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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채에 대한 올바른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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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7
파77 11/15 522-523면

부채에 대한 올바른 견해

공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부채를 갚지 않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보신다. 영감받은 시편 필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한다].” (시 37:21)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로마 13:8.

그러므로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양심적으로 빚을 갚고 물품이나 용역 등에 대하여서도 신속히 지불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미 지고 있는 이상으로 더 많은 경제적인 짐을 지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 더우기 부채를 갚는 일은 늦추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부채는 갚지 않고 소득의 상당한 부분을 돈이 많이 드는 오락이나 휴가 혹은 사치품 등에 사용한다면 매우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며 감사할 줄 모르는 일이다.

친척이나 친구에게 빚을 졌을 때는 그 책임이 별로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처럼 양심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가족 관계나 벗 관계를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사실 부채를 갚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써야 할 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채권자들에게 많은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기가 직접 개업하고 있는 의사, 변호사, 전기 기사, 목수 등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들이 일을 할 때는 경비가 든다. 그들은 활동에 대한 보수를 받아서 그러한 경비를 충당하고 생활비를 벌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돈을 갚지 않는다면 돈이 돌지 않아 사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생활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은 분명히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러한 점을 명백히 지적하였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요한 1서 3:15-17.

그러한 궁핍한 형제가 다른 데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오랫 동안 필수품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러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기를 거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일종의 범죄적인 무관심을 나타낸 것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당하게 부채 기간을 연장하여 동료 신자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동료 신자의 직업을 잃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그 채권자에게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그가 궁핍한 상태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부채를 갚지 않는 사람이 형제에게 아주 해로운 일을 하였다고 말할 수 없겠는가?

양심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관계를 이용하여 이득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은 ‘더러운 이를 탐하는 것’임을 잘 안다. (디모데 전 3:8) 성서는 그러한 탐욕이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잘 알려 준다. 그 점은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의 경우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엘리사’를 통해 ‘시리아’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무서운 문둥병이 낫게 되었다. ‘나아만’은 감사의 표시로써 ‘엘리사’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선물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이 임명하신 예언자로서의 지위 및 그와 관련된 능력을 사용하여 이득을 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하시’는 ‘엘리사’가 받지 않은 그 선물을 몹시 탐내었고 결국 거짓말을 하여 선물을 ‘나아만’으로부터 받았다. 그 결과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게하시’는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다.—열왕 하 5:15, 20-23, 27.

따라서 탐욕 때문에 자기의 부채를 갚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리한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성서는 ‘탐하는 자는 하나님의 왕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린도 전 6:10) 그렇다. 그러한 탐욕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상실할 수도 있다. 참으로 값비싼 대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직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따라야 한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태 7:12)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갈라디아 6:10) 그러므로 부채 문제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양심적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면 우리 자신이 올바른 본을 보여야 되지 않겠는가? 특히 우리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의 빚을 갚는 데 있어서 그들이 억지로 친절을 베풀게 하지 않음으로써 선을 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업 문제에 있어서 동료 신자들이 그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한다거나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배려를 나타낸다면 그에 대해 감사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모두 받을 수 있게 하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인 종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이러한 권고는 훌륭한 지침이 된다.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디모데 전 6:2) 그리스도인들이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부채를 양심적으로 갚는 것은 이러한 교훈과 일치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채를 갚는 일에서 성서 원칙과 일치하게 행하고 있음을 나타내야 한다. 고의적으로 부채를 갚지 않는 것은 악한 것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지존하신 분께서는 탐욕이나 이기심 때문에 빚을 갚지 않는 사람들을 결코 승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가 단지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않’도록 함으로써 여호와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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