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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중에서 여호와의 사랑에 순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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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중에서 여호와의 사랑에 순응하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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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3
파73 6/1 250-254면

회중에서 여호와의 사랑에 순응하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 4:13.

1.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유익을 받을 수 있는 무슨 마련이 있으며, 참여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있읍니까?

여호와의 증인의 모든 회중에서 볼 수 있는 훌륭한 마련 한 가지는 회중 내의 모든 사람들이 유익을 받을 수 있는 신권 전도 학교입니다. 이 학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성서 제목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됩니다. 당신은 참여합니까? 만일 참여한다면, 당신은 지식과 이해를 넓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 주는 능력을 발전시키게 되며 회중 내의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격려를 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어떤 사실이 신권 전도 학교로부터 온전히 유익을 받도록 격려를 줍니까?

2 마련은 되어 있지만 회중 내의 어떤 사람들은 신권 전도 학교에 등록하거나 참여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마 자기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저히 자격을 기르지 못할까 두려워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이 진리를 말할 것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겠읍니까? 영감받은 성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많은 유익이 있읍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1] 교훈과 [2] 책망과 [3] 바르게 함과 [4]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5] 온전케 하며 [6]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 후 3:16, 17) 실로 훌륭한 유익입니다!

3. 학교에서 베푸는 어떠한 도움이 또 격려가 됩니까?

3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이 진리를 말하고 또 그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을 원하신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이 말은 연단에서 연설할 때에 모든 사람이 동일한 정도의 유창함에 이르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권 전도 학교는 모든 사람들이 지식을 증가시키고, 표현을 명확하게 하고, 진술을 정확하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접근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도움을 줍니다. 이 학교에서 참여하면 또한 회중내의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을 증진시키고 격려를 줍니다. 뿐만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또 여호와를 의지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참여한다면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4. 여기에 기술된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믿음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설명하십시오.

4 이것은 자기가 사는 지방의 언어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약점이 있더라도 신권 전도 학교에서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전도 봉사를 상당히 능란하게 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룩하는 것은 실로 놀랍습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이 학교의 도움을 받아 자기의 환경을 극복하게 됩니다. 서부 ‘아프리카’ ‘다호메이’ 협회 지부에 보내온 한 편지 내용이 그 사실을 알려 줍니다.

“형제들은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해 있읍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문자 해득을 못합니다. 종교적 미신은 뿌리를 깊이 박고 있읍니다. 사용하는 언어는 많은데다 국가적 표준어가 없읍니다. 예를 들어 ‘코토느우’ 시에는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이 현재 다섯 있는데 그들의 집회가 다섯 가지 다른 언어로 열리고 있읍니다. 많은 언어는 글자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문자가 있는 언어로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작년에는 108명에게 읽기를 가르쳤읍니다. 이 사람들은 회중의 감독하에 진행되는 문맹 퇴치반에서 배웠읍니다. 지금도 읽을 줄을 모르는 형제들이 약 600명이나 있으며, 내년에는 이 문제 해결에 더욱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 글을 몰랐던 어느 회중 전도인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글을 배울 필요성은 대단히 큽니다.

“이 형제는 새로운 사람으로 처음으로 호별 방문 봉사를 하고 있었읍니다. ‘프로테스탄트’에 나가는 사람을 만났는데, 상대방은 그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당신 자신이 성서를 읽어보기 전에는 내게 전도를 하러 오지 마시오’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 새 전도인은 그 사람에게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 사람은 글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는 법이라고 말하면서 듣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그 전도인은 그 문제를 극복하려고 결심하였읍니다. 읽기를 가르치는 성인 교육반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는 6주일 동안 매일 공부를 하였읍니다. 어디를 가나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글을 아는 사람들에게 단어 발음하는 법을 물었읍니다. 6주일 후에 그는 다시 봉사를 나갔는데, 그가 처음 방문한 사람이 누구였겠읍니까? 이전에 자기가 전도하려 했을 때 듣기를 거절하였던 그 사람에게 갔었읍니다. 이번에 그 ‘프로테스탄트’에 나가던 사람은 이 ‘무식’한 사람이 자기에게 성서를 읽어 주는 것을 보고 놀랐을 뿐 아니라 그가 가르치는 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읍니다.

“내년에는 이 지역에서도 ‘제자를 더 많이 삼기’ 위해 보다 더 능률적으로 ‘좋은 소식’을 전파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글 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5. 비천한 사람들이 어떻게 여호와의 백성의 조직에 보탬이 될 수 있읍니까?

5 이 경험담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여러 경험담에 나타난 바와 같이, 비천한 사람들도 여호와의 봉사에서 특권과 기회가 올 때에 기꺼이 응하고 또 최선을 다하여 믿음으로 한다면 흔히 커다란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비천한 사람들이 회중과 연합한다면, 그들이 성경적 자격을 구비하는 한 야외 봉사에 참여하도록 격려를 주고 그들의 활동을 확장하도록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이 훌륭하게 순응한다면, 그리고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 동시에 겸손을 견지한다면 여호와의 백성들의 조직에 보탬이 됩니다. 이러한 행동은 에베소 4:2, 3에 언급된 좋은 결과를 낼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6. 비천한 사람의 충실한 노력은 얼마나 커다란 결과를 낼 수도 있읍니까?

6 비천한 사람의 충실한 노력이 한 지방에 있는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권적 나라 전체가 유익을 받는다는 성경적 사례가 ‘이스라엘’의 원수 군대를 처부순 승리의 기록 가운데 들어 있읍니다. ‘이스라엘’ 장군 ‘바락’은 ‘가나안’ 군대 장군 ‘시스라’가 ‘바락’의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 한 여인의 손에 ‘팔릴’ 것이라고 즉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읍니다. ‘겐’ 사람의 비천한 아내인 ‘야엘’이 적장을 죽이는 이 커다란 영예를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기꺼이 그 일을 하였으며, 커다란 위험성이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일을 해냈읍니다. 그 여자는 최선을 다하였으며, 하나님의 악독한 원수가 자기 손에 걸려드는 보상을 받았읍니다. 또한 그의 업적에 대한 기록과 그 여자의 이름이 성경에 포함되어 있읍니다. 그에 대한 성경 기록은 사사기 4:8, 9, 21-23에 들어 있읍니다.

7. 사사기 4장의 성서 기록에서 어떤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까?

7 “‘바락’이 [여예언자 ‘드보라’]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브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그[시스라]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이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가로되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비천하지만 충실히 행한 자에 의한 실로 큰 승리였읍니다!

천적 후원과 인도

8. (ㄱ) 그리스도교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고 어떤 것입니까? (ㄴ) 디모데 후서 3:14은 이 문제에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8 여호와의 헌신한 종들의 배경이 어떠하든지 각자는 과거 어느 때엔가 그리스도교의 길에 발걸음을 처음 시작하였읍니다. 그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생활의 길, 충실한 행동을 포함한 길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3:14)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이 의의 길을 출발하였으니만큼, 우리가 처음에 진리를 들었을 때에 진리를 면밀히 검토해 보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확신을 가지고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받고 나서 얼마 후에 우리는 온전히 확신하였읍니다. 이 확신은 감정적이나 압력에 의해서 하게 된 것이 아니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진리에 의한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니만큼 우리는 성서 안에 설명된 진리의 길을 계속 가야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통치하는 왕이신 그의 아들과 거룩한 천사들이 우리를 후원한다는 확약이 있읍니다!

9. 계시록 제 7장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을 어떻게 하늘에서 뒷받침해 주고 있는지 설명하십시오.

9 계시록 제 7장의 “큰 무리”가 계속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10절) 여호와의 찬양자들인 이 “큰 무리”에게 천적 뒷받침이 있다는 것을 11절과 12절에서 볼 수 있읍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큰 무리”가 큰 소리로 외친 사실에 대해서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찌로다. 아멘 하더라.” 그렇습니다. “큰 무리”는 참으로 천적 후원을 받고 있읍니다.

10. (ㄱ) 여호와께서는 어떤 점에서 인도를 해 주십니까? (ㄴ) 비천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전도인으로서 전파하고 가르쳐야 합니까?

10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비천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길을 가는데 인도를 받고 있다는 성경적 증거가 있읍니다. (시 119:105) 그러한 신성한 인도는 여호와의 헌신한 종들의 행실, 생각, 습관, 태도 및 봉사 활동 등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한 종들 가운데서 비천한 사람들까지도 다음과 같은 명령을 수행할 때에 유익을 받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디모데 후 4:2, 5.

11. (ㄱ)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의 표준에 순응해야 합니까? (ㄴ) 여호와께 봉사할 기회가 생길 때 가장 좋은 태도는 무엇입니까?

11 그러므로, 신권 조직에 속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후원과 인도를 받고자 한다면 “도”의 요구 조건과 책임과 특권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 가운데는 겸손한 사람들과 그 “도”에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사도 19:9)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더 큰 책임이나 특권이 제시될 때에 거기에 응하고 그것도 열심히 응하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아시고, 또 우리에게 주신 임명을 수행해 낼 충분한 능력을 주실 수 있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사도 ‘바울’은 썼읍니다. (빌립보 4:13) 그러므로 회중에서 특별한 직책을 맡으라고 요청을 받는다면 우리는 믿음직하게 순응하고, 문제를 주의 손에 맡기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 필자는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 즐거이 헌신”한다고 말하였읍니다.—시 110:3.

기꺼이 응하라

12, 13. (ㄱ) 여호와께서는 어떤 차별을 하십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십니까?

12 어떤 사람이 “겸손” 곧 비천하다는 것은 그가 교만하지 않다는 뜻이며, 이것은 바람직한 성품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배경이나 선천적 제약 때문에 비천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여호와를 온전히 확신할 필요가 있읍니다.

13 여호와께서는 교만한 자들과 겸손한 자들 곧 비천한 자들을 차별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시 138:6) 이러한 차별을 하신다는 사실이 이사야 66:2에 또 언급되어 있읍니다.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리라고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충고가 있읍니다. “다 서로 겸손[비천]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베드로 전 5:5, 6; 야고보 4:6) 그 “겸손[비천]”을 옷처럼 입고 항상 벗지 말아야 합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으라.]” (골로새 3:12) 우리의 지도자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그러한 분이었읍니다. 그는 친히 자신에 대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비천]”하다고 하셨읍니다. (마태 11:29) 그처럼 겸손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소중히 여기십니다.

14. 억눌리고 비천한 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14 비천한 자들을 소중히 여기는 데 있어서 여호와의 목적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이사야 57:15)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배경과 현재 환경 때문에 비틀어지고 억눌린 자들을 바로 잡아 주실 것입니다.

15. 비천한 사람들은 무슨 구별을 해야 합니까?

15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를 차별하시는 것 같이 비천한 자들은, 필요하고 합당한 그리스도인 겸손과 거짓 겸손을 구별하고 차별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짓 겸손은 온당한 것이 아니며, 사실상 주재넘은 짓이기 때문입니다.

16. 이 점을 올바로 구별하는 데 있어서 무엇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까?

16 비천한 자들은 여호와께 대한 확신이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구별을 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잠언을 잘 알고 있읍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 6.

17. 성경은 진정한 겸손과 거짓 겸손을 어떻게 구별짓고 있읍니까?

17 사도 ‘바울’은 ‘골로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는 가운데 순수한 겸손과 순전한 고집과의 차이를 분별하도록 해주었읍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일부러 꾸민]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있는 모양이나 ···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골로새 2:18, 23) 비천한 사람들은 “육체의 마음”을 제거, 곧 피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이 ‘모양은 지혜있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참된 지혜도 아니요 겸손도 아닙니다. 잠언 11:2은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주의를 주고 있읍니다. 참으로 겸손한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 12:16) 이러한 교훈은 비천한 자들에게 깊이 생각할 점들을 많이 주고 있으며 심각히 고려하도록 많은 교훈을 주고 있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긍휼과 사랑의 마련에 단순히 순응할 뿐만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순응하도록 해줍니다.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잠언 28:1.

18. 이 기사로부터 어떤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까?

18 이 모든 사실로부터 우리는 어떤 사람이나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어떤 형태의 봉사 임명이든지 수행할 능력을 상당한 정도로 배양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다. 우리는 또한 여호와께서 비천한 자들을 소중히 여기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와 지도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들에게 제시되는 봉사의 특권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큰 봉사의 특권을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켜 주실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다.

19. 자만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어떠한 도움의 말과 교훈이 있읍니까?

19 어느 정도 무능력함과 비천함을 느끼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환경이나 업적이나 배경 때문에, 상당히 자만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러한 사람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유익한 교훈이 들어 있읍니다. 여호와의 백성 모두는 양무리 가운데 속해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 내에서 특권과 책임을 받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징적 양들 가운데서 목자들을 택하여 양무리를 인도하고 돕도록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무리 중의 양이므로 자신을 지나치게 중요시하지 않고 거만해 지지 않도록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일 그들이 거만하거나 그렇게된다면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없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과 오만한 자들을 좋아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사도 20:28.

20.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무슨 좋은 본을 보이셨읍니까?

20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한 5:19) 사도들은 예수 앞에서 열등감을 느낄만도 하였지만 예수의 겸손과 사랑은 그들 안에 대단히 좋은 성품을 길러 주었읍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 내에서 책임의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처럼, 즉 예수께서 겸손과 사랑을 나타내신 것처럼 해야하며, 그의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를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21. 성경에서는 교만한 사람들에게 어떤 충고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그 사람의 축복과 특권이 그를 교만하게 하였다면, 그는 정신과 마음의 겸손이라는 필요한 성품을 상실한 것이며,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에 그는 변화하지 않는다면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베드로 전 5:5)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비천한, 신세]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6:18, 19.

22. (ㄱ) 환경이 좋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ㄴ) 시간이 걸리고 훈련을 받아야 발전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입니까?

22 겸손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분명합니다. 모두 다 그러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환경이 좋고 선천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노력을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발전을 잘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진보는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능력과 책임감과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점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훈련과 여호와의 영의 작용으로 도움을 받아 얼마 후에는 발전을 하고 부가적인 신권적 특권을 받는 사람도 있읍니다. 그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며, 그것 역시 합당한 그리스도인 발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외에,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새로운 많은 사람들이나 환경이 좋지 않아서 발전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우리는 하나님의 견해로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약간 뒤에 처진 사람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릇된 인간적 논리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으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여러가지 가치 있는 면으로 사용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십니다.

23. (ㄱ) 누구에게 도움을 베풀어야 하며, 누가 도움을 베풀 것입니까? (ㄴ) ‘야고보’의 말과 같이 우리 모두는 무엇이 참됨을 보았읍니까?

23 그러므로 이러한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모두는 비천한 사람이든지 다른 사람들이든지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이런 일 가운데는 실제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을 돕는 것도 포함됩니다. 또한 나이가 많은 허약한 사람들이나 열등감을 가진 사람들까지도 도와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여호와의 사랑의 마련에 응하여 여호와의 백성의 회중 조직에 힘을 주고 또 조직을 뒷바침 해주는 비천한 사람들로부터 영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회중적 교제와 개인적 교제는 대단히 가치가 있읍니다.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 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할 것입니다. (고린도 전 12:24) 여호와의 종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성서 필자 ‘야고보’가 한 말, “너희가 ··· 주[여호와]께서 [욥에게]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여호와]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는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야고보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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