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견해 2
변이(變移) 혹은 부활—어느 쪽인가?
19세기의 저명한 미국 시인 ‘헨리 왓스워어드 롱펠로우’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죽음이란 없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변이이다.”
이 견해가 옳은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부활시켜 생명으로 돌아오게 하실 때까지 죽은 자들이 그대로 무의식 상태에 있는가? 당신은 어떻게 믿고 있는가?
이 문제에 관하여 혼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어떤 사람이 복음 전도자 ‘빌리 그레함’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사람이 죽은 후에 부활할 때까지 그대로 무덤에 있어야 합니까? 저는 사망시에 영혼들이 떠나가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레함’은 다음과 같이 회답하였다. “사망시 영혼과 육신은 분리됩니다. 육신은 분해되어 없어집니다. 반면에 믿지 않은 영혼은 결박되어 지옥 즉 ‘하데스’에 넣어집니다.” 의로운 신자들에 대하여 ‘그레함’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의 경우에 있어서 육신의 사망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영혼의 즉각적인 해방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신봉되고 있는 종교적 견해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만일 사망시에 즉시 사람이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거나 악한 자가 즉시 지옥으로 보내진다면 부활이 더 이상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러한 모순 때문에 교회 신학자들이 오랫동안 옥신각신해 왔지만 해결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진술을 받아들일 때 혼동은 사라진다. 성서는 사망시 인간의 생각과 존재가 끝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생각, 신세]가 소멸하리로다.” (시 146:3, 4) 그렇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사망 중에서는 주[전능하신 하나님]를 기억함이 없”다.—전도 9:5; 시 6:5; 115:17.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더이상 그의 천적 아버지를 기억하거나 그분을 찬양할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죽으셨으며, 무의식이셨고, 존재가 없으셨다. 예수에게 있어서 사망은 다른 생명으로의 변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존재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그분이 돌아가신지 세째날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생명으로 회복시키셨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고 사도 ‘베드로’는 말하였다.—사도 2:32.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체, 혈과 육을 가진 인간으로서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의해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몸을 가진 영자로 부활 받으셨다. 사도 ‘베드로’는 이와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느니라].”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영의 몸, 신세]이 있느니라.”—베드로 전 3:18; 고린도 전 15:44.
여호와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그리고 천사들은 모두 영의 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늘에 간 자들은 같은 영의 몸을 갖게 된다. 영의 몸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큰지—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나 천사들보다 몸이 얼마나 더 크신지—그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설명한 바와 같이 그도 몰랐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하나님]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요한 1서 3:2.
죽음이 임박했을 때 사도 ‘바울’은 그가 천적 생명의 상을 받을 것을 확신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디모데 후 4:7, 8.
“그 날” 즉 ‘바울’이 천적 생명의 상을 받을 날은 그 당시 앞으로 있을 먼 훗날이었다. 그 날은 ‘바울’이 사망한 날이 아니었다. 사망은 ‘바울’이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게 하는 변이가 아니었다. 그것이 아니라 사망은 그에게 무의식, 존재의 끝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과 충실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훗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리라].”—데살로니가 전 4:16.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른다. ‘성서는 사망시에 즉각적인 변화 즉 “일순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것은 사망시에 다른 생명으로 즉각적으로 변이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를 조사해 보자.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보시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말하겠읍니다. 우리가 다 죽은 다음에 잠들어 있을 것이 아니라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려올 때 일순간에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 것입니다.”—고린도 전 15:51, 52, 새번역.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신속히 영의 생명으로 변화하는 이 일은 “마지막 나팔이 울려올 때” 일어난다는 것에 유의하라. 위에 인용된 ‘데살로니가’인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주께서 “강림”하실 때에 즉 그분이 사랑하는 동료들을 부활시키기 위해 지상으로 관심을 돌리시는 때에 일어난다고 알려 주고 있다. 그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데살로니가 전 4:16.
그러나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려고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아직 지상에 살아있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할 것인가? ‘바울’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죽은 그리스도인들]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 전 4:17.
따라서 “마지막 나팔이 울려올 때 일순간에” 부활되는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신 후에 죽는 사람들이다. 그 때에 즉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그리스도께서 부활시키신 후에 그 후로 죽는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사망 가운데서 잠잘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망시에 “일순간에” 즉각적으로 변화되어 이미 하늘로 부활된 자들과 함께 연합하게 된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죽지만 영의 몸으로 부활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영광중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단지 제한된 수의 그리스도인들만 그렇게 될 것이다. 성서는 하늘로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이며,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리라”고 설명한다. 성서는 단지 144,000의 사람들만이 “왕들로서 땅을 다스”리기 위해 천적 생명으로 부활된다고 알려 준다. (계시 20:6; 5:10, 신세; 14:1-3) 그러면 하나님의 은총을 얻게 될 나머지 인류는 어떠한가?
때가 되면 이들은 하나님께서 원래 첫 인간 남녀를 지상의 낙원에 두셨을 때 인류를 위하여 목적하신 바와 같이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지적 신민이 될 것이다. 성서는 이와 같이 약속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이 마침내 모두 실현될 때 그것은 참으로 웅대할 것이다!—시 37:29; 계시 21: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