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계명을 계속 지킴’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니라].”—요한 1서 2:3.
1. 진리를 행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을 살펴보는 일은 왜 필수적입니까?
오늘날 온 땅에는 함께 모이고 호별 방문과 기타 많은 방법으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참여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증인들이 백수십만명 있읍니다. 하나님의 이들 종들은 그분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계명을 행하고 그의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바쳤읍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얼마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읍니다. 만일 자신의 생활 방식과 동기에 대하여 자신을 살펴보는 일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여호와의 요구 조건에 대하여 현 제도의 어두움의 권세에 눈이 가리워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계속 행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같은 일을 계속해서 한다면 얼마 후에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 그 일을 정기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는 지금 그 일을 하고는 후에 그 일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읍니다. 우리는 그가 그 “일”을 습관적으로 행한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에게 생활 방식이 되고, 장차 그 일을 중지하려는 생각없이 그 일을 하게 됩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참으로 여호와를 알게 됩니까?
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도 그와 같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요구 조건임을 알고 매일 매달 매년 이 행로를 계속합니다. 이 모든 것의 요점은 참으로 “저를 [곧 여호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항상 지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기분이 내킬 때에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어떤 일이 방해하지 않을 때에만 그분을 섬기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지조가 “진리를 행”한다는 말과 “그의 계명을 지키면”이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회중에서”
3. 여호와께서는 함께 모이는 것에 관하여 그의 백성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하십니까?
3 「시편」 필자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내가]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시 26:12) 빛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그의 이름으로 모이라고 명령하셨읍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연중 특별 행사를 위하여 함께 모이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던 여호와의 명령이 들어 있읍니다. 많은 경우, 백성이 그렇게 모이라는 것은 의무적이었읍니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축복과 유익을 위한 것이었읍니다. 숭배를 위하여 모임을 가져야 할 의무는 하나님의 백성의 그리스도인 회중에 옮겨졌읍니다. 히브리 10:24, 25은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고 그렇게 하기를 잊지 말라는 기본적 명령을 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서로 격려하고 믿음을 세워 주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데 목적이 있읍니다.
4. (ㄱ) 진리를 행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ㄴ) 회중 집회에 대하여 어떠한 이의가 있을 수 있으며, 그러나 무엇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까?
4 현 이십 세기에 사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회중은 숭배를 위하여 모이라는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한 단체에 속한 각자는 개인적으로 이 계명을 지켜야만 ‘회중’ 즉 모인 무리가 있게 됩니다. 단체적으로 진리를 행하려면 각자가 여호와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온 땅의 여호와의 백성의 습관과 같이, 일주에 다섯 시간 모여야 한다는 특정한 명령이 성서에는 없다고 이의를 제기할지 모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이 관대하고 우리에게 영적으로 좋은 것들을 풍부하게 공급하시는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우리는 우리가 참석하는 매번의 집회에서 영적으로 유익을 얻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강화됩니다. 우리가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모일 때에 우리는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고 진리를 행하도록 도움을 받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행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까?
5. 그러면 여호와의 헌신한 종은 회중 집회를 어떻게 볼 것입니까?
5 그러므로, 여호와의 헌신한 종은 집회에서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있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집회에 빠질 구실을 찾을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회중 집회에 참석할 이유를 찾을 것입니다. 물론 아프거나 예측하지 못한 어떤 심각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좋은 판단력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성서의 훈련을 받은 양심에 따라 그는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계명을 따름으로 진리를 행할 것입니다.
6. 집회에 빠지는 “이유들”이 어떻게 집회에 습관적으로 빠지게 하는 “핑계”가 될 수 있읍니까?
6 만일 주의 종이 방심한다면 그는 매우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정기적으로 이 복된 교제를 놓치게 될 수 있읍니다. 때때로 친척의 방문이 환경에 따라 특정한 집회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친척이 방문할 때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의 일이 있을 때마다 회중 가운데서 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기회를 놓칠 것입니까? 친척을 집회에 같이 가자고 초대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또한, 악천후나 직장이나 가벼운 병으로 인하여 때때로 집회에 빠지는 것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들”이 주의 백성과의 교제를 정기적으로 떠나게 하는 “핑계”가 되면, 빛 가운데가 아니라 어두움 가운데 행하기 시작하고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기 시작합니다.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그들이 문설주에 피를 뿌리는 일과 유월절 양을 먹는 일 그리고 순간적인 통고를 받고 떠나는 일을 무엇이 방해하게 하였을 것이라고 잠시라도 생각할 수 있읍니까? 그들은 이 경우에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생명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덜 심각합니까? 지금은 때가 조금이라도 다릅니까? 우리는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더욱 더, 우리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정기적으로 회중과 교제함으로 우리의 자진적인 태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진리를 공개적으로 행함
7. 초기 그리스도교의 어떠한 두드러진 특성이 이제 여기에서 논의됩니까?
7 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두드러진 특성 중의 하나는 좋은 소식의 공개적 선포였읍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갈릴리’ 전역을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신 기록을 읽을 수 있읍니다. (마태 4:23) 그분은 산에서, 해변에서 사람들에게, 관심가진 사람들의 집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전파하고 가르치셨읍니다. 그분은 그가 특별히 훈련시키던 열 두명에게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열 두명에게 교훈을 하신 다음 그분은 그들을 여러 도시에 보내어 전파하고 가르치게 하셨읍니다.—마태 10:5-10.
8. 어떻게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그리스도교국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릅니까?
8 그러므로 이십 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일을 할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 면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의 대다수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듣기만 하고, 진리의 말씀을 전파함으로써 진리를 행하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자들이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말씀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것은 예수와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 사람들의 임무입니다. 성서 기록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야고보 1:22, 새번역; 요한 1서 2:6.
9. 공개 전파에 참여함으로 진리를 행하는 데 있어서의 몇가지 문제를 약술하십시오.
9 왕국을 전파함으로 이 진리를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가장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는 흔히 반대자들로부터의 모욕을 참아야 합니다. 말하자면, 공개 전파 활동을 하도록 태어나는 사람, 다시 말하면,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읍니다. 그러므로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능숙하고 유능해지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또한 공개 전파 활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겸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일에 참여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 데 대하여 핑계를 댈지 모릅니다.
10. (ㄱ) 때때로 전파 사업에 참여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 몇가지를 말씀하십시오. 이러한 “이유들”이 언제 “핑계”가 될 수 있읍니까? (ㄴ) ‘사단’의 책략에 대하여 무엇을 기억하는 것이 좋으며, 따라서 우리는 어디에서 도움을 구할 수 있읍니까?
10 때때로 특정한 때에 전파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좋은 이유가 있을 수 있읍니다. 자신이 사는 집을 수리할 필요가 절실할 때가 있읍니다. 타고 다니는 유일한 차를 속히 수리해야 할지 모릅니다. 어떤 개인적인 일로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이유가 언제 핑계가 되는가? 그러한 방해 때문에 진리를 행하는 것을 중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각자는 자기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고 있으며, 물론,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지금 온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생사의 쟁점에서 확실히 우리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움 가운데 행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기를 원합니다. 어두움의 신 ‘사단’은 우리의 강점이 아니라 우리의 약점을 이용합니다. 만일 그가, 우리가 낙심하도록, 소극적으로 생각하도록 할 수 있다면 그는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더욱 더 사용할 것입니다. 그의 계략을 성공적으로 대응해서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우리는 기도로 그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왕국의 권익을 첫째로 두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관심사를 첫째로 두는 것을 습관으로 하고 있는가?
11. 물질을 추구하는 것은 진리를 행하는 데 어떻게 장애물이 될 수 있으며,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옵니까?
11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예언자 ‘학개’의 시대에 나태한 백성에게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그분이 말씀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의 말씀은 이러하였읍니다.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학개 1:9) 우리도 같은 행로를 걷고 여호와의 축복을 놓칠 것입니까? 만일 여호와께서 땅을 요동케 하고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게 하신다면 우리의 집과 새로운 벽널 장식과 개량 공사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시 46:2) 그러므로 진리를 계속 행하고 우리의 공개 전파 사업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이 활동은 완성될 때가 가까왔읍니다. 우리 앞에는 큰 환난이 있읍니다. 빛의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여 우리 손이 할 일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합시다. ‘바울’의 이러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 4:13) 그 “모든 것” 가운데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우리의 공개 전파를 포함시키십시오.
우리의 형제를 사랑함으로 “빛 가운데 행”함
12. 어떠한 다른 어두움의 형태를 피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진리를 행하는 또 다른 중요한 면에 대하여 요한 1서에서 이러한 기록을 읽을 수 있읍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요한 1서 2:9-11)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진리를 행하는 것은 형제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읍니다. 모든 면으로 올바르게 처신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정기적으로 모이고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다른 때에는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고, 그들을 피하고, 그들의 복지에 무관심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13. (ㄱ) 이 점에서 어떠한 질문들이 논리적으로 가능합니까? (ㄴ) ‘말라위’와 ‘니카라구아’ 형제들과 관련된 예는 하나님의 종들이 서로 사랑을 나타냄으로 진리를 행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13 어떤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고 질문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나의 형제들을 사랑한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어떠한 일이라도 기꺼이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하고 말할지 모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봅시다. 근년에 여호와의 종들이 지상의 도처에서 많은 고통을 받은 경우가 있읍니다. 예를 들면, ‘말라위’에서 여호와의 백성은 심하게 박해를 받았으며 대다수는 마침내 그들의 그리스도인 행실에 대한 반대로 인하여 그들의 집과 그 나라를 떠나 외국에 거주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니카라구아’에서 대 지진이 수도 ‘마나구아’를 강타하여 많은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모든 소유물—그들의 집, 직장, 집회 장소 등 모든 것을 상실하였읍니다. 전세계적으로 여호와의 종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그들의 이들 영적 형제들에 대한 염려는 지극하였읍니다. 이것은 이들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보내준 도움으로 나타났읍니다. 그것은 형제들에 대한 그리스도인 염려와 관심의 놀라운 표시였읍니다.
14. 우리의 형제들에게 관심을 나타냄으로 진리를 행할 때에 우리는 회중 내의 누구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으며, 우리는 어떠한 면으로 도울 수 있읍니까?
14 그러나 그것을 우리에게 더 가까운 곳에 주의를 돌려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우리 회중에서 정기적으로 만나고 매우 잘 아는 사람 가운데서 진리를 행하는 데 마찬가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까?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을 스스로 살펴보고 있는 중임을 기억하십시오. 지금은 사람들이 치솟는 생활비의 결과로 커다란 압력을 느끼고 있는 때입니다. 만일 가족 부양 책임자가 일시 해고된다면 그 압력은 크게 증가됩니다. 고정수입으로 살아가는 많은 가족과 개인들은 생활 필수품을 얻는 데 어려움을 가지며 그 입장은 앞으로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박국 3:17) 우리 중에 어떤 사람 혹은 가족이, 그들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 데도, 궁핍하게 되었음을 알게 될 때 우리 개인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제자 ‘야고보’가 말한 바와 같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야고보 2:15, 16) 진리를 행하는 사람들은 그 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5. 그 외에 누구를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읍니까?
15 회중 내에 있는 우리의 연로한 형제 자매들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읍니까? 우리는 동료감과 그들에 대한 관심으로 “빛 가운데 행”함을 나타내고 있읍니까? 우리는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계명을 계속 지키고 있읍니까? 아마 때때로 그들을 부축해 주고 집회에 함께 갈 사람 혹은 야외 봉사에 갈 때 도와줄 사람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물질적인 생활 필수품을 얻는 데 혹은 그들의 집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릅니다. 이러한 것은 진리를 행하는 방법입니다. 때때로 연로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방문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관심을 보이는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성경에 이러한 말이 있읍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언 16:31) 여호와의 뜻을 여러 해 동안 충실히 수행하여 온 그의 종들이, 진리를 행하고 빛 가운데 행하는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흐뭇할 것입니다!
16. 회중 내의 장로들에 대한 존경이 어떻게 진리를 행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까?
16 우리는 또한 진리를 행하는 것에, 훌륭한 방법으로 주재하는 장로들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것이 포함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충고는 이러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주재하는, 신세]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데살로니가 전 5:12, 13; 히브리 13:17) 우리는 우리 회중 내의 연로자들을 그렇게 봅니까?
17. 장로들은 자기들이 진리를 행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17 물론, 주재하는 사람들도 진리를 행해야 하고 “양들”의 복지에 강렬한 관심을 가져야 함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형제들을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빛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길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직접적인 명령을 받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해서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시오. 여러분이 맡은 자들을 지배하러 들지 말고 양떼의 모범이 되시오.”—베드로 전 5:2, 3, 새번역.
18. 하나님의 백성에게 보낸 ‘바울’의 권위있는 충고의 지혜를 약술하십시오.
18 끝으로, 진리를 행하고 빛 가운데 행하고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고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어두움에서 떠나 있으려면,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이 ‘골로새’ 회중에게 지혜의 말로 보낸 권위있는 충고를 따라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 3:12-14.
19, 20.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모세’ 시대에 있었던 어떠한 사건을 상기시키며, 우리 각자는 진리를 행하고 여호와의 계명을 지킴으로 어떻게 축복을 받을 수 있읍니까?
19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관한 영광스러운 좋은 소식이 빛을 내지 못하도록 ‘사단’이 사람들의 정신을 어둡게 하여 사람들에게 칠흑같은 어두움이 임한 오늘날,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을 발견합니다. 세상의 어두움은 더욱 짙어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진리의 빛은 밝아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한 ‘모세’ 시대를 상기시켜 줍니다. ‘애굽’의 냉혹한 ‘바로’에 대한 아홉번째 재앙 즉 재난은 그 땅에 임한 짙은 암흑이었읍니다.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그 동안은 사람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이스라엘’ 자손의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더라.”—출애굽 10:22, 23.
20 우리는 중대한 시기에 살고 있읍니다. 세상은 해결책을 몰라 암중 모색하고 있지만 빛의 하나님과 세상의 빛인 주 예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빛은 찬란히 빛나고 있읍니다. 우리가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계속 지키며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기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그것이 앞날에 대하여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사도 ‘요한’의 이러한 말에 표시되어 있읍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니라].” (요한 1서 1:7) 우리는 어두움이 전혀 없으신 빛의 하나님과 사귀게 된 데 대하여 다 함께 감사합시다.
[566면 삽화]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의 매주 열리는 집회에 수백만명이 격려적인 성서 토론을 위하여 모인다
[569면 삽화]
연로한, 그리고 병약한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를 위하여 집안 일을 해 주는 것은 사랑과 관심의 표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