 진리에 따라 생활하고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명령과 법과 원칙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이나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 모릅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태도와 행실과 회중 내의 각 사람과의 관계에 관해 원칙에 일치하도록 배워야 하며, 이 점에 있어서 ‘아가페’ 사랑이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마음으로부터 순종적으로 모든 진리에 따라 생활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10. ‘요한’은 사랑에 관하여 무슨 경고를 하였으며,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사랑을 어떻게 올바로 향하게 해야 합니까?

10 만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한다면, 우리를 형제들로부터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릇된 것을 사랑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사랑하는 뜻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한 1서 2:15, 16)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의 사랑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는 세상이나 세상적인 것을 사랑하지 않는 형제들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얼마 안가서 그리스도인 집회에서나 그리스도인 야외 봉사에서 형제들과 함께 있지 않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인 형제들보다는 세상적인 교제와 세상적인 관심사를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을 올바로 기울여서 우리와 같이 여호와를 숭배하는 사람들과 항상 교제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11. (ㄱ) 다른 사람에 대한 참다운 ‘아가페’ 사랑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까? (ㄴ) 형제들에 대해 참다운 사랑을 나타내지 않으면 무엇이 영향을 받습니까?

11 참으로 원칙에 입각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나 우리 유익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떤 영향을 받든 나는 그 일을 할 권리가 있다고 고집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회중 내의 어떤 사람들을 실망시키거나 실족케 하지 않도록 자신의 외모나 개인 관심사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고린도 후 6:3, 6) 우리는 행실과 말씨와 교제를 살펴야 하며, 자신의 소원이나 관심만이 아니라 우리 형제들의 관심을 생각하고, 우리의 행동이나 말로 그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빌립보 2:4) 만일 ‘아가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올바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여호와와 우리의 관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한’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한 1서 4:20.

여호와의 사랑을 본받음

12. 여호와께서는 이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를 위해 무슨 본을 보이셨으며, 그러므로 ‘베드로’는 우리에게 어떻게 할 것을 충고하였읍니까?

12 여호와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며,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자기의 사랑을 회중 내의 소수에게 제한하시지 않으며, 사랑의 마련을 통하여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기꺼이 용서하시고 우리의 사랑에 찬 봉사를 받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들에 대한 열렬한 마음의 사랑은 진리에 근거해 있으며, 여호와의 관점에서 우리 형제들의 가치에 대한 진정한 인식에 근거해 있읍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충고하였읍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베드로 전 4:8-1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각자에게 하나님의 봉사에서 사용할 선물을 주시며, 불완전과 약점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봉사를 받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바와 같이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잘못과 실수 이상의 것을 볼 줄 알아야 하며,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덮어 주고, 회중 내의 모든 사람들과 긴밀하게 일할 줄 알아야 합니다.

13. 장로들은 회중 내의 동료 장로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읍니까?

13 이 점은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장로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적용될 것입니다. 어떤 장로들은 자기가 하나님의 조직 내에 더 오래 있었다든가 장로로서의 경력이 훨씬 많다고 하여 다른 장로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들은 동료 장로들에 대해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그들의 가치와 인간적 권위를 존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그들의 의견과 생각을 존중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떤 사람이 얼마나 오랫 동안 봉사했는가 혹은 얼마나 오랫 동안 장로로 일하였는가 구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봉사에서 오래된 사람들은 자기들의 의견이나 견해를 다른 장로들에게 관철시키려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봉사의 “선물”을 합당하게 존중하고 그것을 임명된 장로로서 잘 사용하도록 하게 할 것입니다.

14. ‘바울’은 장로들과 협조하는 점에 과하여 무슨 충고를 하였으며, 회중 내의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읍니까?

14 이 점은 하나님의 회중 내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회중 성원들은 장로들과 함께 일할 때 장로 중 한 사람도 완전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장로의 약점과 인간적 불완전성을 확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그의 충고와 교훈을 경히 취급하려는 경향을 갖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어느 장로에게 우리가 싫어하는 특수한 점이 있다고 하여 충고를 무시할 수는 없읍니다. 오히려 우리는 결점과 불완전성을 눈여겨 보지 않고 오히려 장로의 여호와께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봉사에 대한 그의 열심을 보며, 회중 내의 모든 장로들을 존경하고 그들 모두와 협조해야 합니다. ‘바울’은 히브리 13:17에서 이 점을 강조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형제들이 장로들과 친밀하게 일하고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선한 활동에 대해 진정한 사랑을 나타낸다면 실로 좋은 일입니다!

15. 디모데 전서 1:5의 말씀은, 마음으로 열심히 서로 사랑하는 문제에 어떻게 적용됩니까?

15 그렇습니다. 모든 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깨끗한 마음에서 나와야 하며, 전심으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명령의 목표는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일으키려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 1:5, 새번역) 이 말씀의 뜻은, 우리 마음이 진리로 깨끗해진다는 것이며, 만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점에서 부족한 부면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자주 사용함으로써 진리로 우리 생활을 청결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끗한 마음에 의해 회중 내의 모든 형제들과 건전하고 정직하고 유익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양심은 편안할 것이기 때문에 선한 양심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올바로 행동한다는 것을 확신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위선적인 가장이 아니며, 겉으로만 꾸미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관찰될 것입니다. 참 사랑은 진정한 것이며, 선하고 깨끗한 마음에서 나오는 순수한 내적 특성, 곧 경건한 특성입니다.

16. 장로들은 형제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충고를 할 것입니까?

16 회중의 장로들은 형제들에게 말할 때에 사려깊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일 수 있읍니다. 이 경우에 있어서 겸손이 필수적입니다. 장로들은 교만이 가득하여 자기가 회중 내의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회중의 각자는 가치 있는 재산, 곧 여호와의 “양”의 일원입니다. (요한 10:16) 그러므로 장로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에나 충고를 할 때에 자기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의 충고는 겸손하고 친절한 방법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갈라디아 6장 1절에서는, 영적으로 형제들을 도우려 할 때에 “온유한 심령”이 필수적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의 방법이며,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도우려고 하는 것이며, 지위가 있다고 하여 자신을 남보다 높이거나 중요시하는 행동이 아닐 것입니다.

모두가 열렬한 ‘아가페’ 사랑을 나타냄

17, 18. 우리는 (ㄱ)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고 (ㄴ)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라는 ‘바울’의 충고를 어떻게 따를 수 있읍니까?

17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14에서 회중 내의 우리 모두가 견해를 넓혀 형제들에게 필요한 점을 고려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넓힐 것을 충고하였는데, 그 충고는,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회중 내의 장로들에게만 말한 것이 아니라 회중 내의 모두에게 말한 것입니다. 회중 내의 어떤 사람이 그릇된 행동에 가까이 가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는 ‘바울’의 충고를 따를 적절한 때일 것입니다. 이 말은, 그 형제를 심히 꾸짖으라든가 그의 행동에 대해 말질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개인적으로 사랑과 재치로써 형제를 도우려고 하며, 올바른 방향을 지적해 주고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그릇된 행동을 버리도록 도와야 합니다. 물론, 만일 매우 심각한 일을 보게 되면, 그 문제를 규모없는 자에게 필요한 충고를 할 수 있는 장로에게 상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8 ‘바울’은 또한 우리가 “마음이 약한[침울한, 신세] 자들을 안위”해야 한다고 썼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 많은 회중에는 연로하고 허약한 사람들로서 그들이 과거처럼 야외 봉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침울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들은 약간 무력하며 능력이 제한되어 있읍니다. 우리는 필요할 때에 그러한 분들을 영적으로 도울 수 있으며, 회중 내의 모든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으나마 집회 참석과 봉사에 있어서의 그들의 좋은 본을 얼마나 감사하는가를 나타내고,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을 격려할 수 있읍니다.

19. 왜 형제들이 어떤 면에서 약할 수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줄 수 있읍니까?

19 동일한 귀절에서 ‘바울’은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충고하였읍니다. 아마 당신은 전도 활동이나 집회 참석에 약한 사람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당신은 사랑으로 그러한 형제에게 이야기를 하고 격려하며, 때로는 그들을 돕기 위한 실제 마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믿음에 있어서 약해지는 사람들, 아마 미래에 관해 추측하다가 그렇게 되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될지 모릅니다. 성경으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자꾸만 하는 사람도 있읍니다. 회중의 장로나 기타의 사람들이 대답을 못하면 그들은 예언의 성취를 의심하고 여호와께서 오늘날 그의 조직을 사용하신다는 것도 의심하는 수도 있읍니다. 우리는 그러한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읍니까? 우리는 분명히 그러한 사람들에게 회중의 가치를 인식하도록 격려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오늘날 그의 조직을 놀랍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수행되리라고 말씀하신 사업입니다. 다른 어느 조직이 이 일을 수행합니까? (마태 24:14; 28:19, 20) 예수께서는 또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만이 이 “종”과 연합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잘 공급받고 있읍니다. (마태 24:45, 46) 우리는 이 조직을 통하여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과 지상에 있는 그분의 백성과 밀접하게 연합하였읍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조직을 떠난다면 어디로 갈 곳이 있읍니까? 다른 곳은 없읍니다! (요한 6:66-69)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유일한 조직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신한다면,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20.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는 ‘바울’의 말은 무슨 뜻입니까?

20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바울’은 썼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 그러므로 우리의 친절과 형제 사랑은 회중 내의 모두를 포함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의 불완전과 약점을 눈여겨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하며, 그렇게 하기가 용이한 몇몇 사람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두에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참을성이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흠을 잡거나 비평적이 아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5에 일치하게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아야 합니다. 같은 장 13절에서 ‘바울’은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 형제들과 화목하려고 해야 합니다.

21.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합니까?

21 형제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잠재적인 것이 아니라 표현적이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형제들에 대해 사려깊은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중 집회에 갈 때에 잘 아는 사람과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 수줍어하는 사람들을 살펴서 그들과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격려하고 또 그들이 긴장을 풀고 형제들과 교제를 즐기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도 간과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과도 대화를 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의 훌륭한 노력에 대해 그들을 칭찬하게 합니다. 그들이 야외 봉사에서 나타낸 좋은 본과 학교와 가정에서 나타낸 좋은 행실을 우리가 얼마나 감사히 생각하는가를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길을 계속하도록 그들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나타냄

22. (ㄱ) 때로 우리의 사랑은 어떤 방법으로 표현되어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어떻게 올바른 본을 보이셨읍니까? (ㄴ) 우리가 물질적으로 사랑을 보일 수 있는 어떤 방법들이 있읍니까?

22 이 낡은 제도의 “마지막 때”에 깊이 들어감에 따라 우리는 사랑의 띠 안에 서로 연합하며 서로 열심으로 사랑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형제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경우가 있읍니다. 우리가 그들을 잘 알고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때로는 단순히 영적 도움 이상을 요할 것입니다. 물질적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요한 1서 3:17, 18에서 이의 필요성을 이렇게 썼읍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만일 우리가 물질적으로 형제들에게 사랑을 보인다면, 이 점에서도 우리는 예수께서 세우신 좋은 본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예수께서 많은 군중에게 영적 양식과 함께 물질적 음식을 먹이시어 그들이 집에 가는 도중에 지치지 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읍니다. (마태 14:14-21; 15:32-38) 그러므로 우리도 때로는 물질적으로 사랑을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병들 수 있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고 집안 청소를 돕고 심부름을 함으로써 열심으로 사랑할 수 있읍니다. 또한 집회에 가기 위해 도움을 요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승용차가 있을 수 있읍니다. 그러면 그들을 집회에 동반함으로써 실제 면으로 사랑을 보일 수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물질적인 방법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현재에나 미래에 실용적 사랑을 보일 수 있는 길은 많이 있읍니다.

23. 우리가 형제들을 열심으로 사랑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경우가 있을 수 있읍니까?

23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가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은 앞으로 증가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들을 잘 알고 항상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사단’도 그것을 알고 있읍니다. ‘사단’은 자기의 때가 짧다는 것을 알고 지상의 사람들에게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읍니다. 우리 모두는 생명 자체가 위험에 처하는 입장을 직면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께서 나타내신 바와 같은 사랑을, 형제들을 위하여 우리 목숨을 버리는 정도까지 나타내야 할지 모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라」는 책에는 ‘나찌’ 독일에서 우리 형제들이 무서운 박해를 받던 때 서로 어떻게 사랑으로 협조하였는가에 대한 좋은 예들이 들어 있읍니다. 그들은 서로 열심으로 사랑하였으며, 이 사랑의 표현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다 포함하였고, 여호와의 봉사에 계속 충성할 수 있도록 서로 도움을 주었고, 힘을 다하여 서로를 보호하였읍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겠읍니까? 당신은 사랑으로 형제들을 보호하고 절대로, 절대로 그들을 배반하지 않겠읍니까? 가까운 장래에, 우리의 생명 자체가 서로에 대한 사랑에 좌우될지 모릅니다.

24.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형제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문제에 관하여 모든 입장을 명시하는 자세한 법규가 왜 필요없읍니까?

24 지금 당장 우리 모두는 서로 ‘아가페’ 사랑의 정신을 세워 줄 수 있읍니다. 우리는 서로 언제나 사랑해야 한다는 규정한 법이나 세칙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라는 예수의 명령은, 우리가 주저하지 말고 솔선하여 언제나 형제들에게 사랑을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들을 열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언제 어떠한 필요가 생기든지 가능한 한 모든 도움을 베풀도록 우리를 움직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점에 있어서 탁월하게 될 것이며, 세상은 사랑이라는 식별 표지를 인정할 것입니다.

25, 26. (ㄱ) 고린도 전서 13:4-7에 의하면 참 사랑은 어떻게 작용합니까? (ㄴ) 마음으로 서로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25 고린도 전서 13:4절부터 7절에서 ‘바울’은 참 그리스도인 사랑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가를 훌륭하게 묘사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 다음에 8절에서 그 사도는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부언하였읍니다. 그러한 사랑은, 장로나 봉사의 종들만 아니라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합니다.

26 그렇습니다. ‘바울’은 사랑이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중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에는 제한이 없으며, 사랑을 늦출 법은 없읍니다. 참 사랑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나 실천할 수 있읍니다. ‘바울’은 로마서 13:8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이 남에게 질 수 있는 유일한 빚은 사랑이라고 하였읍니다. 오늘날 이 제도의 종말은 신속히 다가오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야말로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 때입니다. (베드로 전 4:8)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서로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서로 영원히 사랑하기를 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긴밀한 띠를 강화하고 마음으로 서로 열심히 사랑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그렇게 하여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를 본받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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