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떠한 종류의 회개가 “상쾌한 계절”을 가져오는가?파수대—1972 | 10월 1일
-
-
심지어는 그것에 대항하여 싸우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인류 역사는 반복적인 유혈과 압제와 불공평과 부도덕의 서글픈 기록에 불과하다. 세계 인류 사회의 능동적인 성원으로서 자신이 이 모든 일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회피한다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위장하는 얄팍한 행동일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 사실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하니라.”—요한 1서 1:10.
성실한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입장을 직시하고 충심으로 슬픔을 느끼며 하나님과 화목하려 한다. 그러한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는 세상에 능동적으로 순응하던 이전의 행로를 배척하고 그러한 악행을 위시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표준과 반대되는 모든 행위를 마음으로부터 미워해야 할 것이다. (야고보 4:4; 시 119:104; 로마 12:9) 그가 참으로 회개한다면 그는 ‘돌이키고’ 전환하였다는 증거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 것이다. (사도 26:20; 마태 3:8)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옷입을 것이다.—에베소 4:17-24.
사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회개와 전환의 다음 단계는 침례이다. 사도 ‘베드로’의 영감받은 기록에 의하면 침례는 “선한 양심을 위하여 하나님께 한 간구”를 상징한다. (베드로 전 3:21, 신세) 사실 침례로써 하나님과의 선한 관계에 들어가도록 그리고 그분께 대한 선한 양심의 유익을 즐기도록 해 주실 것을 정식으로 간구하는 것이 된다. 사망을 목표로 삼고 ‘왕노릇’하는 죄에 노예가 된 악한 결과를 경험한 사람은 이제 하나님께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 사랑으로 지불한 대속의 가치를 통하여 노예로 사 주실 것을 간구한다.—로마 6:16-18; 고린도 전 7:22, 23.
당신은 이러한 중대한 변화를 하였는가? 당신은 생명의 수여자의 뜻과 일치하게 살아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가? 당신은 그 분과 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하려면 그 분의 말씀을 연구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눈과 귀를 열어서’ 성서 진리를 받아 들여야 ‘마음으로 그 뜻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내가 그들을 고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 6:9, 10; 마태 13:13-15)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상쾌한 계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즐기게 되므로 “즐거운 길”과 ‘평화의 길’로 다니게 될 것이다.—잠언 3:17; 베드로 전 3:21.
-
-
당신은 싫증을 냅니까?파수대—1972 | 10월 1일
-
-
당신은 싫증을 냅니까?
청소년들이 알고자 하는 유익한 사실들
싫증이란 젊은 사람들 간에 하나의 공통된 문제거리입니다. 그렇다고 어른들에게는 그것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가정 생활이—혹은 일상 생활 전부까지도—무미 건조하고 흥미가 없다고 하는 말을 자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에 대하여 어떤 조처를 강구할 수 있읍니까?
지상에 있는 현 사물의 제도가 인간 생활에서 여러 가지 다양성과 즐거움을 박탈해버린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환경 가운데서도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싫증을 내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이것을 보면 싫증이라는 것이 다분히 그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가정 생활을 생각해 봅시다. 가정마다 특징이 있읍니다. 한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룰 수 없으니 만큼 가정의 특징도 어느 한 사람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가정의 복합적인 특징에 약간씩 기여를 합니다. 당신의 가정은 어떤 상태입니까? 당신의 가정은 온정이 넘치고 화락합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