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유다 20, 21.
1, 2. 경고 외에도, 「유다서」에는 어떠한 교훈이 들어 있읍니까?
여호와의 과분하신 친절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루시는 일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분은 자기의 영감받은 말씀을 통하여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인 「유다서」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경고가 주어진 것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할 수 있읍니다!
2 그러나 ‘유다’는 필요한 경고 외에도 우리가 자신을 영적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다서」의 결론적인 부분을 고려해 봄으로 크게 유익을 받을 것입니다.
예언된 조롱자들
3, 4. ‘유다’는 예수의 제자들의 어떠한 “말”을 언급하였읍니까?
3 중요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유다’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유다 17-19)
‘유다’는 회중 안으로 교활하게 몰래 들어온 “경건치 않은 자”들을 폭로해 주는 말을 많이 하였읍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깊이 사랑했던 동료 신자들에게 호소하면서, ‘유다’는 그들에게 예수의 사도들이 이전에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한 말들을 기억해 보는 것은 모든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을 감동시켜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4 사도 ‘바울’은 동료 감독자들에게 그들 가운데서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였읍니다. (사도 20:29, 30) 그는 ‘디모데’에게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4:1, 2)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 날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할’ 것임을 특별히 경고하였읍니다.—베드로 후 3:1-4, 새번역.
5.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회중 안으로 가만히 들어온 “경건치 않은 자”들에 의해 어떻게 다루어 졌으며, 그러나 경건한 사람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5 그러므로, ‘유다’의 서한을 받아본 사람들은 ‘유대’ 사물의 제도의 종말이 임하기 직전의 기간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을 당연히 기대해야 하였읍니다. 회중 안으로 가만히 들어온 “경건치 않은 자”들이 여호와의 의로운 표준에 고착하고 ‘거짓 형제들’의 방종에 가담하지 않는 충실한 신자들을 조롱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읍니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들은 비록 거짓 선생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게 될지라도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것이 필수적이었읍니다. 그 거짓 선생들은 자신들의 부도덕하고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또 그것에 미혹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비교 고린도 후 11:26; 갈라디아 2:4, 5.
6.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간의 연합을 공고히 하셨지만, 경건치 않은 조롱자들은 어떻게 하려고 노력합니까?
6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합을 공고히 하셨읍니다. 이에 반하여, 경건치 않은 조롱자들은 “당을 짓”거나 “차별”을 함으로 여호와의 백성들 사이를 이간시키려고 노력하였읍니다. (유다 19, 「신세계 역」, 1950년판 난외주; 시 133:1-3; 고린도 전 1:10) 조롱자들이 회중 내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충실한 사람들에게 거스려 말하는가 하면 그 경건치 않은 자들은 자기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개개인들에게 아첨의 말을 하였읍니다. (유다 8, 16) ‘바리새’인들 같이 그들은 비천하지만 경건한 회중 성원들을 업신여겼읍니다. 그런 자들은 주와 함께 모이기는커녕, 흩어지려고 하였읍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일부 사람들은 견고하지 못한 자들을 이끌어 내어 소위 “성서 연구”를 한다고 하는 사적인 모임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고 있읍니다. 이런 것으로는 결코 하나님과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인 회중에 대한 사랑을 증진시킬 수 없읍니다.—누가 11:23.
7.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육에 속한”이라는 묘사가 적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7 그런 자들에게는 “육에 속한” 또는 “관능적인” 묘사와 같은 말이 적합하였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각이 있지만 육체적인 감각과 욕구 및 경향에 굴복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왕국 행간 번역」 19절 비교) 그들은 자기들이 영적으로 계몽받았다고 생각하였지만, ‘유다’는 그들을 “성령은 없는” 즉 문자적으로 “영”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자들이라고 묘사하였읍니다. 사실상, 이들 ‘육에 속한 자들’은 여호와의 영이 없었으므로 영적인 사물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이성없는 짐승과 다를 바가 거의 없었읍니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의 영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는 천적 아버지께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고린도 전 2:6-16.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방법
8.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란 표현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입니까?
8 이어서 ‘유다’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간절히 호소하였읍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다 20, 21)
‘유다’는 그의 소중한 동료 신자들이 어떻게 여호와의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 주었읍니다. 그의 교훈을 따르는 데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의 열매인 믿음을 배양하는 일이 내포되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 5:22, 23) 그러나 ‘유다’가 앞서 언급했던 ‘성도에게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싸우라는 말을(3절) 고려해 볼 때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란 표현은 구원의 좋은 소식을 포함한 전반적인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참된 믿음의 기초는 그리스도이시며,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고 전적으로 그분의 거룩한 말씀에 근거를 둔 것이었기 때문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불리웠읍니다.—사도 20:32; 고린도 전 3:10-15.
9.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우리 자신을 건축’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9 그리스도인들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들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즉 그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회중적으로 부지런히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여호와의 동료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함께 성서를 자주 토론하는 일은 성서가 우리 마음에 더 깊은 감명을 주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 가운데 진실한 기도를 떠나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읍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의 영향력 아래,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에 들어 있는 것과 일치하게 기도할 때 그는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를 어떻게 하고 기도 중에 무엇을 구할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에 충만하게 해주실 것을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읍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올바른 마음 상태 즉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마음 상태를 알게 해 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회중 안으로 가만히 들어올 수 있는 온갖 “경건치 않은 자”들의 견해를 포함한 부당한 영향으로부터 보호받게 될 것입니다.—누가 11:13; 로마 8:9, 26, 27.
10.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하여는 ‘유다’의 동료 신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하였읍니까?
10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유다’의 동료 신자들은 여호와의 계명과 그분의 아들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요한 15:10; 요한 1서 5:3)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데는 여호와께 승인받는 언행이 요구됩니다. 충실한 사람들도 불완전하고 죄의 경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기 위하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시고 그들의 주의 대속 희생에 의해 가능하게 된 여호와의 자비를 계속 구해야 합니다. (로마 5:8; 9:14-18; 요한 1서 4:9, 10) 예수의 충실한 추종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속적인 자비는 결국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요한 3:16.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보일 필요성
11. ‘유다’는 자비에 관하여 무엇이라 말하였으며, 자비를 나타내는 데 있어 누구와 누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였읍니까?
11 자비를 보일 필요성에 관하여 ‘유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자비롭게, 신세]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속옷, 신세]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자비롭게] 여기라.” (유다 22, 23)
‘유다’의 동료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계속 받으려면, 그들은 영원한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롭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야고보 2:13) 그러나, 충실한 자들이 ‘어떤 의심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기 위해선 자비를 받기에 합당한 자들과 ‘꿈꾸는 자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였읍니다.
12. (ㄱ) “경건치 않은 자”들의 영향을 받아 일부 사람들은 어떠한 의심을 가졌었을지 모릅니까? (ㄴ)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12 “경건치 않은 자”들은 거짓 가르침과 투덜거리는 일 및 불평등으로 영적으로 견고하지 못한 자들이 의심을 가득 품게 하였읍니다. 거짓 선생들의 과장된 말에 동요된 의심하는 자들은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여호와의 백성인지의 여부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되어 그들과 함께 숭배와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참여하기를 중지하였을지 모릅니다. 그처럼 불안정한 사람들은 “불” 즉 영원한 멸망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읍니다. (마태 18:8, 9; 25:31-33, 41-46 비교) 그러나, 안정된 그리스도인들 특히, 회중 감독자들은 영적인 권면과 기도로 그들에게 신속히 도움을 베품으로써 그들을 구원하여 ‘불에서 끌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갈라디아 6:1; 야고보 5:13-20.
13. (ㄱ) 일부 사람들은 어떤 면으로 ‘그들의 속옷을 더럽혔’읍니까? (ㄴ) ‘더럽힌 옷’을 입는 자들이 어떻게 구원될 수 있읍니까?
13 일부 사람들은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에게 굴복하여 그들과 더불어 부도덕이나 그밖에 영적 간음에 빠지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야고보 4:4) 그들은 육욕적인 습관의 노예가 됨으로써 말하자면 ‘속옷을 더럽’혔읍니다. 그들은 마치 살갗에 직접 닿도록 입는 옷과도 같은, 순결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들의 내적 성품을 더럽혔읍니다. (계시 3:4, 5)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들은,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여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으므로, 자신들의 그리스도인 성품의 옷이 이런 식으로 때묻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였읍니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들, 특히 임명된 장로들은 ‘더럽힌 옷’을 입고 있는 불안정한 자들이 구원의 길로 회복되도록 동정심을 가지고 도우려고 하였읍니다. 만일 제 멋대로 행동하는 자들이 진실한 회개를 나타낸다면, 그들의 불결한 행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을 잃은 사망의 상태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는 일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잠언 28:13.
하나님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를 돌리라
14, 15. (ㄱ) 누가 ‘유다’의 기름부음받은 동료 숭배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었으며, 그들은 실족하여 어떻게 될 수 있었읍니까? (ㄴ) 여호와의 충실한 기름부음 받은 증인들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이” 설 수 있었읍니까? (ㄷ) “큰 무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읍니까?
14 결론에 가서, ‘유다’는 자기의 편지를 읽을 사람들을 하나님께 의탁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실족하는 일, 신세]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찌어다. 아멘.” (유다 24, 25)
‘유다’는 영감받은 경고와 건전한 교훈을 베푼 다음에, 영적으로 위험에 처한 동료 신자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시도록 의탁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그들이 그들 가운데 있는 “경건치 않은 자”들을 성공적으로 대항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한분뿐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적절하게도 그의 서한을 지존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것으로 끝을 맺었읍니다.
15 ‘유다’의 기름부음받은 동료 숭배자들은 여호와께서 ‘능히 그들을 보호하사 실족하는 일이 없게 하실’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그리고 유혹에 굴복하여 육체를 더럽히는 경건치 않은 자들이 조장하는 부도덕에 가담하지 않도록 보호하실 수 있었읍니다. 참으로 여호와께서는 경건한 자들이 ‘실족하여’ 심각한 죄에 빠짐으로 회개하지 않는 탐욕적인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멸망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 주실 수 있었읍니다. 더우기,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충실한 증인들이] 그 영광 앞에” 혹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본체 앞에”(「신세계역」 1950년판) ‘흠이 없이 서게 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때묻지 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었읍니다. (에베소 2:1-7; 골로새 1:21-23) 여호와의 충실한 기름부음받은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을 부활시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본체” 앞에 영적으로 완전한 상태로 그들이 나타날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원하고 있읍니다. (요한 5:25; 11:24, 25) 확실히, 이것은 그들에게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큰 무리”도 “큰 환난”을 통과하도록 보호받고 그 후 이곳 지상에서 인간 완전성으로 발전되어감에 따라 “거룩한 봉사”의 특권을 더욱 즐기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읍니다.—계시 7:9, 10, 14-17, 신세 참조.
16. (ㄱ) 여호와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유다’는 하나님께 무엇을 돌렸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왜 적절합니까?
16 ‘유다’가 말한 대로 여호와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가끔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구주 즉 구원자로 인정되고 있읍니다. (시 106:21; 이사야 43:3; 예레미야 14:8; 누가 1:46, 47) 그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마태 20:28; 요한 3:16; 로마 5:8; 요한 1서 4:9, 14) 적절하게도, ‘유다’는 여호와께, 탁월함을 뜻하는 “영광”(희랍어, ‘도크하’)을 돌렸읍니다. (시 29:1, 2 비교) 그는 또한 하나님께 왕의 특성인 “위대함”을 의미하는 “위엄”(희랍어, ‘메갈로시네’)을 돌렸읍니다. (행간 번역) 이것은 “영원하신 왕”으로서 여호와의 최고 왕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입니다. (디모데 전 1:17, 신세) ‘크라토스’ 즉 “권력” 또한 여호와께 돌려졌는데, 이것은 분명히 하늘에서의 또는 땅에 대한 그분의 지배권 즉 통치권을 의미하였읍니다. (다니엘 4:25; 계시 11:16-18 비교) ‘유다’는 더 나아가 하나님께 “권세”(희랍어, ‘에쿠시아’)를 돌렸읍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실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다니엘 4:34, 35.
17. 하나님께 대한 ‘유다’의 찬사가 (ㄱ) “만고 전부터” (ㄴ) “이제” (ㄷ) “세세에” 적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유다’는 적절하게도 여호와께 영광과 위엄, 권력 및 권세가, 사람들이 알지도 모르는 “만고 전” 즉 “만세 전”으로 돌렸읍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유다 25, 「신세계역」 1950년판 난외주; 시 90:2) 여호와의 숭배자들이 “이제” 즉 ‘유다’가 그 편지를 쓴 때에 그리고 오늘날에 이러한 찬사들을 그분께 돌리는 것은 합당할 것입니다. 더우기,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찬사를 “세세에” 받아 마땅하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에게는 결코 죽음이란 없을 것이며 항상 충실한 찬양자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1:12; 시 148편) ‘유다’는 그의 사실상의 끝맺는 기도에 “아멘” 즉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라는 말을 덧붙였읍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모든 충실한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그의 찬양의 표현에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유다’의 소식을 마음에 새기라!
18. ‘유다’의 서한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관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읍니까? (ㄱ) 거짓 선생들 (ㄴ) “방종” (ㄷ) 믿음의 결핍 (ㄹ) 권위에 대한 존경심 (ㅁ)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일 (ㅂ) 이기적인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일
18 ‘유다’의 서한은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참다운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고착해야 하며 거짓 선생들을 철두 철미 피해야 합니다. (욥 13:16; 27:8, 9; 예레미야 17:13; 유다 4, 19) 충실한 자들은 “방종”에 빠지게 하려는 온갖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유다 3, 4, 신세 참조; 창세 39:7-12) 우리는 또한 믿음의 결핍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잃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3:12; 유다 5) 또한 우리는 ‘유다’의 서한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권위를 존경하고 회중적인 책임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을 거스려 말하게 하는 여하한 유혹도 배격해야 합니다. (히브리 13:17; 유다 8, 9) 투덜거리고 불평하는 대신, ‘유다’의 서한에 감동을 받아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의 동료 신자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마태 22:37-40; 요한 13:34, 35; 로마 13:8-10; 유다 16) ‘유다’의 말은 또한 이기적인 이득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일을 피하도록 도와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게 만드는 패역한 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잠언 3:32; 유다 16.
19. 우리는 왜 하나님의 영감받은 ‘유다’의 소식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까?
19 그러므로, 여호와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헌신한 그리스도인 증인들인 우리는 모두 제자 ‘유다’의 힘차고도 사랑에 찬 소식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사야 43:10-12; 사도 1:8 비교) 그가 말한 것들은 “생명의 길”을 걷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 한층 확고 부동하게 해 줄 것입니다. (시 16:11) 우리는 ‘유다’의 서한을 포함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계속 경계’해야 합니다. (시 119:9-16, 신세 참조)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데’ 성공할 것이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다음 요점들을 기억하는가?
◻ 누가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으며, ‘유다’가 이것에 주의를 환기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 “지극히 거룩한 믿음”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우리 자신을 그 위에 건축할 수 있는가?
◻ ‘유다’의 동료 신자들은 어떻게 ‘그들 자신들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킬’ 수 있었는가?
◻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자비가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을 불에서 끌어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였는가?
◻ ‘유다’가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 위엄, 권력 및 권세를 돌린 것은 왜 합당하였는가?
◻ 우리가 ‘유다’의 소식을 마음에 새겨야 할 이유는 그것이 어떠한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대처하게 도와 주기 때문인가?
[17면 삽화]
제 일세기의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들은 거짓 선생들에게 조롱당하였을지 모르지만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웠다
[18면 삽화]
‘성령으로 기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