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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인
  • 깨어라!—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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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7
깨77 9/22 9-11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인

재물은 약간의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있다. 행복의 근원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앞 기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상호간에 나타낼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다. 그러나, 인간을 위한 행복의 근원으로서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예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이것이 사람들이 지켜야 할 둘째로 큰 계명이라고 하셨다. (마태 22:39) 그러면 첫째가는 가장 중요한 계명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 22:37, 38) 현재와 미래의 가장 큰 행복은 사람들이 이 계명을 행할 때에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신체와 정신을 지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인간의 행복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간보다 훨씬, 훨씬 더 잘 아신다.

심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위한 어떠한 원칙과 법칙이 가장 좋은 결과를 산출할 것인가에 대하여 실험을 하고 추측을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럴 필요가 없으시다. 그분은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다. 그분은 그러한 것들을 창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돌릴 때 우리는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인간에게 가능한 최상의 충고를 얻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과 원칙에 따라 행동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행복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마음대로의 교통 법규를 만든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신은 그러한 경우의 엄청난 혼란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번화한 교차로에서도 자동차로 통과할 때 특히 보행자로서 건널 때 당신의 생명이 위험할 것이다. 운전을 위한 이치적인 법규를 정할 어떤 높은 권위가 필요하며, 우리 모두는 그러한 것에서 유익을 얻는다.

이와 유사하게,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동의 최상의 법규와 원칙들을 정해 놓으셨다. 그러한 것들은 참으로 효과가 있다. 그러한 것들은 실용적이며 최상의 결과를 가져 온다. 우리가 그러한 것을 무시하는 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것이며, 그것은 운전 법규를 무시할 때의 운전사에게 오는 결과만큼 확실하다. 참으로, 지상에 고난이 그렇게도 많은 기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들의 법칙을 만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더 행복한 사람들

성서는 창조주를 “행복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디모데 전 1:11, 신세)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지시를 따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은 이 행복을 반영할 수 있으며 혹은 어느 정도의 행복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 필자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이 있다.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그렇다. “여호와를 자기 백성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다.]”—시 84:12; 119:1, 2; 144:15.

물론,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행복하지 않은 사물의 제도가 변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그들의 창조주를 그 행복의 근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활은 확실히 호전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분을 바라 볼 때, 그분은 그들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분의 강력한 활동력 즉 성령으로 그들을 도우신다. 행복을 위한 그보다 더욱 강력한 능력은 온 우주 가운데 존재하지 않는다.

고난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고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확실히 그들은 영향을 받는다. 그들도 얼마의 문제와 슬픔을 당한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아프고 죽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들이 행복의 근원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보다 행복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현재의 그들의 행복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다시 말하면, 그 행복은 다른 방법으로 달성될 수 있는 행복보다 크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행복은 현재 완전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 하면 우리 모두는 성서가 지적하듯이 죄 가운데, 불완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이다. (로마 5:12)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실수를 범하며, 우리는 침울하고 불행을 느끼는 기간을 가지기 쉬우며 또한 행복을 저해하는 질병에 걸리고 사망을 당한다. 또한, 우리는 고난에 가득찬 악한 사물의 제도에서 살고 있다. 이 제도가 존속하는 한, 하나님의 종들도 완전한 행복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가까운 장래에 인류를 위한 그분의 목적을 이해하는 데서 커다란 위안과 행복을 발견한다. 이것은 그들이 균형잡히지 않은 세상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도록 도와 준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에도 그러하다. 성서가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는다.—데살로니가 전 4:13.

이 땅과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을 알고 하나님의 종들은 세상의 고난이나 세상의 나쁜 사람들로 인하여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속세를 떠나”지 않는다. (마태 24:12)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지라도 옳은 일을 계속 행한다.

예수의 본

예수께서는 바로 그 일을 행하셨다. 그분이 ‘나사로’라는 사람을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셨을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라. 성서 기록은 많은 사람이 호의의 반응을 보였다고 알려 준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일부 사람들은 매우 비뚤어져 “그 날부터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했다고 성서에서 알려 준다. 생각해 보라! 특히 그들이 당시 교직자들이었음을 고려할 때, 그러한 기적의 선행에 대하여 그들이 참으로 부패하고 악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 교직자들은 너무나 비뚤어져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했다!—요한 11:45, 53; 12:10, 11.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개의 큰 계명을 실행하는 일을 중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어떠하든지간에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최대의 행복과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자제를 유지하고 친절과 사랑의 길을 계속할 수 있었다. 성서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니라.]”—베드로 전 2:23.

예수께서는 인간이 이 세상의 고난을 시정할 수는 없으므로 이 세상과 세상의 악에 대하여 지나치게 흥분하면 행복이 저해될 것을 아셨다. 그분은 천적 아버지와 같이 이 사물의 제도가 악화되어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 제도를 종결시키실 것을 아셨다.

완전한 행복—언제?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원칙에 근거한 사랑을 보이며 하나님께 영혼을 다한 사랑을 보이는 사람들은 현생의 모든 고난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멀지 않아, 고난에 가득찬 이 제도는 그 슬픔과 함께 소멸될 것이다.

이것은 의를 행하기를 원하는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새 질서가 바로 이 땅에 영구적으로 설립될 것을 의미한다. 그 때에, 완전한 행복이 실현될 것이다.

성서 예언은 하나님께서 슬픔과 고난을 종결시킬 때가 가까왔음을 명백히 밝혀 준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는 이 부패하고 낡은 사물의 제도를 그의 천국 통치하의 의로운 새 질서로 대치하실 것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통치권 즉 하늘로부터의 통치이다. (마태 6:9, 10) 그 통치는 세계적일 것이며 온 인류를 위한 유일한 통치일 것이다. 다른 모든 왕국은 사라질 것이다. (다니엘 2:44) 그 왕국하에서, 사람들이 오늘날 부분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그러한 행복이 바로 이 땅에서 매일 실현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새 질서에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갈 것이다. (계시 21:4) 병과 노쇠 현상도 과거지사가 될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때에 사는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첫 인간 남녀를 창조하셨을 때의 목적이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며 그것도 낙원이 회복되는 이 땅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누가 23:43.

그 때는 참으로 즐거울 것이다. 생각해 보라. 모든 병과 슬픔과 고통과 사망이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하에서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무덤도 죽은 사람들 없이 텅 빌 것이다! 이들은 생명으로 부활되어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사도 24:15, 신세.

마침내, 그 행복을 저해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잠언 2:21, 22.

그렇다. 당신은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더 큰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장차 온전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 행복은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그러나 행복을 달성하기 위하여, 당신은 진정한 행복의 유일한 근원이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섬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예언에 지적된 만족스럽고 감동적인 때를 기대할 수 있다. 그 약속은 이러하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 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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