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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옷차림이 당신에 대해 알려주는 점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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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3
파73 5/1 213-216면

옷차림이 당신에 대해 알려주는 점들

청소년들이 알고싶어 하는 유익한 사실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 상 16:7) 여호와께서 우리의 중심 곧 마음을 보시는데도 우리의 외모에 중요성이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중요성이 있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께서 마음을 보시는 바와 같이,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상대방의 외모를 보고 그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사실상 당신의 옷차림은 당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도 어느 정도 말해 줍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당신의 옷차림이 나타내는 것

당신이 아주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옷을 선택하였읍니다. (사무엘 상 2:18, 19 비교) 부모는 아마 당신의 머리도 어떤 모양으로 빗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자람에 따라 부모는 옷이나 머리 모양에 대해 당신의 의견을 차차 들어 주셨을 것입니다. 당신이 점차 선택권을 행사함에 따라 당신의 옷차림은 당신의 마음속, 당신의 개성을 나타내게 되었읍니다. 그러면, 당신의 옷은 당신에 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그것은 당신이 우쭐대고 허영심이 있고 극도로 ‘스타일’에 예민하고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려함을 나타냅니까? (이사야 3:16-23 비교) 아니면 그와는 반대로 당신이 외모에 대해 무관심하여 그 옷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든 아랑곳 없이 단정치 못한 옷을 입는 그런 태도를 나타냅니까?

아니면, 당신의 옷차림은—이 두 가지 양 극단 사이에서—단정하고, 다른 사람을 고려하며, 동시에 옷맵시와 외모에 관련된 다른 점에 있어서 취미가 고상하고 선택이 지성적임을 나타냅니까? 사실, 이 모든 점에 있어서 당신의 마음은 당신을 어떻게 움직입니까?

어떤 청소년들은,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독특하게 보이게 되고 “구식”같이 보인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극도의 구식”도 아니고 “초현대식”도 아닌 중간 입장이 있읍니다. 당신이 ‘스타일’에 민감하게 되면, 누가 이득을 봅니까? 근본적으로 ‘스타일’을 정하거나 조장하는 것은 상업계입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오직 한 가지 즉 돈벌이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들의 손에서 놀아난다면 순수한 혹은 지속적인 면에서 자신에게 조금도 이득이 없읍니다.

반면에 우리는 자신의 외모가 너절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돈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경제 사정 때문에 원하는 대로 선택해서 입을 수가 없읍니다. 그렇더라도 자기의 옷을 단정하고 깨끗하게 한다면 긍지와 어느 정도의 권위가 있음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아무렇게나 하는 식의 태도를 갖지 않았음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더 받게 됩니다.

생활상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따라야 할 좋은 법칙은 성서 로마서 15:2에 있는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는 법칙입니다. 우리를 보는 일은 우리자신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보기에 더 좋은 것을 입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읍니까? 그들에게 자기들의 외모 때문에 열등감을 갖게 하거나 위축감을 갖게 하는 어떤 옷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과 그들의 감정을 고려함을 나타내는 옷을 입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당신의 외모는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 연관시킬 수 있다

옷차림은 당신에 대해 다른 면으로도 알려 줍니다. 그것은 당신을 어떤 집단이나 부류의 사람들과 동일하게 보이게 할 수도 있읍니다. 이 점은 성서가 기록되던 당시, 수천년 전에도 그러하였읍니다.

예를 들어, 「열왕기 하」에 보면, 사자(使者)들이 ‘아하시야’ 왕에게 보고하면서, 어떤 사실을 알려준 사람을 만났다고 하였읍니다. 왕은 그들에게 물었읍니다. “그 사람의 모양이 어떠하더냐?” 그들이 그 사람의 옷 모양을 설명하자 왕은 즉시 ‘그는 ‘엘리야’로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어떻게 알았읍니까? ‘엘리야’는 독특하게 예언자의 옷을 입었기 때문이었읍니다.—열왕 하 1:2, 7, 8; 또한 열왕 하 2:13, 14; 마태 3:4 비교.

예언자로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자기의 옷이 자신을 영예롭지 못한 것과 연관시킬 수도 있읍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자기를 과부로 보이게 하는 옷을 벗어버리고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기다란 옷을 걸치고 길가에 앉았읍니다. 기록을 보면, “그가 [‘베일’로]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겼다고 하였읍니다. 그의 옷차림이 그를 창녀처럼 보이게 하였던 것입니다.—창세 38:13-15.

오늘날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옷차림은 우리를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같게 보이도록 할 수 있읍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지 않고 그런 사람들이 믿는 바를 믿지 않더라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렇게 옷차림을 한 사람들과 적어도 동조할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겠읍니까?

옷 모양은 경찰, 소방서원, 간호원 등을 구별시켜줄 뿐 아니라, 영예롭지 못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나타내 줍니다. 오늘날은 약 삼천년 전 ‘가나안’의 습관처럼 창녀들이 기다란 옷을 입고 얼굴을 ‘베일’로 가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출적이고 선정적인 옷차림은 그들의 직업을 더욱 더 노골적으로 나타내줍니다. 폭동과 과격한 정치 활동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으며, 많은 동성애자들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과 우리를 연관시키고자 합니까?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었다가 그 결과 문제를 당한다면,—직장을 구하려 한다거나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어떤 특권을 즐기려는 경우 등—누구에게 책임이 있읍니까?

무엇이 머리 모양을 결정해야 하는가

우리는 얼굴 모양이나 귀의 크기나 목의 길이등을 원대로 변경시킬 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머리털은 상당히 변화성있게 모양을 내고 손질을 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매력적인 외모에 크게 보탬이 될 수 있읍니다.

머리 손질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 동안 머리 모양은 나라에 따라서, 시대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변하였읍니다. 때로는 인간의 자존심이 대단히 극단적인 머리 모양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읍니다. 제1세기에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여자들에게 머리 모양을 지나치게 하거나 그것을 너무 중요시하지 말라고 충고할 필요를 느꼈읍니다. (디모데 전 2:9; 베드로 전 3:3) 그러나 오늘날 많은 청년들은 기다란 머리와 구레나룻으로 대단한 관심을 끌고 있읍니다.

성서 시대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습관보다 머리를 더 길게 하지 않았읍니까? 분명히 그러하였읍니다. 그러나 다른 사실 또한 분명하였읍니다. 무엇입니까? 그래도 남자들의 머리가 항상 여자들의 머리보다 짧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희랍의 ‘고린도’ 회중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할 수 있었읍니다. “자연 그 자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남자가 머리를 길게 느리면 그것이 그의 부끄러움이 되지만 여자가 머리를 길게 하면 그것은 그에게 영광이 됩니다.” (고린도 전 11:14, 15, 새번역) 어떻게 “자연”이 이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까?

‘바울’의 말은 남자들의 머리는 여자 처럼 길게 자랄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자의 머리도 그렇게 자랄 수 있으며, 오늘날 상당 수가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이곳에서 ‘바울’이 “자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방법에 대하여 해설하면서, 성서 학자 ‘알버트 바아네스’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 단어는 ··· 분명히 모든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예의감을 의미한다 ··· 그것은 남자들 사이에 타당함에 대한 자연적 감정으로 나타나는 그러한 것이다 ··· 그 단어는 올바르고 정당한 것에 대한 깊은 내적 양식(良識)을 말한다.”—「고린도에 보낸 ‘바울’의 첫째 편지에 대한 주해」, 225, 226면; 또한 「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영문) 1207면 참조.

그러므로 그때 사람들은 남자가 머리를 적당한 길이로, 여자보다 짧게 자르는 것이 “자연적인”—타당하고 합당한—것으로 인정하였읍니다. 오늘날 우리도 “자연”적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손톱을 몇 ‘센티 미터’가 되도록 기를 수는 있지만, 그러나 손톱을 자르는 것이 “자연”적입니다. 그렇게 잘라야 물건을 집거나 일을 하는 데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손이나 몸을 연속 1년 동안 씻지 않고 견딜 수는 있읍니다. 그러나 “자연”적인 (또한 사려깊고 건전한) 방법은 보다 자주 목욕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짐승도 자주 목욕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설명에 의하면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하여 그것이 자연적인 것은 아닙니다. 남자가 머리를 여자 처럼 보이게 기르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동성애자가 증가하고 있는 시대(또는 지역)에는 그러한 현상이 심합니다. 그런데 성서는 동성애도 “부자연스러운”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고 가증함을 알려 줍니다.—로마 1:26, 27, 새번역.

이것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제한을 가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의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머리 모양에 있어서도, 단정치 못하고 부자연스럽게 하지 않고도 자기 머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기좋고 매력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한계를 넘지 않고도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읍니다.

화장하는 것은 어떠한가?

화장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규정되어 있읍니까? 성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옷으로 몸을 가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도 입는 것처럼, 고대 ‘히브리’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곁에 갈 때에 좀 더 기쁨을 주도록 하기 위해 향수를 사용하였읍니다. 또한 어떤 화장품, 특히 기름은 ‘히브리’ 여인들이 피부를 건조하게 하지 않게 하고 곱게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였읍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의 승인을 받도록 행동하고자 하는 젊은 여자들은 어떠한 지침을 따라야 합니까? 그들은 훌륭한 충고를 따라 모든 것을 “정숙하고 신중하게 단장”해야 하며, 주된 단장은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단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값진 것”입니다.—디모데 전 2:9, 10, 새번역; 베드로 전 3:3, 4.

물론, 소녀들은 화장하는 것이 이익보다는 해를 주는 경우도 흔히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안색을 해칠 수도 있으며, 나쁜 안색을 더욱 나쁘게 할 수도 있읍니다. 그 외에도 화장하는 것은 흔히 젊은이의 싱싱함을 가려버립니다. 실은 그 자연미가 화장으로 만들어 내는 인위적인 효과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소녀들이 화장품을 과다하게 사용하면 흔히 약점에만 주의를 이끕니다. 더욱이 그것은 개성미(실상은 이것이 아름다운 모양보다 더욱 매력적이며,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를 나타내지 못하게 하며, 가려버립니다. 화장을 지나치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당신의 개성을 의곡되게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당신의 개성을 저속하게 만드는 경향도 있읍니다.—열왕 하 9:30 비교.

올바른 지침을 따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법칙이 없읍니다. 그러나 그 대신 훌륭한 지침이 나와 있읍니다. 청소년들은 균형잡힌 견해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서는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부모들은 보충적인 지침을 정할 권리가 있읍니다. 만일 어느 집의 ‘페인트’ 색갈이 너무 야하거나 너무 괴이하게 배색되었다면, 사람들은 그 집의 가장(혹은 그의 아내)이 상식이 있는 사람인지 의아하게 여길 것입니다. 또는 집이 손질이 안되었거나 외모가 허술하다면 집주인을 별로 존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집이 당신의 부모를 대표하는 것보다 당신 자신이 부모를 더 잘 대표합니다. 당신은 아버지의 성(姓)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말과 행실이 부모로부터 받은 교육, 부모의 사람 됨됨을 반영하는 것 같이, 당신의 용모도 그러합니다. 더욱 중요한 점으로,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역시 하나님을 대표합니다. 당신의 외모는 당신의 주장에 합당합니까?

예수의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요한 13:17) 당신은 성서의 충고의 의미를 인식할 수 있읍니까? 아니면 당신은 어떤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말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입니까? 당신은 생활에서 성서의 충고를 적용함으로써 참다운 통찰력과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과 그분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고 행복감을 느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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